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028 아카데미
"뭐, 시발은 무슨. 말 그대로라고. 발정 난 짐승 새끼야.“
"......“
분노에 입꼬리가 꿈틀거리며 험악한 표정으로 김태호가 뒤를 돌아보자 예림이는 한 츰 작아지며 살며시 재희의 뒤에 자리를 잡고, 재희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하하. 씨발. 애새끼라서 때릴 수도 없고.“
"애 아니야! 나 20살이라고.“
"허미. 지랄 염병은.“
"이 개새끼야! 교복만 입으면 다 애새끼로 보는 거야?"
'그러니까 예림아. 솔직히 20살이라고 해도 교복을 입은 건 네 잘 못이고 외모도 미짜로 보인다니까.'
이 말이 내뱉으려던 민정이는 애써 입을 꾹 닫고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배에서 나오기 전에 재희가 말하기를, 굳이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헤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니 우선은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예림이는 머리가 나쁜지 그새 까먹은 채로 재희만 믿고 욕을 쳐박고 있었다. 그것도 꽤 강해 보이는 남자에게.
"그만. 김태호도, 그쪽 소녀도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소?“
"소녀 아니야! 나 성인이라고!“
"끙... 알겠소. 숙녀여.“
"흥.....!“
결국, 이단죄가 나서기 시작했고, 김태호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는 이단죄를 더는 건드릴 수 없다고 판단해 어떻게든 분노를 눌러 참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게임에서 보면 가차 없이 범해 줄 것이라,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빚과 이자, 그리고 돈에 쪼들려 살다가 하는 수 없이 창녀가 된다면 저 셋 전부를 사드려 성노예로 삼아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좋소.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니.“
김태호가 먼저 돌아서서 부둣가를 나가자. 그제서야 이단죄는 웃으며 말했다.
"다시 소개하지. 난 지존 길드의 길드원이자 섭외 팀을 맡은 철혈의 이단죄라 하오.“
"전 사쿠라 길드의 섭외 팀인 장인성이라 합니다.“
"저도 같은 섭외 팀인......“
분명히 뉴비는 재희 말고도 스무 명 넘게 있었다. 그런데도 섭외 팀들은 우선으로 재희에게 자신이 속한 길드와 이름을 밝히고 있었다.
'얘내... 뭐지?‘
헤븐이란 곳에 살아가고 있는 상식이 있는 자들쯤 되면은 아무리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아름다운 자신의 외모에만 홀려 황당한 짓을 벌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늘. 재희의 착각이었나 보다. 재희가 얼마나 강한지, 어떤 점이 뛰어나 반드시 1순위로 섭외해야 하는 대상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첫인상만 보고 달려드는 모습에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저는 사쿠라 길드의 섭외 팀인 장인성이라 합니다.“
"아, 아. 네.“
사쿠라 길드의 섭외 팀이라는 저 장인성이라는 남자. 다른 이들과 다르게 계속 재희의 앞에 있지 않고 홀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뭘 보고 절 섭외하려는 거죠?“
"네?“
"아... 그, 그게.“
"음......“
차게 식은 눈으로 온갖 혜택을 주겠다고 뻥뻥 소리치는 그들에게 물음을 던지자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야 그럴 것이 이들은 재희의 외모에 홀려 일단 닥치는 대로 막 내뱉어 봐서 재희를 자신이 속한 길드에 데려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뿐이니.
"저 아세요?“
모를 것이다. 저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남자. 강 팀장이 재희에 대해 미리 밝히지 않았다면 모를 게 분명할 거고, 만약 안다고 하더라도 자기소개를 하지 않은 재희인데 외모만 보고 일단 길드에 데려오려 안달이 난 이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뉴비,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내시고 헤븐에 도착한 뉴비오.“
특이한 복장을 한 지존 길드의 이단죄는 그렇게 말했다.
"불쾌할 수도 있소. 이들이 이름조차 묻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섭외하려는 것이. 물론 이해는 하오. 나도 그랬으니. 그러니 불쾌했다면 정중히 사과드리겠소.“
사과할 것까지는 없지만 이단죄가 머리를 숙여버리자 그제야 다른 섭외 팀들도 몇 발자국 물러나 고개를 숙인다. 그만큼 재희에게 안 좋은 인식이 박히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무엇 때문에? 그저 외모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좋은 인식을 얻어 재희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어서? 정말 하찮은 이유였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늦었지만 이름을 들을 수 있겠소?“
"윤재희... 여긴 이민정이고, 애는 김예림입니다.“
"처음 뵙겠소. 아까 말했듯이 철혈의 이단죄라 하오.“
"아, 안녕하세요......“
"으응......“
싱긋. 웃으며 이단죄가 재희의 옆에 있는 민정이와 예림이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권하자 둘은 재희의 눈치를 살피면서 얼떨결에 인사를 받아주며 손을 잡았다.
"저는 물론이고 이들도 욕심이 났을 뿐이오. 워낙 세 분의 외모가 아름다우시니.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소. 제 말이 불쾌하다면 다시 한번 더 사과드리겠으나. 저희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은 있소?“
"지금 뜬금없이?"
"뭐 뜬금없긴 하고, 이제야 헤븐에 왔으니 헤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당연하겠으나. 제가 속한 지존 길드는 헤븐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강한 길드이며, 헤븐 공식 랭킹 1위인 피를 부르는 사나이가 길드장으로 있소.“
"피를... 부르는 사나이?‘
그게 사람 이름인가. 보면 철혈의 이단죄처럼 개명한 게 아니면 별칭이라는 건데. 알고는 있어도 재희는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애들은 빚을 갚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헤븐에서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오글거리게 별칭을 만들고, 거기에 더해 개명까지 하니. 아무리 헤븐에서 가장 강하고 영향력이 있으며, 랭킹 1위가 길드장으로 있다 한들 처음부터 좋은 인식이 박힐 리는 없었다.
"그렇소.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자, 나의 주군이요."
"그런가요.....“
굳이 피를 부르는 사나이라고 자칭하는 것만 보아도 그쪽 길드장의 상태는 안 봐도 뻔했다. 재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한 웃음을 흘려버렸다.
"뭐, 급하게 정할 필요는 없소. 일단 기초 교육을 받은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
"뭐... 그럼 그때 가서 생각해 보도록 하죠."
"좋은 생각이오. 아마 여기 있는 분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오. 안 그렇소?“
"끙... 알겠습니다......“"그렇게 하도록 하죠.“
자기 혼자만 소개한 것만으로 큰 메리트가 생겨버린 건데 차마 이단죄의 말에 반발해 길드에 오라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랬다가는 지존 길드에 찍힐 수 있단 사실만으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섭외 팀들이었다.
"근데요. 아저씨.“
"아, 아저씨?"
"아... 아저씨 아니에요? 오빠?“
"큼...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는 아닌지라 되도록 아저씨보단 오빠라 불러주시겠소?“
히죽히죽. 안 그래도 귀여운 외모를 지닌 예림이에게 아저씨라 불리는 살짝 충격을 받았던 이단죄였지만 곧장 오빠라고 호칭을 바꾸자 입가에 미소가 떠나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럼 오빠. 방금 그 발정 난 쓰레기 새... 아니, 김태호라는 그 사람은 대체 뭐예요?“
"음...? 김태호를 말씀하오?“
"네.“
"으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자는 헤븐에 들어온 지 이제 3년 차가 되는 자오. 하지만 헤븐에 막 도착했을 당시에는 겁이 많아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아서 헤븐에서 나가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친구였다고 하오. 허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금으로부터 반년 전에 갑자기 게임에 참가하기 시작하더니 고작 그 짧은 시간 만에 금색 등급을 단 유망주가 되었소.“
"금색 등급? 그거 많이 높은 거예요?“
"높다라... 그렇게 높은 등급은 아니오. 하지만 그 겁이 많던 사람이, 그리고 반년 만에 금색을 단다는 것만으로 꽤 능력이 된다는 것이오. 한 번 게임에 참가하고 난 뒤에 쏟아지듯 밀려오는 후유증과 상처 난 몸 상태 때문에 다음 게임에 곧바로 참여하기가 많이 힘들다는 걸 고려하면 많이 빠른 편이구려.“
"오......!“
에림이는 그 말을 들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럼 뉴비들에겐 엄청 높은 거죠?“
"그렇죠. 뉴비들에게는 저 높이 떠 있는 별과도 같은 것이오.“
뉴비들 3분의 1이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았다는 자신감을 얻고 헤븐에 들어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브론즈 등급의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그러나 브론즈 등급의 게임 수준이 비교적 상당히 낮긴 하지만 튜토리얼 때와 다르게 다른 참가자들을 죽여 빠르게 등급을 올리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참혹한 현실에서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두 번 다시 게임에 발을 들이지 않고 헤븐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단죄의 동기 중에, 그리고 친구 중에서 그런 이들이 여럿 있었으니. 그래서 참가자의 신분을 계속 유지하며 빚을 갚아가는 뉴비는 30명 중 한두 명꼴. 그만큼 차이가 나는 걸 보아서는 골드 등급은 정말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등급이 아닐까. 이단죄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도 브론즈 등급에 있었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우러러보았으니까.
"와. 그럼 재희 언니는 엄청 대단한 사람이었던 거네요?“
"응...? 무슨 말이오?“
"그야 언니는 저희랑 다르게 금색 등급이니까요.“
"......“
그 말에 예림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재희에게로 옮겨졌다.
"푸하하하. 되도록 그런 농담은 하지 않는 게 좋소. 괜히 금색 등급의 참가자들이 그 소릴 듣고 자신들을 무시했다 화를 낼 수 있으니.“
"응.....?“
예림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재희가 알려준 바로는 자기 혼자서 남들과 다르게 금색 등급을 받은 상태라고 알려주었기에 당연히 한두 명 정도는 재희처럼 특별한 혜택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단죄의 설명에 감탄하며 사실을 털어놨구만. 자신의 말에 믿지 않는 이단죄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니언니. 거짓말이었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음... 거짓말은 분명히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믿지 않는데......"
당연하겠지. 강 팀장의 설명을 들은 재희는 아무리 튜토리얼에서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무조건 브론즈 등급에서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게 재희는 크나큰 특전으로 금색으로 시작한다. 튜토리얼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과 게임 주최 측에서 실험체로서 살아남았다는 정말 이례적인 존재인 재희를 위한 특권이었으니. 유일하게 생존확률이 극악일 실험에서 살아남은 실험체인 재희 외에도 이런 특권을 받았을 사람은 아예 없을 게 분명했다.
"우응......“
재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예림이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중학교 2학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 아저씨가 농담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대체 뭐가 뭔지 몰라 고민은 깊어져만 갔고
"자. 이거 보여주면 될 거야.“
"알았어.“
배에서 보았던 재희의 카드. 빚이 1조라는 게 신경 쓰이지만 재희는 그런 천문학적인 빚이 표기되어 있어도 창피함을 느끼지 않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카드를 예림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래서 예림이는 그 카드를 받아 이단죄에게 내밀었으며.
"헉...! 진짜 금이구려! 강 팀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오?!“
"보시다시피. 특별 혜택입니다만?“
"그럴 수가...! 말도 안 된다. 이런 적은 헤븐에서 처음... 아니, 다른 곳에서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대체 무엇이기에?“
첫인상은 그저 아름다운 미녀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생각되지 않던 재희를 이젠 무시무시한 마녀로 보듯, 이단죄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정말... 금이오?“
"보면 알잖아?“
굽힐 이유가 사라진 재희. 존댓말은 완전히 사라졌고, 이젠 완전히 갑이 된 처지에서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다 봤으면 줄래?“
"......“
그 말에 이단죄는 재희의 카드를 돌려주었고.
"교육을 한다면서. 계속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거야?“
"아니오... 늦었으니 빨리 가죠.“
이단죄는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지금 물어도 답을 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으로 앞장을 서서 걸음을 옮겼고, 그의 뒤를 따라 다른 길드의 섭외 팀들이, 그리고 뉴비들이 그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기면서 자꾸만 재희를 힐끔 뒤돌아보는 시선을 느끼며 셋은 걸었다.
"흐음... 잘 헤쳐나갈 것 같네요.“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겁은 먹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걷고 있는 재희를 보며 강 팀장은 웃어 보였다.
"역시 윤기훈 씨. 당신의 아들인가 보군요. 아니, 이제 딸이라고 해야 하나? 뭐가 어쨌든, 이젠 닮은 점은 단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때 당시에 봤던 당신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군요. 오히려 따님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킥킥."
강 팀장은 몸을 돌려 다리를 타고 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부하들에게 출발하라는 말을 하며 헤븐에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