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078 두 번째 게임 (78/140)



〈 78화 〉078 두 번째 게임

눈을 감지 못한  숨을 거둔 시체, 그걸 보는 재희의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사람은 물론이고 작은 동물까지도 죽여본  없는 착하고 순수한 선량한 시민이었거늘. 언제 이렇게 잔인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근데 이렇게 변해버린 자신이 무섭기는 해도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된다면 계속 이대로 있고 싶을 심정.


"도망치려면 소리를 낮추는 게 좋지 않을까나?“

"익.....?!“

재희를 뭘로 보는 건지. 여전히 만만하게 보는 건지. 레이피어를 던져서 등에 꽂아 넣은 거로 죽지 않을 거란 건 이미 예상했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시선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남자에게 주고 있되 모든 감각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를 향하고 있었다. 나무와 풀과 같은 방해 요소가 많은 이곳에서 정확히 레이피어를 던져 도망치던 남자의 등에 박아 넣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조건 도망쳐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된다면 재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었다. 저렇게나 아름다운 미녀를, 가만히 두고 도망친다면 나중에  후회로 남아 잠자리가 사나울 게 분명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취할 거란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그녀가 던진 레이피어를 맞은 뒤에 새하얀 도화지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덤벼드는 건... 병신 같은 짓. 그래서 최대한 고통을 삼키며 엉금엉금 기고 있는데 들켰다.

'언제부터 알았던 거야?!‘

사람이 등에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박혔다고 죽지는 않는데 그 대신 여러 가지 요소로 죽었다고 판단할 수가 있었다. 쇼크사, 과다출혈, 넘어지면서 잘못된 곳에 머리를 박거나 하는 것으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거나 신음소리만 내지 않으면 방심할 거란 생각으로 눈치채지 못하게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기어서 이동했다. 왜 바로 달리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은 등에 새로 생긴 상처로 제대로 걷을 수가 없어서 이런 몸으로 도망쳐 봤자 얼마 안 가 딸라잡힐 게 분명했던 게 첫 번째 이유.  번째는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 상태로 도망치기에는 너무 험악한 지형. 그로 인해 눈치채기 전까지 가능한 만큼 거리를 벌린 후, 뒤늦게 들킨 순간 몸을 일으키려고 했었다. 근데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굳이 몰래 다가오는 것도 아닌 말해주다니.

"난 안뒤져어어!“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든! 등으로부터 커다란 고통이 뇌를 콕콕 찌르고 있었지만, 공포에 물든 몸뚱이를 막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남자는 이를 악 깨물면서 고통을 참아가며 몸을 일으켜 달려나갔다. 그러나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주극은 곧바로 마무리되었다.


"어윽!“

몇 걸음 내딛지도 못한  발이 나무에 걸려 꼴사납게 넘어져 버렸다. 그러자 몸통에 박힌 레이피어가 요동치었고, 쿨럭. 입에서 혈흔이 쏟아졌다.


"뭐해?“

조소가 섞인 물음.

"크으으윽.....!“


부끄럽기도 한데 무엇보다 두려움이   탓에 남자는 고통을 무릅쓰고도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도망칠 수야 있을지. 너무 지루해서 술래잡기나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이러면 게임이 안 되지 않아?“


도망칠 기회를 줘도 도망치지도 못한다니. 이 얼마나 병신같은 경우인가. 그녀와 싸우는 건 멍청한 짓이라 살아남는다면 절대 그녀의 앞에서 검을 뽑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던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드시. 반드시 살아남아 복수를 할 거라 다짐한다.

"시발... 시바알...! 난... 난 안 뒤진다고. 쿨럭.“

다시금 피를 토해내며 남자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어디 한 번 살아봐.“


어느새 재희는 그의 바로 옆에 다가왔다.

"끄아아악!“

전설의 아서왕이 쓰던 엑스칼리버처럼 등에 단단히 박혀있는 레이피어를 천천히 뽑아내자 아래에서 커다란 비명이 낭자했다.


"자. 살려면 도망쳐야지?“
"크으윽... 윽!“

굴욕 그 자체.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망을 쳐야 하는 상황. 도망치지 못할  알면서도 살려면 도망쳐야지 말하는 재희가 무척 증오스럽지만, 지금은 하라는 대로 기어야 했다.


"옳지. 옳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앞으로 나아가 흙바닥을 짚었다. 그리곤 몸이 앞으로 쏠리며 이동하고, 다시 반대편 손이 앞으로 나아가 흙바닥을 짚었다.

"허억. 허억.“

힘들어 미칠 노릇. 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여자. 재희가 밉다.


"여기서 포기하게?“

시야가 흐릿해지고 정신은 혼미해지고, 몸에선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데 재희는 가볍게 말을 걸어온다.


'아니야. 포기하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여태까지 남자가 죽여온 다른 참가자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살려줄 마음도 없는데도 헛된 희망을 품은 채로 발버둥을 친 것이었을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자신이 나쁜 놈이다. 쓰레기다. 그래도 용서해주었으면 한다. 이런 헛된 희망이란 이름의 고문을 했던 자신을.

"흐윽... 흑...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끝내 도망치기를 포기한 남자는 이마를 바닥에 대며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왜?“
"제발... 무슨 짓이든  테니. 살려만 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왜?“
"부탁드리겠습니다. 흑. 제발.“
귓구멍이 쳐 막혔나?




"내가 왜 널 살려줘야 하냐고. 묻지 않았나?“
"엉엉.“

뭔 말을 해도 듣질 않으니 살려둘 마음은 더욱 없어졌다.

"네가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당연히 부족했던 식량과 물을 누군가를 죽여서 빼앗았겠지.

"단순히 죽이기만 했을까?“

거의 3주가 지난 시점에서 정말로 죽이기만 했을까. 지루함이 가득한 이곳에서 곧 죽일 이들을 상대로 유흥을 찾지 않았을까.


"넌 어때?“
"으헝헝. 살려주세요.“

정답이었는지.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이건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거야.‘

성욕을 풀긴 했어도 가슴 속 깊은 곳에 가득한 응어리까지 모조리 다 풀지 못했다. 그러니 재희 또한 이곳에 갇혀 살아가면서 정신이 점점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 사실은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는 이들을 가지고 노는 거지만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이들에게 고통스럽게 죽어간 사람들을 대신해 복수하는 거라 치부했다.

"살려달라는 사람이나 편하게 죽여달라는 사람에게 어떻게 했어? 아. 삶을 포기한 사람들은 재미없으니 죽였으려나?“


그거 한번 보고 싶네. 재희의 앞에 선 남자들은 재희란 여자에게 당했다는 심정에,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농락해주고 싶다는 미련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뿐. 그래서 그들을 가지고 노는  무척 재미있었다. 어떨 때는 가슴을 만지게 해줄 텐데 그 대신 만진 손의 손목을 자를 거란 제안에 곧장 가슴을 만지러 오는 변태가 하나 있었지.


물론 순순히 만져주게 할 생각은 없었을뿐더러 그 무엇보다 여자라면 몰라도 남자의 손이 재희, 자신의 몸에 닿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어서 가슴으로 향하던 손이 정착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르고, 반대편 손목도 자른 적이 있었다. 차라리 손과 발을 다 자른 상태로 살아보라고 해볼  그랬나. 꽤 재밌을  같은데.

"나는 너랑 같아.“

싱긋.

이 말엔 여러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중에 가장 큰 의미. 살려둘 생각은 아예 없다는 것.

"이... 이 시발 년이이이!“

악마 같은 년. 얼굴과 몸매만 예쁘지 악마  자체 같은 년! 남자는 꽉  주먹을 휘두르며 몸을 돌렸다. 효과적인 피해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 대라도 때리지 못한다면 편히 눈을 감지 못할 터. 남자는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러나.

"아쉽네.“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재희의 발이 남자의 팔을 걷어찼다.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허무하게 땅바닥에 처박히고 그에 따른 신음을 내기도 전에 남자의 심장으로 레이피어의 칼날이 박혀 들어갔다.

"그래도  재밌었어. 어느 정도는 말이지.“


그렇게 남자는 죽어버렸다. 다시 또 보이는 아직 온기가 가득한 시체.


쩝.

이제 뭐 하지? 아무리 몸 상태가 최악이었긴 해도 처음으로 재희를 범할 뻔한 거대한 도끼를 든 남자만큼 강한 상대를 여기서 찾아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너무 재미없어. 지루함만 가득하다. 차라리 잠자리나 맛대가리 없는  대신에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을 가져다준다면 이렇게까지 지루해할 이유는 없을 텐데.

"하아... 시발. 이거 언제 끝나냐?“


실제로 게임을 구경하는 후원자들은 브론즈, 실버, 골드 게임을 잘 시청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야 그럴 것이 상위 등급의 게임처럼 치고받고 싸워대는 장면이, 하나뿐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조심성 때문에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기다린 보람을 느낄 새도 없이 지루한 싸움과 허무한 죽음, 그리고 허무한 승자만 남으니  가치가 없다. 그러나 지금 이 게임은 재희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전과 달리 수많은 후원자가 시청 중이다. 그걸  리 없는 재희는.


"돌아가자......“


시체가 된 남자들이 가지고 있던 가방을 찾아 물과 식량을 꺼내 들고 무거운 발걸음을 가지고 동굴로 돌아갔다.

"아! 어서 오세요!“

동굴에 돌아오자마자 재희를 반긴 여자. 처음 봤을 때랑 다르게 상당히 비교되도록 살이 쪽쪽 빠진 터라 몸매가 조금 살아났다. 그래도 통통한 수준. 이러면 범할 맛이 날 법도 하지만 살이 빠지면서 커다랬던 가슴도 모조리 빠져버린 것. 이 정도면 예림이보다 작을 크기다. 거기다가 박살이  얼굴은 긁지 않는 복권이란 기대를 철저하게 짓밟아버렸다.

정정한다. 저번에 못생긴 외모라도  여자가 자기 외모를 관리하지 않아서 30살이 먹도록 노처녀라고 했던 말을. 그냥 살을 빼고, 관리했어도 다가오는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근데... 그 남자가 재희가 될 것이라곤.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뭘 어쩌겠나. 3주 동안 발견한 여자라곤 이년 하나뿐인데.


"히......!“

역시나 할 생각인지. 재희에게서 피 냄새가 가득 나 찌푸려졌던 미간이 가방에서 자지를 꺼내 드는 그녀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서 곧장 옷을 벗어 던졌다. 몸무게가 무척 빨리 빠졌다는 이유로 살이  처져 보기 싫었다. 그렇지만 조금은 잘록해진 자신의 몸을 보니 기쁘기만 했다.

"어서. 박아주세요.“


바닥에 드러누워 어느샌가 움푹 젖어있는 보지를 손으로 벌리며 애원하자 재희는 자지를 끼운 상태로 다가와 보지에 박아버렸다.

"하으으윽!“


익숙해질 법한데도 불구하고 아프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혀버리며 커다란 신음성을 토해냈다.


'처, 처음 했을 때 보단 참을 만해.....!‘


아프긴 한데 기분이 더 좋다는 게 함정일까. 신음소리는 무척 달콤했다.


"흐윽. 하앙... 앙......“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지 곧장 허리가 거칠게 움직였다. 얼마나 세게 하는지 허리가 움직이며 서로의 음부가 맞부딪칠 때마다 축 처진 살덩어리를 비롯한 모든 살에 물결이 일었다.

"하아앙!“


얼마 안 가 안에다가 사정하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시 허리를 튕겼다.


"끗.....!“

총 네 번의 사정이 있고 나서 이젠 다섯 번째의 사정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이미 의식을 잃었고, 무의식 속에 신음하며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어느 정도 성욕이 풀린 재희는 천천히 자지를 빼내었다. 완전히 빠져나오자 뽁 하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었다. 그러던 그때.

[생존 인원이 50명이 되었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곧 직원들이 도착할 테니 엇갈리지 않도록 참가자분들께서는 그 자리에 가만히 계시길 바랍니다.]

타이밍 좋게도 기다렸다는 듯이 게임의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무인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드디어 끝.


"새액. 새액.“

살이 많이 빠져 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한들 그래도 못생겼다. 그럼 어쩔까. 당연히 30만 원으로 바꿔야 하겠지.


"그래도 여태까지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네 도움이 있기도 하니까 편하게 죽여줄게.“

기절해 있어서 재희의 말을 듣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말한다. 가장 좋은 죽음은 수면 중에 죽는 것이라고. 그래서 재희는 그녀가 인지하기도 전에 죽여주기 위해 레이피어를 뽑아 들어 심장을 찌른 다음 빠르게 목 등, 급소란 급소에다가 찔러 넣었다.


"잘 가.“

편하게 죽여주려고는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는지. 갑작스러운 고통이 느껴지자 여자는 눈을 떴지만 이내, 찔린 곳이 전부 다 급소라 쇼크가 오기 전에 죽어버렸다. 이 정도면  일은 다 했다. 이곳이 원래 그런 곳이니 어쩔 수 없다.


"윤... 재희 씨?“

재희를 데리러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 그런데 원래  명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명은 방금 죽은 것처럼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두 배, 혹은 세 배가 나더라도 혹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재희를 찌푸려진 얼굴로 말을 걸었다.


"네.“
"생존을 축하드립니다.“


그것도 잠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재희를 데리고 헤븐으로 돌아가는 배가 정착해 있는 해변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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