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043 사쿠라 길드 (43/140)



〈 43화 〉043 사쿠라 길드

그가 헤븐에 발을 들이고  뒤로 정말 많은 시간이 흘러갔었다. 처음에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며 무섭고, 두렵고, 죽기 싫어도 이를 악물며 게임에 참가하다가 보니 어느새 빚은 순식간에 갚을 수가 있었다. 그러자 주최 측에서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빚을 전부 다 갚았으니까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줄 수가 있다고.

하지만 그는 고민했다. 원래 있던 곳... 아니, 자신이 있었던 곳이 있었던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지냈고, 보육원에서 지내면서 부모도 없다는 사실을 학교 친구들... 악마 같은 쓰레기들에게 들켜 하루하루를 정말 힘들게 살아왔다. 비쓰온 게임이라는 곳이 지옥인  알았건만. 다시 잘 생각해보니 지옥은 그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사정과 생각을 읽은 것인지. 주최 측에서 나온 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다른 제안을 했다. 헤븐에 길드를 세워보는 게 어떠냐고. 왕으로 살아보는 게 어떠냐고 물으면서. 어차피 여기서 나가 보았자 갈 곳도 없어서 굳이 비쓰온 게임 내에서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그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여기서 자신을 무시할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빚을 다 갚았어도 헤븐에서 나가지 않기로 하며 길드를 세웠다. 중2병 같았음에도 자신이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나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그 단어. 이젠 더는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생각해낸 그 단어는 다름 아닌 지존이었다. 지존이 들어간 가상 속 존재들은 전부 강했고, 누구도 무시하지 못해서 그가 좋아하고 원하는 단어, 위치였다. 그 때문에 길드의 이름에 지존을 붙였다.

당연히 중2병과 같은 이름에 헤븐의 사람들과 참가자들이 그를 무시하며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그가 부족한 게 많아서 그들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끊임없이 달렸다. 등급이 낮아서 그런가? 그럼 등급을 올렸고, 길드의 위성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럼 악명으로도 길드의 이름을 헤븐 전역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를 따르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의 강함에 반했다며, 그의 모습에 반했다며 다가왔다. 자신이 강하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의 옷차림은 헤븐에서 나가지 않고 길드를 만들겠다고 하니 준 옷이며, 거대한 낫인 무기였다. 지존 길드를 세우긴 했었어도 지존이라는 단어를 우러러볼 뿐이지 중2병이 아니었다.

하지만 칼에 베이면 곧바로 찢어질 것만 같이 약해 보이던 검은 천 옷은 생각 의외로 단단해 잘 찢어지지도 않았으며, 거대한 낫은 보기와는 다르게 가볍고 엄청 날카로워 커다란 나무도 손쉽게 자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태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었는데 헤븐에 숨어있던 중2병들이 그런 그를 보고 용기를 내어 길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이제 길드원을 받아들여서 크기를 키울 생각이었던 터라 단  명도 빠짐없이 남들의 눈을 피해 자신이 중2병이라는 걸 숨겨오던 그들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그의 모습에 반해서 온 것이고, 남들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중2병이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겉으로 표출하고 있다 착각하며 길드원이 되었지만 어쨌든 좋으면 좋은 것이다.

그는 길드원을 받았으니. 아무튼, 지존 길드는 본격적으로 길드의 활동을 할 수가 있었고, 길드원이  그들은 그를 따라 중2병이란  숨길 필요 없이 당당해질 수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느새 그는 피를 부르는 사나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자신은 이창운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는데도 말이다.

피를 부르는 사나이가 뭔가.  오글거리는 별칭이었다. 그 때문에 이창운은 자신을 그리 부르지 말라고, 이창운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주 잠깐 창운 님이라, 이창운 길드장이라 부르지만 그건 길드원에 한해서이지. 이창운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여전히 피를 부르는 사나이라 부르기를 여전했다.

그래서 포기한 듯. 어차피 모두가 다 자신의 이름을 알 필요가 없어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했다. 그저 이제 식구가 된 이들만이 이름을 불러주면 되니까. 하지만... 영원한 건 없듯이 지존 길드의 초기 맴버라 할 수 있는 그들이 하나둘씩 게임을 하던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크게 분노하여 그들을 죽인 존재를 찾아 찢어 죽이려고 했으나 누가 죽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당사자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밝히지도 못할뿐더러 애초에 비쓰온 게임이라는 곳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게 정상인 배틀 로얄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초기 맴버들을 모아 훈련을 시켰다. 그런데도 계속 죽어간다. 인제 그만 게임에 참가하지 말고 이창운이 직접 빚을 갚아 주겠다고 말을 해도 남자가 자존심이 있다고 이창운의 제안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대가가 죽음인데도.

그렇게... 모두가 죽었다. 그리고 이창운을 이창운이라 불러주는 이는  한 명도 없어졌고. 이젠 완전히 피를 부르는 사나이가 되어버렸다. 외롭다. 외로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럴 때. 이창운의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이단죄라는 남자가 다가와 자신은 지존 길드의 섭외 팀에 있다고 소개하며 말을 걸어왔다.

섭외 팀이라니. 그런 게 이창운의 길드에 있었는지 그때 당시 처음 알게 되었었다. 아무튼, 이단죄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잔뜩 흥분한 상태로 털어놓았다. 이창운도 처음 듣는 튜토리얼에서 금색 등급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그것도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에, 심지어는 외모까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까지도. 이단죄는 요즘 자신의 길드장이 유독 친했던 간부가 죽은 후로 외로워 보여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었다.

그녀라면... 헤븐의 최강자인 피를 부르는 사나이의 외로움을 털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 바쁘게 헤븐에서 살아온 그였기에 이창운은 곧장 세상을 다 뒤져도 그녀보다 예쁜여자는 없을 거라 확신하는 이단죄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고, 언제 외로웠냐고 물을 정도로 기대가 되어 어서 아카데미의 8일 차가 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되었고. 아침 일찍 자신의 길드원들을 데리고 이창운은 아카데미의 강당으로 갔다. 당연히 헤븐의 최강자가 직접 찾아왔는데 그녀를 보기 위해 이창운처럼 아카데미의 강당으로 온 다른 랭커들이나 교관들은 이미 포기한 듯, 한숨을 깊게 내쉰다. 그만큼 이창운의 신경에 거슬리게 할 정도로 대담하지 않았으니까.

'와......‘

말로만 듣던 그녀. 윤재희를 본 순간 이창운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몸매면 몸매, 얼굴이면 얼굴. 그냥 완전히 여신이 아닌가. 은색을 띠는 머리카락은 어떻고, 루비처럼 아름다운 붉은 색 눈은 또 어떻고.

"윤재희인가......?“

이창운은 멍하니 그녀만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앞에 섰다.

'이, 이 미친놈!   거야?! 그냥 이단죄나 다른 애들에게 맡겨둘 생각이었잖아!‘

여자와 손을 잡기란 커녕 대화조차 나누어 보지 않았던 그, 헤븐에 와서도 빚을 갚느라, 길드를 키우느라 창녀조차 만나지 않았던 그였기에 갑자기 무모한 행동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속으로 질타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던 길드원들의 우상 같은 존재가 바로 그였기에 실망을 주었다가는 고개를 돌릴 것만 같아 자신조차 속여버리는 표정과 목소리의 톤, 그리고 행동했으며, 그게 누적되니 인제 와서는 자연스럽게 멋대로 튀어 나간다.

"그렇습니다.“
"흐음......“

중2병과 같은 말투와 분위기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손히 대답한다. 역시 길드를 최강으로 만드니까 대우도 달라져 기쁘기도 하지만 첫 만남이 이렇다니 가슴이 미칠 듯이 아파온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긍정적? 부정적? 표정을 보아서는 알아차리기에는 무리가 존재했다.

"나쁘지 않군. 우리 길드로 올 생각이 있느냐?“
"......“

가까이에서 보니 그녀의 얼굴은 더더욱 빚을 발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 작은 얼굴에 어찌 눈코입이 다 들어갈 수가 있는지, 몸매는  어찌나 매혹적인지. 지금 당장이라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자신만의 방에 들어가 딸딸이를 치고 싶을 마음이었다.

"다시 한번 묻도록 하지. 지존 길드에 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원한다. 그녀를. 간절히. 반드시 지존 길드에 가입시키고 싶었다. 정말 이런 적은 처음이다. 어떤 여자라도 눈에 들어 오지가 않았는데 그녀만은 다르게 이창운의 시선을 계속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듯 말했나 보다.

"그......“
"피를 부르는 사나이시여. 너무 강압적으로 묻는  아닙니까?“

그녀가 앵두같이 예쁘고 새빨간 입술을 떨어뜨리고 뭐라 말하려던 그때, 누군가가 이창운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흐음...? 강압적이라. 왜 그리 생각하느냐?“
"그야 무기를 든 상태로 단답형으로 물으니 대체 누가 선택지를 주는 권유를 한 것으로 보겠습니까?“
"일리가 있구나.“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또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말에 다시 입술이 붙어버리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어지는 말에 납득을 하며 속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멍청아...! 니가 뭐라고 강압적으로 말하고 지랄이야!‘

첫인상이 중요한데. 거의 협박을 해대는 것처럼 보이니 그녀는 얼마나 겁을 먹었을까. 여자의 취향 중에 나쁜 남자가 있어도 정말 나쁜 남자라면 오히려 피해버리지 않을까. 이창운은 점점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표정이 풀어질 것만 같았다. 여태까지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안하구나.“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다급하게 사과를 하지만 이 망할 주둥아리는 여전히 중2병 같은 말투를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녀의 표정에 균열이 생기며 말이 더듬어지자 정말 끝인 것 같았다. 어떤 여자가 강하지만 중2병인 남자를 좋아하겠는가. 사실은 중2병이 아닌데. 길드원들이 보는 눈이 있어서 일부러 연기하다가 병처럼 몸에 자리를 잡고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뿐인데.

"강요는 하지 않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추궁하지 않을 거이니 잘 생각해 보거라.“

그래도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강한 남자! 여기서 제일 강한 남자라면 다름 아닌 이창운이며, 헤븐에서 자신을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게임 측 사람 말고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비쓰온 게임이라는 특성상 헤븐에서는 강자가 권력을 잡을 수밖에 없으니 전에 봤었던 것처럼 돈은 많지만, 대머리에다가 면상을 아스팔트에 갈아 끼운 남자임에도 여러 여자를 품에 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삶. 이창운에게도 그런 삶이 주어지긴 했었는데 너무 바쁜 나머지 여자에게 빠져 일을 미룰 수만은 없어 꽤 예쁜 여자가 여럿 찾아와도 쳐내었다. 사실은 이창운은 드라마 같은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기에 권력이나돈을 보고 다가오는 여자는 정말 질색할 정도로 싫었는데 이번에는 윤재희가 그런 단순한 여자이길 간절히 빌어본다.

"편하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피를 부르는 사나이는 게임에서만 무서울 뿐이지 사실은 정말 좋으신 분이십니다.“

옆에서 장인성이 지원사격을 해준다. 기분이다. 오늘부터 사쿠라 길드와 지존 길드는 남매 길드란 것을! 이창운은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어......“

헤븐에서 제일가는 권력에 고민하는  분명하다! 역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여자였구나. 그런 여자인데 왜이리 기분이 좋은지. 이창운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면 소리를 내지르며 발가벗고 달리고 싶을 정도로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사쿠라 길드로 갈게요.“

발가벗은 채로 목적지 없이 마구 달리던 이창운은 그녀의 대답에 딱딱하게 몸을 굳혔다.

"그런가. 알겠다.“

차였다. 차인 것이다. 자신은. 이창운은, 피를 부르는 사나이는.

"가자.“
"예. 마스터.“

울고 싶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서럽게 울 수는 없는 노릇. 보는 이도 많고 처음으로 이창운에게 사랑을 알려준 그녀의 앞에서 울고 싶기는 더더욱 싫었던 나머지 도망치듯 길드원들을 데리고 아카데미를 나온다.

"감히... 길드장님을 차다니!“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가서 억지로라도 데리고 올까요?!“

 길드원은 존경하는 자신의 길드장이 차였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던 이단죄는 차마 입에 담을  없을 정도의 죄를 지었다는 것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다른  명은 강제로 데리고 오겠느냐고 못된 생각까지 하게 된다. 모두가 이창운을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원망스러울 뿐이다.

"돌아간다. 만약 윤재희에게 괜한 짓을 했다가는... 후우. 알아서 생각하거라.“

지금은 길드원들을 구박할 기력도 없다. 그저, 침대에 엎드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으헝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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