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001 튜토리얼
단 하나의 책상과 그 책상을 사이에 두고선 두 개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며 놓여 있는 작은 방은 마치 경찰서에서나 볼법한 취조실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그런 취조실과도 같은 방에서 한 중년의 남자. 윤기훈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의자에 손과 발이 묶여 이도 저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윤기훈의 몸은 계속해서 고통스러움에 비명을 내질러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기훈은 고통을 애써 참아내며 태연하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그려 보인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서 무척이나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절대로 말씀하시지 않을 겁니까? 대체 어디로 빼돌리신 건지?"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계속 말을 해줬잖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리고 네가 말하는 것도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대체 어떻게 말을 할까?"
윤기훈의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물음에 윤기훈은 남자를 비웃듯이 진실을 숨기고 뻔뻔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이것 좀 풀어줘. 네 부하한테 너무 맞아서 몸이 너무 아프거든. 칼에 찔린 곳도 있어서 피가 철철 넘쳐흘러. 그러니까 지혈 좀 하자. 이것 봐. 지금 정신이 흐릿해지잖아."
"후우...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농담이라니. 나는 농담이 아니야. 정말로 아프다니까? 여기 안 보여? 아직도 피가 막 흐르는 게?"
그 말대로 윤기훈의 몸에는 단순한 구타 자국만 있는 게 아니라 칼에 찔린 부위도 있었기에 찔끔찔끔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상처의 깊이가 그리 크지가 않아 지금 당장은 이 정도의 간단한 응급처치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칼에 베인 상처이기 때문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흉터는 남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여기까지만 하는 게 어떻습니까? 굳이 피를 더 보실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포기하고 다 털어두세요. 저도 여기까지만 하고 싶습니다."
"피? 이미 내 몸은 피로 얼룩져 있는 상태인데 또 피를 보겠다고? 참고로 나는 피를 정말 싫어하는데. 그래서 병원에서 피를 뽑을 때 두 눈을 꼭 감은 상태로 기겁하는 거 너도 잘 알지 않나?"
"......"
슬슬 참는 데 한계가 찾아오는 남자의 물음에도 윤기훈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가지 않은 채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중년인 척. 태연하게 농담까지 입에 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남자는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와 두 주먹으로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좋습니다. 되도록 좋게 끝내려고 했지만 계속 그렇게 나오시겠더라면 저도 방법이 있습니다."
이내, 예상했다는 듯이 윤기훈과 같이 입가에 미소를 그린 남자.
"뭐.....?"
"귀가 살짝 안 좋아지셨나 보군요. 저를 도발하는 그 태도. 솔직히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솔직히 계속 그런 태도를 보이길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믿지도 않는 신 따위에게 빌 정도로 말이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무슨 말이야 있겠습니까? 그게 그거지."
"설마... 그걸 찾았나?"
"아니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찾았으면 이렇게 당신을 살려둘 필요가 없었겠죠."
"그러면 날 죽이기라도 하게? 그것도 아니라면 내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거라도 만든 건가?"
"아니요. 저희가 마음만 먹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기억을 읽는 기계쯤은 만들 수야 있겠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고, 애초에 저희는 그런 쪽으로 시간 낭비하는 발명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윤기훈이 상당히 오랫동안 몸을 담고 있었던 이곳의 기술력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단순히 사람의 기억을 읽는 걸 만들 여유가 없을뿐더러 그런 것에 관심이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윤기훈은 갑자기 여유로워진 남자의 말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날 죽이지 않는다면 대체 뭐지?'
분명 남자는 윤기훈을 죽이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이용한다는 건데... 만약, 남자가 다른 방법의 고문이라고 말한다면 윤기훈은 크게 웃어넘길 것이었다. 왜냐면 이 취조실에 오기 전만 하더라도 끝이 없을 고통스러운 고문에 계속 시달렸으니까. 그리고 남자는 그 정도도 모를 바보가 아니기에 고작 고문 따위로 윤기훈의 무거운 입술을 열지 못하리라 짐작할 수가 있으니 고문은 아닐 거다.
"그럼... 뭐지?"
"궁금하신가요?"
"......"
"뭐, 어차피 알게 될 텐데 지금 알려드리죠."
그 질문에 남자는 취조실에 올 때 가져왔던 파일 세 개를 책상 위로 툭 던져두었다.
"죽지 않는 선에서 고문이란 고문은 거의 다 해 본 것 같았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다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가족이라는 존재. 이때를 대비해서 철저하게 숨겨 놓았던 가족이라는 존재를 저희가 찾아서 건드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말이죠."
".....!"
"믿기지 않으시겠죠. 당신의 능력으로 꼼꼼히 숨긴 사랑하는 가족인데 허무하게 발각이 되었다니. 다른 의미로는 저희가 당신의 가족을 찾는 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겁니다. 그리고 제 말이 사실인지 사실이 아닌지. 그에 대한 답은 여기에 있겠죠."
"그렇다면 이건.....?"
윤기훈의 눈앞에 보이는 파일들, 그 파일들은 속을 내비치며 열려 있는 게 아니라 닫혀 있었고, 윤기훈의 팔 또한 의자에 묶여 있는 상태인지라 파일의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윤기훈은 왠지 모르게 이 파일 안에 있을 것들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고 있었다. 아닐 거라고...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자신의 뇌를 조작하며 생각을 되새기며 눈을 의심하고 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단란한 가정이더군요. 당신의 직업을 숨긴 채로였다면."
남자는 파일을 손에 쥐며 말했다.
"예쁜 부인이 하나, 자랑스러운 아들이 하나, 그리고 귀여운 따님이 하나 있더군요?"
"......"
그제야 윤기훈의 여유로운 얼굴이 심각하게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쉴 새 없이 남자를 놀려대던 입술 또한 굳게 닫혀서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대신이라고나 할까. 윤기훈은 남자의 손에 잡혀있는 하나의 파일에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좋네요. 그 표정. 당신이 왜 자꾸 절 도발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은 표정이네요."
그리고 이내, 날카로워지는 윤기훈의 눈빛, 남자는 살기가 가득 담긴 윤기훈의 눈을 바라보며 낄낄 웃었다.
"어떻게.....?"
"어떻게 라니요.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저희가 찾는 데 상당히 오래 걸렸다고 하지 않았나요?"
파일을 열어 내용을 보며 말하는 남자.
"윤재한. 나이 21세. 장남이며 2살 차이가 나는 귀여운 여동생이 있고,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은 하였지만, 아버지가 없어 찢어지게 가난한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휴학한 뒤에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고 있네요. 기특하군요? 아들이. 버려진 어머니를 도와 돈을 벌다니. 기껏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말이죠. 낄낄."
"......"
한동안 가족의,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던 윤기훈은 이렇게 아들의 소식을 듣고, 그 소식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향해 비웃는 남자에게 증오심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건 남자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윤기훈의 잘못이기에 아무 말 없이 아랫입술만 강하게 깨물었다. 남자는 그런 윤기훈의 모습에 속이 시원해지며 파일을 도로 닫았다.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랑스러운 아들에 대한 정보인데."
"닥쳐.....!"
윤기훈은 방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여유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혹시 헤어지기 전에 가족과... 음, 아들과 불화가 있었나요? 이거 제가 죄송해야 하는 건가요?"
굳이 묻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남자는 짓궂게도 윤기훈에게 계속 물음을 던져왔다.
"내 가족을 어쩔 생각이지?"
"당신의 가족을 말입니까...? 풉...! 아하하하!"
남자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보려고 했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거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라도 자신을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윤기훈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아... 죄송합니다. 저희보고 우린 한 가족이라 입이 닳도록 말했던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웃음이 자꾸만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축축하게 젖어버린 눈가를 주머니 속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뭐,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도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니."
"설마.....?"
"걱정하지 마세요."
윤기훈의 얼굴 낯빛이 서서히 창백하게 물들어가기 시작하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기훈의 곁으로 다가가서는 걱정하지 말라며 어깨를 살포시 토닥여 주었다.
"저와 당신이 어떤 사이입니까? 한때는 동료였고 가족이었던 사이인데. 제가 쓰레기도 아니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남자의 자애로운 얼굴로 말하는 따뜻한 표정에도 윤기훈은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저라도 막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죠. 왜냐하면 이 사실이 상부로 올라갔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옛정이 있고 하니 단 한 명만 희생한다면 두 명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돕도록 하죠. 솔직히 저라면 예쁜 사모님과 따님을 지키고 안타깝지만, 아드님을 보내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애초에 여자들은 그다지 재밌지가 않으니까요. 해도 초반의 아주 소소한 재미일 뿐. 그리고 노예로 팔려나갈 뿐. 안 그런가요?“
"재한이를......“
"네. 장남이고 당신을 제외하면 유일한 남자인 재한 군이 말이지요."
"개새끼가!"
다시금 아들의 이름이 입에 담기자 윤기훈은 어떻게든 남자를 죽이기 위해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윤기훈의 발버둥에 책상과 의자가 덜컹덜컹하고 소리를 내려 움직이자 남자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를 벌렸다.
"어이쿠!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욕은 쓰지 맙시다. 또한, 제가 당신에게 당한 것이 있는데 고작 이 정도로 그러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닥쳐!"
"네네. 닥치죠. 뭐.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들어봐야 할 텐데요?"
"크으윽.....!“
그 망할 게임에다가 눈에 넣어도 전혀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들 재한이를 참가시킨다는 말 한마디에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도 사납게 달려드는 탓에 황급히 거리를 벌렸던 남자는 도로 윤기훈에게로 다가왔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윤기훈의 손이 남자에게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포기한 듯.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방금전과 다르게 처량하기도 하며, 여전히 강렬함과 원한, 그리고 분노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뒤섞여 흐트러져 있는 두 눈을 즐기면서 고문으로 인해 붕대가 칭칭 감겨있는 윤기훈의 큼지막한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별거 아닙니다. 위에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드님에게 저희 신기술의 대상으로 사용해 보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신... 기술?“
"예. 신기술이죠. 이 말만으로는 신기술이 뭔지 알 수가 없죠? 저도 그렇듯 잘 모릅니다. 신기술이란 거. 다만 저희는 이걸 혁명이라고도 부르고 신의 축복이라고도 부릅니다. 큭큭. 과학 기술로 만든 것을 신의 축복이라니 꽤나 재밌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게 뭔데?"
"음...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연구원이나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아드님께서 무사하시지 못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아아...! 삼촌이 되어서 우리 재한이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이제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흑흑."
"미친 새끼가! 재한이에게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생각이냐?! 건드리지 마! 건드렸다가는!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모두 다 죽여줄 테니까!"
"네네. 그거 기대가 되는걸요? 손발이 다 묶인 상태로 잡혀 온 당신이 말이요?"
"캬하하학!"
"이런. 이런. 고작 이런 걸로 벌써 짐승이 되었나요?
다시 시작된 발버둥. 결과는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는 발버둥을 치다 의자가 넘어가 바닥에 널브러지게 된 윤기훈의 뺨을 툭툭 쳐대며 말하자 윤기훈은 마치 짐승이라도 된 것마냥 입을 크게 벌려 남자의 손을 물려고 했다. 손을 빨리 빼내지 않았더라면 물려서 살이 뜯어져 나가 피가 철철 흘렀을 상황. 그래서 남자는 순간 마음이 졸였었다.
"이해가 되는 모습이네요. 저라도 아들이 죽은 것도 아닌데 살아있는 채로 실험체로 쓰인다면 미칠 테니까요. 아앗! 하지만 저는 아들이 없죠? 딸도 없고, 아내도 없고. 그러니 저한테 동정심을 얻어 도움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윤기훈 씨."
남자는 파일을 가져와 윤기훈의 허벅지 사이에 파일을 끼워 넣었다.
"그러니 간절히 빌어보세요. 신에게. 제발 재한 군이 가혹한 실험에서 살아남아 아버지인 당신을 구하러 와달라고 말이죠. 참고로 부탁 하나 하자면요. 재한 군을 구하기 위해서 그것의 위치를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기왕 준비해 둔 게 수포가 되면 안 되니까요. 뭐, 그런다고 멈출 제가 아니지만."
그 말을 끝으로 낄낄거리며 남자가 방을 나가자 윤기훈은 차가운 바닥에 볼을 붙이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곤 진정이 된 윤기훈은 꾹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재한아......"
마음 같아서는 알고 있는 것들을 전부 토해내서 아들인 재한이를 구하고 싶었던 윤기훈이었다. 하지만 재한이를 희생해서라도 끝까지 비밀을 엄수해야만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기에, 윤기훈은 어쩔 수 없이 아들이 곧 처할 상황을 알아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래서 윤기훈은 못난 아비를 둔 아들에게 사과했다. 듣지도 못할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