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015 튜토리얼 (15/140)



〈 15화 〉015 튜토리얼

옆에서 한 남자가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생각 없이 칼을 내찌르자 재희는 그 남자의 칼을 피함과 동시에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래도 근육만 미친 듯이 키운 티가 팍팍 나는 움직임이라 눈으로는 재희의 움직임을 따라잡았지만, 몸은 제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칼이 자신의 어깨에 파고 들어가 대각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끄아아악!“
"시, 시발.....!“

자신은 싸움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근육질 남자를 손쉽게 죽여버리자 도저히 싸워서 이길  없다고 판단한 남자는 재희의 곁에 있는 민정이를 다시 인질로 잡을 생각으로 눈길을 돌려 손을 뻗는다. 힉! 하고. 기겁하는 민정이의 모습이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의 시야는 바닥을 향한다.


'어.....?‘

재희는 민정이에게로 뻗었던 그 손을 붙잡아 안으로 잡아당기며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곤 날카로운 칼날로 목을 베어버린다. 그로 인해 바닥을 뒹굴고서야 뒤늦게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비명을 내지를 수는 없었다. 혀를 내민 상태로 켁켁 거리며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움직임은 서서히 잦아 들어간다.

"안 돼...! 이건 안 된다고!“
"어디가?!“
"뭘 어디가! 이제 우리 둘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 싸우자는 거야?! 싫어. 난 도망칠 거라고!"
"이, 이 개새......"


끝내 싸움을 포기하고  남자가 도주를 선택하고 민정이를 인질로 잡았었던 남자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때문에 배신감에 가득 차 욕을 입에 담으려던 찰나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고 빠르게 눈앞을 훑고 지나간 다음 고통스러워하며 살려달라고 비는 간절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제기랄......"


뒤늦게 눈을 가져가니 도망치던 남자는 목덜미에 칼이 날아들어 박혀 엎어진 상태로 잠시 움직임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제... 마지막.“
"......“

염라대왕의 선고와 같은 말. 남자의 동공이 미칠 듯이 떨리며 딱딱하게 굳은 고개를 억지로 돌려본다. 그러자 허리까지 늘어뜨린 은색의 머리카락과 적색의 눈을 가진 초월적인 미모를 지닌 미녀가 죽어있는 남자의 손에서 칼을 빼내 들고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여왔다. 남자의 두 누에는 공포라는 감정밖에 나오지 않는 모습. 하지만.

"하아... 하아......"

재희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제 거의 다 끝난 상황인데 갑작스럽게도 성욕은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집중력과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남자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여유롭게  걸음, 또 한 걸음 걸어간다.


'이게 마지막인데......‘

눈앞의  남자만 죽인다면 지금,  순간 위험인물은 모조리 제거할 수 있었는데 마치, 재미가 없다며 제약을 거는 것처럼 눈의 초점이 흐릿해진다. 어느새 남자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며 정신까지 혼미해지자 재희는 옮기고 있던 걸음을 멈춰 섰다.

"......“
"......“


왜 움직이지 않을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남자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도망칠 기회를 주는 건지, 아니면 용기를 내어 덤벼들라고 하는 건지. 여러 가지의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답은 끝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식은땀이 볼과 턱을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지며 남자는 재희에게서 눈을 떼어놓지 않은 채로 조심스럽게 칼을 집어 들었다.

'설마... 지친 건가?‘

혹시나 하는 생각. 하지만 이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확신이 들었다. 그야 그럴 것이 재희의 커다란 가슴이 부풀었다가 되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게 커져 있었으며 주기도 일정하지 않을뿐더러. 자신까지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움직임을 멈추었으니 지금 지쳐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생각했다.

"혹시. 지친 건가?“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지친 게 맞는  같다고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살 수 있다.‘


신은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았는지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환호성을 내지르고 싶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될까. 아까 도망치던 남자처럼 목덜미에 칼을 던져 맞추는  아닌지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맞서 싸우는  더더욱 말이 안 되니.


"지친 것 같은데.  그만 보내줄 수 있을까?“
"......“
"두  다시 여기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
"뭐, 믿지 못하는 건 이해하지만  번만 믿어줄  없을까? 네 힘을 직접 체험해 본 나로서는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널 보면 먼저 도망갈 것 같은데.“

이렇게 강한 무력을 보였기에 남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는데 민정이의 외모나,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가 있으니 간단히 포기할 것만 같지 않았다. 이대로 보냈다가 언제 어디서 또 동료를 모아 기습해올지 모르니 살려 보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싸움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몸 상태 때문에 왠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민정이에게도 질 정도로 심각해진 몸 상태.


"?!“

다시 또, 도박을 하기로 하며 재희는 손에 들린 칼을 집어 던졌다. 앞은 보이지 않는데 남자가 이동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그 남자가 있던 자리에다가 말이다. 기억은 틀리지 않았는지 칼은 남자에게로 날아가긴 했는데 아깝게도 옆머리를 스치고 뒤에 있는 나무에 박혀버린다. 잘린 머리카락이 살랑살랑하며 아래로 떨어지고.

'빗나갔나......‘

비명은커녕 칼이 박히는 소리가 이질적이라 빗나갔다고 판단한 재희는 입을 열었다.


"꺼져.“


자연스럽게 다시 눈앞에 보인다면 그땐 정말 죽일 거란 듯이 행동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지......“


지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오해하는 남자는 방금 정말 죽을 뻔 했다는 사실에 심각할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돌아섰다. 그리고 잠시 뒤.

"괘, 괜찮으세요?!“

아마도 남자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민정이가 다가와 물었다고 판단한 재희는 그제야 억지로 버티고 서 있던 두 다리에 힘을 풀었다.

"꺅?!“


멀쩡해 보이던 재희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이내 쓰러지자 커다란 비명과 함께 민정이는 재희의 몸을 받쳤다. 운동이란 것과 담을 쌓아왔던 터라 가냘픈 재희의 몸조차 들지 못해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하아... 시발......"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욕을 입에 담는다.

"어떡해! 어떡해!“

무릎을 꿇고 살며시 재희의 머리를 허벅지에 올려둔 뒤에 어떡해 라는 말만 반복하는 민정이.

"괜찮아... 잠시... 잠시 힘이 들어서 그런 거니까.“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성욕에 몸을 맡겨 민정이를 범하고 싶은 마음으로 굴뚝같았는데 남자들이 죽으며 낸 비명과 자옥한 피 냄새 등을 보아서는 이곳도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참가자들에게 발견될 것만 같았다. 호기심에, 그리고 운이 좋다면 미처 보지 못하고 두고  식량이나 물을 얻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의 굶주린 자들에 의해. 만약 그런다면  여자가 서 있기도 힘든 자신을 도울 수나 있을지. 재희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절대로.

"죄송해요... 저 때문에...!  때문에 그런 짓을 당하고...! 흑!“
"괘찮아...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
"알겠어요.....“

민정이가 인질로만 잡히지 않았다면 빠르게 처리를 끝마치고 몸 상태가 이렇게 되기 전에 먼저 시체를 치워두었을 것이다. 그런다면 뒤늦게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치워진 시체와 피가 잔뜩 묻어있는 주위의 모습에 겁을 먹고 도망갈 확률이 높았다. 피가 이렇게나 많은데 시체까지 치워두는 여유를 부리면 아직 다치기는커녕 멀쩡하다고 착각할 테니. 하지만 지금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한 명을 놓친 것도 모자라서 민정이 혼자 시체 전부를 치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기... 저기에 들어가서 조금 쉬도록......“
"아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네? 아니 왜요? 저기서 쉬면 안되나요?“
"어. 안 돼. 위험해. 그러니까 빨리.....!“
"아, 알겠어요!“

동굴은 절대  된다고 말하며 재희가 일어나려고 하자 민정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재희를 부축여준다. 굳이 좋은 곳을 두고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가득했는데 아픈 사람에게 그 이유를 지금 묻기는 조금 그랬으며, 부추겨주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어 입을 꾹 닫아서는 기계처럼 걸음만 옮겼다. 하지만 재희가 걷기 힘들뿐더러 민정이는 부추겨줄 힘조차 없는 연약한 여성이기에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잦았다.

"하악...! 학...! 이, 이쯤이면 괜찮... 겠죠?“
"그래......“

마침 둘의 몸을 숨기기에  좋은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을 발견한 민정이가 말하자 이 정도 걸었으면 충분할  같아 재희는 긍정했다.

"후아.....!“

힘겹게 재희를 눕혀두곤, 민정이는 대자로 쓰러졌다.

"힘들어......“

투덜거리듯 중얼거린다.

"있잖아.“
"네.....?“
"날 어떻게 생각해?“
"네...? 네에...?! 가, 갑자기 왜요?“
"말 그대로야. 알려줄  있을까?“


두 주먹을  쥔 상태로 어떻게든 몸의 움직임을 봉하며 재희가 묻자 민정이는 당황할 대로 당황해 버렸다. 갑자기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야... 처음에는 엄청 예쁜 강간범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민정이다. 하지만 동성을 사랑한다니, 너무 이상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사랑이라 머뭇거려진다.


그러나 그녀도 꽤 결심하고 물어본 것이라. 외모에 자신이 있었던 민정이었던 만큼 도움을 받자마자 처녀를 잃게  이유 또한, 그녀도 자신에게 첫눈에 반해 무의식적으로 범해버리는 결과가 낳았을 뿐.  당시에는 싫었어도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손놀림과 키스를 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부끄럽지만 다짐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처럼 누워있는 은발의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저, 저도 좋아해요......“
"......“
"다, 당신이라면 전... 좋아요.“

그 말이 방아쇠가 되어.


"우읍...?! 읍... 우응......“


참아왔던 성욕을 더는 참지 않은 재희는 그대로 민정이를 덮친다. 좋아한다는 말까지는 바라지 않았고, 그저 좋은 사람인  같다고, 괜찮은 사람인  같다는 말을 하는 순간 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차근차근 알려주며 덮칠 생각인 재희였지만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좋아한다는 말에 이성을 잃을 만하고도 남았었다.


시야가  보이지 않아도 인기척으로 바로 옆에 민정이가 누워있다는  알아차리곤 그녀의 위에 올라타 허리를 깊게 숙여 입을 맞춘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한순간에 일어난 터라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민정이었는데 이번에도 저항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에 힘을 쭉 뺐다. 자신의 얼굴 위로 떨어진 은색의 긴 머리카락에 의해 간지러움을 느끼면서도 눈을 감으며 살며시 자신의 입술을 탐하고 있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재희의 머리를 팔로 감싼다.


"쪼옥... 쪽... 우음... 응.....!“

이번이 두 번째인 키스, 익숙하지도 않은 키스이며 너무 격렬하게 입술을 탐하니 고작 키스하는 것만으로 몸이 달아오른다.


"하앙...! 앙......!“

서로의 입술이 떨어지고 재희의 손이 찢어진 옷 틈 사이로 파고들어 브래지어를 옆으로 제치고 유두를 툭툭 건드리자 신음성이 터진다. 변태 같았다. 사는 게 너무나 바빠서 애인은커녕 친구조차 만들지 못했던 인생. 자위도 접해보지 못했던 인생이라 이렇게나 자신의 몸이 음란할 줄은 상상도 못해 살짝 충격적이었지만 지금은 어찌 되었든 상관이 없었다.

그야 그럴 것이. 좀 음란하면  어떤가. 이렇게나 기분이 좋아 미치겠는데. 슬금슬금 재희의 손이 옷을 걷어 올리고 민정이의 배를 어루만지다가 이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민정이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을 풀어 천천히 벌리며.


"하읏...! 후으읏...! 음!“


아랫배에 손이 닿았을 뿐인데도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이 부르르 떨리며 쾌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신음소리를 너무 내뱉는 탓에 부끄러워진 나머지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음성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어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재희의 머리를 잡아끌어 자신이 먼저 키스를 갈구했다. 다시 이어진 키스. 너무나 향긋한 냄새가 난다.

어떻게 이런 냄새가 날 수가 있을까 궁금하다. 분명 입에 뿌리는 향수는 물론이고 양치질도 제대로 하지 못해 입 냄새가 상당할 텐데도 민정이의 코를 찌르는 냄새는 너무나도 향긋했다. 그나저나. 자신도 이와 비슷하게 냄새가 괜찮을까...? 냄새를 잡아주는 거라곤 넣은 적도 없는데...? 민정이는 헛. 하고 헛바람을 삼키며 재희의 얼굴을 밀어냈다.

".....?“
"아으... 그, 그게.....!“

갑자기 거부하는 모습에 멍하니 얼굴을 내려다보는 초월적인 미모에 얼굴이 붉어지며 민정이는 말을 더듬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만... 할까?“
"아니요! 그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만하냐는 말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바로 하여 눈을 마주치며 소리를 친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은 것인지 뒤늦게 깨닫고 부끄러워하면서 눈을 돌리는 귀여운 모습을 민정이와 키스를 하며 몸을 탐하다 보니 되돌아온 시력으로 보곤 재희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귀엽네.“
"아......“

동성애... 어찌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민정이는 이제야  이유를  수가 있었다. 사랑은... 성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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