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018 튜토리얼
'어... 대체 뭐야.....?‘
민정이는 갑자기 이상해진 사람들의 모습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마지막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이 크긴 했었는데 고작 그거 가지고 여자 둘이서 그렇고 그런 짓을 했을 거라 확신을 불가능할 건데... 아마도... 아무튼, 그렇기에 남녀도 아니고 여자 둘이 있다가 신음성이 터졌으면 징그러운 벌레가 몸을 타고 기었다거나 하는 별 것도 아닌 일 때문이라 생각도 가능할 것이다.
"......“
"......“
민정이의 눈이 닿자 여자들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눈을 돌리기 바빴고,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붉어진 얼굴을 돌렸는데 거기에 더해 다리가 공손해지기 시작한다.
'설마... 본 거야? 아니지?‘
꽤 구석진 데에서 재희의 몸에 가려 못 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 본 게 아닐까 하고 불안한 생각을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정말... 이야? 아니지? 거짓말이지?‘
믿기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그런가? 하고 의문이 담긴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표정에 말도 안 되는 이 추측은 점점 신빙성을 얻어가자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부끄러워 미치겠다.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을 정도라 도망치듯 차인원이랑 둘이서 대화를 하던 재희의 품을 파고들었다.
"음...? 민정아?“
"우으......“
"갑자기 왜 그래?“"재희야... 재희야...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
부드러운 재희의 가슴에 얼굴을 마구 비비며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 민정이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 재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신가요? 혹시 누가 괴롭히시는 건......“
차인원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그야 그럴 것이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걸 닥치는 대로 구해보았음에도 굶주림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살인은 최대한 피하되 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이기적인 사람들만 골라 식량과 물을 빼앗아오고 있던 차인원의 무리이다. 그랬기에 뒤늦게 도움을 되지 않을 여자 둘이 추가되니 기존에 있던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이 새겨질 수밖에 없는 노릇.
"정말 그래?“
이미 예상한바. 그러나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괴롭힘에 시작될 거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재희는 민정이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걸 멈추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우응......“
그러자 여전히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젓고.
"그럼 왜?“
"그게......“
힐끔. 차인원을 바라본 민정이는 열었던 입을 도로 닫는다.
"몰라아! 전부 재희 때문이에요! 재희 때문!“
이내, 재희의 반칙 적인 얇은 허리를 끌어안으며 소리친다.
"어떻게 된 건지 다 알고 있다고요!“
애들부터 여자, 남자, 그리고 노인들까지 여기 무리 전체가 민정이와 재희의 관계를 아는 것도 모자라 조금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고 있는 듯했다.
"뭘?“
"아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며 물어오는 재희. 그 아름다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재희를 탓하며 화를 내지도 못하는 한심한 자신의 모습에 한탄하며 다시금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너무나 부드럽다. 가슴도 큰데 이렇게 부드럽기까지 하니 사기가 아닐 수가 없다.
"저... 뭘 알고 있다는 건가요?“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차인원의 물음.
"모르겠네요. 우리 민정이가 뭘 안 건지.“
그렇게 말하며 재희는 허리를 숙여 머리카락에 덮여있는 민정이의 앙증맞게 붉어진 귀를 찾아내 입을 가져갔다.
"왜? 민정이가 원하던 거 아니었어?“
"어.....?“
원하다니... 무얼... 대체 뭘 원했다는 건지. 재희의 말에 민정이는 얼빠진 목소리를 흘려보낸다.
"그야... 민정이가 얼마나 하고 싶으면 안전도 보장이 안 된 상태로 내 뒷모습을 보며 자위를 하던데?“
"......!“
"그래서 민정이는 노출증... 음. 남들에게 보여질 줄도 모르는 상황을 생각하며 흥분하는 변태인 줄 알았는데."
"으으.....!“
"내가 착각한 거야?“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민정이는 정말 창피해 죽고 싶었다. 거기에 더해 이상한 플레이를 좋아하는 변태로 인식되어 있으니 차마 재희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할 것만 같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변명해야 하는데 새하얗게 물들어버린 머리는 그 답을 내놓지 않는다.
"들킬 줄은 몰랐는데. 미안해.“
미안하다는 그 한 마디. 그저 하는 말인지, 아니면 진심이 담겨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민정이는 그 말 한마디에 재희의 모든 행동이 용서되기 시작한다. 정말 바보 같은 여자. 가볍게 사과를 받고 넘어갈 작은 일이 아닌데도 이미 민정이의 몸과 마음은 재희를 용서하는 것도 모자라서 다시 범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겨나자 재희에게서 황급히 멀어졌다.
"괜찮아졌어?“
싱긋. 웃는 재희의 얼굴. 민정이는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나간다.
"귀엽긴. 그나저나 어디까지 얘기하셨죠?“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바보같이 무리를 빠져나가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걸 알기에 얼굴에 웃음을 싹 지운 재희는 차인원과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민정이에게 지어준 아름다운 미소에 푹 빠져버려 멍하니 재희의 얼굴만을 바라보는 차인원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다.
'대체 내 얼굴이 어떻지?‘
여자인 민정이를 자신에게 반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서 저렇게 예쁜 여자인 민정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눈은 오로지 재희에게로만 향한다.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민정이보단 여자가 되어버린 재희의 얼굴이 더 예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는데 지금 여기에 거울이 없기에 얼마나 예쁜 건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었다.
'뭐, 그건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고.‘
나중에 거울처럼 비쳐 보이는 깨끗한 호수나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알아보도록 하고 아직도 멍한 상태인 차인원을 향해 다시 입을 연다.
"하던 얘기마저 해요.“
"아, 네, 네. 그래야죠. 하하......“
그제야 차인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으으...! 이제 어떡해! 어떡하냐고오.....!“
한편, 재희에게서 도망친 민정이는 여전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로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만 거리가 있는 곳의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서서는 어떡하냐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뭐가 어떡해요?“
"핫.....?!“
그런 민정이에게 다가온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 그녀는 해맑게 웃는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민정이에게 물음을 던지자 민정이는 핫, 하고 놀라며 태연한 척, 자세를 바로잡았다.
"뭐, 뭐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입꼬리를 올려 보지만.
"오히려 더 이상해 보여요.“
"윽.....!“
정곡에 찔려 가슴을 부여잡는다.
"그거 때문이죠?“
"그거라니?“
"왜요. 그거 맞잖아요? 재희 언니랑 언니 둘 사이에 있는 그거.“
"......!“
"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니 오히려 언니가 지극히 정상 같아 보이는데요?“
"어.....?“
"솔직히 그렇게 예쁘면 남자는커녕 같은 여잘 꼬시지 못하는 게 이상하고, 반하지 않는 여자가 이상하죠. 그리고 재희 언니의 미모가 어지간히 예뻐야지. 너무 예쁘잖아요? 그러니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여러 남자를 사귀었거나 짜증 날 정도로 남자들이 대시했을 거에요. 거기다가 여기에 와서 남자에게 큰 화를 당하고 완전히 남자를 싫어하게 돼서 언니에게 푹 빠졌을 수도 있고요. 안 그래요?“
"......“
그럴... 수도 있겠다. 민정이 또한, 여기에 오기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몸을 노린 남자들이 돈을 준다며 자신과 사귀자고, 결혼하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랬던 민정이인데 민정이보다 훨씬 더 예쁜 데다가 가슴은 물론, 몸매까지 완벽한 재희에게 남자가 꼬이지 않으려고 해도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남자에게 완전히 질려버려 성 정체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어긋나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을 수도.....?
"그러니까. 전 언니들의 사이가 어떻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좋은 아이다. 민정이의 기억으론 교복의 왼쪽 가슴 위쪽에 명찰을 달고 다녔는데 이 아이는 그렇지 않은 듯 명찰로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것보다 재희에게 흑심을 품은 소년부터 그렇고 이 아이까지. 정말 다양한 나이 때의 사람들이 이 게임에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저 불쌍하다고 생각하셨죠?“
"......!“
정확하다. 민정이는 깜짝 놀라며 동그랗게 떠진 두 눈으로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뭐...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언니도 20대 초반으로 어려 보이는데 절 동정할 상황인지.....?“
그렇지. 민정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동정할 처지인지. 이 아이나 자신은 이미 이곳에 왔고, 재희에게 버려지거나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역겹지만, 남자들에게 강간을 피할 수 없는 사실은 매 한 가지니까.
"그리고 저 이래 봬도 20살인 성인이에요. 지금 교복을 입고 있는 건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이 없어서 그냥 입고 다니는 것뿐이고, 보시다시피 편해요."
"그, 그러니.....?“
"네. 그러니까 굳이 절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돼요. 운동을 조금 하다 와서 어지간하면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으니까요.“
두 주먹을 턱 밑까지 올리고 앞으로 내뻗어 섀도복싱을 하는 모습에 어려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정말 운동을 배운 것처럼 보인다.
"근데... 언니는 재희 언니랑 대체 무슨 사이에요?"
"어...? 그건 왜.....?“
"그야 여기가 안전하다고 해도 말만 그렇지 실제로는 긴장을 푸는 순간 위험한 곳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곳이니까요. 언제 저나 언니들을 노리고 공격해올지 모르는 사람들이 널려 있는데. 이상하게도 재희 언니나 언니는 걱정이란 게 없다는 듯이 그런... 짓을 하시니까. 궁금할 수밖에 없잖아요?"
"아, 아아아!“
이 애까지도 알다니. 대체 누가 자신의 몸을 마음껏 범하던 재희의 모습을 보고 소문을 내 버린 건지. 잡히기만 하면 곧장 재희에게 말해서 때려달라고 할 거라 다짐했다.
"엄청났어요... 저 여자끼리 하는 거 처음 봐요. 뭐... 애초에 남자랑도 해 본 적은 없어서 야동으로밖에 못 봤지만."
"그, 그만...! 그만 해줘!“
"네? 왜요?“
"우으...! 몰라도 돼!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줘!“
재희와의 사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고 있는데 저 순수한 모습이 민정이를 더더욱 괴롭게만 만들고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오늘 처음 본 사람들에게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모자라서 대놓고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그것도 성인도 채 되지 않은 애들에게까지. 부끄러웠다. 미치도록 부끄러웠다. 다시금 잊었던 재희를 향한 원망이 슬금슬금 생겨나지만 이내,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예쁜 얼굴을 보니 배시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알겠어요.“
저렇게 싫다고 하는데 더 할 수는 없으니 여학생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예림이에요. 김예림.“
"어.....?“
"전 언니의 이름은 아는데 언니는 제 이름 모르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알려주는 거예요. 이젠 함께할 사이가 됐는데 저는 언니의 이름을 알고 언니는 제 이름을 모르는 상태로 있을 순 없잖아요?“
"응... 맞지. 예림아.“
"네. 민정이 언니.“
애가... 귀엽다. 안 그래도 여자 평균 키보다 큰 166cm의 꽤 큰 키를 가지고 있었으며, 예림이는 평균보다 작은 150 중반으로 보였다. 거기다가 얼굴도 무척 예쁜 편이고 하는 행동도 왠지 아이 같아 귀여워 보였다.
"그래.“
민정이는 웃음을 그리며 예림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야? 아직 고등학생인데?“
"성인이라니까요?“
"아... 아무튼.“
성인인 거 맞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교복은 두 번다시 입지 않는 거 아닌가?
"별거 아니에요. 망할 부모가 절 여기에 싼값으로 팔아넘겼을 뿐이니까요.“
"어......“
"뭐, 저도 그 새끼들을 부모라 생각한 적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 그러니?“
"암울한 제 과거보단 언니는 왜 왔어요?“
"나는 비쓰온 게임에 참가하게 되면 다 쓰러져가는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돈을 계약금으로 선 지급한다고 해서 부모님 몰래 왔는데?“
"와...! 대박! 아무리 돈을 준다 해도 그런 선택을 하다니. 언니 바보네요.“
"윽......!“
그땐 비쓰온 게임이란 게 이런 정신 나간 게임이란 걸 알았나. 고생만 하다 강간을 당하거나 살인을 당할 수 있는 곳이라고 어찌 알았을까. 그 당시의 민정이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만 생각해서 무턱대고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넣었던 것뿐인데.
"그래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멋져요. 언니.“
"그, 그래.....?“
"네. 스스로 여길 왔다는데 대단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럼... 그렇지.“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봐도 멋진 것 같았다. 가족을 위해 스스로 몸을 희생하는 한 여자라. 흐흐.
"그럼! 언니가 얼마나 멋지고 대단......?“
앞을 보니 예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자 도중에 말이 끊기곤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자 차인 원과 대화가 끝났는지 민정이에게로 오고 있던 재희의 앞을 막아서서는 이런저런 말을 하는 예림이의 모습이 보인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