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020 튜토리얼 (20/140)



〈 20화 〉020 튜토리얼

재희와 민정이가 무리에 합류한 당일 소란이 있었지만 차인원의 대처로 좋게좋게 마무리되어 모두가 잠자리에 누웠다. 당연히 민정이는 재희의 옆을 선점했고, 반대편은 무슨 생각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 예림이가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뒤로 소란은 재발하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고작 이틀. 단순한 노숙도 아니고 산속에서 바닥에  것도 없이 노숙한지도 이제 이틀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다른 이들과 달리 재희는 완벽하게 적응을 끝마쳤다. 그 때문에 이렇듯,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도 몸은 전혀 찌뿌드드하지 않은 멀쩡한 몸 상태로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어제와 다르게 살짝 몸이 뻐근한 것이 상당히 이질적이다.


"음......“

재희의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청하고 있는 민정이를 바라보자 몸이 꿈틀거린다. 마음 같아서는 손을 뻗어 민정이의 몸을 마구 더듬어 쾌락에 빠트리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지만, 재희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여전히 잠에 빠져있는 민아의 존재와 눈을 조금만 멀리 뜨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손은 차마 뻗어지지 않았다.

"쯧... 어서 나가야 할 텐데.“

아무것도 덮지 않은 탓에 추위에 떨어 몸을 웅크린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어 얼른 여기서 벗어나거나 무언갈 덮을 게 필요해 보였다. 이래서는 무슨 사건 사고나 굶어 죽기 직전에 얼어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오자 한숨을 내쉰다.


"우응......“


손을 뻗어 살며시 민정이의 볼을 쓰다듬자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손이 다름 아닌 재희의 것이란 걸 자면서도 알 수 있는지 오돌오돌 떨던 입술이 조금씩 안정을 찾으며 희미하게 미소가 번져간다.  모습을 보니 더더욱 마음이 아파져 오늘은 차인원을 잘 구슬려 조금 활발하게 움직여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어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 그럴 것이 해의 모습을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른 아침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밤 중에 경계를 서기로 했던  명의 남자들도 몰려오는 수마에 이겨내지 못하고 나무에 등을 기대 불편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차인원이 본다면 노발대발하고 난리를 피워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재희에게 피해는 없고, 민정이에게까지도 피해가 오지 않았으니 굳이 신경 쓸 이유를 느끼지 못하였다.


"거기에  보자고 할까?“


더는 혼자가 아니라 생각해서 무모하게 남자들이 차지했던 동굴을 빼앗기 위해 싸움을 벌였던 그곳. 재희는 오늘 그곳에 가 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동굴은 밖에서 얼핏 보았을 뿐, 내부를 보지 못해 얼마나 넓은지, 좁은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작은 동굴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잠시 후에 차인원이 깨어나면 한번 말을 해 봐야겠다. 당연히 귀찮은 일은 질색이니 동굴 앞의 시체들은 모르는 척할 생각이다.

그나저나 잘 있을까. 재희는 어제 차인원의 무리의 눈에 띄었을 때, 둘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며 걸음을 천천히 옮겨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어제 민정이가 모습을 드러낼 때, 흙과 나뭇가지, 나뭇잎으로 빈틈조차 보이지 않도록 촘촘하게 감추었던 대량의 식량과 물이 들어있는 가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 동안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잠에서 깨지 않을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걸었다.

"으응......“


하지만 하필이면 목적지 근처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어제 보았던 예림이 또래의 한 소년이 눈을 비비며 상체를 세웠다.


"누나... 일어나셨어요?“
"그래.“
"어디 가세요?"

비몽사몽하게  떠지지 않은 두 눈으로 재희를 올려다보며 묻자 재희는 움직이던 걸음을 멈춰 세우곤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상하지 않게 보이려면 말이다.


"그냥."
"......“
"다시 자.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래도.“
"다시 자도 돼.“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그냥 이라고 말하자 소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모습에 어깨를 붙잡아 꾹 누르며 자상한 형처... 누나처럼 더 자도 된다고 타일러주는데 소년의 결심은 완전히 돌릴 수 없었는지 재희의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잠에서  깨고 있었다.


"가시지 마세요. 어제 그 일 때문이라면... 괜찮아요. 그런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니에요, 이미  명의 아저씨들이 예림이 누나를 덮치려고 했다가 인원이 형한테 호되게 혼나고 무리에서 퇴출당하였거든요.“
"......“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계속 여기 있어도 돼요. 인원이 형이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요.“
"그래?"
"네. 그리고 누, 누나가 위험하면 저도 도와드릴 테니까!“

애가  착각했는지 어제 몇 명의 남자들이 성욕을 처리하기 위해서 따지듯이 차인원에게 했던  말 때문에 겁을 잔뜩 먹은 재희가 아침 일찍 일어나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도망친다고 생각했나 보다. 어린 것...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어린 애가, 자신보다 약할 법한 어린 애가 그런 말을 하니 정말 귀엽기 그지없다.


그보다 활발해 보이던 예림이가 여기서 강간을 당했을 뻔했다니, 그 말을 듣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교복을 입고 있지만 재희와 동갑인 스무 살이라고 자칭하며 여기서도 어떻게든 웃음을 잊지 않으려 힘내는 대단한 애라고 생각했거늘.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혹시 예림이의 웃음이 가짜가 아닐까. 일부러 웃는 척을 해 보며 강간을 당할 뻔한 일을 잊으려 노력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어온다. 이래서는 자기만 봐달라는 민정이와의 약속을 지키기가 힘들어진다. 재희의 여동생과 같은 나이의 예림이에게서 차마 눈을 돌릴 수가 없어서.


"고마워. 도움이 필요하면 부탁할게.“

당당하게 소리치는 아이에게 필요 없다는 말 대신에 웃으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해주면서 어제  쓰레기 같은 남자들과는 다르게 약자를 지킬 생각에, 그리고 아등바등 살려는 의지가 강하게 보이는 소년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우읏.....!"

대답을 돌려주지 않은 채로 멍하니 재희의 얼굴을 바라보던 소년은 급하게 고개를 떨어뜨리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소년의 머리에서 손을 떨어뜨리자 소년의 양손이 자신의 머리를 툭 덮었다.


'뭐... 귀여우니까 됐나?‘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이런 반응을 보게 되니 살짝 불쾌하기는 했는데 귀여운 아이였으니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


"어디 가요?“
"그냥.“
"저도 같이 가요.“


소년에게서 눈을 돌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자 소년은 자신도 가겠다며 몸을 다시 일으키려고 하자 소년의 눈을 피해 한숨을 내쉰 재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오게?   비우러 갈 건데?“
"......!“
"어차피 멀리 나가지 않을 거니까.  자도 돼. 알았지?“
"네, 네에......“

 말을 끝으로 다시 몸을 돌리자 소년은 두 번 다시 재희의 걸음을 막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가는 척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겨둔 가방의 존재를 찾았다.

"다행히 아직 있네.“

민정이가 꼼꼼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숨겨둔 터라 가방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면 재희조차 이곳에 인위적으로 무언갈 숨겨두었다는 걸 모르고 지나쳤을 것만 같았다. 가방을 덮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씩 치우고 안을 열어보자 어제와 다름없이 물과 식량의 모습이 보이자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보다. 이걸 어떻게 들고 가지?“

들고 가는 건 쉽지만 어떻게 눈에 띄지 않고 들고 갈 수 있을까. 그냥 차라리 무리의 분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인원에게 가져다주는 게 나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남들의 눈을 피해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인가. 두 가지의 선택지가 생겨났다. 언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그것만 알면 쉬울 문제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재희로서는 답을 도출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해결할 것부터 하자.“


재희는 다시 가방을 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들려오는 인기척에 의심하며 일부러 무리로 돌아가지 않고 더더욱 숲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재희의 불안한 예상이 피해가지 않았는지 인기척은 재희를 쫓아오는  확인했고. 우연히 동선이 겹친 걸 수도 있어 조금 더 걸었다.


"무슨 일이죠?“

이 정도면 충분할까 싶어 발을 멈추고 물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나오세요.“
"눈치  번 더럽게 빠르네.“


다시 묻자 그제야 재희의 뒤에서  남자가 낄낄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음...? 어제 차인원에게 한 대 맞은 새끼네?‘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인들을 퇴출하자는 말도 모자라서 대놓고 재희를 바라보면서 여자들은 고생하는 남자들의 성욕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차인원에게 말했다가 한 대 맡고 바닥을 뒹군 그 남자가 아닌가.


"왜 따라온 건가요?“
"응...? 크크. 그걸 몰라서 물어? 설마 아직 다른 남자들은 만나본 적 없어? 계속 민정이라는 그 애랑만 다닌 거야? 이야~ 운 디게 좋네?“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니. 큭큭. 뭐, 몰라도 이해해. 아무도 만나보지 못했다는데 어떻게 알겠어?“

실상은 저 남자보단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다. 그것도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들을. 김유한이나 재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나 민정이나 재희에게 그... 뭐냐. 히로인이라 소리치며 달려들던 뚱뚱한 남자나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멍청한 남자 등등 이틀 동안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죽여온  같았다. 그래서 남자의 말이 살짝 황당하게만 다가오지만 일단은  말이 맞는 척 연기를 시작한다.


"뭐, 만났으면 이미 우리와 함께할 수 없었겠지. 성노예로 사느라.“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낄낄 댄다. 그리곤 바지의 단추를 열고 지퍼를 내리면서 서서히 다가왔다.

"소리 쳐봐.  비명을 듣고 차인원이 빨리 올까. 내 좆이 네 보지를 뚫고 들어간 뒤에 널 죽이는   빠를까. 궁금하면 해 봐도 돼.“


결국은 자신을 범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참으로 가증스럽고 역겨웠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팬티까지 내려버린 남자의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웃어?“
"아... 죄송해요. 웃으면 안 되는데. 푸흡!“
"......“

남자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이유가 짐작이 가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며 이를 갈았다.

'와... 저게 실존하는 크기냐? 대단하네.‘

어떻게 저리 작을 수가 있을까. 저걸로 박으면 여자가 무슨 느낌이라도 날까. 궁금한데 그걸 원래 남자였던 재희가 직접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 이 시발년이.“


단단히 화가 난 남자는 주먹을 높게 들어 올리고 다시 다가오는데 재희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저딴 물 주먹과 근본도 없는 남자의 싸움 실력에 굳이 자세를 잡고 공격을 대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의 주먹이 재희에게로 뻗어지기도 전에.


"뭐 하시는 겁니까?!“


차인원의 고함이 울려 퍼진다.

"차, 차인원?! 여긴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예림아. 어서 재희 씨를 데리고 돌아가.“
"네. 오빠.“

차인원에 말해 예림이가 재희에게 다가와 팔을 이끌기 시작하자.

"어딜 가!“

황급히 바지를 올리고 남자가 재희와 예림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허나 차인원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어제와 비슷하게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어제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 일을 저지르네요. 만약 예림이가 재희 씨와 당신을 보지 못했더라면 전 여전히 자고 있었겠죠. 그리고 일이  터진 후에 전 알았겠죠. 재희 씨를......“


차인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예림이와 재희의 모습을 찾았다. 그렇게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니 새끼한테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씨발놈아.“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며 차인원은 두 주먹을 내리꽂았다.

"끄아악! 미, 미안해...! 내가 잠시... 윽! 으윽! 이성이 나간 거라고!“
"그걸 말이라고!“
"정말이야! 아, 아파! 제발 그만해! 정말로 그럴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계속 여기 있으니까 미치겠는  어떡하라고!“
"그래서... 강간해도 된다는 거냐?!“
"끄아아악!“


차마 가랑이 사이에 주먹질은 차마  수가 없어 발을 이용해 짓밟는다. 그러자 아까보다 더 큰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씨바바알! 니새끼는 저년을 보고 아무 생각도 안 드냐고?! 따먹고 싶지 않아?! 보지에 좆을 박고 싶지 않냐고?!“


흠칫.

차인원은 그 말에 다시 주먹  손을 내리꽂으려다가 멈췄다.


"그래도 난 너 같이 강간을 하지 않는다.“


솔직히 재희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마음에 품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민정이의 예상대로 첫눈에 재희에게 반해버린 차인원은 아무리 재희가 좋고 몸을 섞고 싶다 하더라도 강제로 취하는 그런 짐승 같은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제발 그만하라고!“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여자를 강제로 범하려고 했던 탓일까. 차인원의 분노는 사그라들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남자의 애원에도 차인원은 꿋꿋하게 주먹질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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