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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052 첫 게임 (52/140)



〈 52화 〉052 첫 게임

얘네들은 어디로 향하는 거지? 은신처로 사용하기로 한 유지나가 있는 동굴로부터 점점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표시하기에는 보는 눈이 많은 상황. 괜한 의심을 살 수가 있어서 재희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길을 잃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재희는 곧장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아으......"
"어...? 재희야? 왜 그래? 괜찮아?“
"네에... 괘, 괜찮아요?“
"괜찮기는 무슨?! 전혀 그렇지 않은데!“

일부러 소리를 내었기에 주아연은 몸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빠르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비틀거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주아연의 부축을 받으며 상태를 살펴지고 있으면서 뭣도 모르고 괜찮다고 대답하는 말에 살짝 발끈하며 소리친다.

"쉬자. 여기서 쉬어.“


주아연은 발을 동동거리며 살며시 재희의 몸을 바닥에 눕혔다.


"애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계속 함께 다닌 게 아니라서 그런지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며 비틀거리는 이유에 대해 짐작조차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한 번 봐도 될까?“
"꺼져. 미친놈아.“


틈만 나면 바람을 피우던 자신의 남자친구인 박기아의 물음에 노발대발하며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 남자친구라 안다. 저건 얼굴만 잘생겼지  줄 아는  하나도 없다고. 공부나 싸움이나. 그냥 잘생긴 얼굴로 여자만 꼬실 줄 알지 이런 상황에서 써먹을 놈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픔을 호소하는 무방비한 재희에게 주아연의 눈 몰래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아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니까 우선을 떨어뜨려 놓아야만 했다.

"넌 꺼지래. 큭큭.“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김지헌은 박기아를 비웃으면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김지헌.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박기아는 주아연 자신의 능력이라면 사귈 가치가 있어서 사귀는 것 같았다. 뭐, 주아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친구들이나 주위 여자들에게서 우월감을 얻기 위해 사귀는 거지. 정말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귀는  아니었다. 때문에 주위 시선이 있어 싸우기는 해도 절대 깨지진 않은 이유다.


그리고 저 김지헌이라는 남자는 대놓고 여자의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모자라서 힘들게 번 돈을 모조리 창관에 사용하면서 때때로 미친놈처럼 여자에게 찝쩍거린다. 그냥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아무 말도 없어 재미없는 이하늘이  나을 정도. 그래도 주아연이 속한 길드의 브론즈 등급에서 팀을 꾸릴 만한 애들이 이 셋뿐이라 내치지도 못한다.

"내가 봐줄까? 이런 거에 해박한데.“

김지헌이 말하길. 자신은 의대생이라 요로 모로 쓸 곳이 많다고 했다.


"쯧... 헛튼 수를 벌이는 순간 뒤질 줄 알아.“
"그래. 알았어. 알았어.“


왜인지. 방금 처음 만난 재희에게 왜 이렇게나 정이 가고, 지켜주고 싶고, 깨물어 주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런 그녀에게 믿기지는 않지만 의대생이란 신분에 걸맞게 어느 정도 의학 지식이 있어 보이는 김지헌에게 재희의 곁을 허락할 수 없는 상황에 한숨이 흘러나온다. 날카롭게 재희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죽인다고 말하며 허리춤의 무기에 손을 가져가자 김지헌은 괜한 걱정은 말라는 듯 설렁설렁 대답한다.

"으으윽... 하아... 하아......"

고운 미간을 찌푸린 채, 불규칙적인 숨을 힘겹게 토해내고 있는 재희. 그런 모습조차 너무 예뻐서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버린다.

"뭐해? 새끼야!“
"아, 미, 미안.“

재촉하듯 욕을 하는 주아연. 김지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어서 재희의  상태를 살펴본다.


"눈으로 봐서는 모르겠는데. 눈 좀  줄래? 재희야?“
"네, 네에......“

자연스럽게 친한 척, 성을 빼고 이름을 부른다. 굳이 여기에 트집을 잡을 필요는 없는 재희는 눈을  본다.

"더 크게.“
"우으으.“
"더. 조금 더.“


고통스러움에 눈이 제대로 떠지지도 않을뿐더러 이래서는 정확히 판별하기 힘들었다.


"모르겠는데.“
"하...? 의대생이었다며, 거짓말이었냐?"
"뭐...? 시발. 의대생이라도 장비가 있어야지 뭘 보고 판단할 거 아냐?!“
"허, 참.“


정말로 의대생이었는데 믿어주지 않는 주아연, 주아연은 급기야 화를 내기 시작하는 김지헌을 무시한 채로 재희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쯧... 여기서 쉴 수도 없는데. 어디 숨을  없어?“
"있을 리가. 온통 나무나 풀인데. 어디 숲을 곳이 있겠어?“
"좀 찾아보고 씨부려라. 개새끼야.“
"읏......!“


남자면 좀 움직여서 주위를 둘러보고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남자친구이긴 해도 너무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 저 한심한 모습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찾아보라고! 시발!“
"아, 알았어.“
"그러지.“
"하. 지랄은.“


셋은 투덜거리며 결국, 아픈 재희를 쉬게 해  곳을 찾아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계획과는 너무 다르게 흘러가는데?‘


재희는 당황했다. 친근하게 굴었다고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보살핌을 받을 이유가 있으려나. 재희의 계획은 그저, 아프다고 호소하며 버림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역시나 재희를 잊지 못해 따먹기 위해 되돌아온 셋  한 명의 모습에 넷의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여 전력을 가늠해 볼 생각이었거늘. 이렇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대체 왜...? 주아연 이 여자는 무슨 이유 때문에 오늘 처음 만난 데다가 이제 함께 있은 지 10분 정도 됐을 텐데 재희에게 이런 반응인지 모르겠다. 그냥 버리라고. 계획대로 하게 편하게 버리면 될 것을 괜한 짓을 하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하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예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마음이 급변할 정도의 여자를 곁에 두는  정상인지. 사정을 알지 못하는 재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없는 것 같은데?“
"동감.“
"여기도 마찬가지야.“


잠시 후, 주위를 둘러보고 돌아온 세 명의 남자들은 모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쓸모없는 새끼들......!“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능함을 욕한 주아연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재희야. 많이 아파?“
"우으응... 괜찮아요. 참을  있어요.“
"그래......“


방법이 없다. 증상을 보고 원인을 측정할 수만 있다면 민간요법이라도  볼 텐데. 제일 중요한 그걸 모르니 손을 놓고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아연은 힘들 텐데도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연약한 재희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시발새끼들. 이런 애까지도 여길 데려오냐?‘


비쓰온 게임에 들어오는 사람들 종류는 단순했다. 싸움을 잘하거나 그냥 인원 채우기 용으로 빚을 진 사람들, 마지막으로 예쁜 여자까지. 고작 스물한 살이 되었을 무척 어린 예쁜 여자아이일 뿐인데 이런 개같은 게임에 끌려와 목숨이 위험해지다니. 여태까지 재희와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주아연이지만 이상하게도 참을  없는 분노가 전신을 감싸기 시작한다.


"조금만 참아 줘. 재희야. 버틸 수 있지?“
"네......“


상냥한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다시 찾아보자. 빨리.“
"뭐...? 없다니까?  또 가?“
"닥치고 가라니까?“
"하아... 알았어. 가면 되잖아? 시발.“

김지헌은 투덜거리며 다시 은신처로 사용할 만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움직였다. 주아연의 연인인 박기아는 순순히 따라주듯 재희를   발라보고 모습을 감추었고, 이하늘은 이미 이곳에 없었다.


"재희야. 언니도. 언니도 찾아보고 올게.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소리를 쳐. 그래야 언니가 구해줄 수 있으니까. 알았지?“
"네. 언니.“
"그래. 소리만 치면 돼. 그럼 언니가 바로 달려와서 구해줄 거니까.“

셋을 믿을 바엔 능력이 좋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찾는 게 더 좋을 거라 생각하며 주아연은 불안하지만 재희를 홀로 두고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재희.

"하... 씨. 일이 점점 꼬이는  같네.“

이런 게 아니었는데. 계획한 건. 생각해 두었던 계획과는 너무 다르게만 상황이 흘러가자 그냥 정정당당하게 4대 1로 싸워서 물과 식량을 빼어야 하냐는 생각까지 들어온다.


"그 년은 날 아나? 왜 그래?“

남자라면 몰라도 동성인 여자에게 그런 눈으로 재희를 바라보는 것도 모자라서 가진 거라곤 오직 외모밖에 없는데. 굳이 함께 있는 남자친구가 다른 길로 새어나갈 길을 만들어 주듯 재희를 버리지 않았다. 마치, 끝까지 데려가려는 생각처럼 보이니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잠시. 들려오는 인기척에 재빠르게 아픈 척을 한다.


"재희야. 많이 아파?“

굳게 닫힌 눈을 희미하게 떴다.

"그......“

이름이 뭐였더라.

"박기아. 기아 오빠라 불러도 돼.“


그래. 박기아였지. 박기아는 자신을 오빠라고 불러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오빠라 부르기 싫은 재희는 갑작스럽게 고통이 찾아온 것처럼 신음성을 터뜨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재, 재희야 괜찮아?“
"아으윽!“
"이걸 어떡해?“

박기아는 아파하는 재희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열이 나나?“


재희의 이마에 손을 가져와 열 체크를 한다.

"열은 없는데. 그럼 뭐지?“꿀꺽하고 침을 삼키며 커다란 가슴을 보고 입맛을 다신다.


"재희야. 다른  더 아픈 곳은 없어?“

아픈 곳... 아픈 곳이라. 잘됐다는 생각으로 재희는 기분이 나쁘지만 일단 일을 벌여보기로 한다.

"가슴이... 가슴이 아파요.“
"뭐...? 가슴이?“
"네... 아파요. 저... 죽어요? 죽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재희야. 넌 죽지 않아. 죽으려고 해도 이 오빠가 반드시 살려줄 게 그러니까.“


박기아의 눈은 여전히 재희의 가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되는 대로 말을 막 뱉으며 살며시 몸을 가져와 재희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처음은 이렇게. 안는 것부터 하기로 하고, 이것을 시발점으로 점차 사랑을 키워나가 나중에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아이는  정도로 낳는 상상까지 한다. 그렇게 박기아의 품에 재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시발놈아. 너 뭐해?“
"어.....?“

이제 돌아온 김지헌은 둘의 모습에, 아니, 일방적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재희를 어떻게 해 보려는 박기아의 모습에 혐오스러움이 가득한 표정과 어투로 묻는다.


"지, 지헌아. 언제 돌아왔어?“
"방금. 그나저나. 지금 뭐 하냐고? 시발아.“
"별거 아니야. 열이 나는지, 어디가 아픈지 물어본 것뿐이라고.“
"그래서 뭐래?“
"가슴이... 가슴이 아프데.“
"하...? 그래서 가슴을 만지려고  거야?“
"무, 무슨 소리를?! 내가 가슴을 왜 만져!“

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지금은 그저 끌어 안아주며 불안해하는 재희를 진정시켜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런 착각을 하는지. 박기아는 살짝 상처를 받았다.

"그럼 왜 그리 가까이 다가갔어?“
"......“
"왜냐고?“
"재희가 불안해 하는 것 같아서. 자기 죽는 게 아니냐고 불안해 하니까 따뜻하게 안아주려고 했을 뿐이다. 왜?“
"재희가 원하든?“
"......“

원하지는 않았다. 박기아 자신이 그리하고 싶었은 뿐이지.

"시발. 이젠 대놓고 강간하려고 하네?“
"뭐? 강간?“
"네가 그랬잖아. 튜토리얼에서 강간하고 게임이 끝나기 직전에 네 평판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는 목적으로 죽였다고.“

움찔.


그 말에 재희는 반응하며 몸을 크게 떨며, 박기아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살짝 맺힌 눈동자와 불안에 가득한 표정.


"아, 아아......“

그리고 두려움까지. 완벽했다.


"아니야. 재희야. 거짓말이야. 저거.“
"시발. 거짓말은 무슨. 니가 그랬잖아? 존나 생색내며 말하더니.“

얼핏 보이는 재희의 모습에 힘을 얻고 김지헌은 박기아를 더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박기아가 여자라면 환장하는 쓰레기라도 주아연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 안전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여자를 강간할 대책 없는 병신이 아니었다.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지헌이었지만 그를 여기서 처음 본 재희는 어떨까. 승리를 얻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떨어져. 시발놈아."
"아으......!“

김지헌의 말이라면 무시하면 되는데 눈앞에 공포에 물들어 있는 재희의 표정으로는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 시발. 자격지심이 있는 줄은 알았는데 여기서 지랄이네?“
"본성이 튀어나오네? 이제?“
"......“


박기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김지헌을 바라보았다.

"왜 치게? 여기서 날 쳐 보게?“


죽일 듯이 자신을 노려보다 김지헌은 도발을 하고.


"그래.  쳐봐. 그리고 나도  좀 치자. 이걸로 시발놈아.“

더는  참는다. 언제까지 이런 새끼랑 함께 다니면서 부러움에 찌들어 살아야 하는가. 주아연? 이하늘? 그 둘이 오기 전에 박기아를  죽여버리고 윤재희를 들고 튀면 될 문제.

"뒤질 준비나 해라.“


김지헌은 허리춤에서 중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마찬가지로 박기아도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이리하여 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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