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075 두 번쨰 게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주위에선 현대 문물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야 그럴 것이 이곳은 헤븐이 아니라 게임이 진행되는 무인도였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돌아왔다. 이곳으로... 게임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적이긴 한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녀들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마땅히 벌 방법은 생사가 지옥과 천국, 그리고 이승을 오가는 여길 오는 수밖에 없어서 막상 오긴 왔는데.
"하아......“
또 굶주려야 한다. 여기서 살아서 헤븐으로 돌아가려면 당연하게도 언제 또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초기 배급 식량을 미친 듯이 아껴 먹어야만 했다. 구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아무튼, 최소한의 영양가가 포함되어 있긴 한데 맛대가리는 영 없어 이런 상황만 아니었으면 절대 돈을 준다 해도 절대 먹지 않을 빵을 아껴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졌다. 물론, 주는 돈의 양에 따라 먹기야 하겠는데.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은 무조건 강제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했다. 대체 이 마른 몸매에서 뺄 살이 더 어디 있는지. 재희는 자신의 인생에 한탄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번에는 운 좋게 성욕이라는 리스크로 빨리 끝을 낼 수 있는데 이제는 성욕으로 특혜를 받기는 글렀다. 왜냐하면, 가방 안에는 음부에 가져다 대기만 하면 남자였을 때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크고 우람한 자지를 가질 수 있는 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거. 기뻐해야 할지. 기뻐하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
혹시나 해서 일단 들고 오긴 했는데 잘 됐다는 듯이 레이건 박사가 후원자들에게 잘 말해 두었다고 한다. 오히려 다른 여자가 그걸 달고 박혀줬으면 한다는데. 미친 것도 아니고, 멀쩡한 정신으로 굳이 박힐 이유도 없기에 박으려면 박았지 그 개 같은 새끼들의 성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박힐 이유따윈 없었다.
"하아......“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지. 지금 이 게임 안에서 만날 확률이 극악에 가까운 여자를 만날 수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었다. 성욕 처리를 할 유지나를 데려와 게임이 시작됨과 동시에 떨어지더라도 대충 서로만 알아볼 표시를 남긴다든지 해변이나 산 정상이라는 목적지를 정해 둔다면 얼마든지 만날 수야 있겠는데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유지나의 외모는 아름답다고는 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예쁜 편은 되었기에 남자들한테 노려질 수가 있었다. 훈련을 통해 실력이 꽤 늘었다고 한들. 재희의 불안한 마음까지 커버할 정도는 아니라 그냥 헤븐에 두고 나왔다. 그렇게... 어디에 여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무인도 한 가운데 재희는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일단... 움직여 보지 뭐.“
레이건 박사가 말하기. 연구 끝에 알아낸 사실인데 재희는 무조건 이틀 안에 성욕을 단 한 번이라도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제부터 최소 하루 반이라는 시간을 잡은 뒤에 가장 중요한 식량이나 특혜가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 히든피스보다도 더 우선시해서 여자를 찾아다녀야만 했다.
저벅저벅.
그렇게 걸었다.
"캬하. 오늘 운 좋나 좋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여자 치곤 큰 감이 있어 곧바로 풀이 죽어버렸다. 역시나. 잠시 후, 드러낸 것이라곤 음흉한 표정으로 재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역겨운 남자의 모습뿐이었다. 그는 곧장 눈앞의 초월적인 미녀를 범할 생각으로 가득하여 검을 쥐고 있던 손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한심하네.‘
여자라는 사실에, 아름답다는 사실에 곧바로 경계를 풀어버리다니. 한심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재희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지었다.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며 가랑이 사이의 막대를 크게 부풀린 채로 남자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푹.
사정거리까지 도달하자 재희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레이피어를 뽑아 들어 남자의 목에다가 꽂아 넣었다.
"아.....?“
언제 당한 건지. 그것도 여자에게 당한 거란 말인지. 현실을 믿지 못하고 남자의 동공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천천히 레이피어를 도로 뽑아내어 바로 옆의 나뭇잎을 뜯어 칼날에 묻은 피를 닦고 있을 때.
카앙!
남자는 손에 들린 검을 떨어뜨리고 양손을 목에 가져갔다.
"피? 정말 피야? 내 피야?“
목에서 어떠한 액체가 만져졌고, 설마. 그럴 리가 없다며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하며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손에 묻어있는 붉은 색을 띠는 피, 타이밍에 맞춰 구멍이 뚫린 목에서 피가 푸슝. 튀었다.
"커헉...! 컥!“
갑작스럽게 쉬기 힘들어지도록 가팔라지는 숨. 재희와 비교하면 무척 거대한 남자의 몸은 옆으로 기울어 쓰러졌다.
"사, 사려줘어! 제... 쿨럭! 바알.......“
살려주긴 개뿔. 만약 평범한 여자처럼 일반 남자에게 대항조차 하지 못하는 여자였다면 재희를 범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줬을까. 말도 안 된다. 범하면 범했지 그대로 지나칠 일은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응급처치를 해 본다 한들 살 수나 있을지. 눈물 콧물 모두 쏟아내며 살려달라고 바닥을 기는 남자의 몸을 발로 찼다.
"그냥 뒤져.“
살려줄 가치는 없다. 무엇보다 자신을 범하려 한 남자였다면. 재희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남자가 멘 가방을 억지로 빼내었다.
"와... 이새끼. 그새 한 입 했네?“
안을 열어 필요한 물품만 챙겨 달아나려고 했는데 물은 물론이고 식량까지도 조금 줄어있다는 사실에 황당함이 찾아왔다.
"얼마나 지났다고. 대단한 새끼야. 정말.“
멍청하면 용감하다더니. 생각도 없이 소중한 식량을 먹은 이 남자가 존경스럽기만 했다. 여자인 재희라면 가만히만 있어도 욕망에 가득 찬 남자들이 다가와 차례차례 죽어줘서 다른 이들보다는 식량을 아낄 필요가 없을 테다. 그런데 이 남자로서는 같은 남자이기 때문에 최대한 싸움을 피해 보기 위해 발각되지 않으려고 몸을 숨기거나 그럴 텐데. 참 대가리에 뭐가 들었는지 한번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털썩.
말문이 막혀 숨소리만 쌕쌕거리던 남자는 그제서야 몸을 떨어뜨리며 죽어버렸다. 재희가 이 자리에서 더 있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필요한 건 남자의 가방에서 빼내어 옮겨 담기도 끝이 났으니.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칼과 식량, 그리고 밧줄 같은 것만 챙기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허탕이네.“
식량은 아까 그 남자를 제외한 다른 참가자를 만나지도 못했다. 그건 둘째치고 여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에 한탄하며 빵을 거칠게 씹어댔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으로 조금은 대체할 수 있기에 에라 모르겠다고 재희는 뒷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빵을 씹는 것이다. 어차피 내일 또 구하면 될 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알아서 발정이 난 짐승마냥 다가와 죽여달라 애원할 텐데. 뭔 걱정인가.
이런 방법으로 식량을 얻는 건 브론즈, 그리고 실버 등급의 게임 안에서만 가능할 게 분명하다. 골드 등급은 어느 정도 숙련된 자들이 모여 있으니 진짜로 발정이 난 짐승이 아닌 순간 이렇듯. 편하게 식량을 구하지 못할 테지. 근데... 이 정도의 외모라면 예상과는 다를 것만 같아서 색깔 등급에 도달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 될 것만 같았다.
"아 씨. 몰라.“
결국, 빵 하나를 다 먹어치운 재희는 거칠게 딱딱하고 차가운 땅바닥에 누웠다. 운도 지지리도 없게 여자를 구하지 못했을뿐더러 은신처가 될만한 동굴도 찾지 못하였으니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맨바닥에 등을 가져갔다. 밤에 움직이는 참가자가 브론즈 등급에서 나오지 않을 터.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다음 날. 어김없이 재희는 날이 밝자마자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여자를 찾아 잠에서 깨어나 몸을 움직였다. 대충 오늘이 마지막. 성욕을 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 때문에 오늘 반드시 여자를 찾아야만 했다. 예쁜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때때로는 불량식품도 섭취해야 하는 법.
"오! 여자다! 시발. 존나 예쁜 여자네. 케켁켁“
처음 경험했던 브론즈 게임에서 이른 시간 만에 유지나를 만났을 적의 행운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지 속이 새 깜만 남자가 혼자 자축하며 모습을 드러내기 바빴다. 늘 같은 패턴.
"조금은 다른 모습이나 다른 말을 하고 나올 생각은 없냐?“
"뭐......?“
여기서 남자라면 질색을 하고선 경계를 해야 정상인데 눈앞의 미녀, 재희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내뱉어버렸다.
"무슨 말이지?“
정신이 나갔나? 애가 왜 이러지? 겁먹기는커녕 너무 여유로운 게 아닌가. 이 남자는 재희의 아름다운 외모에 순간적으로 잃었던 정신을 되찾으며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아 들었다.
"오...? 이번엔 나쁘지 않은 놈이네.“
역시... 뭔가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인지했다. 여기는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는 게임장 안. 여자라고, 어린 애라고,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인네라고 방심은 금물이었거늘. 그 중요한 걸 잊어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다니. 병신이 따로 없었다.
"큿.....!“
왜지? 여자라도 운동을 하면 몸에 무슨 반응이 나올 건데. 재희의 몸은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남자가 살살 툭 치면 친 부위를 부여잡고 울 것만 같은 여자인데 왜 이렇게까지 불안한지 모르겠다. 본능이 자꾸만 도망을 요구하자 재희라는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미녀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감을 믿기로 한 남자는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뒷걸음을 쳤다.
"왜. 도망가게?“
"......“
"올 땐 네 마음이지만. 갈 땐 아닌데. 어떡하게?“
재희는 이 남자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틀 동안 성욕을 참을 수 있다 해도 그에 따른 부작용은 새로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민한 성격. 작은 실수라도 언짢아지며 불쾌해지는 부정적인 감정만이 앞서게 되는데. 조금이라도 이 기분을 풀어주려면 저 남자의 식량을 빼앗아 질겅질겅. 빵을 씹어야 했다. 그러면 조금은 기분이 풀리겠지.
"시발. 그래. 덤벼. 덤비라고 시발년아!“
몸의 감각이 여자를 앞에 두고 도망치라고 하면 뭐 어떤가. 재희가 놓아줄 생각도 없는데. 남자는 자포자기한 심정을 가지고 달려들어서는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검을 내려쳤다.
"좋은 자세야.“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도 겁먹지 않고 달려들어야 할 때가 있는 법. 재희는 꽤 흥미로운 남자로 인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몸을 돌려 칼을 피했다.
"으아아아!“
되도록 상처를 하나라도 남기지 않은 채 사로잡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다. 남자는 땅으로 처박힌 검을 곧장 들어 올리며 옆으로 휘둘렀는데 재희는 그런 공격을 가벼운 스텝만을 이용해 뒤로 물러나 피했다.
"나쁘지는 않네.“
"허억... 허억......“
반격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남자는 숨을 몰아쉬며 땀으로 범벅이 된 목을 손으로 짚었다. 목이 서늘하다. 얇고 가느다래 찌르기 용도가 분명한 재희의 검은 반격을 했더라면 어느 순간 남자의 목을 관통해 구멍을 냈을 거란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시발... 시바아알!“
생각 외로 더 강했다. 그러니 도망치기는 멍청한 생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하니 남자는 최대한 부드러운 흙을 손에 가득 집어서 재희의 얼굴에 뿌리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
예상치 못한 공격. 설마 여기에 부드러운 흙이 있었을 줄이야. 재희는 눈을 감은 뒤에 미리 봐 두었던 남자의 움직임을 예상하여 레이피어을 내찔렀다. 정답이었는지. 눈을 살며시 뜨니 믿기지 않는 눈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휴... 다행이네.‘
방심했다 해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 재희는 남자의 목을 뚫고 들어간 레이피어를 뽑아내었다.
털썩.
거대한 체구가 한꺼번에 쓰러지며 소리가 났다.
"어디 보자.“
즐거운 파밍 시간. 이 남자는 특별한 걸 가지고 있으려나. 싱글벙글 웃으며 재희는 가방을 열어보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역시 건질 거라곤 식량뿐. 아쉽지만 두고 갈 수 없는 노릇이니 재희는 식량을 옮겨 담고선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
또 허탕을 쳤다. 여자의 꽁무니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는 와중에 이 망할 음란한 몸뚱이는 성욕을 풀지 못해 요란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숨소리를 거칠어지며 잠깐 잠깐씩 어지러움을 느낀다거나 시야가 흐릿해지는 정도로. 어서 빨리 여자를 찾아야만 한다.
아니, 여자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자의 구멍이라도 뚫어야 하나? 오히려 재희가 불쾌해서 몸서리를 치고 싶은데. 역시 잘 생각해 보더라도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 재희는 애써 반응하는 몸을 진정시키며 잠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