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079 후원자 회의
비쓰온 게임 내의 후원자들은 임의로 회의를 열 수가 있었다. 이 회의가 무슨 주제로 논의가 나누어질지는 후원자들이 주선한 내용과 비쓰온 게임의 운영진들이 보고 결정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내용이나 회의를 신청한 후원자에게 이득이 가는 경우는 판단에 따라 회의 주선을 거부할 소지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열린 회의는 과반수가 의견을 내어 가볍게 열리게 되었다.
회의의 주제는 황당했다. 그야 그럴 것이 비쓰온 게임 내의 커다란 영향력을 과시하는 색깔 등급에 대한 주제가 아니었으니. 다름 아닌 골드 등급의 윤재희. 튜토리얼을 포함하여 이제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은 뉴비 중의 뉴비.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한 그녀 때문에 열리게 되었다.
"시발... 새끼들.“
운동장만 한 무척 큰 공간에서 마치 UN 회의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주최자와 회의를 연 핵심 인물들이 앞에 나와 설명하고 후원자들의 동의를 얻으려는 모습이. 그 모습에 레이건 박스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욕을 입에 담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듣지 못할 작은 소리.
"진정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진정...? 진정은 개뿔. 저 개 같은 새끼들 때문에 노망날 것 같구먼. 진정할 수가 있겠는가?“
주제는 아주 간단했다. 후원자들 사이에서도 여신이라 불리는 윤재희를 강제로 게임에 참가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모여서 결국, 회의가 열리게 되었으니. 뭐, 레이건 박사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윤재희가 활약하는 장면을 보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근데 사람이란 게 다 그렇듯이 비쓰온 게임의 뉴비들이 모두 그랬듯이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고 몸이 익을 때까지 조심하는 것을.
근데 저들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일을 벌려버린 것이다. 윤재희를 보려고 하는데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스크린에 보이는 아름다운 외모만 보는 것도 질릴 수밖에 없는 노릇. 레이건 박사라도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그런지 절대 재희가 낮은 등급의 게임에서 질 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아 어느새 그녀의 게임 영상을 보지 않고 있었다.
팬이라고 해야 하나. 스포츠 선수가 재희면 팬은 후원자들. 팬은 자신이 응원하고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가 자꾸만 경기에 나오기를 비는데 경기가 재미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지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떠나가길 마련. 하지만 재희의 아름다운 외모에 단단히 꽂혀버린 그들로서는 절대 떠나가질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저는 윤재희 참가자를 강제로라도 게임에 참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브론즈 게임에 참가했는데 그 전에 재희가 참가할 수 있었던 실버, 그리고 골드 등급의 게임이 열렸었다. 근데 왜인걸. 그녀는 참가하지 않았다. 헤븐 내의 상황을 알려면 경매로 사는 수밖에. 그래야만 헤븐 안에서 그녀의 사생활을 엿볼 수가 있는데 낙찰받지 못한 절대다수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플레이타 회장님.“
"큼......“
재희가 애인들의 만류에 실버 등급의 게임조차 참가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는 존재, 이 모두를 불러모은 여자의 주인이 된 플레이타 기업의 회장은 갑작스러운 질문과 시선 집중에 손으로 턱을 바쳤다.
'빨리 게임오버가 돼서 내 손에 들어오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마음 같아서는 고민하는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노릇이었다. 화면 너머로만 볼 수 있는 그녀, 자신의 성노예를 어서 빨리 이 손에 담고, 좆으로 처녀를 뚫어버리고 싶었기에. 그렇지만 어느새 사랑에 빠져버린 플레이타 회장은 그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도저히 보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도 괴로워하고는 있기야 하지만 이 논의가 있고 나서 강도가 뒤바뀔 게 분명하니 차마 마음 편히 확답을 내리는 건 불가능했다.
'어차피 상관없으려나?'
그가 거절하면 뭐하나. 저 탐욕에 가득 찬 변태 같은 새끼들은 주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인원수로 밀어붙이면 결국, 운영진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후원자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비쓰온 게임 측은 분명히 플레이타 회장의 발언권보다는 여럿이서 모인 후원자들의 발언을 더 주의 깊게 들을 것이다.
'지들 게 아니라고. 개새끼들.‘
말도 안 된다. 강제로 참가시키게 만들다니, 조건이 충족하지 않았는데 등급을 올려버리고 아래 등급의 게임에 참가하게 해 주는 특권을 없애버리자니. 황당할 노릇이다. 이제 2개월 된 뉴비를 상대로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남의 것이라고 이리도 막 굴리려고 하다니. 이럴 거면 비싼 돈을 들여 산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저 예쁜 얼굴과 몸매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도 난다면 책임 지련지.
"좋은 생각이십니다.“
플레이타 회장은 내키지 않는데 긍정적인 말을 입에 담았다. 그제서야 험악했던 다른 후원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아마도 거절했다면 다구리를 맞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근데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실전 경험이 없다면 한낱 쥐새끼와 다름없지 않을까.
"최소한의 유예기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험을 쌓게 해야지. 그래야 볼만한 경기가 나오지 않겠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마이피콜로소프트 회장이 능글능글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지금 수준만 봐도 충분히 다이아몬드 등급에서 놀 실력이 되는데 굳이 시간을 준다라. 플레이타 회장님. 저희에게 시간은 어떤 존재죠?“
"......“
"얼마를 주더라도 바꾸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시간을 돈을 주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할 생각이 있는 자들이 바로 이곳에 모인 후원자들이다. 전 세계에서 상위 0.00000001%에 해당하는 그들에겐 돈보다는 시간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일까. 마이피콜로소프트의 회장은 단순히 자신들이 그 시간을 기다릴 이유가 있는지 플레이타 회장에게 묻는 것이다.
"그렇지.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나?“
까라면 까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전세는 플레이타 회장의 편이 아니었다.
"다른 분들은 기다릴 생각이 없으신 것 같은데요? 오히려 플레이타 회장님께서는 더 좋은 게 아닐까요? 더 빨리 그녀를 안을 수 있으시니까요.“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손에 넣으니 좋지 않을까라 묻는 말인데. 이 말을 하는 그의 눈은 부러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빼앗으려 다짐하는 욕망만이 가득할 뿐.
"큭......“
시간이 더 필요하다. 있는 돈이란 돈은 다 끌어모아 계속되는 경매에서 재희를 지켜줄 경호원을 여럿 사 놔야 했지만, 쓰레기 같은 후원자 새끼들은 재희를 빼앗기 위해서 능력 있는 노예들을 큰돈을 들여 사고 있었다. 어차피 이 돈은 재희를 살 돈이었으니 아무런 부담도 없이 말이다.
'지금 나온다면 반드시 빼앗기고 말아!‘
처음부터 전투 노예를 많이 사드릴걸. 괜히 성노예 마을을 만든다고 아까운 돈을 써 버렸다. 플레이타 회장은 뒤늦게 후회하며 이를 갈았다.
"동의하신 건가요?“
강압적인 물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만들어둔 세력은 잃은 지 오래고 도움을 청할 후원자들을 찾기란 불가능할 게 분명하니. 괜히 이러한 사실로 인해 고개를 젓는다면 무슨 압박이 다가와 기업에 피해가 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녀를 지키려면 기업이 이썽야하기 마련.
"좋네요.“
플레이타 회장에게 모였던 시선이 분산되고.
"제 생각은 이러합니다. 이까 말했듯이 윤재희 참가자에겐 빚이 1조이며, 이자는 50%죠. 솔직히 이걸 어떻게 다 갚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윤재희 참가자에게 제안하는 게 어떨지 생각한 걸 구체적으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어떻게 제안하자는 건가?"
"간단합니다. 먼저 모든 게임의 상금을 두 배로 올리는 것. 이런다면 헤븐 내에 넘치는 잉여들을 끌어모아 게임을 열 수 있을 테죠. 만약 안 모인다면 세 배, 혹은 네 배도 가능하죠. 여기서 주는 상금은 저희가 부담하죠. 어떻습니까?“
"그러지. 얼마 안 할 거니 상관없다.“
글로벌 기업들을 운영하는 세계 재벌들이 돈을 나눠 낼 텐데 고작 게임 상금으로 얼마를 주든 감당할 수 있었다.
"근데 여기서 윤재희 참가자에게만 따로 특전을 주는 거죠. 상금을 다른 이들보다 플러스 두 배 더 주겠다고요."
이러면 두 배였던 상금이 재희에겐 특별히 네 배가 된다. 혹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제안. 1조라는 어마 무시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더라도 참가해야만 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하위 등급에 참가할 수 있는 특권을 지워버리죠.“
브론즈, 실버 같이 낮은 게임에 참가할 수 없도록.
"그렇지만 다른 참가자분들에겐 골드 등급에 참가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죠.“
두 개의 등급보다 인원이 적을 수밖에 없는 골드 등급 게임에 조금이라도 인원을 넣기 위함이었다. 실력에 자신 있는 자들이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을까. 한두 단계 높은 등급의 게임에 참가하는 그런 짓을.
"마지막으로 살인에 능한 자들을 사형시키고 몰래 빼 와서 그녀가 참가한 게임에 넣죠.“
"무슨 짓을?!“
"괜찮지 않습니까?“
앞에 있는 것까지는 발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재희라면 고작 골드 등급의 게임에서 절대 질 것 같지 않았으니. 운이 좋다면 게임오버가 되어 범해지기 직전에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건데. 지금 자신의 상황을 봐서는 절대 게임오버를 당하면 안 되었다. 게임오버 되어 바깥세상에 나오는 순간 노려질 터이니.
그래서 여자치고는 무지막지하게 강한 그녀가 제발 게임오버가 되지 않고 빚을 차근차근 갚아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어차피 1조라는 돈은 이벤트를 열더라도 다 못 갚을 테니. 근데 그녀를 게임오버 시키려고 교도소에 수감 되어 있는 사형수들을 빼내어 게임에 참가시킨다고? 그들은 하나같이 악질이었다. 게임 측에서 그들을 관리하여 유흥으로 삼는 것보다 그 도중에 사고 치는 게 더 많아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판단했는데.
"이젠 안 쓰기로 하지 않았나?“
"뭐. 그렇긴 했죠. 근데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갑자기 덜컥 플래티넘으로 올린다면 다른 이들이 반발하고 일어설 게 아닙니까? 그럼 차라리 그녀에게 맞는 상대를 주는 게 낫죠.“
이 자는 평범한 사형수나 악질 수감자를 데려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자면 비쓰온 게임에서 빚을 다 갚고 나간 뒤에 다시 죄를 범하는 미치광이들이나 특수부대 출신의 수감자들 등등. 하나하나가 비쓰온 게임의 랭커와 맞먹는 실력을 지닌 놈들로만 데려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맴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에게 무슨 일이 당하지 않도록 병력을 대기시켜 둘 겁니다. 그렇죠?“
게임 측 인물에게 시선을 가져다주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원자도 아닌 일개 빚쟁이가 감히 후원자 전원이 노리는 재희를 범하게 둘 리는 없기 마련.
"게임 측을 믿으면 될 것 같네요. 혹시 믿지 못하시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믿네. 믿어......“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나. 비싼 돈을 주고 보호 비용까지 지불했는데 자신 이외의 남자들에게 범해지는 모습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게임 측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물론 재희 스스로가 다리를 벌리면 방해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내걸려 있지만.
"하하. 그럼 됐네요.“
됐긴 뭐가 됐다는 건지.
"찬성하시는 분은 버튼을 눌러주시겠어요?“
더 진행할 필요가 없는 회의. 바로 투표를 진행한다.
"이미 예상한 결과인데 실제로 보니 재밌네요."
스크린에 나온 투표 결과는 만장일치로 찬성이었다. 마이피콜로소프트의 회장은 이럴 거면 자기가 직접 나서서 회의를 진행할 것이지. 그는 결과까지 다 본 뒤에야 자리에 앉으며 미소지었다.
"하하. 이거 빼도 박도 못 하겠는데요?“
레이건 박사의 옆에 서 있던 한재영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박사님.“
여기서 회의를 뒤집어엎기란 불가능. 이미 후원자들의 마음은 굳힐 대로 굳혀졌다. 저들중에는 정말 순수하게 재희가 고전하는 재미있는 싸움을 기대하는 이들도 여럿 있겠지만 대다수가 게임오버가 되어 플레이타 회장의 손에 넘어가는 그녀를 빼앗기 위한 계략일 게 분명했다.
"이겨내길 기다려야지. 뭘 어쩌겠나.“
손녀 같아서 정이 더 갔는데. 아무런 힘도 없는 레이건 박사가 여기서 뭘 더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후원자들이라면 뼈를 내줄 각오로 싸운다면 이길 수야 있겠는데 과반수를 넘어 만장일치면 답이 없었다.
"선물을 주려 했더니. 이러면 이벤트가 끝난다면 줘야겠구먼.“
예상치도 못하게 만들어진 걸 선물로 주고 싶었는데. 기뻐할지 당황해할지. 기대되는 얼굴을 마음껏 만끽하려 했는데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에구에구. 불쌍한 것.“
레이건 박사는 몸을 돌려 정리하기 시작하는 회의장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