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036 아카데미
어김없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모든 교육을 끝마치고 재희는 곧장 땀으로 젖어 찜찜한 몸을 깨끗이 씻기 위해 샤워실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민정이와 예림이가 붙어 있는 모습. 언제 둘이 그렇게 친해진 걸까. 처음 만났을 땐 서로 활짝 웃으며 대화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둘 사이에서 어색함이, 그리고 탐색과 경계하고 있다는 느낌이 풀풀 풍겼었다.
정확한 사정을 모르고 왜 재희의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면서 잠시 눈을 딴 곳으로 돌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것만 같던 둘, 알고 지낸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고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온 것도 있기에 둘이서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못 본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건만.
갑작스럽게 재희를 두고 둘이서만 다니는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외로움도 타기 시작하였고. 그래도 일단 씻으러 왔는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노릇. 혼자서라도 샤워실로 들어가 몸을 씻는다. 언젠가는 둘 중 하나가 씻으러 들어오겠지 생각하며. 그러나......
"쩝......“
느긋하게 씻었음에도 들어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재희는 입맛을 다신다. 어제 일방적으로 예림이에게 범해 졌지만 그래도 점해지는 것보다는 역시 범하는 게 훨씬 낫다. 아니, 그럴 수밖에. 어머니의 배속에서부터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서 태어났고, 애초에 M이 아니기에 말이다.
"내일 잘 못 되지는 않겠지?“
문득 튜토리얼에서 시야까지 잠시 흐려졌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이 너무 안 되지만 성욕을 너무 해소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다시 강조하여 정말 말도 안 되고 황당한 소리이지만 때가 되면 달아오르는 음란한 몸뚱어리의 존재만으로 그럴싸한 추측이라 한숨이 흘러나온다.
"돌겠네......"
실험의 대가로 모든 것이 비약적으로 상승해버린 신체 능력의 약점이 성욕이라니. 그리고 그걸 해소하지 않는다면 있던 힘마저 잃어버리며 시야가 흐릿해지다니. 잘 생각해보면 청각과 후각도 점점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민정이를 범할 생각으로 가득 차서 다른 건 전부 다 뒷전으로 치부한 건가. 코를 날카롭게 찌르는 역겨운 냄새나 시끄러운 소리라도 맡거나 듣지 못할 정도로. 재희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어쩔 수 있나......“
괜히 자는 민정이를 깨워 범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닌지라 어차피 나중에는 겪어야 할 일이니 오늘은 그냥 이대로 자기로 하고 개운해진 몸에 옷을 걸쳐 방으로 돌아왔다.
"애는 또 어디 갔다냐?“
너무 힘든 나머지 오늘도 씻기를 포기하고 먼저 아늑한 침대에 누워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민정이는 방에 없었다.
"뭐... 나중에 때가 되면 들어오겠지.“
교관이나 남자 교육생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모습을 본 것도 아니고, 예림이와 함께 있을 당시의 표정도 심각해 보이지도 않았으니 별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건 자신의 몸. 재희는 애써 머릿속에서 민정이의 알몸과 예림이의 알몸의 기억을 잽싸게 지워나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성욕보다는 졸음이 해일처럼 밀려오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긴 뒤척임을 끝을 내고 잠에 빠져들었다.
*
"언니... 진짜 할 거예요?“
"그래서 하기 싫어?“
"아니요. 하기 싫은 건 아닌데. 그래도 자고 있는데 한다니까 조금 그래서요.“
"그럼 하지 마. 나 혼자서 하면 되니까.“
긴 고민을 끝으로 결국, 예림이와 함께 재희를 공유하기로 다짐하곤 몸을 깨끗이 씻은 뒤에 방으로 돌아온 민정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재희는 엎어진 채로 이미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자고 있었다. 무거운 입을 떨어뜨려 우리 셋이서 아름다운 사랑을 해보자고 털어놓으려고 했는데 먼저 자다니. 이렇게나 무방비하게. 흥분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치, 언제든 범해 달라며 무방비하게 잠을 청하고 있는 재희의 몸에 손을 뻗는다.
스윽. 스윽.
"으음......“
부드럽다. 방금 씻었기 때문에 뽀송뽀송하기도 하다. 너무 완벽한 피부가 아닐 수가 없고. 이 피부는 정말로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쁨의 웃음이 끊임없이 나온다.
"재희야아... 왜 이렇게 예쁜 거예요?“
왜 이리 예쁘게 태어나서 남자는커녕 같은 여자까지도 꼬시는 못 된 것 같으니. 이 나쁜 여자에게 자신이 반드시 벌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민정이는 슬그머니 침대에 올라가서는 재희의 위로 몸을 살짝 얹혔다.
"하악...! 하악.....!“
재희의 냄새. 재희의 체온. 재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 민정이를 흥분시킨다.
"으읏... 읏.....!“
뒤에서 끌어안은 듯한 누워있는 자세로 손을 억지로 밀어 넣어 몸무게에 잔뜩 짓이겨진 커다란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동시에 허벅지에 손을 가져간다. 이건 전부 재희가 나쁜 거다. 오늘은 그냥 자신 말고도 예림이를 함께 사랑해 줄 수 있냐고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강요해볼 생각이었다. 혼자서는 재희를 노리는 자들로부터 완벽히 지켜낼 수가 없으니까.
"하악! 하악! 아음.“
"아윽.....!“
아름다운 은색을 띠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워서는 새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에 입을 처박아 빨았다.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니 고운 살결은 이내 새빨갛게 물들어가며 민정이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입안에 통통하게 부어오른 살덩이들은 혀로 핥자 재희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미약한 신음을 터뜨린다.
"아......“
둘의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고 있던 예림이는 마치 재희에게 수면제를 타고 그 틈에 강제로 범하는 강간범을 보는 듯했다. 오히려 그게 더 흥분되는지, 자고 있으면서 음란한 몸뚱어리는 누구에게 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 같은 재희의 모습에 몸이 근질근질한다.
"언니......“
무릎을 꿇어 시야를 낮춰서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음에도 앵두처럼 새빨갛고 아름다운 입술을 바라보면서 이내, 더는 참을 수 없어 입을 맞췄다.
"츕...! 츄릅. 하아. 할짝할짝. 음.“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는 것처럼 재희의 입술을 핥다가 억지로 틈을 벌려 그 안으로 혀를 집어넣는다. 역시나. 자고 있어서 그런지 혀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상관이 없기에 혼자라도 혀를 움직여 이를 핥거나 혀를 가져와 쪽쪽 빨거나 마음대로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숨이 거칠어지고, 재희의 숨이 내뱉어져 얼굴을 간지럽힌다.
"으음... 음......“
고운 미간은 더더욱 찌푸려지며. 무의식 속에 느끼는 쾌감에 신음성은 점점 커지고 빨라져만 갔다.
"흐그으읏.....!“
미동도 없는 손을 가져와 자신의 음부에 가져가자 예림이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에 두 눈을 번쩍 떴다.
'이, 이거 뭐야.....!‘
집에서 혼자 자위를 했을 때와 차원이 다르다. 어제 재희의 몸을 마음대로 범한 후에 홀로 남은 샤워실에서 했던 자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저 손만 가져다 댔을 뿐인데. 그것 말고 한 건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나 느끼다니. 다른 사람의 손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재희의 손이라서 몸이 이렇게 느끼는 건가. 정말 궁금했다.
"하아... 하아......“
차마 더 입맞춤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도망치듯 입술을 떼어낸 예림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하읏... 읏... 핫... 으응... 읏.....!“
그러면서 민정이의 손길에 신음소리를 흘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꿀꺽.
역시 매력적이다. 언제 보더라도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는 얼굴. 그리고 쾌감을 느끼는 모습이란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든다. 이러니 남자 교관들이 재희에게 자꾸만 들러붙어 황당한 조건을 내미는 게 아닌가. 지켜줄 필요는커녕 오히려 그깟 쓰레기들보다 더 강한 재희에게 지켜준다나 빚을 대신 갚아준다나 뭐라나 헛소리를 지껄이니 어이없는 웃음만 더 나올 뿐이었다. 왜냐하면 재희는.
"내 거야......“
동맹 관계를 맺은 민정이에게조차 잠시라도 빌려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탐나는 재희는 예림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내 본다. 그런다고 한들 지금 현 상황을 바꿀 힘도 없으니 이제 점차 재희의 여러 여자 중 한 명으로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에 가슴에 대못을 박듯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언니... 사랑해요.“
사랑을 속삭이며 다시 입을 맞춘다. 그리고 그때.
"......“
재희의 눈이 서서히 떠졌고, 다 떠지기도 전에 예림이의 거친 키스에 말문이 막혔다.
'아...? 이게 뭐야. 아흥... 어? 뭔가 올라타서 내 몸을.....?!‘
누군가가 몸을 희롱하는 듯한 느낌에 잠이 깨었고, 잠에서 깨어나도 경비가 보기보다 철저한 아카데미 안에서 자는 동안 누군가에게 덮쳐질 거란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은 상태였다. 저번처럼 여자 숙소의 근처로 교관이든 교육생이든 신분에 상관없이 남자가 다가오면 경비가 출동하니까. 그래서 마음 놓고 자는데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누가 지금 키스를 하는지. 얼굴을 미처 보지 못하고 강제로 키스를 당하면서 엎드려 자고 있다가 재희의 몸 위로 몸을 엎어서는 손을 움직이는 게 정말 기분이... 좋았다. 강간인데. 수면간이었는데 몸은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저항할 생각을 최면으로 차근차근 지우는 그런 감각.
"아그으으.....!“
입고 있던 바지 안으로 들어온 손이 속옷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지나 재희의 가장 은밀한 공간에 닿았다. 그 손은 아주 잠깐의 마음 준비를 할 틈을 전혀 주지 않고 곧장 음핵을 건드린다. 그로 인해 몸은 자연스럽게 쾌감에 몸이 움찔 떨려온다.
"아아...! 재희야아. 재희야. 기분 좋아요?“
귀를 앙 물고 있던 입이 떨어져 나가고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
'미, 민정이?‘
잊을 리가 없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다름 아닌 민정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그와 동시에 지금 자신과 키스를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는 이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막상 생각나는 사람으로는 예림이 뿐이었다.
"후으으응.....!“
음핵을 건드리던 손은 어느새 굳게 닫혀 있던 보지의 균열을 천천히 훑으며 손가락이 천천히 들어감에 따라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아, 안돼.....!“
끔찍하다. 지금은 여자의 모습이지만 원래 남자였는데. 몸 안으로 넣어본 것이라곤 주사나 음식밖에 없었는데, 좌약도 허락하지 안았던 몸. 그런 몸에 손가락이 천천히 살을 비집고 들어오자 철이 들면서 잃어버렸던 눈물이 눈가에 맺혀온다.
"으으음! 음!“
"아...? 어, 언니? 깨, 깨셨어요?“
"하아... 하아......“
힘겹게 고개를 저으며 무어라 말하자 그제야 재희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예림이는 황급히 입술을 떨어뜨리며 묻는다. 더이상 입을 막고 있는 게 없어진 상황.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재희는 말한다.
"내, 내려와!“
"왜에에. 재희도 기분 좋잖아요?“
"내려오라니까?!“
"... 알겠어요. 내려올게요.“
처음으로 자신에게 소리를 쳐대자 당황한 모습으로 아쉬움이 가득한 어투로 툴툴거리며 민정이는 천천히 재희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
"어...? 언니. 눈물이?“
"......“
눈가에 맺힌 희미한 눈물. 재희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두 명의 여자를 날카롭게 째려본다.
"둘이...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아하하하. 잠자는 여제님을 강간하는 거랄까?“
"......“
"죄송해요. 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민정이 언니가 언니를 덮치는 모습에 참지 못하고 그만.“
당당하게 말하는 민정이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변명을 술술 내뱉는 예림이. 재희는 한숨을 길게 내쉰다.
"쯧. 안 피곤해?“
"솔직히 피곤하긴 한데요. 재희가 무방비하게 자는 모습을 보니까 확 달아났다고 할까나. 아니. 지금 제 손이 놀고 있으니 다시 피곤하긴 해요. 그래도 다시 재희의 몸을 마구 만지거나 만져주면 괜찮을 것 같아요.“
무슨 헛소리래. 나불나불. 한 귀로 흘려버리며.
"예림아. 열쇠.“
"네...? 아. 네. 여기요.“
열쇠라는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방의 열쇠를 넘겨준다.
"둘은 여기서 자. 나는 예림이의 방에서 잘 테니까.“
"아...? 재희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 언니! 민정이 언니 대신에 저랑 같이 자려던 거 아니었어요?!“
"아니니까. 둘이서 자.“
"잠깐만요!“
침대에서 내려와 문으로 걸음을 옮기자 예림이는 다급히 재희를 붙잡는다.
"이번에는 저랑... 가, 같이 자요.“
"싫어.“
얼굴을 홍시마냥 붉히며 용기내어 말하지만 단호히 거절당하고 재희는 방을 나가버렸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