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54)화 (54/67)

54화.

지금 이게 무슨 질문이지? 나한테 지금 마조냐고 묻는 건가? 의재가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며 뭔 개소리냐는 듯 쏘아붙였다.

“있겠냐?”

사영도 지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가 아까 컨테이너랑 뭐가 다른데요.”

“야, 그런 데랑 비교를 해? 훨씬 깨끗하잖아. 이불 베개도 있고.”

“컨테이너 청소하고 이불 베개 갖다 놔봐요. 똑같지.”

“인천항으로 이사 가라고 고사를 지내네, 이게.”

사영은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피곤할까 봐 직접 해장국집에 데려다줬더니, 제대로 다리를 뻗을 수 있긴 한가 싶은 작은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차의재는 당연하다는 듯 낡은 운동화를 벗고 그 쪽방에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평소 같은 모습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눈에 밟히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사영은 자신을 도와주느라 구르다 온 사람에게까지 모질게 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의재가 성질에 안 맞게 처맞아가면서 가만히 있었을 생각을 하니….

“…….”

“야…. 너 표정 이상하다.”

“뭐가요.”

지금쯤이면 수송차가 도착했을까. 관리국에 넘기지 말고 직접 처리할걸.

이사영은 결국 자신의 원래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로 결심했다. 본래 계획은 차의재를 집에 데려다준 후 곧장 복귀하는 거였지만, 의재의 ‘집’이란 곳의 꼬라지를 본 이상 이런 곳에 그를 눕힐 수는 없었다. 사영은 자신이 손에 장갑을 꼈는지 확인한 후, 의재의 팔을 잡아당겼다.

“나와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의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사영이 고집스레 팔을 잡아당겼다.

“갈 데 있으니까.”

무언의 대치가 짧게 이어졌다. 기실 차의재는 고집으로는 어디 가서 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입을 꾹 다물고 노려보는 사영의 얼굴을 보니, 내가 애 상대로 버텨서 뭐 하나 싶은 생각이 슬쩍 고개를 드는 것이다. 의재는 어깨를 으쓱이며 운동화를 꺾어 신었다.

“알겠다, 알겠어. 뭔데? 더 부탁할 일 있어?”

사영은 말없이 다시 한번 비상 탈출 버튼을 찢었다.

잠시 후, 그들은 웬 집의 현관에 도착해 있었다. 해장국집을 과장 많이 보태 몇십 개 정도 붙여놓은 것만큼 컸는데, 단순히 크다기보단 휑하고 썰렁한 느낌이 더 강한 공간이었다.

의재는 기분이 묘해졌다. 사람이 사는 공간임에도 집에서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가 어딘데?”

“내 집.”

짧게 대답한 이사영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집안으로 향하더니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 포장된 상태 그대로의 간편식과 생수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이사영은 물을 꺼내 마시며 문 하나를 가리켰다. 화장실인 듯했다.

“씻어요. 갈아입을 옷 앞에 둘 테니까.”

이놈의 집은 화장실도 매우 넓었다. 의재는 안 그래도 온몸이 찝찝했기에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문을 살짝 열어 옷을 확인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속옷과 남색 실크 파자마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얘… 파자마 입고 자나?’

의재는 저도 모르게 파자마를 입은 사영을 떠올렸다가 빠르게 생각을 지워냈다. 그렇게 덩치 차이가 나는 편이 아닌데도 옷이 좀 남았다. 의재는 옷소매를 걷어 접은 후 사영의 인기척을 찾아갔다. 사영은 침실처럼 보이는 방의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힐끗 의재를 본 사영이 침대를 가리켰다.

“저기서 자요.”

그의 손끝에는 킹사이즈 침대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둘이 누워도 넉넉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영과 나란히 눕고 싶지도, 그렇다고 집주인을 두고 홀로 침대에 눕고 싶지도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나 그렇게 양심 없는 사람 아니거든? 베개 하나만 주면 돼. 바닥에서 잘게.”

“침대에서 자라고.”

“됐어. 침낭 있으면 침낭 주든가.”

하,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사영이 비웃는 소리였다. 그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요즘 누가 침낭을 들고 다녀요.”

“나 때는 침낭이 던전 필수품이었어, 이 자식아.”

“네 살 차이인데 X나 개꼰대인 거 알죠, 형. 누가 보면 10년 전부터 헌터 생활한 줄 알겠네….”

무섭도록 정확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말하는 순간 X 된다. 의재는 뻔뻔하게 대답했다.

“침낭에 누워서 자면 캠핑 같고 얼마나 좋아. 그리고 네가 너무 편하게 헌터 생활을 해서….”

“네네, 편하게 헌터 생활했으니까 오늘부터 불편하게 살게요. 누워.”

“남의 집까지 와서 침대 뺏는 양심 없는 새끼로 만들지 말아줄래?”

“손님 바닥에 눕히는 게 더 못된 새끼 같으니까 누우라고요.”

“넌 원래 개자식인데 왜 그런 걸 신경 쓰냐?”

“한 번만이라도 한 번에 말을좀 들으면 ̄”

“대등한 계약 관계, 이 새끼야. 내가 네 부하냐? 상하 관계가 아니고 대등한 ̄”

말다툼을 하다 보니 서로 발끈했는지 점점 기세가 끓어올랐다. 방 안의 가구들이 조금씩 달그락거리며 흔들렸다. 그러나 둘은 신경 쓰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휑한 집에 고래고래 두 남자의 음성이 울렸다.

우지끈!

방 안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리자 언성을 높이며 시답잖은 일로 말다툼하던 두 사람은 일순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커다란 매트리스와 부드러운 이불 한가운데가… 뻥 뚫렸다.

부서진 침대 앞에 나란히 선 사영과 의재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침대 프레임만 부서진 거라면 어떻게든 수습해서 잤겠지만, 매트리스까지 시원하게 뚫어버려 수습할 방법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다. 이 대문짝만 한 매트리스를 퀵 배송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마치 하늘에 있는 블랙홀처럼 구멍이 뻥 뚫린 매트리스를 바라보던 의재가 중얼거렸다.

“…물어줄게.”

사영이 빈정댔다.

“돈도 없으면서 뭘 물어주겠다고.”

“…마석 팔면 돼.”

“아, 씨X… 마석 얘기 꺼내지도 마요.”

사영이 으르렁댔다. 뒤따르는 말은 어딘가 투정 부리는 듯한 말투였다.

“그것 때문에 정빈이랑 사이좋다고 기사 났으니까.”

“…….”

의재는 숙연히 고개를 숙였다. 우연히 만나 대화 잠깐 했더니 열애설이 나버린 헌터들의 심정이 저랬을까. 이사영과 정빈은 정보를 교환하면서 해장국 먹은 게 전부인데. 그는 연예인과 헌터들의 가십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숙연한 의재 옆에서 팔짱을 낀 이사영이 중얼거렸다.

“…기다려봐요.”

그는 인벤토리에서 방독면을 꺼내 쓴 후 홀연히 사라졌다. 홀로 남은 의재는 슬쩍 매트리스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완벽히 반으로 갈라져 푹 꺼진 침대 프레임과 눈이 마주쳤다.

이건 해장국 몇 그릇을 팔아야 배상해줄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까탈스러운 이사영이 쓰는 것이니 적당한 가격은 아닐 것이다. 의재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 * * 

길드원 대부분이 퇴근하고, 몇몇 당직들만 회사에 남아있을 밤 11시. 하루를 마무리하고 누워서 우튜브나 커뮤니티를 둘러보기 딱 좋은 그 시간에,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 파도 길드 블라인드 게시판이었다.


 제목: [익명] <속보> 수면실 이불 베개 싹 털려…

240이 수면실 이불 베개 다 가져감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