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033 아카데미 (33/140)



〈 33화 〉033 아카데미

"저... 괜찮을까요?“
"괜찮겠지. 굳이 신경 쓰지 마. 우리가 뭘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맞아요. 언니. 재희 언니 말처럼 신경 쓰다간 우리만 곤란해 져요.“

식판에 가득 담긴 푸짐한 반찬과 밥, 겉으로 보아도 학교에서 배식받은 것처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비주얼로 맛이 기대되는데 한 입 먹어보니 비주얼처럼 맛도 상당히 괜찮았다. 물론, 배에서 먹었던  정도는 아닌데 이 정도의 배식이라면 정말 맛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먹어도 돼. 지금은 다른 교육생들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나 나중을 대비해서 마음껏 먹자고."
"알겠어요......“

체육관에서 엎드리지 않는다고 일방적인 구타가 일어나는 장면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던 민정이는 다른 교육생들이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굳이 도와주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그들에게만 방해가 된다. 비쓰온 게임이라는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정도일 수도 있고, 그걸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 차별이 난무하는 곳이니까.

그걸 알아차릴 수야 있을지 의문이다. 재희처럼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현 상황을 버티고, 머리를  써서 이겨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데. 과연 그들이,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 재희들을 보며 죽일 듯이 바라보던 그들의 눈동자로서는 깨닫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릴 듯 보인다. 질투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만 하지 않았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성과일 정도가 아닐까.

"언니언니. 이거 먹어봐요! 엄청 맛있어요!“

재희의 옆에 앉아서 밥을 먹던 예림이는 닭 다리 하나를 내밀며 재희의 입으로 가져오자 재희는 군말 없이 받아먹었다.

"어때요?“
"맛있네.“
"히히! 그럼 저도 하나 주세요!“
"그래.“

그냥 같은  굳이 귀찮게 바꿔 먹는다 생각하며 재희의 식판에 올려진 닭 다리 하나를 짚어 예림이에게 가져다준다.

"맛있어! 언니가 줘서 그런가 엄청 맛있어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또 드실래요?“
"아니야. 괜찮으니까 마저 먹어.“
"넹~!“

어제 마지막에 보았던 예림이의 모습은 잘 못 본 것이었는지 너무 해맑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머릿속에 가득했던 걱정을 치워버리며 재희는 여전히 수저는 들었지 밥을 먹지 못하는 민정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민정아. 어서 먹어. 왜 안 먹어?“
"네... 먹을게요.“

애가 갑자기 왜 그럴까. 튜토리얼 도중에는 재희가 아무리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동정하지 않았었는데. 죽인 사람들이 전부 여자의 몸. 정확하게는 재희를 범할 생각으로 가득  있던 쓰레기이기는 해도 차인원처럼 착한 사람도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민정이가 차인원을 조심하라고 하던데. 거기에 이유가 있었나.‘

갑자기 생각난 그때의 기억. 민정이는 차인원을 포함한 무리의 남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식량이 얼마 없다고 망언까지  남자의 말에 동조하는 것들이 여럿 있었으니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그들이 조폭들에게 죽어가도 상관없었던 걸 수도 있는데 차인원 같은 좋은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죽어 나가도 전혀 반응하지 않던 민정이었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교육생들을 동정하는 걸까.

'인중인격인가...? 아... 모르겠다.‘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재희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기로 하며 재희는 직접 민정이의 손을 붙잡아 밥을 퍼서 입에 넣어준다. 그랬더니 갑자기 손을 잡아 오는 모습에 어, 어. 거리며 어벙해진 민정이지만 밥이 퍼진 숟가락이 자신의 입으로 향하자 입을 크게 벌렸다.

"꼭꼭 씹어 먹어. 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계속 살려면 익숙해져야만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민정이 너도 곧 그렇게  거니까.“
"우으... 재희는 너무해요.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꼭 저도 그렇게 된다고 말해야 해요?“
"어쩔 수 없으니까.“

둘은 게임에 참가시키지 않을 생각이긴 해도 헤븐에서 살려면 강해져야만 한다. 살짝 맞았다고 울어선 안 되고, 재희가 없이도 당할 것만 같으면 스스로 판단하고 덤벼들 줄도 알아야 하니까. 무조건 재희가 둘의 곁에서 지켜줄 수도 없으니.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걱정이 되어도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다.

"맞아요. 언니. 아무리 힘들어도 아파도 어쩔  없어요.“

이미 깨우친 예림이는 민정이를 향해 말했다.

"할  있는  없어도 전 누구처럼 얹혀살 생각은 없으니까. 언니. 걱정하지 말아요~!“

비웃듯 웃으며 민정이를 향해 말하다가 눈을 돌려 재희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다.

"하! 나도 그렇게 살 생각은 없다 뭐!“

민정이는 예림이의 말에 잔뜩 화가 나  내뱉은 말이긴 했었지만.

"어어억!“

밥을  먹은 뒤, 땀 범벅이 되어 셋이서만 배를 채운 모습에 질투가 가득 담겼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그녀들을 나중에 반드시 범할 거라는 의지가 담긴 눈초리를 한 다른 교육생들과 모여 간단하게 비쓰온 게임에 대해서, 그리고 헤븐에 대해서 이론 교육을 받은 뒤에 곧장 밖으로 나갔다. 어제 보았던 운동장에서 나무로 된 무기를 가지고 와서는 허수아비를 마구 내리치는 교육을 받는데. 밥을 먹으면서 뻥뻥 소리친 것과 다르게 민정이는, 그리고 예림이는 벌써 죽어 나가고 있었다.

"히, 힘들어어......“

목검을  번 내려쳤을 때, 둘의 자세는 배운 것과 다르게 완전히 풀어져 있었고, 이제 겨우  번 내려쳤을 때는 목검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어진 상태였다.

"거기 둘! 어서 안 쳐? 여자라고 봐줄  알아? 아니, 우린 봐줄 수는 있어도 모두가 그럴까? 아카데미에서 나가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언제 강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리고 너희들은 얼굴도 좋으니 노려지기만 할 건데 그렇게 살 거야? 결국,  팔고 살 거냐고? 여자라면 남자보다 두 배 더 휘두를 수 있게 되어서 졸업해야지!“
"끄으윽...! 아, 알았어요!“
"네.....!“

교관의 소리침에 울먹이며 둘은 어떻게든 다시 목검을 들었다.

"이야아압!“

톡.

"허억. 허억. 끄으으응...! 히야아압!“

한번 치고 다시 칠 때까지  10초 이상이나 걸린다. 교관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이미 한계가 찾아온 걸 알기에 여기서 더 뭐라고 구박하지는 않았다. 만약 포기하듯 팔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면 말은 달라지겠지만.

"금 등급을 받은 이유가 있겠네. 근데 그것 뿐은 아니겠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 여자임에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로 땀방울을 뻘뻘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재희의 모습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것뿐. 고작 이것만으로 금 등급을 튜토리얼이 끝나고 받는 혜택이 생겨서는  되니 나중에 어떤 모습을 더 보여줄지 기대하며 다리를 모으고, 양손을 아랫배에 가져간다.

'시발... 존나 예쁘네. 휘두를 때마다 저 흔들리는 가슴은 또 뭐고.‘

사실은 재희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서버린 탓에 그걸 진정시키려고 애써 생각을 돌려보는 이유였지만 말이다.

* * *

"으어어어.“

날이 저물고 숙소로 돌아온 민정이는 곧장 침대에 엎어졌다.

"안 씻을 거야?“
"조금만요... 조금만.“
"그래? 그럼 나 먼저 씻으러 간다?“
"......“

먼저 씻으러 간다는 말에 다 죽어가던 얼굴에서 음흉한 표정이 깃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재희의 몸을 탐하거나 범해지고 싶은 욕망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몸을 쉬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아쉽지만... 먼저 씻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내일도 이렇게 교육을 끝내고 저녁에 재희의 몸을 마구 탐할  있을 거란 기대가 가득했지만 너무 헛된 꿈이었다. 이렇게 힘든데... 이제 남은 6일간은 정말로 몸을 섞을 수 없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민정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먼저 씻으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꼭 씻어.“
"네에......“
"쉬어.“
"네에......“

이번에는 여자가 아니라 원래 남자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남자처럼 민정이를 쉴 새 없이 범해줄 생각으로 가득했거늘. 민정이는 지금 씻을 여력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혼자 방을 나왔다.

"아, 아아... 언니. 이제 나왔네요. 우우.“

방을 나오자 좀비 같은 몰골로 골골대며 힘겹게  있는 예림이가 재희를 반긴다.

"응...? 예림아 여기서 뭐해?“
"언니랑 씻으러 가려구요.“
"안 힘들어? 힘들면 쉬지 그래?“

그래도 아름다운 외모까지는 어디 가지 않았는지 그런 예림이의 모습은 귀엽게만 느껴진다.

"아니요오... 언니이... 괜찮아요... 그리고 어제도 못 씻고 뻗어버렸는데 오늘도 씻지 않으면 안 될  같아요오......“

뭐... 그렇긴 하다. 어제도 옷만 갈아입었지 남들의 시선이나 강간당할 위험을 느낄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안전한 방에 있는 푹신한 침대의 유혹에 푹 빠져버렸는지 방에 들어간 후로 아침이  때까지 나오지 않았으니까. 거기에 더해 오늘 훈련을 한 탓에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전부 땀에 젖어 있으니 씻고 싶긴 할 테다.

그나저나. 재희는  망할 음란한 몸뚱이가 제발 예림이에게만큼은 발정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굴뚝같았다. 그야 그럴 것이 아무리 한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성인과 미성년자의 차이는 정말 컸으니까. 자기 말대로는 미짜가 아니라 성인이라 우겨대는데 아무리 봐도 예림이는 성인으로 보이지가 않는 재흰 처음으로 신에게 빌어본다.

"그, 그래. 가자.“
"네에에......“

가자는 말에 예림이는 마침 민정이도 없겠다, 몸도 피곤하겠다 재희의 팔을 끌어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

빌어 처먹을 후각까지도 좋아졌다는 이유로 예림이의 땀 냄새가 재희의 코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애써 고개를 돌려서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하는 몸을 진정시키고자 아무 생각이나 해 본다. 만약 여자가 된 상태로 신체 능력이 좋아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 봤었던 참가자이자 남자인 김유한에게 발견되어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으로 억눌러져 강간을 당했을까.....?

음... 김유한을 보건데 절대 그럴 일은 없었을 것 같다. 강간을 시도할 용기가 없어서 불가능할 것이고,  번째로 만났던 그 살인마라면 이미 성노예로 살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힘도 없는데 비명소리를 듣고 갔을  만무하니 기분 나쁜 생각을 지워버리고, 동굴을 먼저 차지하고 있던 남자들과도 싸움을 피했을 터이니 넘어가고, 그럼 차인원의 무리인데. 예림이를 처음 만났던 곳. 해맑게 웃으며 재희에게 다가와서는 인사를 하던  무리.

"......“

'왜 하필 예림이가 옷을 벗고 있지...?! 그리고 왜 유혹하는 거지?‘

평범한 여자와 다를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과거를 돌이켜보는데 예림이를 만났던 그 당시에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예림이가 옷을 벗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담한 체구와 그 체구에 알맞은 귀여운 가슴, 얼굴을 붉히며 재, 재희라면 좋다고 소리치는 귀여운 모습에 어서 빨리 생각하기를 그만하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언니이... 안 들어가요?“

'아... 벌써 다 왔구나.‘

어느새 샤워실의 앞이었다. 그곳에 들어가지 않고 걸음을 멈춘 이유로 의아함을 느끼고 예림이가 물어오자 그제서야 재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민정이처럼 두 여자 또한, 너무 힘이 드는 나머지 씻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벗은 옷을 담아두는 바구니 안에 옷이 들어있지 않았다.

스르륵. 스륵.

예림이는 이곳에 있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성별을 가진 재희이기 때문에 다짜고짜 옷을 벗기 시작한다.

'제발... 제발 이건 아니다. 재희야.‘

숨이 점점 불규칙해지는 것이 흥분하고 있다고 알리고 있는 몸이다. 그래서 민정이도 아닌 여동생과 같은 미성년자인 예림이에게 흥분해선 안 된다고 자기 자신에게 질타를 해 보아도.

"언니는 안 벗어요?“

그 물음에 재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계속 이렇게 있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터. 하는 수 없이 재희는 옷을 천천히 벗었다.

"우와... 언니 몸매가 정말 좋아요. 어떻게 이리 예쁠 수가 있어요? 반칙 아니에요? 그렇게 예쁜데 몸도 예쁘면 그냥 사기잖아요.“

별로 칭찬 같지는 않았다. 비쓰온 게임에서는 아름다운 외모가 오히려 짐만 될 뿐만 아니라 표적이 되니 차라리 평범한 게 나았다. 못생기면 그것도 그거대로 기분 나쁘니 못생기지도, 예쁘지도 않은 어중간한 그런 외모. 아니, 그냥 생김새가 어떻든 남자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기에 예림이의 칭찬에도 기쁜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보다도 재희의 눈에도 예쁘게만 보이는 예림이의 알몸을 마음껏 감사하려는 눈을 억지로 떼어내어 샤워실로 들어갔다.

"아...! 언니 같이가요!“

예림이는 재희의 뒤를 바짝 쫒았다. 오늘따라 민정이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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