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086 이벤트 게임 (86/140)



〈 86화 〉086 이벤트 게임

"자. 마음껏 와도 돼.“
"우으... 재희야. 그러다가 다칠 수 있어요!“
"음. 민정이한테는 다쳐도  텐데.“
"그, 그건 싫어요!“

오늘은 애인들의 실전 상대가 되어주기로 했다. 우선은 민정이. 재희의 도움이 되려고 열심히 훈련했는데 훈련하게 된 계기인 재희가 무시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살짝 화가 나서 큰코다치게 해주고 싶었다. 근데 정말로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아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모습에 쿡.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다치더라도 밤에 다치는 건 민정이일 테니까.“
"......!“


부, 부끄럽게!

"그러니까 편하게 와도 돼.“
"알았어요. 조심해요!“
"어엉.“

여태까지 훈련한 걸 모조리 다 보여줄 때가 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휘두르는 것조차 힘이 들어 도움만 받으면서 살아가던 잉여였는데 이젠 아니었다.

"흣!“


고된 훈련으로 인해 욱신거리는 다리의 통증을 꾹 참아가며 달려나가 나무로 된 목검을 재희를 향해 휘둘렀다. 정말 많이 발전하긴 했어도 고작 이런 공격으로 재희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검을 세워 가로로 휘둘러지는 검을 가뿐하게 막으며 그녀를 칭찬했다.


"호오. 빠른데?“
"헤헷.“

칭찬받았다. 민정이는 칭찬을 받았다는 기쁨을 느끼면서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맞부딪친 검날을 세워 위로 끌어올리자 그제서야 방심했다는 표정으로 깜짝 놀라며 재희는 황급히 물러섰다.

'손을 노렸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다시 검을 떼어내어 효과적인 공격을 넣을 곳을 다시 찾기 마련인데 민정이는 노련한 검사처럼 곧장 칼날을 세워 손을 노린 것이다. 놀랄 수밖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식칼조차 잡아본  없어 보이던 그녀였는데.


피식.


"이번엔 정말 놀랐어.“


재희가 아니었다면 피하지 못했을 공격이겠지.

"정말로요?“
"응. 정말로.“
"헤, 헤헤헿.“


또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예림이와 유지나를 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
"......“


누가 보아도 도발하는 모습. 재희가 곁에 있을 때는 무척 사이좋은 언니 동생 하는 그녀들인데 곁에 없을 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친한 사이가 맞는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대로면 그녀들 간의 사이에 금이  수도 있겠다 싶어  도발하지 못하도록 재희가 먼저 공격을 감행했다.

"읏.....?!“

갑작스러운 움직임. 당황하면서도 머리를 향해 휘둘러진 공격을 검으로 막았다.

"휴우......“


안심하는 그녀. 근데 실전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딱!


"악!“

칼날을 뒤로 살짝 빼내어 검을 피해 다시 밀어 넣고선 머리를  쳤다.

"방심이야.“
"힝......“
"그래도 잘했어. 방심한 게 많이 마이너스긴 해도 엄청난 발전이야.“
"정말이에요?“
"그럼 그럼.“


뭘 계속 정말이래. 그렇다면 그런 거지.

"꺄아아!“


 칭찬받아서 너무 행복한 민정이는 손에 들린 목검을 떨어뜨리고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은 손을 볼에 가져다가 어찌할  몰라하자 칭찬해도 마땅한 일에 자주 칭찬을 해도 될지. 의문이 들어온다. 칭찬할 때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반응이면 칭찬하는 게 좋으려나. 근데 조금 과하다 싶은데. 고작 말 몇 마디에 이러니. 흠.

"다음은 예림이가  보자.“
"응! 언니!“


다음은 예림이. 예림이는 아카데미에서 재희를 따라 들었던 나무로 된 레이피어를 들고 있었다. 참고로 아카데미에서 활을 연습했던 민정이는 계속 연습을 해 보아도 발전은 없고 명중률도 낮아 접고 일반 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림이처럼 레이피어를 손에 잡긴 했어도 맞지 않는다 생각하고 바로 접었지만.

"언니. 나도 많이 발전했어.“
"흐응. 그래? 궁금하네 우리 예림이가 얼마나 강해졌을지.“
"히히. 보고 놀라면  돼?“

이제야 어엿한 브론즈 등급에 발을 걸친 수준이 된 민정이를 보고 놀란 재희인데. 그녀보다 못했던 예림이의 발전에 과연 놀라지 않을 수가 있을지.

"흡!“

짧은 팔다리를 쭉쭉 뻗어 레이피어를 내찔렀다. 물론 그 공격을 간단히 막아줄 생각이 없는 재희는 검으로 다가오는 레이피어의 날카로운 칼날을 쳐서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예림이는 흘려보낼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레이피어를 걷어드리는  없이 놓아주었다. 그 대신이라고나 할까. 몸을 낮춘 상태로 빠른 속도로 다가와 반대편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오. 놀랐는데?‘


레이피어에 집중시켜놓고 진짜 공격은 맨 주먹이라니. 아니, 자세히 보니 커다란 가시 세 개가 박힌 너클이 손에 씌어 있었다.

"앗!“


초월적인 동체 시력과 신체 능력으로 그걸 발견하고 너클을 피해 손목을 붙잡자 예림이는 아쉬운 탄성을 흘려보냈다.


"나쁘지 않았어.“

주먹의 속도는 빨라도 힘이 없었다. 그런 점을 너클로 보안하다니.  괜찮지 않은가. 근데... 게임 안에 너클과 레이피어.  개의 무기를 가져갈  있으려나. 재희가 알기로는 무조건 하나의 무기만 허용되는 걸로 안다. 뭐,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어차피 게임에 참가시킬 생각은 전혀 없는데.

"힝... 언니의 몸에 닿기 직전에 멈추려고 했는데 막혀버렸어.“
"그러네. 아쉽게 막혀버렸네.“
"우응......“
"괜찮아. 괜찮아. 실망하지 않아도 돼. 엄청 놀랐는 걸?“

손목을 놓아주고 풀이 죽어버린 예림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그제서야 예림이는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으로 재희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시작이네. 민정이도 그렇고 예림이도 그렇고  이리 정말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엉. 정말이고 말고.“
"헤헷! 내가 민정이 언니보다 대단했어?“
"익!“

대놓고 누구누구보다 대단했냐고 묻는데. 이거 골리려고 그러는 걸까. 바로 옆에 민정이가 일그러진 얼굴로 재희를 노려보고 있고, 예림이는 어서 빨리 말해달라는 재촉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건... 모르지. 둘  다른 무기를 쓰고 있는데.“


통할까나. 다른 무기를 쓰고 있더라도 사람마다 쓰는 역량에 따라 충분히 누가 더 대단했냐고 확답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근데 재희는 솔직히 두 사람이 박빙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수를 각각 한 번씩 당했으니까. 누가 더 좋은 방법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전에서 상대방이 알아차릴 수도 있고 못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 사람마다 달랐다.

"그래? 아쉽네.“


분명히 자신일 거라 생각했거늘.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칭찬을 받아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이 좋아진 그녀는 민정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제 제 차례군요. 주인님.“

마지막은 유지나.  정신 나간 여자는 훈련을 하면서도 불편하게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에 따르면 냉난방이 잘 되면서도 옷이 땀을 흡수하지도 않으며 겉으로 보기보단 불편함이 전혀 없다 한다.

'그거 뭐야. 사기잖아? 진짜 나도 그거 주라. 땀에 젖지 않는 옷이라니!‘

말도  돼! 그런 옷이 있으면 노망난 늙은이가 메이드 복이 아니라 남성복처럼 만들어서 재희에게  수 있지 않은가. 정말 너무하다. 만약 레이건 박사를 다시 만난다면 곧장 자지는 돌려주지 않을 테니 유지나가 입고 있는 옷과 같이 편안함의 완전체인 옷을 달라고 조를 거라 다짐했다.

"단검이네?“
"네. 주인님.“

민정이는 중검, 예림이는 레이피어, 유지나는 단검이었다. 뭐 단검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하다. 남자치곤 적고 약한 근육을 가진 여자의 입장에선 단검이 오히려 큰 효과를 가져올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야 그럴 것이 검을 맞대면 힘에 밀릴 게 뻔하고, 팔과 다리의 길이도 짧아서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면 이길 확률은 확 낮아지기 때문에.


"들어와 봐.“

실험의 여파로 모든 무기를 통달한 재희로서는 단검으로 어떤 공격을 할지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다. 물론 지금 예상하는 공격을 할 만큼 유지나가 뛰어날 수도, 못할 수도 있었지만. 유지나는 앞선 그녀들과 달리 짧은 기합 소리도 없이 다가와 단검을 휘둘렀다.

'호오. 괜찮은데?‘

민정이와 예림이보다 헤븐에 더 오래 머물렀을뿐더러 훈련도 몇 배는 더 많이 했을  분명하니 정말 뛰어난 실력이었다. 슉슉 하고 단검이 급소를 노리며 찔러지는 모습에 역시 먹은 짬밥이 있으니 당연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왔다. 근데.


'빈틈이 너무 많네.‘

공격하는 건 나쁘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완벽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공격이면서, 공격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자세는 아예 되어있지 않았다. 이래서는 압도하는 적이 아니라면 곧장 반격당해 죽어버리겠지. 그러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가볍게 내찔러지는 공격을 피하면서 목검으로 머리를 툭 쳐줬다.


"아얏!“

보기보다 꽤 세게 쳤는지 귀여운 소리가 귀를 간질었다.


"빈틈이 너무 많아.“


누가 본다면 암살자라 생각하겠다. 임무를 위해서라면 몸을 포기하고서라도 목표물을 처리하려는 그런 암살자.


"공격하는 건 좋은데 너보다 강한 상대라면 뼈도 못 추리겠다 너.“
"시, 심각한가요?“
"음... 확실히 저 둘보단 뛰어나겠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저  보단  심각하지.“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상대방을 죽일 필요가 있을까. 여긴 1대1을 하는 곳이 아니라 수  명이 함께 고립되어 죽이기는 해도 살아남는 게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판단이 되면 되도록 싸움을 피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조금이라도 칼에 베였다가는 후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고작 그 작은 상처로 죽을 수도 있기에.

"뭐, 괜찮았어. 그래도. 천천히 보완하면 되는 거지 뭐.  그래?“
"그 말이 맞습니다... 주인님.“

셋 중에 가장 낫다는 말에 기분 좋을 법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가장 심각하다는 잔혹한 말에 유지나는 잔뜩 풀이 죽어버렸다.


"맞아. 아니야. 엉?“


그래서 재희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아 배에 손을 가져가 살며시 움직였다.

"아읏... 마, 맞습니다.“
"확실히 알아들은 거 맞아?"
"네. 확실히 알아들었습니다. 그, 그러니까. 이것 좀... 놔 줄 수 없으신가요?“


유지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을 질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민정이와 예림이를 고사하고 그녀들을 훈련시켜 주는 교관의 시선과 훈련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길드원들의 시선에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교관님?“
"네, 네네.“


새빨간 얼굴로 교관은 황급히 대답했다.

"뭐가 문제인지 알겠죠?“
"네. 물론이죠. 하하.“


교관은 교관인지 그녀들의 문제점을 캐치 해낸 것 같다.

"잘 부탁드릴게요.“

품에서 유지나를 놓아준 뒤에 교관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 저만 믿으세요. 하하.“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어색하게 웃음만을 터뜨리고, 재희는 그녀의 귀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만약에 만족할 만큼 성장하고 문제점을 보완한다면 제가 상을 드릴게요.“
"사, 상이요?“
"무얼 원하세요?“
"무, 무얼 원하다니요. 가, 같은 길드원으로서 돕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럼 대가는 필요 없다는 말일까?“
"......“


반말로 물으니 입을 꾹 닫아버렸다.

"정말 없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다 들어줄 텐데.“

꿀꺽......


솔직히 말해서 재희는 한 번 교관을 따먹고 싶었다. 식스팩이 그려진 흑갈 빛의 배를 그대로 들어내고 여자치곤 남자처럼 털털해 보이는 그녀가 자신의 밑에 깔려 어떻게 울지 궁금증이 밀려왔다.

"어떤 거든... 다요?“
"해줄 수 있는 거라면. 예를 들자면 섹... 스... 라던가?“
"......?!“


그녀도 재희에게 마음이 있어 보였다. 그 증거로 교관은 섹스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재희를 바라보았다.


"고생하세요.“


정말이냐고, 믿기 어렵다는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혼합된 그녀의 표정을 뒤로 한 채 재희는 훈련장에서 나와 곧장 술집으로 향했다.

"음. 여기 너무 많이 찾는 것 같은데... 뭐, 아무래도 좋으려나?“


어서 빨리 그녀들의 빚을 갚긴 갚아야 하는데 술이 자꾸만 재희를 부른다. 생각할 것도 많고, 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마시는 욕망이지만.


"크아~!“


거의 지정석이 되어버린 테이블에 앉아 술을 잔에 따라 들이켰다.

"또 벌면 되지 뭐.“


믿을 만한 강한 동료를 구해서 나중에 한탕 크게 치면 될 것을. 뭔 고민일까. 미래의 일은 미래의 재희가 알아서 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재희는 콧노래를 부르며 술을 따랐다.


드르륵.


그럴 때에 한 남자가 재희가 앉아있는 의자를 뒤로 빼내어 자리에 앉았다.


"또 만났네요?“
"......“
"운명인가 봐요. 우리?“

앞에 앉은 남자는 다름 아닌... 다름이 아닌... 어... 누구였지. 그 정산소의 앞에서 만난 잘생긴 남자였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이름을 들었던가?

드르륵.

다른 테이블에 배치된 의자를 가져와 또 다른 남자가 자리에 앉자 재희는 고운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지?“
"넌 무슨 일이더냐.“
"피를 부르는 사나이.“
"진도열.“

헤븐에서 랭킹 1위, 그리고 2위라는 정점에 서 있는  남자가 마주 보며 서로를 칭하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아니, 뜬금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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