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026 튜토리얼 (26/140)



〈 26화 〉026 튜토리얼

"무슨 일이십니까. 윤재희 씨?“


재희가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남자가 선수를 쳐 질문을 던져왔다.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아...! 제 설명에도 허점이 있었나 보군요! 네. 무엇이든 다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별거 아니야. 대체 아버지가 어떻게 1조라는 거금의 빚을 졌는지. 궁금해서.“
"......“


아버지라는 말에 남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을 잡아냈다.


"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1조로도 충분하지 못할 엄청난 짓을 저질렀습니다. 윤재희 씨의 아버지이신 윤기훈 씨는 말이죠. 그래서 대가라고나 할까. 윤재희 씨... 아니, 윤재한 씨를 저희가 데려온 것이지요.“


아까부터 계속 윤재희라고 부르더니 갑자기 재희의 본래 이름을 입에 담자 이번에는 재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뭐, 저희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분이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힘과 체력 등등, 신체 능력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올려주는 실험이었으니까요.“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 이 남자는 많은 정보를  수 있는 높은 직책을 가진 자라는  깨닫기까진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거기에 더해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니  알고 있는 듯한 기분에.

"고작... 그것뿐?“
"네. 고작 그것뿐입니다.“
"근데 그런 이유로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이 바뀔 수가 있나?“
"그렇죠. 말도 안 되긴 합니다. 그것도 이렇게 아름답게 변하신  말이죠. 하지만  실험 샘플, 즉 첫 번째 실험 대상자의 성별이 연약한 여자였거든요. 그 뒤를 이어서 그녀와 비슷한 신체 구조를 가진 여성분으로만 실험하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히 제 생각이지만요. 정확한  모릅니다만. 하하!“
"......“
"아...! 그리고 왜 실험 대상자가 여자였나 물으시면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자보다는 여자의 몸의 변화가 더 눈에 띄게 나타나리라 생각했으니까요. 남자보다는 근육의 성장이 더딘 뭐, 그런 이유로 말이죠.“
"그런가......“

실상이 여자로 만들려던 실험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뭐가 어쨌든 이미 결과가 나와 지금 이렇게 여자의 모습으로 여자랑 몸을 섞었으니까.

"돌아갈 방법은?“
"지금으로선 없네요. 애초에 윤재한 군을 이렇게 만드신 박사님께선 남자로 되돌려 놓을 방법을 알아보시지 않고 있거든요. 그래서 기대하지 않으시는  좋겠습니다. 아...! 혹시 윤재한 씨라 부르는 것보다는 윤재희 씨라고 불러드릴까요?“
"아무래도 좋아. 어떻게 부르든.“

윤재한이란 이름을 가진 20살 젊은 청년은 이미 사라진  오래였지만 그래도  이름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1조의 빚을 아들에게 떠넘긴 것도 모자라 목숨이 왔다 갔다가 하는, 비쓰온 게임이라는 정신 나간 곳에 참가하게 만든 아버지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가 열심히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지어준 이름이니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윤재희라고 불러 달라고 하면 조금 어색함이 남아 있으니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하며 재희는 말을 이어갔다.


"그것보다. 헤븐은 어떻지?“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이 배가 향하고 있는 헤븐 말이야.“
"제 생각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 그것뿐이랍니다?“
"후우... 그래. 그렇겠지. 근데 그 마을의 치안은 어때?“
"아...! 혹시 이민정 씨와 김예림 씨를 헤븐에 남겨두고 빚을 갚기 위해 게임에 참가할 생각으로 하신 질문입니까?“


히죽히죽 웃으며 남들이 듣지 못할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작게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이야... 능력 정말 좋으셔서 부럽습니다. 아니, 그 얼굴이면 같은 여자라도 하루도  안 돼서 꼬시는 건 물론이고 몸을 섞을 수 있다는 말이 되겠죠!“


몸을 배배 꼬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리곤 재희의 외모를 찬양하듯 감탄을 금치 못하는 얼굴로 재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자 강하게 쥐어지는 주먹을 억지로 풀어선 이마를 덮은 은색을 띠는 앞머리를 거칠게 뒤로 쓸어넘겼다.

"그래서 답은?“
"아!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했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낮게 깔린 어투로 말하자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흠흠. 하고 진정한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좋습니다. 너무 좋아요. 저희가 헤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무법지대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저희도 곤란하거든요. 그야 게임에 참가할 인원이 그만큼 헤븐에서 죽어가거나 의지가 꺾인다는 의미도 되니까요. 그래서 범죄 같은 건 저희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게 내버려 둡니다.“
"어느 정도의 범죄까지?“
"음... 그건 참 애매한 질문이네요. 그래도 폭넓게 보자면 범죄라 생각되는 것들을 주민이 신고하면 아무리 작은 도둑질과 사기라도 저희가 판단하게 처벌을 내립니다. 작게는 벌금부터 옥살이, 크게는 추방으로 말이죠. 그 때문에 아무 힘도 없는 여성분이 사셔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협박을 당한다면 피해자를 책임지고 보호해 줄 정도니까요."

믿어도 되려나.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라서 믿음이 가고 있는데 확실하지가 않으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뭘 더  수는 없는 노릇. 이 남자의 말대로 재희가 없어도 민정이와 예림이가 마음 편히 살만한 환경임을 바랄 뿐이다.


"뭐,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윤재희 씨의 여성분들이라면 윤재희 씨가 알아서 잘 보살피겠죠. 만약 그것도 안 된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게임에 참가할 의지만 있다면 저희가 직접 훈련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게임에 등급이 정해져 있어서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생존의 경쟁을 하니 큰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등급?“
"네. 윤재희 씨. 저희가 드린 카드를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재희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카드를 꺼내 본다.

"왼 쪽 상단에 뭔가 있지 않습니까?“
"금......“


정확히는 Gold.


"가장 낮은 등급인 'Bronze'부터 'Silver', 'Gold'. 'Platinum', 'Diamond', 'Red', 'Black', 'White'의 순서대로 총 8개의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맨 먼저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으면 모두가 공평하게 'Bronze' 등급을 받게 됩니다.“
"난 'Bronze'가 아닌데?“
"네. 윤재희 씨는 저희의 걸작품이자 누가 보더라도 'Bronze'에 있어서는  될 분이시기에 다른 분들과는 달리 곧바로 'Gold'등급으로 만든 겁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아시나요? 재능이 무척 뛰어나더라도 'Bronze'등급에서 'Silver'등급으로 승급하기 위해선 최소 다섯 게임 이상 참가하고, 죽인 횟수 또한  명이 넘어야 합니다! 무조건 이 절차를 지나야 하는데. 윤재희 씨는 어떻습니까! 그런 절차는 거치지 않고 이미 'Gold'등급이라니.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렇지요? 네?“
"마, 맞습니다.“


고개를  돌려 부하라고 생각되는 정장을 입은 남자를 향해 갑자기 질문을  던지자 그는 당황한 모습으로 긍정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그만큼 윤재희 씨가 특별하다는 겁니다. 그 어떤 이도 살아남지 못한 실험에서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서 튜토리얼에서 20명이 넘는 인원을 죽일 수 있을까요? 예. 불가능합니다. 현 랭커들이라면 가능할지언정. 튜토리얼에 참가했을 그때 당시의 그들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혜택을 부여한 것이지요.“
"쓸데없는 짓을.“

이러면 숙련된 'Gold'등급의 참가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오히려 불행해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요. 좋은 거라니까요. 'Silver'에서 'Gold'등급으로 승급하기 위한 조건은 참가한 게임이  게임이 되어야 하며, 무려 30명이나 죽여야 합니다! 그만큼 가기 힘든 등급인데. 쓸데없는 짓이라니요. 아...! 참고로 윤재희 씨에게는 특별히 'Gold'등급 이하에 참가할  있는 권한을 드릴겁니다.“
"......“
"이유요? 그건  생각해 보세요. 뭣 때문일까요?“

잘... 모르겠다. 굳이 남들과는 다르게 'Gold'등급을 준 것도 모자라서 'Gold'등급을 포함한 그 밑의 등급의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특권을 주다니.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특권이 아닌가 싶었다. 그나저나. 헤븐에 도착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 고민이 되었다. 헤븐이 무법지대가 아니라고 하긴 했는데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바깥세상과 비슷하다는 말 하나 때문에 재희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같았다.


돈... 빚을 갚는 데 필요한 것이기도 하며, 바깥세상과 비슷하다면 헤븐 안에서도 돈의 존재는 그만큼 비중은 무척이나 크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할까. 랭커가 되어야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만질 수가 있다고 했는데 낮은 등급의 게임에선?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민정이나 예림이를 부양할 만한 돈을 벌 수나 있을지. 그리고 참가자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어 자주 열리지도 않을 것만 같았다.

셋이 살 만한 집을 사는 것과 식비, 가스, 전기세 등등 빠져나갈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빚을 차차 갚아 나가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데 미래가 어둡고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되면 곧바로 돈 때문에 위험할  있는 'Gold'등급의 게임에 참가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래서는 게임에 참가하는 게 본인 의사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참가하게 만드는 강제가 있는  아닌가 싶었다.


체계적이면서 악랄한 시스템. 재희는 그런 생각을 가지며 적색의 눈으로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남자는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모습에 쯧. 하고 혀를 차며 고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아무리 제가 윤재희 씨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도, 나이 차이가 아버지뻘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바라보시면 저도 어쩔 수 없는 남자가 되어버린답니다?“
"......“
"자신의 외모에 자각하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화장실은?“
"나가셔서 왼쪽으로 가시다 보면 나올 겁니다.“


아까 가려다가 가지 못했던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남자의 옆을 지나쳐서는 열려 있는 문을 통해 홀을 나왔다. 그리곤 곧장 왼쪽으로 꺾어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의 푯말을 발견했다.

"재, 재희야! 지금 어디 들어가는 거예요?!“
"음.....?“

화장실로 들어가기 직전에 민정이가 다급히 재희의 팔을 잡아 걸음을 멈춰 세웠다. 대체 무슨 소리지? 화장실에 가는 걸 말려야 하는 이유가.


"거긴 남자 화장실!"
"아......“
"여기에요! 여기가 여자 화장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거예요.“

민정이의 말을 듣고 난 뒤에 그제야 탄식하며 여자가 된 몸으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갈 뻔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너무나 익숙하게 푸른색 남자 형상의 화장실 푯말을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가려 했던 게. 민정이에게는 정말 정신이 나간 애처럼 보였을 터.

"대체 둘이 무슨 대화를 했길래 그래요?“

마치,  남자에게서 지금까지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곤 민정이는 살짝 울먹이는 얼굴로 재희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전 괜찮아요. 재희가 빚이 1조가 있더라도 전 재희의 곁에 영원히 있을 거니까요.“


살며시 재희의 몸을 끌어안으며 훌쩍인다.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다. 사실 미래가 걱정되는 건 있긴 하지만 이렇듯. 민정이에게 안겨져 마음 편히 모든  털어두며 진정해볼 정도는 아닌지라. 재희의 양손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고마워.“


지금 착각한 거라고 말하기엔 너무 와 버린 나머지. 재희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민정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제 괜찮아. 민정아.“
"정말... 이에요?“
"그럼. 지금 내 얼굴이 괜찮지 않아 보일까?“

도리도리. 민정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울지 말고.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촉촉한 눈가를 손가락으로 쓸어 주며 재희는 미소를 지었다.

'돈은... 헤븐에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지 뭐.‘

여기서 미리 고민을 해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을 거다. 그러니 헤븐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알아본 뒤에 그때 돈 걱정을 해도 늦지 않을 거란 판단으로 재희는 민정이를 진정시켰다.

"알았어요......“

훌쩍임은 여운이 남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재희는 민정이를 데리고 남자 화장......


'아.  여기 들어갈 뻔했네.‘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려 옆에 있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곳은 익숙한 남자 화장실의 모습이 아니라 소변기는 아예 없고, 사방이 칸막이로 막혀 있는 좁은 공간들이 즐비해 있었다. 지금은 급하게 내보낼 게 없는지라 고개를 돌려 세면대의 앞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몸을 굳혔다. 민정이는 그런 재희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물을 틀고 얼굴을 씼는다.


'이게... 정말. 나라는 거야?‘


믿기지 않는 외모. 마치, 나르시시즘이라도 걸려도 전혀 이상할  없는 예쁜 외모, 씻지도 않았는데 얼굴은 깨끗했고, 머리카락 또한, 흙이나 이런 게 조금은 묻어 있어도 그것마저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로 은색의 머리카락은 정말 이질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적안은 또 어떻고. 거울을 통해  커다란 가슴과 원피스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는 몸매 등등.

"예쁘네.“
"정말요? 헤헤.“

자신의 외모에 푹 빠져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을 하자. 민정이는 그 말을 자신에게 했다고 착각하고 쑥스럽다는 듯이 헤헤.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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