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080 이벤트 게임 (80/140)



〈 80화 〉080 이벤트 게임

"뭔가... 있어 보이는데.“


브론즈 게임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희의 앞으로 온 편지. 이 편지를 보던 재희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공지로 올라오지 않은 사실을 굳이  재희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도 모자라서 다른 이들과 다르게 무조건 플러스 두 배로 상금을 지급한다는 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분명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야 당연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돈을 퍼준다고 하기엔 말이 안 되었으니까.


"선택지가 없는데. 이러면.“


편지 안의 내용에는 하위 등급의 게임에 참가할  있는 자격을 박탈한다는 의사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게임 측에서  편지가 확실해 보이고, 편지를 위조할 시에는 큰 처벌이 기다리고 있으니 거짓된 거라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신에게만 특별히 상금을   불려서 준다라.


이러면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반드시 참가해야만 하는 상황. 안 그래도 애인들의 빚조차 갚는 데 시간이 걸리고, 얼마나 줄 줄은 모르는 유예시간 동안 이자가 상당히 쌓여 그녀들의 빚을 다 갚기도 전에 퇴출당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런 좋은 조건이라면 위험을 무릎 쓰더라도 참가할 가치가 있었다.


지금 재희의 등급이 골드니까 당연히 골드 등급 게임에 참가해야겠지. 브론즈 등급 게임에만 참가하던 상황에서 갑자기 수준이 확 높아지면 당황할 법한데도 불구하고 재희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애초에 골드 등급의 게임에 참가할 의사가 있었다. 단지 자신을 걱정하는 애인들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을 뿐이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허락받아 돈을 벌기 위해 게임에 참가할만한 가치가 생겨났다.


"골드 등급의 게임이 상금이 500만 원에  당 50이었지?“


생존 상금이 아마 브론즈 게임보다 200만 원이 더 많았고 킬 당 추가 상금도 20만 원이나 더 쳐준다.


"해야겠지 뭐.“

이번 이벤트에서는 하위 등급의 참가자가 상위 등급의 게임에 얼마든지 참가가 가능하다고 한다. 브론즈 등급이지만 다이아몬드 등급에 참여할 수 있으면서 현재 등급보다 높은 게임에서 만약 살아남는다면 파격적인 상금과 더불어 등급 업에 필요한 조건에 혜택이 떨어졌다. 예를 들면 등급 업을 하려면 플레이  게임 판수가 20판이 되어야 하는데 이번에 높은 등급에 참여해서 살아남으면 다섯 판을 채워준다거나 그런 방식으로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플래티넘 등급 게임에 참가할까?“

팀만 어느 정도 잘 꾸린다면 다이아몬드 등급은 무척 수월하게 참가할 수 있을 테지. 근데 가장  문제는 등을 믿을 만한 동료가 없다는 거랄 까나. 솔직히 재희 자신이라도 이제 두  가까이 된 뉴비를 믿고 고인물들이 등을 맡길까. 거기다가 남자도 아닌 여자를? 오히려 강간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아니라면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당기려면 크게 한 번 당겨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브론즈, 실버, 골드 게임과는 다르게 플래티넘 등급 게임에서는 급격하게 상금이 올라간다. 기억하기로는 플래티넘 등급이 생존 상금 1000만 원에 킬 당 100만 원. 다이아몬드가 2천만 원에 길 당 200만 원으로. 그렇기에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


하지만 비쓰온 게임에서 플래티넘 등급부터는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며 그 미만의 게임과 동일 시선으로 보아서는 큰코다친다고 말하니 머뭇거려진다. 뭐, 참가하려고 해도 그녀들이 순순히 허락해줄 리는 만무, 만약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했다고 무슨 멍청한 짓을 벌일지 생각조차 하기 싫으니 이건 상황을 봐서 생각해 봐야겠다.


"일주일인가.“

편지의 내용대로라면 오늘 안으로 이벤트 공지가 올라온다고 한다. 그러면 헤븐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가 의사를 밝히겠지. 그래서 이벤트가 끝나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 재희도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게 분명했다. 아쉬울까. 슬플까. 그런 감정이 들 사람은 아예 없다 해도 무방하다. 있어도 애인들이니.


쩝.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게임에 참가한다는 말을 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한소리 크게 들을 것 같은데.

"술이나 먹을까?“

지금 고민해 봐야 그녀들의 마음을 돌리지도 못할 거며, 지금 당장 마땅히 할 것도 없으니 술이나 퍼먹으러 가기로 마음먹고 재희는 길드를 나가 술집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백윤현과 함께 술을 마셨던 술집에 가서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구석 자리를 잡은 뒤에   병을 주문했다. 물론 안주는 닭발로!

"크으... 쓰다.“

아... 이 행복. 얼마만일까. 무인도에 갇혀서 맛 대가리 없는데 영양가만 가득한 빵만 우걱우걱 씹으면서 술처럼 물을 퍼마셨을 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솔직히 그 짓거리도 일주일 정도면 충분히 버틸만한데 약 한 달 동안 그러고 있으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오도독. 오독.

그런 미칠 것만 같던 기분은 알코올로 세척된 입안으로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천상의 하모니를 그리니 살살 풀어져만 갔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혼자서 느긋하게  먹는 것도.“


어찌나 맛있는지 벌써 술 한 병이 동나있었다. 왠지 이럴  같아서 한 병 더 가져오긴 했는데 이마저도 부족할 것 같아 재희는 몇 병 더 시키기로 했다.

"드디어 찾았네.“사장님을 부르려던 찰나. 한 남자가 양손에 술을 들고 재희의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이새끼는 또 뭐야?‘

처음 보는 남자, 아니, 본 적은 있는데 기억할 이유가 없어서 잊어먹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 딱히 위험할 인물이 아니라는 추측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윤재희 씨.“
".......“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도대체 누구지. 헤븐 안에서 정장을 입을 만한 사람이 누굴까. 주민 대부분은 편한 복장만 입고 다니거나 지존 길드와 같이 중2병스로운 복장을 원하긴 해도 정장은 거의 입지 않는다. 불편하기만 하고 비싸기만 한걸.

"게임 측?“
"네. 처음 뵙겠습니다. 윤재희 씨.“

그게 끝? 뒤에 뭐 또 없는 거야? 황당함에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름은?“
"아. 이름은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니 알려드려도 되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을 겁니다. 전 단순히 심부름꾼과 같은 존재이니까요.“
"심부름?“
"네. 어느 분께서 윤재희 씨에게 전해달라는 말이 있어서 이렇게 왔답니다.“


레이건 박사인가. 아니면 도끼를 든 남자를 조심하라고 알려주었던 배의 그 남자인가.

"누가?“
"제 이름은 밝힐 수 있지만 의뢰인의 성명은 밝힐 수가 없네요.“

웃으며 말하는 그, 표정이 느끼해 보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괜히 사소한 일로 게임  심부름꾼에게 시비를 걸어 보았자 손해는 재희만  것만 같아 애써 무시하기로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래.“
"아...! 바로 본론입니까? 윤재희 씨처럼 아름다운 분을 이렇게 단둘이서 마주 보고 있는데 조금 더 사적인 대화를 해 주실 수 없으신가요?“
"헛소리 집어치우고 뭐라고 전하래?“
"아아.  차여버렸군요. 흑... 슬프네요.“
"하아......“


참. 상종하기 싫은 분류의 인간이네. 재희는 심부름꾼이 와도 왜 하필 이딴 놈이 오는 건지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원하는 건 제가 아니니 말씀해 드리겠지만 제 생각을 조금은  주시겠습니까?“
"......“
"네네. 말할 테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상처받습니다 저?“


받던가 말던가.


"전할 말은 간단합니다. 이번에 열리는 이벤트에 무조건 참가해 주셔야겠습니다.“
"그거? 할 생각인데. 헛된 발걸음을 했네."
"하하. 그런가요? 근데 모르죠. 갑자기 마음이 바뀔지는 말이죠. 일단은 알려만 들리겠습니다. 만약 참가하지 않는다면 윤재희 씨의 애인분들의 안전을 보장해 드리기 힘듭니다.“
"......“

굳이 그녀들을 꺼내다니. 재희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화난 모습도 이리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요? 저도 술  잔 받아도 됩니까?“
"본론은 그게 끝?“
"네.“
"그럼 꺼져."
"네?“
"꺼지라니까?“
"아아. 슬프게시리. 미움받아 버린 건가요? 저는?“
"꺼져. 계속 말씨름 할 거야? 귀찮게 하지 말고 당장 꺼지라고.“
"네에네에. 그렇게까지 말하니 미움받아버린 전 어서 꺼지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재수 없던 게임 측과 관련된 양복을 입은 남자는 떠나갔다. 그렇게 다시 홀로 남게 된 재희는 입 맛이 떨어져 술잔과 안주에 차마 손을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좀 내버려 두지. 개새끼들이 진짜.“

잘살고 있던 사람을 갑자기 납치해서 1조라는 빚을 덤터기 씌우질 않나. 여자로 만들어 버리질 않나. 목숨이 오고 가는 개 같은 게임에 참가하게 만들질 않나. 왜 이리도 재희를 못살게 구는 건지.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은 것처럼 보인다.


"하아... 길드였다면 당당히 나갈 텐데.“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어온 게 헤븐 내에 있는 길드였다면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당당하게 욕을 퍼부었을 것만 같다. 어쨌든 저기가 먼저 시비를 건 거니까. 그런데 게임 측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론 헤븐 내에서 게임 측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도 살인을 저지를 수가 있다. 누군가 오기 전에 바로 살인을 저지르고 잡혀 들어가면 되니까.

모든  스스로 행한 짓이고, 누군가 시켜서 한 건 절대 아니라며 자백만 하지 않게 되면 결국, 실행에 옮긴 범죄자만 처벌받지 증거가 없는 이상 사주한 자까지는 처벌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음에도 이런 일이 똑같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 철저하게 수사를 해대니 완벽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걸리기 마련.

하지만 게임 측이라면? 죄를 집행하는 자들의 곁에 서 있는 인물이 그랬다면? 처벌도 내리지도 못할뿐더러 복수조차 불가능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들이 재희의 애인들을 노리고 있다는 말은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빠졌다는 의미.

"어차피. 나갈 거였잖아?“


그렇지. 어차피 나가려고 했던 게임이었다. 돈도 많이 준다는데 나가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데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  협박에 가까운 경고를 한 걸까. 무슨 이유로......?


"하. 시발.“


여기서 이러고 고민해 보았자 답은 나오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고민하다니. 뭐 하는 짓일까.

"크으~!“

취하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지려나. 생각을 비울 수나 있으려나 생각하며 술을 들이켰다. 술이 혀에 닿아 쓴맛을 자아내며 목구멍 깊숙이 들어가 위장을 적셨다.

"......“

역시 한 잔으로 부족하려나. 비워진 술잔에 다시 술을 따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아직도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따르고 비우고, 따르고 비우고를 반복하자 어느새 재희가 주문한  두 병이 모두 다 떨어진 상태이다.  주문해야 했는데. 아까  남자 때문에 주문하려다가 말았지. 시선을 앞으로 가져가자 남자가 가지고 온 술이 테이블 위에 떡하니 올려져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먹기는 싫은데.  쓰레기 같은 놈의 가져온 건 입에 대고 싶지 않은데. 물론 그가 잘못한 건 아니다. 근데 사람이, 재희의 여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을 웃으면서 말하니 탐탁지 않을뿐더러 원래 남자였던 자신에게 작업용 멘트 같은 역겨운 말을 하면서 함께 술을 권했던 것만으로 싫어할 이유는 충분했다. 사실 후자의 비율은 낮다. 그냥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

"아. 몰라. 내버려 두면 가게 주인만 손해지 뭐.“


여기선 후불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잔뜩 취해서 돈도 내지 않고 하극상을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을 위해서, 그리고 가게 주인도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바로 선불.  말인즉슨. 이 술은 그 남자가 샀다는 의미였다. 참고로 백윤현과 함께 처음으로 술집에 들렀을 때는 가게 주인이 재희의 외모에 홀려 깜박하고 술을 그냥 가져다준 것이며, 술집을 운영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미숙한 탓이라 선불로 받지 못했던 거다.

"으......"

심지어 재희가  술보다 몇 배는 비싼 고급 주라서 거부하기가 힘들다. 자존심을 낮추고 자꾸만 뚜껑도 뜯지 않은 술로 향하고 싶지 않아며 거부하는 손을 억지로 밀어붙였다.

딱!

결국, 땄다. 뒤늦게 두고 온 술을 가지러 왔다 하면 어쩌지. 이게 정말 비싼 거라 갚기보다는 차라리 함께 마셔줘야 하는 건가. 따고 나니 뒤늦게 후회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약간의 술기운 때문에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고, 물기가 아직 남아있는 잔에 또르르 따랐다.


"하. 강하네.“

강력한 알코올 향이 코를 마구 찌른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취할 것만 같은  기분.

"윽!“


그래서 들이켰다. 마시자마자 오만상이 지어지기 시작한다. 쓰다. 무척. 술이라곤 편의점에서 싸게 파는 일반적인 술이나 여기서 가장 가격이 낮은 술밖에 먹어보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도수가 높은 술을 먹으니 너무 써서 맛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근데... 지금은 마시고 싶은 심정이라 다시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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