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049 첫 게임
유지나.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당시 부모님이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다. 유지나는 평범한 가족, 평범한 가정, 평범한 외모까지 모든 게 평범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어느 날. 열심히 일을 끝마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서 아버지인 자신을 기다리던 아내와 토끼 같은 딸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와중에 괴한에게 이유 없는 묻지마 살인을 당하고 난 뒤에 유지나의 인생은 곧장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가장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그 충격에 쓰러져 온갖 병에 온몸이 사로잡혀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로 인해 빠져나가는 돈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인데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벌써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먼저 떠나간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가지려고 열심히 공부해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어머니, 의사는 그런 어머니의 몸 상태 때문에 미성년자였던 유지나를 자꾸만 재촉하여 수술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돈이 없었다. 안 그래도 빚덩이에 머리가 아픈데 수술 비용으로 또, 지출된다니. 결국, 유지나는 제일 낳은 선택이자 남들이 보기에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조건 만남. 화장하면 꽤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게 되는 유지나였다. 가슴은 작은 데 노력으로 몸매를 가꾸어서는 여고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홍보를 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연락이 쇄도했다. 그렇게 몸을 팔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어머니의 수술자금을 마련하고 빚을 차차 갚아가면서 동시에 조금씩 사치를 부리기 시작했다. 다 못 먹을 음식을 시켜 먹어 본다든지 명품 브랜드의 물건을 사서 몸에 걸쳐 본다든지 해서.
그러나 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처럼 이런 생활은 24살이 된 지금에서야 끝이 나게 되었다. 원래라면 완전히 빚을 다 갚은 다음에 그만둘 생각이었거늘, 어떻게 수술비를 마련하다 못해 빚을 빠른 속도로 갚아나가는 자신 딸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그녀의 어머니는 몰래 유지나의 뒤를 캤다. 그래서 딸이 그 큰돈을 벌 수 있었는지 모든 걸 알게 되었고,
모녀의 사이에 커다란 금이, 지울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예전처럼 되돌릴 수 없는 그런 균열이 생겨버려 유지나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전부 어머니를 위해서였는데,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아니, 살아는 있을지 생각하게 될 정도로 급박한 삶이었는데 어찌 딸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을지, 충격을 넘어 증오심까지 들어왔다.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울고 있던 유지나에게 비쓰온 게임에서 나왔다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 않냐고, 이제 이 세상이 지긋지긋하지 않냐며, 행동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보다 더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곳에 가 보고 싶지 않냐고 물어왔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화번호가 담긴 명함을 주며 마지막 선물로 당신의 어머니에게 10억을 안겨주고 떠날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가고, 몇 번의 밤이 지났을지. 유지나는 끝내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어머니에게 10억이라는 마지막 선물을 남겨주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로 인해 비쓰온 게임의 튜토리얼에 들어와 운 좋게 강한 남자에게 덮쳐져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고, 헤븐에 발을 들인 뒤에 생전 처음으로 몸을 파는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가기로 다짐하며 훈련에 매진했다.
고된 훈련이 이어지고, 이젠 게임에 참가해도 될 거라는 말을 들어 헤븐에 들어온 지 몇 달이 지나서야 게임 참가 희망서를 내고 무인도에 왔다. 그런데 훈련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막상 살려면 눈앞의 남자를 죽여야 하는데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무력함에,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손쉽게 제압을 당해 강간을 당할 뻔했었다. 말 그대로 뻔이었지 실제로 당하지 않았다.
"먼저 와도 돼.“
같은 여자라 하기에는 유지나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아름다움을 사방으로 표출하고 있는 은발과 적안의 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먼저 와도 된다니. 무섭지 않은 걸까. 아니면 익숙하다 못해 너 따위는 언제 어디서 달려들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걸까.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였지만 아까와 다름없이 몸은 두려움에 움직여주지 않는다.
"내가 먼저 갈까?“
"왜... 왜 그러는 거야?“
"왜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여기서는 당연한 게 아닌가?“
"맞아... 당연한 거... 근데 왜 굳이 무기를 잡으라고 말한 것도 모자라서 기다려 주는 거야?“
"그냥.“
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
싸우기 싫었다. 그냥 예전처럼 창녀촌에 들어가서 몸이나 팔고 있을 걸. 무슨 마음으로 달라지겠다며 게임에 참가했는지 정말 과거의 자신은 멍청하기 그지없다며 질타한다.
또르르.
희미한 행복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며 유지나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얼굴선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러면서 눈물처럼 천천히 손에 든 무거운 검도 내려가고.
"죽여줘......“
승산은 없어 보인다. 분위기만 보아도 그 남자와는 다른 존재임을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유지나는 어차피 죽을 거, 그리고 또다시 몸을 팔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으니. 그냥... 그냥 편하게 이대로 죽으면 되지 않을까.
카아앙.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가 흙바닥으로 떨어지고, 밑에 있던 돌과 부딪쳐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까는 잘 저항하더니. 갑자기 왜 그러지?“
"이제... 이렇게 살기 싫어. 편해지고 싶어.“
그 여잔 이제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그토록 입에 담고 되새겼는데도 불구하고 심한 말을 스스럼없이 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고 싶다. 그리고 사과를 하고 싶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노릇. 유지나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한다.
"그러니까... 죽여줘. 그냥.“
"싱겁네.“
터벅터벅.
싱겁다는 말을 내뱉으며 재희는 유지나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허탈한 듯이 웃으며 애써 죽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정말 죽여줘?“
레이피어의 칼날의 끝이 유지나의 가냘픈 목에 닿았다. 따끔하고 차가운 감촉에 몸을 움찔 떨며 그녀의 말에 대답하려고 하지만 입은 굳게 닫힌 것마냥 차마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말해야 하는데. 죽고 싶다고 말을 하고 싶은데.
"죽고 싶... 지 않아. 살고 싶어......“
역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죽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여전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다랬다. 애써 자신을 속여 말을 하려 해도 내뱉어지지 않는 죽고 싶다는 그 말.
"그래?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굳이? 널 살려주면 나한테 오는 득은 뭘까?“
"......“
득이라. 유지나를 살린다고 그녀에게 떨어지는 득이란 대체 뭘까. 하나도 없다는 걸 짐작한 유지나는 마음이 철렁 가라앉았다. 이성인 남자도 아니고 동성인 여자, 싸움도 할 줄 모르지, 싸움 외에도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지, 그리고 23년간 몸을 팔며 살아온 더러운 여자를 굳이 살린다고 올 득은 없고 실만이 존재했다.
"무기랑 가방은 어디서 잃어버린 것 같네?“
싸우려고 마음을 먹었어도 몸이 제때 따라주지 않아 도망치면서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남자를 향해 배에서 고른 단검과 식량이 들어있는 가방을 던졌었다. 이거라도 먹고 떨어지라고, 그만 쫓아오라는 뜻에서. 그럼에도 남자는 유지나를 범하기 위해 가방을 지나쳤다.
"그러면 너를 살리게 되면 내가 네 몫까지 식량과 물을 준비해야 하겠네?"
그렇다. 이곳에서는 한 명분의 식량과 물을 구하기도 힘들 텐데 두 명분을 구한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걸 아는 유지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제발... 무엇이든 할게요. 살려만 주신다면 시키시는 거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병원의 입원실에 누워있던 어머니의 병을 고쳐달라고 교회와 절에서 빌었던 것처럼 신도 아닌 자신과 같은 여자에게 간절히 빌었다.
"뭐든지?“
"네... 뭐,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요.“
"그거 좋네.“
이 상황에서도 넋을 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싱긋 지어 보인 그녀는 유지나의 목에 닿았던 레이피어를 거둬들였다. 그러자 따끔했던 고통에 걸맞은 목에 작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꿇어.“
웃고 있는 미소와는 달리. 강압적인 말투에 유지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런 순종적인 모습에 재희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선 왼발을 그녀의 입에다가 가져간다.
"자. 핥아 봐.“
"아.....?“
핥으라니. 이 발을? 여기서?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어서.“
고개를 까딱거리자. 유지나는 치욕스러움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자신의 눈앞에 떠 있는 발로 가져왔다. 무척 곱디고운 그녀의 발을 살며시 붙잡으며 혀를 내민다.
'해야 해. 그래야만 해.‘
사람을 죽이는 게 익숙해 보이는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자에게서 살아남으려면 발이라도 핥아야만 했다. 오히려 상을 주듯 기쁘게 핥아야만 했다.
"으읏.....?!“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 새하얀 발에 유지나의 혀가 닿으며 노련하게 움직이자 예상치도 못한 쾌감에 재희는 미약한 신음성을 터트린다.
'애, 애 너무 잘하잖아.....?‘
손과 발의 움직임이 부질없어졌더라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증오의 눈빛과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여기서 무기를 다루는 능력까지 어느 정도 있으면 굳이 민정이와 예림이나 게임 안에서 성욕을 해결해줄 여자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곧장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싸울 것처럼 행동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리며 죽이라고 했을 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도 당황했었는데 천만다행이게도 뒤늦게 죽고 싶지 않다고 해 그제서야 재희는 안도할 수가 있었다. 실력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또한, 이 여자를 민정이와 예림이와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볼 수는 없는 노릇.
예림이 보다는 유혹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는데 외모는 둘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떨어졌다. 여자가 되었다고 한들 남자였었던 이상 여자의 외모를 집중적으로 보는 재희인지라 연애하고 싶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둘은 보기보다 질투를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이니 애인으로도 둘 수 없으니 조금 황당한 취급을 하기로 했다. 그건 다름 아닌 성노예. 언제든 내키지만 않으면 버릴 수 있는, 게임 안에서 성욕을 해결할 그런 성노예로서 사용하기로.
"으으읏......“
그랬었는데. 이곳에 오기 전에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재희의 발을 어루만지는 손이나 같은 여자의 발을 핥으라는 말에 더럽다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고 꺼려야 하는 게 정상인데. 머뭇거리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 게 정상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발가락 사이사이에 혀를 집어넣으며 쾌감을 주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 이, 이거 위험해!‘
재희에게 잃어버린 처녀를 가지고 있던 민정이와 예림이의 손놀림은 이렇지 않았다. 남자나 여자나 둘 다에 경험이 없었던 그녀들이었기에 서툴기 그지없는데, 그런 손놀림에도 커다란 쾌감을 느끼던 재희인지라 이건 도저히 무리였다. 버티기가 힘들 정도로.
"하아악...! 끄, 그만.....!“
한 발로 서 있을 수만은 없어 레이피어를 땅에 깊숙이 받아두어 중심을 잡고 있었는데 쾌감으로 인해 몸에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재희는 다급히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그만하라고 말해보지만, 유지나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
'맛있어... 왜지...? 왜 여자의 발이 이렇게나 맛있는 거지?‘
돈을 위해서 기하학적 플레이를 모두 했던 그녀에겐 발을 핥으라는 건 무엇보다 쉬운 거여서 말한 대로 만족할 때까지 발만 핥으려 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달아오르면서 자신의 몸이 마치, 자신의 게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왔다. 마치, 누가 조종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유지나는 이미 그녀의 바지를 걷어 올려 종아리에 입을 가져간 후였다.
"그... 그만 둬...! 그만두라고 말하잖아!"
유지나가 다치지 않도록 손으로 머리를 옆으로 쳐낸 뒤에 그녀의 어깨에 발을 얹고 강하게 밀어버린다.
"읏.....!“
유지나의 가냘픈 몸은 발에 밀려 흙바닥에 엎어진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저, 여기서 끝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아쉬울 뿐.
'내가... 왜 이러지?‘
줄곧 남자 손님만 받아왔는데, 어린 애들부터 다 늙어버린 놈들까지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 관계를 나누었지만 이런 느낌이 들어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우 이상한 감각. 처음으로 아까 하던 걸 자신 스스로의 의지로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숨을 고르게 토해내고 있는 여신이라 해도 무방할 여자의 다리를, 종아리를, 허벅지를, 그리고 은밀한 곳에 있는 그녀의 보지를 핥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