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060 귀환
"끄으으으윽.“
눈을 뜨자마자 익숙하지 않은 천장의 모습에 여기가 어디인지. 의문을 가진 재희였는데 그 의문조차 잊게 할 정도로 엄청난 두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비교적 차가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신음했다. 마치, 여자로 변해 튜토리얼 무인도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아... 하아... 제기랄.“
다행이게도 이 두통은 계속 가지 않는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지?“
마지막 기억으로는 우연히 마주한 남자의 손에 의해 강제로 다리가 벌려지며 처녀를 잃기 직전이었는데 그 뒤로는 범해진다는 충격 때문인지, 그냥 쌓이고 쌓인 여러 가지의 이유로 몸에 한계가 찾아온 것 때문인지 기절을 하고야 말았다. 그럼......
"범해진... 건가?“
여자가 관계를 나누고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강제로 질이 넓혀진 여운으로 고통을 느끼거나 처녀막이 찢어지면서 고통을 느끼거나 하는. 그러나 재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성욕만이 풀린 듯, 아랫배는 아픈 감각이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러면 아픔을 느끼지 않는 부류라는 건데.
"하아... 시발......“
이번에는 두통이 아닌 다른 의미에서 이마를 짚으며 욕을 입에 담았다. 의식이 없었으니 범해진 게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그 상황에서 범해지지 않았다는 사실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결과적으로는 기억에 없어 오히려 낫다고 할 수 있었는데. 범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불쾌감이 전신을 감싸와 몸을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밀려왔다.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이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중에 민정이와 예림이에게 손으로든 자위 기구로든 언젠가는 뚫릴 것이니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일단은 지금 상황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한다. 주위를 둘러본 바로는 확실히 동굴 안, 그러니까 게임 안이 아니라 확신할 수 있었다.
"링거라.“
재희가 누워있는 침대의 바로 옆에는 링거 대가 있었다. 그리고 가냘프고 새하얀 팔을 보니 바늘이 꼽힌 걸 보아 게임이 끝나 게임 측에 구조가 된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여긴 사후세계가 아니란 사실이니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강간을 당하면 뭐 어떤가. 기분이 더럽고, 자신의 몸이지만 온몸을 찢어 갈기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도 그녀들과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얼마나 지났으려나.“
링거대에 걸린 수액 팩 안에는 수액이 절반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수액 팩을 새것으로 몇 번이나 갈았을 수도 있고, 아예 갈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방에 걸린 시계와 햇빛이 들어오는 창밖, 그리고 수액 팩의 양만으로는 얼마나 시간이 지나 있을지는 추측할 수 없었다. 알아보려면 날짜가 나오는 시계나 스마트폰, 사람을 찾아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할 터.
그리고 민정이와 예림이라는 여자친구 다음으로 생각나는 유지나라는 여자도 머릿속에 떠오르니 막상 걱정되기 시작한다. 재희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 죽지 않았을까. 운 좋게 잘 숨어 있어서 게임이 끝날 때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지금까지 살아서 이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며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워서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다리를 내리고 발에 몸무게가 집중되자.
"읏.....?!"
꼴사납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 때문에 팔에 꽂혀있던 주삿바늘이 팔 안에서 거하게 요동치며, 선이 당겨짐에 따라 링거대는 중심을 잃고 재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콩.
"윽.“
들고 다니기 편하도록 가볍게 만들기는 했는데 그래도 머리로 받으니 아픈 감이 존재했다. 뭘까... 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걸까. 재희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며 주먹을 줬다 폈다를 반복한다. 그러자 느껴지는 이질감. 평소와 다르게 손에 힘은 정말 없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아직 피곤한 상태인데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 곧장 힘을 쓰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성욕은... 없는 것 같은데.“
성욕이 사라져버린 과정에서 떠오르는 추측이 있어 예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아무튼, 성욕이 미친 듯이 솟아오를 때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거나 그러는데 지금은 성욕은커녕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힘이 들어오지 않을 뿐. 오감도 전부 정상인데.
"으으으읏!“
이대로 계속 차가운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누군가 재희를 발견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침대에 팔을 걸치고 힘을 주며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 되도록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하지만, 재희의 몸은 일어나는 걸 거부하는 것처럼 몸이 공중에 잠시 낮게 떴을 뿐, 이내 주었던 힘이 모두 빠져들어 아까와 같이 주저앉아 버렸다.
"하아... 하아......“
고작 이걸로 숨이 찬다. 이래서는 원래 남자였을 때보다 더 심할 정도로 약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온다. 그러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여자로 변하면서 그와 동시에 남자였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오감,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었는데. 헤븐에 돌아가서 민정이와 예림이를 어떤 얼굴로 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앗...?! 주, 주인님! 왜 그러고 계시는 거예요?“
현재 자신의 신세에 한탄하고 있을 때, 세월을 맞음에 따라 나는 경첩 고유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며 방문이 열리고 유지나가 들어왔다. 유지나는 곧장 침대 위도 아니고 침대의 바로 앞에서 주저앉아있는 재희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달려와 몸을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어. 괜찮아."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상태의 몸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기만 하면 괜찮을 수가 없었다.
"다행이에요. 주인님.“
유지나의 도움으로 침대에 걸터앉자 유지나는 곧장 눈물을 보이며 눈물을 흘렸다. 애가 갑자기 왜 이러지?
"영영. 일어나시지 못하는 줄 알았어요. 흑.“
"그, 그래... 미안해.“
"아니에요. 성노예인 이상. 주인님이 깨어나실 때까지 곁을 지켜야죠.“
"그거... 참 고맙네.“
성노예로 삼기로는 했지만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말하니 조금 그렇다고나 할까.
"근데. 지나야.“
"네. 주인님.“
주인의 몸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상처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며 재희를 열심히 훑어보던 그녀를 불렀다.
"그 옷은 또 뭐야?“
"네? 아. 이 옷이요? 선물 받았어요.“
"선물을? 누구한테."
선물이라... 뭐, 무인도라는 곳에서 갈아입을 옷도 없어 일어나 있을 때나 잘 때나 언제든지 같은 옷을 계속 며칠 동안 입고 있었으니 새 옷을 선물 받았으면 오히려 좋은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메이드 복일까.
"레이건이라 부르는 노인분에게요.“
들어보지 못한 이름. 과연 유지나에게 굳이 본명을 말했을지. 의심하는 재희는 레이건이라는 이름이 가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신경 쓰여도 넘어가도록 하고.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지?"
가장 궁금하고 먼저 알아야 하는 정보부터 캐내기로 한다.
"오래되지 않았어요. 게임이 끝나고 배에 올라탔을 때 주인님을 생각한다면 한 시간 정도 되었지 않을까요?“
"한 시간?“
"네. 아마 한 시간이 맞을 거예요.“
생각보다 많이 안 지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임은 어떻게 끝났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방송이 울려 퍼지고 저도 얼떨결에 배에 올라타 주인님이 계신 곳을 안내받았을 뿐이거든요."
"몇 명이 살아남았다. 그런 말은 안 나왔어?“
"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그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브론즈 게임에서는 200명이 되어야만 게임이 잡히면서 그중에 4분의 1 정도만이 살아남아야 끝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예상대로 튜토리얼 때처럼 어느 정도의 인원이 살아남아야지 끝나는 방식과 동일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가 많이 이상하다. 평균 게임 기간은 대략 3주에서 두 달까지 흘러간다고 한다. 아카데미에서도 그랬고 사쿠라 길드에서 얻어낸 정보이니 확실할 텐데. 재희가 참가한 게임은 고작 일주일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너무 빠르게 끝난 게 아닐까.
유지나의 말과 배에서 보았던 참가 인원을 생각하면 정말 200명 가까이가 되었었다. 아무리 서로 치고 박고 싸우더라도 일주일 만에 50명밖에 살아남지 않는다라. 솔직히 말이 안 되었다. 모니터 너머로 있는 가상 속 게임이라면 많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실제가 되면 빨라도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재희가 죽인 인원만 10명에 가깝더라 해도 나머지 140명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죽어 나갔다는 말인데. 브론즈 등급의 게임을 너무 과소평가한 걸까. 아니면 재희처럼 학살하고 다닌 다른 참가자가 한 명도 아니라 여럿이 있었다는 말인데.
"빨라도 너무 빠른데?"
일단은 빨리 끝났다는 전제하에 어여쁜 여자친구들이 있는 헤븐으로 생각보다 빨리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는데 그래도 이상하다는 점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브론즈 등급에 참가할 사람들이라면 자존심에 하늘을 찌르지 않을 테지. 그저 살아남을 생각만 가득해 숨어만 있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이 틀렸다.
그런데 이렇더라 할 수도 없는 게 요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인도 안에 있으면서 들었던 비명소리는 정말 적었다. 비명을 내지르지 않으며 죽었을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여태까지 들은 비명소리는 잘 기억을 해 보아도 10번이 넘지 않았다. 넓기는 하다만 고요한 무인도에서 듣지는 못했을 수도 있지만 못 들은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재희는 그렇게 생각한다.
"참고로 제가 배에 올라타면서 확인해본 결과. 저와 주인님을 제외하고 정확하게 48명이 배에 더 올라탄 걸 확인했습니다.“
"인원은 확실히 맞춰 줬다라.“
"네. 주인님."
살려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지나는 흥미로운 사실을 털어두었다. 일주일 만에 끝난 게임이 의심되지만 확실한 증거가 되는 총 50명의 인원만이 살아남아 헤븐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라탔다는 그 말은 누군가 수작을 부렸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요소가 되었다.
"으음... 도저히 모르겠네."
솔직히 배에서 얼핏 본 100여 명의 사람 중에 호전적인 성향을 지닌 참가자를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그러면 보지 못한 다른 100여 명 중에 있다는 의미였고. 재희를 범한 그 남자가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멀쩡한 몸 상태로 싸웠다면 반드시 지지는 않았겠지만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하면 정말 압도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강했으니까.
"그렇습니까?“
"어. 정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걸.“
"그렇지. 만약 아는 순간 나는 재희 너를 천재로 생각하고 내 연구팀에 무조건 넣을 거니까. 끌끌."
문 앞에서 둘이 얘기하는 걸 엿들은 흰 가운을 입은 노인. 레이건 박사는 안으로 들어오면서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분이 제게 메이드 복을 주셨고, 주인님을 치료하신 분이신 레이건이란 사람입니다.“
"그래......?“
유지나의 말이 모두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건 박사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재희와 유지나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뭐, 나를 그리 경계할 필요는 없다네. 난 자네의 편이니까."
옷차림을 보아하니 지금 생각나는 가장 큰 직업군은 의사나 연구원 쪽이 아닐까 싶었다. 그것도 비쓰온 게임 측의 인물로서.
"이렇게 화면 넘어서가 아니라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구먼. 나의 재희여. 끌끌.“
"......"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노인은 의사가 아니라 연구 쪽의 인물이라고.
"누구시죠?“
재희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모습. 재희는 살짝 찡그려진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노인공격이라는 말에 따라 팰 수 있도록 링거대의 봉에 손을 가져갔다. 허튼짓을 벌이는 순간 이걸로 뚝배기를 깨버릴 생각으로. 그러나 이 가벼운 것조차 들 힘이 없다는 걸 뒤늦게 다시금 알아차리며 재희의 표정은 더 인상이 찌푸려진다.
"끌끌. 너무 적대시하는 게 아닌가? 어차피 내가 너를 여자로 만들지만 않았더라면 너는 이미 튜토리얼에서 죽었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나를 반겨야 할 것만 같은데. 그렇지 않나?“
정론이다. 여자가 된 건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와 동시에 신체 능력까지 좋아지지 않았더라면 튜토리얼에서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재희였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실험체로서가 아니라 원래의 몸 상태, 남자인 채로 게임에 참가했다면 오히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김유한이었나. 그자처럼 찌질하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조폭에게 얻어걸려 싸우다 죽거나 도망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로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남자였던 상태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노릇. 노인의 말처럼 반겨야 하는 게 맞는 말이었다. 근데... 모두 다 좋다. 여자가 된 거? 부작용이라 해도 좋은데. 왜 굳이 성욕까지 이렇게 조절이 안 되는 건지. 이것만 제외하면 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