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025 튜토리얼 (25/140)



〈 25화 〉025 튜토리얼

"이게 뭐야... 이거 자, 잘못된 것 같은데요?“
"... 죄송하지만 이미 여러 번 확인 절차를 받아서 잘못된  아닐 겁니다.“
"그럴 리가... 대체 뭔 개짓거리를 해야 억도 아니고 조가 나와?"

믿기지 않는 현실.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 대체 뭔 짓을 해야 빚이 1조가 나올 수가 있을까. 재희는 이 사실을 차마 수긍하지 못하며 카드를 가져다준 정장을 입은 남자를 향해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매정했다.


"아니... 말도 안 돼.“
"안타깝게도 1조가 확실합니다.“
"......“

절망적이지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민정이와 예림이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빚의 액수에, 그리고 늘 여유로움과 신중함을 가지고 있던 재희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다 못해 무너져 내리자 얼굴을 붉혀버렸다.

'절망하는 재희의 모습! 이것도 너무 예뻐요!‘
'이, 이렇게 예쁜 건 반칙 아니야?'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이런 표정을 지으면 평소보다 못생겨질 법한데도 불구하고 재희의 외모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민정이는 잠시 넋을 놓으며 카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재희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재, 재희야. 걱정하지 마요. 1조는... 1조는 어떻게든 모으다 보면... 모으다가 보면은......"


무얼... 해도 불가능할 것만 같다. 1억도  빠지게 일하면서 모아야지 벌 수 있는 큰돈인데  단위도 아니고 조 단위라니. 과연 이번 생에 모을 수나 있을까. 재희를 위해 모을  있을 거라고 거짓말을 하려 해도 너무 현실적이지가 않아 자꾸만 말이 더듬어지는 민정이었다.

"낄낄. 윤재희 씨. 괜찮으신가요?“

흐리멍덩한 눈으로 예림이와 남자와의 싸움을 중재했던 남자가 마치, 비웃듯 웃음을 흘려대며 재희를 향해 물음을 던져오는 모습에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저걸 죽일 수도 없는 노릇. 죽일 수 있다 해도 이런 호화스러운 배를 가진 것도 모자라 감시 인원도 저렇게 많은데 세력이 얼마나 클까. 과연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제대로 서지 않아 한숨을 내쉬며 분노 때문에 꽉 쥐어진 주먹을 폈다.


"혹시 아프신가요. 윤재희 씨? 의료진을 부를까요?“
"닥쳐...  들리니까.“
"아...! 그거 다행이군요. 그래서 의료진을 부를까요?“
"아니. 괜찮아.“
"아. 그거 참 좋은 소식이군요. 윤재희 씨는 특별하니 아프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을 들으니. 재희는 자신이 생체실험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실험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특별하다고 비꼬듯 말하는  같았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죽여버리고 싶었건만 그의 곁에 있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강해 보이면서도 허리춤엔 대놓고 보라는 듯 권총이  있는 게 분노 조절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었다.

"뭐, 걱정하지 마세요. 윤재희 씨. 1조라는 금액은 무척 크긴 하지만 노력만 하신다면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몇 년이 되든, 몇십 년이 되든 말이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몇 십년이라는 말부터 죽을 때까지  나간다는 뜻이 아닌가.

"헤븐에는 하루에 억씩 버는 사람도 여럿 있으니까요."


그 말에 수작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이미 나락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라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는 말에 믿고 싶어지는 심정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랭커만 된다고 하면 하루에 1억은 코웃음을 치며 웃어넘길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을 만지게 될 겁니다. 그래서 빚을  갚아도 이곳에서 돈을  벌고선 사회로 다시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정말... 이냐?“
"네. 물론입니다. 근데 재능과 노력이 받쳐줘야지요. 누구처럼 말이죠."


꿈만 같은 말을 쉽게 내뱉자 한 사람이 그를 향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어오자 남자는 씩 웃으며 재희를 바라보았다.


"뭐, 아무튼, 아무것도 모르고 억울하게 배틀로얄. 비쓰온 게임의 튜토리얼에 참가해서 힘들게 살아남아 이젠 쉬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서인 헤븐에 대해. 이제 여러분의 삶의 터전이 될 곳에 대해 알려주는 게 우선이네요."

조명이 모두 꺼지자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의문이 드는 몇 명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소등에 기겁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내 새하얀 벽에 빛이 쏘아져 육각형을 그리는 6개의 섬 중 3시에 있는 섬을 남자가 긴 막대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3시에 있는 이 섬의 이름은 헤븐. 현재  배가 가는 목적지이자 여러분들과 같이 아시아에서 오신 참가자분들이 모여 사는 거대한 섬입니다."

남자는  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여기 있는 분들 전부는 한국인이십니다. 그 이유는 튜토리얼에서만 그 나라의 국적을 지닌 사람들끼리. 즉, 한국인이면 한국인들끼리, 중국인이면 중국인들끼리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라는 뜻이고, 아까 말했다시피 헤븐은 아시아인들만이 모여 살죠. 다른 섬에는 유럽인, 북아메리카인, 남아메리카인 등이 살고 있겠죠."

다시 조명이 켜지며 벽을 가득 메우던 빛이 사라져 6각형을 그리는 섬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섬에 대해선 간단하게 설명이 되었고, 다음은 비쓰온 게임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죠. 혹시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을 해 보신 분 계십니까?“

남자의 말에 몇 명이 손을 들었다.

"그럼 튜토리얼에서 룰을 대충 알아 할 만했겠군요!“


실실 웃으면서 말하자 손을 든 사람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야 그럴 것이 게임 하고 현실이 같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룰이 대충 짐작이 간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래도 생각이 없진 않은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리며 입을  닫아 남자의 뒷말을 기다렸다.


"간단한 룰입니다. 굳이 싸우지 않고 서로 모여서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살아가셔도 됩니다. 다만, 식량은 오직 바다에서만 구할  있죠. 왜냐하면 저희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다 빼놓았으니까요. 그러니 참가자들끼리 협동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도 되고, 식량을 가진 사람을 죽여 강탈해 인원이 30명이 될 때까지 살아남으시면 됩니다. 어때요. 간단하죠?"
"그걸... 말이라고.“
"네? 윤재희 씨. 뭐라고 말습하셨죠?“
"이해가 되었다고요.“
"아...! 그러시군요! 저 역시 설명을 잘하나요? 하하! 이럴 거면 애들 가리키는 교사를 할 걸 그랬어요! 뭐, 그래도 이 일은 임금이 높으니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지만요!“
"......“

해맑다. 참으로. 재희는 왠지 저 남자가 계속해서 귀찮게 굴 것 같은 느낌에 한숨을 픽 내쉬었다.


"아무튼 그래요. 30명이 되면 섬에서 나갈 수 있고, 30명이 되지 않으면 못 나갑니다. 또한,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흰 도움을 주지 않을 겁니다. 살인이 일어나든, 강간을 당하든 말이죠. 그러니 여성분들은 잘 생각하시고 게임에 참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잠깐.“
"네. 윤재희 씨.“
"참가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면 참가하지 않고 헤븐에서 살아갈  있다는 겁니까?“
"음... 그렇긴 하죠. 그런데 조금 애매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냥 헤븐은 바깥 사회생활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돈을 벌어야 살  있는 구조거든요. 그 때문에 게임에 참가하지 않고 헤븐에서 살 만한 일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그런 선택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해봐야 음식점 수준인데 그걸 한다고 해서 빚을 갚을  없고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갈 돈을 손에  뿐이죠. 뭐, 잘 된다면 상관없겠지만요.“
"......“


재희를 바라보는 남자의 미소에서 '과연 게임을 참가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고 묻는 듯한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슨, 빚을 갚을 방법은 게임을 하는 방법뿐이라는 것이니 그 방법은 되도록 선택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래서인지 재희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양옆에 앉아있는 민정이와 예림이를 힐끔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쯧... 1조를 갚기도 힘든데. 이 둘은 어떻게 하지?‘

조금이라도 아껴 써서 모아야 할 판에 선뜻 몇십 억을 빌려줄 수도 없는 노릇, 남자의 말대로 랭커가 되어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정말 1조를 모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헤븐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오자 재희는 혀를 차며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재희야... 괜찮아요?“
"응. 괜찮아.“
"그래도 아프시면 여기. 제 다리 써요!“

갑자기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부여잡는 모습에 민정이는 다급히 재희의 머리를 끌어다가 아까 그랬던 것처럼 재희의 몸을 기울이게 만들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놓아두었다.

"피곤하면 조금 자도 돼요. 제가 다 외워서 나중에 일어나면 알려드릴 테니까요.“


자신의 무릎의 위에 놓인 신이 한  한  정성 들여 빚어낸 미의 정점의 얼굴을 살며시 덮은 은빛 머리카락을 한 가닥,  가닥 정성스레 정리해 주며 민정이는 말했다.


"아...! 주무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만 하면  끝났으니까 조금만 참아주시겠어요? 윤재희 씨?“

또... 또, 재희의 이름을 콕 집어 말하는 남자의 행동에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안 자.“
"그러시군요! 하하!"

남자는 반말을 듣고도 아무래도 좋은지 조금 과한 반응을 보이며 손뼉을 쳐댔다.

"게임의 상금은 참가하기 전에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게임이 끝날 때, 살아남은 분들께만 이미 정해진 상금을 주면서 추가로 직접 죽이거나 기여도에 따라 추가 금액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되도록 다른 참가자들을 많이 죽이는 게 관건이죠? 이해가 됩니까? 윤재희 씨?“
"어.“
"그거참 다행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십니까?“
"......“
"이거... 말씀하지 않으시면 이해하셨지 못하셨는지 제가  방법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뭐,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니 나중에 물어보러 오시겠죠! 그럼!“

응. 응. 하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자신의 뒤에  있는 정장을 입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튜토리얼에서 아주 힘드셨을 겁니다. 일부러 천천히 헤븐으로 가고 있어서 쉬고 싶으신 분들은 쉬어도 괜찮고요. 배가 고프신 분들은 저희가 준비해 둔 음식을 마음껏 즐기셔도 됩니다.“

홀의 유일한 통로인 문이 열리고, 흰색 가운과 하늘로 높이 솟아있는 흰 모자를 머리에 쓴 사람들이 음식이 가득 올라가 있는 탁자를 밀며 홀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게임 참가자들은 배를 움켜쥐며 눈을 번쩍였다.


"드셔도 됩니다. 저희의 성의이고, 마지막 배려이기도 하니까요.“
"와아아!“
"머, 먹을 거!“
"정말 다 먹어도 되는 거야?!“
"네. 물론이죠.“


굶주린 사람들이 음식을 향해 달려나가고, 재희는 몸을 일으키며 양옆에 앉아있는 두 명의 여자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우리도 가자.“
"네, 네!“
"응!“

기쁘게 대답하는 둘. 재희가 일어나기도 전에 둘은 일어나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달려나가 음식을 마구 입에 털어 넣는다.


"재희야! 이거 먹어봐요! 엄청 맛있어요!“
"그래?“


처음 보는 음식. 눈으로 보아서는 맛보다는 모양에만 신경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직접 입에 넣어주려는 민정이의 행동 때문에 평소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비싼 음식을 한 번 먹어보았다.


"맛있네?“
"그쵸?!“
"언니! 언니! 이것도 먹어봐!“
"아... 그, 그래.“

이번에는 예림이었다.

'그냥 내가 먹어도 되는데.‘

손을 다치거나 잃은 것도 아닌데 굳이 왜 먹여주는 건지. 자기들도 배가 무척 고플 텐데도 음식을 먹여주려는 행동은 살짝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일단 먹어주면 정말 기뻐하는 모습에 군말 없이 먹었다만.

"인제 그만... 너희도 좀 먹어.“
"아... 알았어요......“
"하아... 그것만 먹을게.“
"네!“


그만 줘도 되고, 이젠 너희가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말에 이미 손에 음식을 들고 재희에게 주려던 민정이는 풀이 죽은 듯, 고개를 떨어뜨리자 하는 수 없이 그것만 먹는다고 말하는 재희였다.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재희의 입안에 음식을 밀어 넣고.


"언니! 저도 이미 잡았는데 이것만 먹어 줘요!“
"......“

경쟁이라도 붙었는지 반드시 이걸 먹이고야 말겠다는 강한 짐념이 담긴 표정에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입을 열었다.

'맛있네... 더럽게 맛있네.‘

맛은 정말 더럽게 맛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이곧대로 주면 다 받아먹은 탓인지 배가 불러온다. 하지만 그런 배를 손으로 만져 보아도 살은커녕 가죽밖에 없는 매끈한 배의 모습에 한숨이 내쉬어졌다. 이렇게 먹었는데도 불어오지 않는 배... 그러나 좋은 점보다는 익숙하지 못하고 본래의 걸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차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잠시만. 어디 갔다 올게.“
"어디에요?“
"물어볼 게 있어서. 저 남자에게 갔다가 올게. 바로 올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먹고 있어. 알았지?“
"알겠어요. 빨리 와요~!“
"엉.“


괜한 시비가 걸려도 저들이 알아서 해결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멀리서 살아남은 참가자들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던 남자를 향해 재희는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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