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071 귀환 (71/140)



〈 71화 〉071 귀환

딸랑딸랑.


술집에 들어간 둘을 먼저 반긴 것은 문에 달린 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어서 오세......“


사장님은 재희의 외모에 몸과 미소를 띤 얼굴을 경직시키며 말을 멈췄다.

"여기서 가장 잘 나가는 술로  병 주세요.“

재희가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사장님?“
"......“
"저기. 사장님.“
"아앗?! 네, 네. 뭘 달라고 하셨죠? 하하. 다시 한 번만 더 주문해 주시겠어요?"

두  더 부르자 드디어 반응했다. 이젠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 굳이 귀찮게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따질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까지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 가장 잘 나가는 술 두 병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술을 가지러 사장님은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


"안 앉고 뭐 해?“
"아, 앉을게요. 누나.“
"그래. 그래.“

멀뚱멀뚱이 앉질 않고 서 있는 백윤현에게 묻자 그제서야 재희가 앉아있는 테이블의 의자를 뒤로 빼내어 엉덩이를 내렸다.

"죄송했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우신 분은 처음 봬서 말이에요. 하하하.“

어느새 술 두 병과 잔 두 잔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사장님은 허탈하게 웃었다.


"네. 뭐, 익숙해요.“
"하하. 그렇겠죠.“


당연히 익숙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말하자 이만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재희는 사장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영 가기 싫은 건지. 적색의 눈이 자신에게 닿자 곧장 눈을 옮겨 재희의 앞에 앉아있는 백윤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남동생인가요?“
"아, 아니요.“
"그럼 뭐... 애인?“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사장님의 표정. 댁이 무슨 상관인지 원.


"애인도 아니에요.....!“


그런 사이면 얼마나 좋을까. 백윤현은 자신과 재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된 거로도 모자라서 결혼까지 약속한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래?“

남동생도 아니고 애인 사이도 아닌데 이른 오전에 둘이서 술집을 찾았다는 말인 건가. 다시 눈을 돌려 재희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여전히 붉은색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황급히 눈을 돌리는데 이미 늦어버린 감이 있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가요?“
"네?“
"안 가요?“
"어... 그게.“

손님도 없는 상황에서 헤븐의 여신이라 칭해지는 사쿠라보다도 더 예쁜 여자가 찾아왔는데  기회를 멀리서 지켜보다가 날릴 멍청이는 아니었는지라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말을 조금 더 걸어보고 싶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한  죽을 뻔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젠 참가자의 신분을 버리고 술집을 차린 그에게 용기라는 단어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저도 합석해도 될까요?“


외모가 괜찮은 것도 아니며, 헤븐의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참가자 신분을 버린 지도 오랜지라 인기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러니 옆구리가 시려서 이젠 닳을 정도였고. 남자는 다시는 그런 초라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용기를 내어 얼굴을 마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윤현아. 일어나자. 여긴 손님께 너무 무리하네.“
"자, 잠깐만요! 죄송했습니다. 즐겁게 지내세요!“

결국, 재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장님은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 알아차리며 도망치듯 모습을 감추었다.


'처음부터 이럴 것이지.‘

장사꾼인 이상 술을 하나라도  팔아야 하며, 오전이라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재희 말고도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가게 안에 엄청난 미녀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케팅 효과가 되니 되도록 다른 가게로 돌아서지 않게 해야만 했다. 왜 그 사실은 이제야 깨닫고 아까까지 귀찮게 굴인 건지. 쯧.


"잔을  개나 가져왔네. 한잔할래?“
"아, 아니요. 전 괜찮아요?“
"그래? 그래도 한잔하지?“
"......"

이곳에서는 미성년자란 신분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참가자 신분과 헤븐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민이라는 신분뿐이지. 그렇기에 바깥에서는 미성년자라면 절대 입에 가져가질 못할  담배를 여기서는 마음껏 빨고 마실 수가 있었다. 재희는 자신의 잔에 또르르. 술을 따르고 앞에 앉아있는 백윤현에게 한  권해 보지만 가드가 무척 단단했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는 노릇. 마셔도 같이 마셔야 술은 맛있어지는 법.


"한잔하자.“

거부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재희는 백윤현의 앞에 잔을 놓고 술을 따랐다.

"부모님께서는 성인 되면 먹으라고 하셨는데......“"뭐, 어때. 어차피 여기에 왔을뿐더러 솔직히 성인  때까지 살아있을 거란 보장도 없잖아?“이곳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며 술을 합법적으로 먹을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게임 안에서, 빚을 다 갚지 못해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먹어도 괜찮지 않으려나. 재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술을 권한다.

"자자. 한 잔만 하자. 한 잔만. 언제 또 이렇게 술을 먹을 수 있겠어? 누나가 살 테니까. 자아. 먹자. 응?“

재희는 어서 술잔을 들어 부딪쳐 짠 하자는 듯이 술을 바로 마시지 않았다. 그저 백윤현의 앞으로 술잔을 가져갔을 뿐.


"우으......“
"어서. 누나 팔 빠지겠다.“
"네.. 알았어요.“

끝내 술잔을 든 백윤현은 술잔을 부딪쳤다.


"짠~!“


해맑은 미소로 짠 이라 말하며 재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술잔 안의 술을 완전히 비워버렸다.


"크으~ 좋네. 하하.“


그래. 이거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도, 대학에 입학한 뒤에 MT나 OT를 알바한다고 참여하지 못해 남들과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오직 엄마와 함께 힘든 삶을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자는 뜻에서 술을 마셨을 뿐. 이렇게 생판 남과 술을, 그리고 남자였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어린 소년과 마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안 마셔?“

빈 잔을 다시 채워 넣는 재희의 눈에 술잔에 담긴 술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백윤현의 모습이 보여왔다.

"자자. 어서 마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아니면 영영 못 마실 수도 있잖아?“
"......“

일리가 있는 말. 아무리 부모님의 말씀이라도 살아서 부모님을 만나러 여기서 나갈 수 있을지, 확답을 내릴 수가 없는 가운데 굳이 착한 아이처럼 부모님의 눈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까지 착한 아이로 있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백윤현은 두 눈을 찔끔 감으며 술을 들이켰다.


"으으! 써어!“

쓸 수밖에. 재희 또한, 처음 술을 마셨을 때 너무 쓴 나머지 대체 이걸  먹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술은  쓴맛에 먹는 별미 중 하나이니 익숙해지려고 자꾸 먹지 않으면 영영 술맛을 알지 못할 것이다.


"자자. 한잔 더 하자.“


고작 한잔 마셨는데. 벌써부터 취한 듯 재희의 기분은 풀어지기 시작했다. 카드에 적힌 1조라는 빚과 다른 이들처럼 여기서 빠져나가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여 우울해진 기분은 어느새 달아나 있었다.

"하, 한잔 더요?“

당연히 몇 년 전, 어릴 적의 재희처럼 이걸  먹는지 이해를  한 백윤현은 애써 비운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워주는 재희의 모습에 경악하며 물었다.


"원래 술은 처음에 자주 먹어야지 그 맛을 깨달을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한잔 더.


"짠?“
"짜, 짠......“


백윤현은 자신에게 술을 건네는 사람이 가족들이나 정말 친한 친구들, 형, 누나, 동생이었으면 질색하면서 맛대가리도 없는 이 술을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술을 건네는 사람은 여자, 그것도 엄청나게 예쁜 여자이며, 첫눈에 반한 상대라 차마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내키지는 않는데 백윤현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재희의 술잔에 자신의 술잔을 부딪치며 또 술을 들이켰다.


"우리 윤현이 잘 먹네?“
"헤......“

우리 윤현이래... 그리고 잘 먹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너무 쓰다.‘


이걸 계속 먹어야 한다니. 술 덕분에 좋아하는 재희랑 마주 보면 앉을 수도 있었고 얘기도 할 수가 있어서 정말 좋았는데 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너무 술만 주나? 음... 처음이면 안주가 있어야겠는데.“
"여기 있습니다. 하하.“

쓴맛에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보는  재밌었는데 계속 이런 상황이면 술을 먹는 즐거움을 알려주기보다는 트라우마만 남길 게 분명해 재희는 뒤늦게 안주를 시키려고  가게 사장님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던 찰나에 사장님은 타이밍 좋게 닭발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아주며 웃었다.

"방금은 죄송했습니다. 그러니 이건 서비스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속으로는 제발 자신을 잡아서  잔만이라도 하실래요라 물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감사합니다.“

헛된 희망이었다. ㅠ

"자자. 이거 먹어봐.“
"제,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그래? 그럼 이거만 먹고 알아서 먹어.“
"네에......“

젓가락으로 닭발을 집어 백윤현의 입가에 가져다주자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미 든 걸 어쩌나. 재희는 이것만 먹으라고 고집을 부리자 하는  없다는 듯이 부끄러움에 몸이 움츠려지지만 입을 살짝 벌려 닭발을 씹었다.

오도독. 오도독.


"으......“
"왜. 별로야?“
"아니... 그게... 네.“
"음? 왜? 맛있지 않아?“
"그게. 맛은 있는데 식감이 저한테 안 맞네요.“


어디서 들은 게 있었다. 닭발은 호불호가 갈릴 때도 있다고. 재희는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었는데 닭발을 씹는 식감이 별로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그중에  명이 바로 눈앞의 백윤현인가 보다. 갑자기 백윤현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닭발을. 이렇게나 맛있는걸.


"사장님. 다른 안주는  있나요?“
"안주요? 음......“

딱 봐도 닭발을 씹고 있는 재희가 다른 안주를 원하는 거로 보이지가 않다는  단번에 알아차린 사장님은 고민했다. 어린 애도 매우 맛있게 먹을 만한 안주가 무엇이 있을지.


'없는데?‘

빚을 갚긴 갚아야 하는데 죽어도 게임에... 아니, 죽으면 의미가 없으니 그냥 죽고 싶지 않아서 게임 참가자의 신분을 버린 채로 헤븐에서 무턱대고 술집을 차려버렸다. 요리에 관한 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안주는 딱히 별로 없었다. 그저 이미 완성된 인스턴트 요리를 게임 측에서 사와 그대로 내놓는 것뿐. 그렇기에 치킨이나 피자 등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치킨은 저녁에 새로 들어오고 피자는 수요가 별로 없어서 그냥  팔기로 했는데.‘


"과자로 될까요?“
"그렇다네?“
"좋아요. 과자.“


과자도 나쁘지 않다는 백윤현의 말에 사장님은 과자를 가져다주었다.


"자. 자. 어서 먹어.“


과자를 먹으라는 건지, 술을 먹으라는 건지. 백윤현은 재촉하듯 먹으라고 말하는 재희의 말에 손이 이젠 더는 집고 싶지 않다며 아우성치는 술잔을 바라보았다. 언제  채워진 건지. 울고 싶다.


"짜, 짠......“
"짠~!“

이번엔 백윤현이 먼저 술잔을 들이밀며 짠이라 말하자 드디어 술의 맛을 깨달았나 보다 하고 기뻐하며  술잔에 자신의 술잔을 부딪쳤다.


"크으~!“


술은 역시 원샷이지.

"어우......“


술을 다 마시자마자 속이 불쾌해진 백윤현은 다급히 과자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잘 먹네. 굳이 원샷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야.“
"......“
"왜?“
"아니에요......“

한 번에  먹지 않아도 된다니. 백윤현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재희를 바라보지만 왜, 뭐, 어쩌라고 말하는  같은 표정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술도 모르는 애새끼랑 먹으면 재밌어? 오빠랑 같이 먹을래?“


이른 아침부터 술을 먹을 생각은 없었던 한 남자는 우연히 가게 안에서 어린 소년과 술을 마시고 있는 무척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에 홀려 가게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곧장 재희에게 다가가서는 말했다.

"하아... 기분 잡치네.“
"응? 뭐라고?“
"아니. 그냥. 기분 더럽다고.“
"어?“

 이런 당돌한 년이 다 있을까. 남자는 얼굴만 못생겼다면 얼굴에 주먹이 내리 꽂혀도 전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는 재희의 모습에 반해버렸다.

'아... 멋져.‘

아무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싸가지 없는 짓을 하더라도 하는 사람의 외모에 따라 호감이 되거나 비호감이 된다. 예를 들면 잘생기든 못생기든 상관없이 남자가 이랬다면 바로 싸움이 벌어지고, 이처럼 예쁜 재희가 그랬으면 독특한 취향을 가진 남자들은 사랑에 빠지거나 가볍게 웃으며 넘길 수가 있었다.


"이름이 뭐야?“


사랑의 화살이 심장에 박힌 남자는 포기할 줄 몰랐다.

"손님. 죄송하지만 나가주시겠어요?“


가만히 지켜만 보지 못하는 가게 주인, 사장님은 점수라도 딸 겸. 다가가 지금 당장 나가 달라는 말을 정중하게 했다.

"넌 뭐야?“
"여기 주인입니다.“
"하. 시발. 그래서  손님인데? 손님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될 듯싶다. 한  더 받는 것보다 그를 제외하고도 여러 명을 더 불러들이는 재희를 붙잡아야 하니까.

"네. 나가세요.“
"와. 손님 대접 여기서 지대로 받아보네? 여기서?“
"감사합니다.“
"감사? 뭐? 감사하다고? 하!“

어이없는 듯. 남자는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런 웃음소리에. 재희의 미모에 홀려 가게를 찾은  다른 남자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꺼져. 시발놈아.“


그는 강했다. 겉모습과 인상으로.

"죄송합니다.“

강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곧장 꼬리를 내리며 남자는 달아났다. 귀찮은 놈에게서 재희를 구해준 남자는 여전히 무서운 인상으로 실실 웃었다.

"이름이 뭐야?“


역시. 남자들은 다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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