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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화 〉087 이벤트 게임 (87/140)



〈 87화 〉087 이벤트 게임

"무슨 일이지?“
"넌 무슨 일이더냐.“
"피를 부르는 사나이.“
"진도열.“

뭐야. 둘이 아는 사이인가? 피를 부르는 사나이라면 헤븐의 최강자이자 랭킹 1위라는 사실과 그의 랜드마크라   있는 거대한 낫, 특이한 복장은 눈에 띄어서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피를 부르는 사나이를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저 잘생긴 남자는 친한 듯이... 친한...  친한가?


피를 부르는 사나이는 경계하는 모습이고, 진도열이라 불린 남자는 싱글싱글 웃고는 있지만, 얼굴은 차게 식어 있었다. 언제 무기를 뽑고 싸우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유도 모르고 그 둘의 사이에 끼게 된 재희는 괜한 시비를 걸지 않도록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발. 이새끼들은 뭔데 자연스럽게 여기 앉는 거야? 니들 나 알아? 나랑 친해? 여기 널린 게 빈자리인데 왜 굳이 여기 앉고 지랄이야.'

이 말을 그대로 내뱉고는 싶은데 최강자의 앞에서 할 말은 아무래도  되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지도록 속으로 외쳤다.


"야. 여기 자리 많잖아? 다른  앉지 그러냐? 추잡스럽게 끼어들지 말고.“
"......"

진도열이 먼저 입을 열자 피를 부르는 사나이의 모습에 홀려 술집으로 따라 들어왔던 사람들이 숨을 멈추며 매우 놀랐다.

"저, 저 미친놈!“
"정신 나갔어. 제대로 나갔다고! 감히 피를 부르는 사나이한테 저렇게 말하다니. 곧 뒤질 새끼군.“
"저 거대한 낫과 복장을 모르면 간첩일 텐데. 이제 막 아카데미를 졸업한 뭘 모르는 뉴비인가?“

어머 시발. 박력 있네. 애초에 복장은 물론이고 이미 자신의 길드장의 아내인 것마냥 행동하던 지존 길드의 길드원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재희는 진도열에 대한 호감도가 미칠 듯이 상승했다.


'조아조아 더 욕하는 거야!‘

저게 욕을 해도 저 남자한테만 피해가 가지. 재희에게 올 피해는 전혀 없었다. 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건지. 그냥 단순하게 어떤 사람이 했던 말처럼 이제  아카데미를 졸업한 뉴비일 수도 있었다. 근데... 피를 부르는 사나이라고 진도열이 그러지 않았나? 음... 진짜 친구 사인가.


"그건 안 되겠네만?“
"하하. 안 된다고? 개새끼가. 뒤질래? 안 되겠네만은 뭐가 안 되겠네만이야. 병신 같은 말투나 쓰지 말고 씨부려라 제발. 손발이 오그라든다.“

보니까 서로 아는 사이인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친한 걸로.


"그리고 내가 왜 꺼져야 하나. 네가 꺼져도  것을.“
"아앙? 내가 꺼져도 된다고? 허미. 시발. 먼저 앉은 거 안 보이냐? 개새끼야.“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네가 전세라도 내었나?“
"아따. 말이  통하네.“


악명과 달리 유치하게 우기는 피를 부르는 사나이, 그리고 그를 내쫓으려고 안달이 난 진도열. 재희는 그들을 보며 다시금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먼저 앉아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이 자리는 재희가 먼저 앉아 있었으니 허락을 받을 거면 재희에게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미 지들 자리인 것처럼 말하니 기분이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한다. 참자. 참자. 말을 걸면  돼. 범접할 수 없는 괴물이 한 명이랑 그런 괴물에게 뒷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미친놈이니 건드려 봤자 좋을 건 하나 없다고. 재희는 인내했다.

재희의 예상대로 그들은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 아는 사이였다. 그럴 수밖에. 랭킹 1위와 2위이니 만나고 싶지 않더라도 게임 도중에 피칠 못하게 만나게 되는 악연인데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그리고 서로의 실력이 박빙이라 둘 중 한 명도 죽지 않고 여태까지 살아있는 것이다. 그런 괴물인 진도열. 그는 어떤 이유에선가 자신의 정체를 꼭꼭 숨겼다. 그런데.

"싸우자는 거냐?“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정체가 들통날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바란다면?“


피를 부르는 사나이는 절대 자신이 질 리가 없다며 확신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네이네이. 둘이서  해결하세요.‘


계속 앉아 있어 봤자 둘의 여파에 말려들 것만 같은 기분이라 재희는 술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일어나자마자 진도열은 재희의 손목을 붙잡으며 물은 뒤에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비켜드릴게요.“
"아니. 일어설 필욘 없어. 이새끼가 꺼질 거니까. 그렇지?“
"......“


진도열의 물음에 피를 부르는 사나이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 아아아! 어떡해야 하는 거야?! 돌겠네 진짜. 싸워야 하나. 남자답게 그녀의 앞에서 이새끼랑 싸워야 하는 거야?!‘

처음  순간부터 잊혀지지 않는 은발과 적 안을 지닌 아름다운 윤재희의 모습이 매일 같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에 빠져버린 그, 그러나 길드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들키는 게 무서워 애써 숨기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오늘 마침, 바람을 쐬기 위해 나왔다가 우연히 윤재희를 발견했고, 그녀의 뒤를 따라 라이벌이자 악연인 진도열이 따라 들어가는 걸 보고선 곧장 뒤를 따라 술집에 발을 들인 것이다. 대책도 없이. 막......

그래서 고민했다.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할지에 대해. 주워들은 상식으로는 좋아하게  여자의 앞에서 절대 경쟁자에게 약해지거나 먼저 꼬리를 말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지적 생명체인 인간이긴 해도 암컷인 이상, 강한 수컷에게 조금 더 끌리기 마련이라면서... 그 말을 믿고 끝까지 가야 하는 건가. 일단 자신만만하게 나가긴 했는데. 더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
"왜. 말이 없어.“


선택할 말들을 찾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흐른 듯하다. 진도열은 그세를 참지 못하고 물었다.


'몰라. 시발. 일단 밀고 나가자.‘

단단히 재희에게 꽂혀버린 피를 부르는 사나이. 이창운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하아... 혼자 마시려고 했는데 가만히 내버려 두질 못하네. 새끼들이."

뭐만 하면 한 번 꼬셔보려고 도전하려 드는 망할 놈의 남장 놈의 새끼들. 그냥 내버려 두면 어디가 덧나나?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해서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대로 내뱉어 버렸다.

헙.....!

주워 담기엔 이미 늦은 노릇. 이창운과 진도열의 시선이 재희에게 집중되었다.


'좆됐다... 시발. 어떡하지?'


다행인 건 욕을 하지 않았다는  그래도 세상엔 정말 미친놈들이 널리고 널려 있어서 고작 이런 말에도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놈들일 수도 있었다.


"헤에... 재밌네?“


진도열은 즐거워했다.

'아... 안 돼. 나 싫어하게 되려나?‘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재희의 모습에 이창운은 초조해했다.

"내가 싫어? 내가 직접 말하기 뭐한데. 일단 내가 헤븐에서 잘생긴 걸로 엄청 유명한데. 그래서 가면을 쓰고 다닐 때가 많다고?“

여자를 꼬시는 것 외엔 길드 안에서나 게임에서나 가면을 쓰고 다녔다. 이유...? 그건 간단했다. 꼬시려는 여자들이 재미없게 배경을 보고 귀찮게 계속 달려들 것만 같았기에. 헤븐에서 이인자에 군림해있고 대형 길드를 운영하는 길드장인 이상. 여자들은 쉴 새 없이 꼬여 들기 마련. 그래서 감춘 거다. 그저 잘생긴 변태로 인식되도록.


'맞아... 나 따위랑 비교가 안 된단 말이야아아!‘


이창운은 절규했다. 외모는 물론이고, 헤븐에서 가장 강하다고는 해도 중 2병인 이상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배경을 보고 다가오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건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닌 배경을 사랑하는 이유로 모조리 차버렸다. 그렇게 모쏠 인생이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내려치다 못해 맨틀을 뚫고 핵까지 다가가 있는 상태였다.


남자인 이창운이 봐도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겼다. 남자들도 예쁜 여자들을 좋아하듯, 여자들도 당연히 잘생긴 남자들을 좋아하기 마련. 배경도 비슷비슷하고,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런데... 이창운은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않았는데... 그럼 뭐하나. 내세울 게 없는데.


"네. 잘생기셨어요.“

재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창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근데. 제 취향은 아니네요.“
"......“
"풉!“

뿜었다. 얼굴엔 무표정만 간직하던 피를 부르는 사나이가 뿜어버렸다.

끄윽... 끅. 끅끅. 푸흡. 끅.

참으려고 해도 웃음이 자꾸만 밀려나온다. 아 웃겨.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생각에 이창운의 웃음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길드에 처박혀 있을 때, 들려오던 소문.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가 헤븐에 들어오면 입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가 되었는데 재희는 그 시간이 무척 길었다. 소문은 정말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급기야 여자인데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솔직히 진도열의 외모는 아이돌을 한다면 얼굴만으로 한류 스타가 되도 무방할 정도로 잘생겨도 더럽게 잘생겼다. 저 개같은 새끼에게 지존 길드에 희귀한 여자들이 따먹히고 버려져서 우울증에 빠뜨린 악마 같은 새끼였다. 그런 그가 여자를 좋아하는 탓에 재희에게 차여버려 이창운은 울었다.

'시발... 그럼 나도 가능성이 없는 거잖아?‘


생각해보면 남자인 이창운도 그녀에겐 귀찮게 다가오는 파리가 아닐까.

'잠깐... 잠깐 나가서 모아둔 돈으로 태국가야 하나? 트렌스젠더가 돼서 성형도 엄청해 예쁘게 변한 뒤에 돌아오면 봐주려나? 아아악! 미친놈아! 똘똘이를 자르자는 거야? 한 번도 쓰지 못하고 여자가 되는 병신이 어디 있냐고!‘


바로 앞에 재희가 있었다. 안 그래도 잘생기게 태어나 여자에게 인기도 많았으면서 방해된다고 내치다가 끝내 똘똘이를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잃은 남자가. 그래도 여자가 돼서 똘똘이를 되찾고 사용했으니 상관없으려나.

"진짜 여자 좋아하는 거냐?“
"그런데요?“
"하...  소문이 진짜였다고?“
"네. 저 여자를 좋아해요. 솔직히 남자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네요.“

당연했다. 원래 남자였던 재희가 여자도 아닌 남자를 보고 성적으로 흥분한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되었을뿐더러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잘생겼다는 진도열을 보아도 두근거림 따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박이네. 나 레즈를 처음 봤어. 나. 그것도 이렇게 예쁜 여자가.“

탁.

진도열은 황당해 하면서도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자는 처음이라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가져갔다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은 재희의 손에 쳐져서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계기가 뭐야.“
"무슨 계기요.“
"아무 이유도 없이 동성을 좋아하게 됐을 리가 없잖아?“


음...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네. 남자는 당연히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당연히 남자를 좋아해야 한다는 공식이 일반적이었다. 이 중에 돌연변이가 나타나 동성을 좋아하기는 한데 대부분은 선천적으로 동성을 사랑 한다긴 보다는 어느 이유에서 사랑이 변질하여 후천적으로 동성을 좋아하게 됐을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래서 진도열은 차인 마당에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물음을 던진 것이다.

"그냥... 여자가 좋던데요.“

남자로 태어났는데 여자가 좋지. 남자가 좋겠냐. 계기가 필요한가. 그냥 여자를 좋아하는 게.

"말하기 싫은 건가......“

아니. 말했잖아. 진도열은 믿지 않는지, 아니면 믿고 싶지 않은지 사실을 말해도 혼자 고개를 저으며 말하기 싫은 거라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말하기 싫다면 그래라. 근데... 이거 하나만 알려두지.  찜해둔 여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따먹을 거라 생각한 여자가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먹는 진도열이었다. 정말 어떤 방법이든 다 썼다. 협박부터 인질극까지 그런데 재희에겐 이 극단적인 방법까진 쓸 생각이 없었다. 그야 그럴 것이 그녀와는 한평생을 같이  거니까.

"언젠가는 내가 없으면 못 사는 몸으로 만들어 주지.“


어머 시발. 이새끼도 중2병인가. 존나 오글거리네.  말을 남기고 술집을 나가는 진도열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 못해 생각이 가출하고야 말았다.

"나도 이만 가보지.“


단둘이 있는 건 아직 너무 이르고 긴장되는 터라 이창운은 도망치듯 말하며 술집을 나갔다. 뭔가... 뭔가 폭풍이 휘몰아치고 떠난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재희 말고도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그렇게 느꼈는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라이. 몰라. 시발.“


기억에서 지우자. 신경 쓰면 골치만 아프지. 앞에 어질러진 의자가 거슬려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둔 채로 재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다.

"크으. 시원하다.“

역시 술은 낮에 먹어야 그 맛을  수가 있었다. 물론, 밤도 똑같았다. 오후에 먹어도 괜찮던데. 그냥 술은 언제 먹어도 맛있는 마약이었다. 피를 부르는 사나이와 진도열이 재희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홀려도 괜히 최강자에게 찍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남자들을 재희에게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예뻐서 술을 마시면서 헤실거리는 모습을 멀리서 멍하니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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