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040 아카데미 (40/140)



〈 40화 〉040 아카데미

"음...? 뭐라고? 오전 교육을 잘 받던 걔들을 갑자기 이렇게 빼 달라고 부탁하는 이유가 뭐지?“
"그...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쉬게 해 주고 싶어서요.“

자신의 성욕을 곧이곧대로 받아주다가 지쳐 쓰러졌다고는 차마 말할  없었던 재희는 그녀들이 차마 오후 훈련을 빼야 할 정도로지친 이유의 요점을 쏙 빼놓고말했다. 그러자 당연히 지친 이유가 교육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훈련임이라 착각하는 교관은 피식 웃는다.

"어떻게 안 될까요?“
"글쎄. 아카데미의 원칙상 아주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힘들다고, 몸이 아프다고 해도 교육을 뺄 수는 없어서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원칙을 내가 깨트리면서까지 쉬게 해 줄 의무는 없다만?“

교관은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렇게나 깐깐한 원칙인데 무슨 특별한 사유도 없이 힘들어하는  같다고 빼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고작 일주일을 못 버텨서는. 이제 3일 차인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자신과는 다르게 서 있는 재희를 올려다본다.

"첫 번째 날에서도 말했다시피 아카데미는 게임을 운영하는 주최 측에서 만든 시설이 아니라 헤븐에 존재하는 많은 수많은 길드가 계속해서 유입되는 뉴비들의 허무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 만든 것뿐이다. 그래서 반드시 아카데미의 교육을 받지 않아도 헤븐에서 살거나 게임에 참가하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아카데미의 졸업장은 헤븐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배에서 재희를 포함한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았던 29명이 받았던 개인정보와 빚의 액수가 적힌 카드를 교관은 품에서 꺼내 들었다.

"길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거지들이나 몸을 차는 창녀나 죽기 싫어 어떤 가혹한 일도 스스럼없이 하는 겁쟁이나 모두 하나같이  졸업장을 가지고 있지.“

카드의 뒷면에 새겨진 아카데미를 졸업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졸업장 표시. 헤븐에 사는 사람이라면 주민등록증처럼 반드시 카드에 새겨야만 하는 표시였다. 아니, 굳이 표시할 필요는 없긴 하다. 그야 그럴 것이 이 졸업장 표시는 주최 측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까.

"이 졸업장이 없으면 헤븐에서 살아가긴 힘들 거다.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기면 뭐 하나. 자신을 증명하는 기초적인 표시도 없는데. 이건 헤븐에 사는 랭커들이 만들어낸 것이라 주최 측이 정한 게 아니라고 해도 무조건 얻어야만 하는 거다.“

졸업장이 없으면 사람 취급을 받기 힘들어진다. 일주일만 고생하면 되는걸. 대체 어떻게 아카데미를 졸업할 생각하지 않을 걸까. 저런 썩어 빠진 정신으로 튜토리얼에서는 어찌 살아남은 것일까. 튜토리얼에서 아무리 쓰레기 짓을 하고 다녔더라도 랭커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긴 하지만 그들은 랭커이다. 그리고 이제  헤븐에 들어와서 졸업장이 없는 사람은 그저 어디에도 널려있는 뉴비일 뿐이라 비교 대상이 되질 않는다.

"이건 시민권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 시민권을 얻기 위해 고생 중이지. 때문에 둘이 오후에 나오지 않는다면 곧장 강제퇴출 시키도록 하지.“

절대로 재희의 부탁을 들어 방에서 곯아떨어진 둘을 배려해줄  없다는 듯이 교관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교관은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건지 의문이 들어올 정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재희에게 다가온다.

"근데 말이야.  행동에 따라 내 마음이 갑자기 바뀔 수도 있지. 훈련이 힘든 건 알아. 아니 알지 당연히. 남자도 버티지 못하는 훈련인데 평범하게 살아왔던 여자가 과연 버틸 수가 있을까? 아카데미를 이미 졸업한 여자들은 버틴 게 아니라 다른 방도가 없기에 포기한 듯이 일주일이 다 가길 애타게 기다린 거지.“

어느새 한 발자국만 더 걸으면 서로의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에서 음흉한 표정을 짓던 교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새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를 향해 손이 뻗어졌다. 하지만 교관은 목이 아니라 그 옆에 허리 부근까지 길게 내려간 은색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어때? 서로의 합의하에.“

헤븐에서는 모든 범죄가 금지되다시피 강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합의하에 하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처벌 대상이 되었고, 강간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고해도 철저한 조사 끝에 범인을 잡아내게 되니 범인으로 지목당한 이는 무죄라는 게 판결이 나면 풀어주며 허위로 신고를 한 피해자, 아니 가해자는 무고죄로도 처벌할 수 있으니 무모한 짓과 생각은 금물이었다.

'둘을 위해 몸을 팔아야 한다고? 당연히 그딴 짓을  리가 없지.“

그녀들을 위해서라고 해도 남자였던 재희가 여자의 몸을 이용해서 남자에게 몸을 팔리는 절대로 없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만약 피하지 못할 상황. 지켜주는  하나도 없이 죽음과 강간의 갈림길이 주어지면 곧바로 역겹지만 포기한 듯이 강간을 당할 것이다. 그만큼 가족들의 곁에 돌아가야만 하니까. 지금도 사라진 아들을 걱정하며 찾아다니지 않을까.

고등학교 3학년이라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데 실종된 오빠를 찾느라 공부를 못하는 동생이 아닐까. 그런 가족의 모습을 생각하니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죽는다는 선택지는 피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피할  없는 상황이라면 스스로 먼저 선뜻 몸을 내어주겠지만. 지금은 그 선택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직도 너무나 부드러운 재희의 머리칼을 만지며 감탄하고 있는 교관의 손을 강하게 쳐냈다.

"왜? 어디 가는 거지?"

단발머리를 한 미녀인 민정이라는 여자. 고등학생이라 해도 의심이 들 정도로 작은 몸인데 예쁜 외모를 가진 터라 귀엽기 그지없는 예림이라는 여자와 각별한 사이란 걸 알기에 교관은 일부러 둘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아카데미에서는 말로만 남녀와 차별 없이 훈련을 시킨다고는 해도 어쩔 수 없는 신체적 차이로 인해 여자들에게 조금은 관대했다.

힘들어서 조금 쉬려고하면 일부러 못 본 척 넘어가거나 하는 둥 말이다. 그러나 이 교관은 그러지 않았다. 외모와는 다르게 헤븐이란 섬에  것을 보면 한국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이니 혼혈 같아 보이던 엄청난 미녀. 윤재희를 따먹기 위해서 말이다.

"시발... 존나 비싼 척하네. 개새끼가.“

욕정을 품을 수밖에 없는 재희의 아름다운 뒤태가 보이지 않게 되자 교관은 허탈하게 의자에 앉으며 욕을 입에 담았다. 거의 다 된 것 같았는데. 정말 열심히 여자들을 남자 교육생들과 다르지 않게 굴렸는데 자신이 따먹고 싶어 안달이 난 윤재희는 버틸 만 해 보여서 그녀와 친한 둘을 고생시켰더니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허튼짓이라도 한 것마냥.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오후에 나오지 않는다면 교관의 권한으로 둘을 아카데미에서 퇴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일거리도 주지 않고, 게임에도 참가할 자신이 없어 거지가 되는 이들보다  무시당하는 존재가 다름 아닌 아카데미 졸업장이 없는 인간인데. 과연 언제까지 비싼 척 몸을 사릴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쯧... 개같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던 재희는 방금 교관이 만졌던 머리칼을 거칠게 털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깨끗한 상태임에도 무언가 붙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털어도 불쾌함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자리잡고 있었다.

"아아. 걔한테 부탁하기는 싫은데.“

다시는 말도 섞기가 꺼려지는 그에게 부탁해야 하나. 부탁하면 들어주기야  텐데 그걸 빌미로 무얼 부탁할지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냥 마음이 불편해지더라도 둘을 깨워서 오후 교육도 받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차마 숙소로 발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국 사무실이라는 곳에 도착하였고.

"무슨 일이시죠?“

교관으로 보이지 않는 여직원이 사무실을 찾은 재희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 부러울 정도인 여자가 갑자기 찾아오니 눈이 호강하면서도 질투가 가득 차기 시작한다.

'언제 봐도 예쁘네.‘

자신은 교관이 아니라 매일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훈련하는 모습을 보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 등. 우연히 만나는 일밖에 없었다.

"전화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전화요...? 그건 왜?“
"그냥... 연락할 사람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쓰세요.“

뭘까. 헤븐에 들어 온지 이제 4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연락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누굴까. 아무리 세상이 좁다고 한들 헤븐에 도착하자마자 아카데미에 갇혀 살아가는 그녀였는데 아는 사림이 있어서 연락한다는 건지.

"......“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적힌 종이를 꺼내 그걸 보며 숫자를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연결음이 가고 상대방이 받자마자 고운 미간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진다. 그런 모습도 예쁘다니. 역시 예쁜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예쁘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민정이와 예림이의 훈련을 빼 주세요.“

재희는 본론을 곧장 토해냈다.

[아... 친구분들을 말이오? 그건 들어주기 쉽소이다.]

상대방. 이단죄는 별거 아닌 걸로 전화를 했다며 태연하게 말한다.

[그 대신에 저희 길드의 길드장이신 피를 부르는 사나이와 만날 생각은 없소? 언제나 말하듯이 정말 멋진 남자오.]
"......“
[내 장담하겠소.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고 말이오. 소인이 한  당신의 얘기를 들려주니 흥미를 느꼈으니 아마  될 거라 생각하오.‘

소인은 또 뭔가. 갑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 같은데. 그리고 얘기를 들려준 것만으로 만나지도 않았는데 뭘 그리 자신만만하게 말하는지. 멋진 남자면 뭐하나 얼핏 들은 얘기로는 이단죄와 같이 지존 길드에 속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중2병이라 한다. 심지어 중2병의 수장과도 같은 그런 이와 만나야 한다니 왠지 이럴  같았다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골치가 아파온다. 그래도 힘들어서 잠들어버린 예림이와 민정이를 생각하면은.

"한  만나보긴 하죠.“
[좋소. 그것만으로 충분하오. 만나보기만 하여도 재희는 저희 길드장의 아내가 되기란 충분하니. 그럼 우리 쪽에서 준비해  터이니 나중에 시간과 장소를 알려드리겠소.]
"그래요.“
[조심히 교육받길 바라오. 아무리 우리 길드가 헤븐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더라도 아카데미에서 일주일간의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로 졸업장을 줄 수는 없으니. 이건 도와줄  없소. 그러니 오늘 하루만 쉬고 내일부터는 어제와 같이 교육을 받아야 거요.]
"네. 오늘 하루만이라도 충분합니다.“
[알겠소.  친히 말해두리라.]
"감사합니다.“

뚝,

이것도 결국, 몸을 판 거려나. 재희는 가볍게 헤븐의 최강자 지존 길드의 길드장과 간단히 식 한 끼를 하는 것뿐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나중에는 이랬을 노릇. 지존 길드와 대적할 생각이 없으면 웃는 얼굴로 끈질기게 자신이 속한 길드의 길드장과 만남을 주선하는 걸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말  번 잘못 놀렸다가 적이 되면 어쩔 건가. 실험의 대가로 여자가 되었으면서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상대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라 절대로 불화는 반드시 피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보면 하는 수 없이 만날 거고. 그래서 나중에 일어날 일을 조금 빠르게 앞당겼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와 동시에 대가도 두둑이 챙기고.

'오늘은 나까지 편하게 쉬겠네.‘

이럴 거면 아침에... 아니, 어제저녁에 연락해   그랬나 보나. 그야 그럴 것이 일주일 중에 하루면 정말 컸지만 그래도 단 하루. 그것도 오후에 한 번만 빼달라고 지존 길드에서 부탁하면 아카데미에선 이번이 마지막이라 말하며들어줄 게 분명하다. 굳이 지존 길드와 간단히 해결될 문제로 싸우는  바보 같은 짓이었고.

아카데미의 교관들은 각 길드에서 잠시 게임 참가를 미루고 쉬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니 몇 주, 아니면  달 이내에 재희가 알던 교관들은 아카데미에 없고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게임에서 만날 수도 있다는 의미. 괜히 이단죄의 말을 무시했다가 괜히 찍혀버려 게임에 참가할 때마다 중2병에 미친 놈들을 적으로 둘 병신은 없을 것이다.

'아항항.아이 좋아라. 둘을 위해서 한 일이라 해도 막상 나까지 쉰다고 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네.‘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음악이 아카데미 안에서 울려 퍼지지만 재희는 총총거리는 행복한 발걸음으로 교육장이 아니라 민정이와 예림이가 곤히 자고 있을 숙소로 향한다.

"음... 씻고 들어갈까?“

오전의 교육만으로도 몸은 이미  범벅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옷을 갈아입을 겸. 재희는 먼저 몸을 깨끗하게 씻은 후에 방으로 돌아가 그녀들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한다. 뭐, 둘을 여기로 옮기고 얼마나 지났다고 확인할 필요가 있겠냐마는. 어쨌든 확인을 끝마치고 다시 방을 나와 이번에는 예림이의 방으로 들어간다. 어제 받은 열쇠를 아직 돌려주지 않은 탓에 수월하게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몸은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는데 밥을 먹은 뒤에 누우니 자연스럽게 수마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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