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바닷물에 푹 젖어 몸도 마음도 축축해진 의재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뚝뚝 손을 꺾으며 뼈마디 소리를 내며 한 남자가 윽박질렀다.
“야 이 새끼야, 눈꺼풀 아래로 눈깔 굴리는 거 다 보인다. 일어났으면 재깍재깍….”
이번엔 무언가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속도와 공기의 흐름을 보아하니 주먹 같았다. 의재는 가만히 앉아 눈을 감은 채 발가락만 꼼지락댔다.
“눈을 떠야지!”
뻐억! 솜털처럼 가벼운 주먹이 뺨에 닿았다. 1초, 2초, 3초.
“으아악!”
비명은 의재의 입 대신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의재는 그제야 슬며시 실눈을 떴다. 주먹을 날린 스킨헤드가 시뻘겋게 부어오른 주먹을 움켜쥐고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조금 희미한 조명이 빡빡 밀린 머리에 반사되어 어지러이 사이키 조명처럼 반짝였다.
“내, 내 손!”
그가 발바닥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 브루스를 추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놈들이 야유했다.
“야 이 새끼야, 엄살 작작 부려!”
“뭔 주먹으로 얼굴 패놓고 저 지랄이야.”
“아, 엄살 아닙니다!”
주먹을 부여잡고 있던 스킨헤드가 울듯이 해명하자 무리에 섞여 있던 남자 하나가 큰 소리로 비웃었다.
“엄살이면 뒤진다. 어디 함 보자.
”진짜라니까요. 아….“
”…엥?”
주먹을 확인한 놈의 실실 쪼개던 얼굴이 조금씩 굳었다. 이내 황당하다는 얼굴로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 새끼 진짜 뼈 부러진 거 같은데요?”
“뭐?”
“아니, 얼굴에 강철을 발랐나. 왜 주먹으로 얼굴을 팼는데 주먹이 아작 나?”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저 새끼 머리를 각목으로 내려쳤는데 각목이 부러지긴 했거든요.”
“뭐야? 돌머리야? 돌머리도 스킬인가?”
주변에 있던 놈들이 웅성대며 모여들었다. 이런 상황은 곤란했다. 웬 허접이 처음 때려서는….
그때, 콧수염이 의재의 젖은 머리칼을 휘어잡고 고개를 젖혔다. 물에 젖긴 했지만, 한 차례 주먹으로 맞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말끔한 얼굴이었다. 얼굴 요모조모를 꼼꼼히 살펴보던 콧수염은 비열하게 웃었다.
“하, 이 새끼. 대놓고 쳐들어오더니. 뭐 믿는 구석이 있긴 한가 봐?”
“…….”
“야, 야. 니 반반한 낯짝 하나 뭉개는 건 일도 아니다. 어? 씨X,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드럼통에 공구리 치는 건 조온나 빨리 하거든. 너 하나 바다에 던지고 갈 시간은 있어, 새끼야.”
“…….”
“끝까지 입을 다무시겠다…. 하, 새끼. 연기 존나 못하네.”
다른 건 몰라도 연기 못한다는 말이 의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대한민국 헌터계 화제의 중심에 선 J이자 EZ로서 닥쳐온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연기력 원 툴로 극복해온 자신이었다. 물론 포커페이스 특성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이런 내가 발연기라니. 억울함에 뒤로 묶인 손가락이 조금 움찔했다. 콧수염을 기른 남성이 손을 까딱였다.
“그래, 말하고 싶게 해주지. 야, 연장 들어라. 이 새끼 뭔 희한한 스킬 자기도 있는 것 같으니까 연장으로 패.”
“예, 형님!”
빠루며 야구 배트, 각목 등을 든 우락부락한 남성들이 목이며 팔을 돌리며 다가왔다. 한발 물러난 콧수염이 비열하게 웃었다.
“좀 아플 거야.”
무리 맨 앞에 선 덩치가 입꼬리를 비틀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빡!
뼈가 두 동강 나는 소리는 생각보다 맑고 청아하다. 의재를 걷어찬 자세 그대로 선 남자가 눈을 크게 뜬 채 굳어 있다가, 곧 앞으로 고꾸라져 제 정강이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악! 으아악!”
“씨X, 뭐야?”
“아오, 저 머저리 새끼는 연장 놔두고 왜 지 다리로 패고 지랄이지?”
“저 새끼 이상합니다! 연장으로 패십쇼!”
“내가 한 말이 그거잖아, 멍청한 새끼야!”
“에, 에라이!”
덩치가 눈을 질끈 감고 못 박힌 배트로 조막만 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제법 크게 났지만 이번에도 깨진 건 머리가 아니었다. 배트는 중간 부분이 부러진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정작 맞은 놈은 살짝 고개가 기울어진 걸 제외하면 멀쩡했다.
‘이 새끼 진짜 돌대가린가?’
걷어차면 걷어찬 놈의 발가락이 부러지고, 주먹을 날리면 손뼈가 부러지고. 빠루, 망치, 야구 방망이, 각목으로 패면 도구가 부러진다. 사람 하나 패려다 다친 부상자를 한쪽에 모았더니 축구팀 하나가 나왔다. 이쯤 되니 납치범들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벽에 찰싹 달라붙은 놈들은 목소리를 낮춰 자기들끼리 속삭이기 시작했다.
“씨X, 이게 말이 되냐? 왜 맞는 놈보다 패는 놈이 더 아픈 거 같냐?”
“그니까요. 뭡니까 이게? 요즘 포션값도 존나 비싼데 다 쓰게 생겼어요.”
“행님, 너무 아픕니다.”
“아이씨, 쫌만 참아 봐라, 야.”
“뼈가 탈골됐는데도요?”
“전 부러졌습니다, 행님.”
“아, 저짝 가서 누워 있어봐!”
“아니, D급이라며. 씨X, A급을 D급으로 잘못 본 거 아니냐? B급이 D급을 팼는데 왜 B급 손목이 부러지는 거냐고. 물리 법칙이 이게 맞는 거야?”
“이건 헌터 사회의 붕괴다, 진짜.”
물론 다 들렸다. 사람을 패다가 사회의 붕괴를 논하는 대화를 듣는 의재도 덩달아 심란해졌다.
‘이 새끼들… 왜 이렇게 약하지?’
의재의 예상보다 납치범들이 너무 약했다. 장단을 맞춰주며 정보를 캐내려고 해도 상대가 헛손질만 하니 답이 없었다. 이렇게 약한 놈들이 무슨 깡으로 마약 밀수를 하는 걸까? 이러면 기껏 납치당해 바닷물까지 뒤집어쓴 보람이 없지 않은가.
뒤에 빠져 있던 콧수염이 역정을 냈다.
“야 이 새끼들아, 일 빨리 마무리하고 날 밝기 전에 움직여야 할 거 아냐! D급 짜리 하나 처리 못해서 이 지랄이야!”
날 밝기 전에. 그 단어가 의재를 자극했다.
이 몸은 새벽같이 찾아오는 좀비들에게 해장국을 대접해야 하는 사명이 있단 말이다. 아까운 시간 써가면서 기껏 붙잡혀줬는데 이놈들은 협박도 못하고, 사람을 괴롭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정보를 술술 불지도 않았다.
‘뭐 이런 되다 만 놈들이 다 있지?’
별다른 정보도 얻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부러진 다리로 탭댄스 추는 꼴이나 구경하려니 슬슬 짜증이 났다.
결국 차의재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얘들아, 안 되겠다.”
누가 봐도 납치범 우두머리가 할 말을 납치당한 피해자가 하고 있었다. 납치범들이 벽에 찰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저걸 왜 저 새끼가 말하죠?”
“저는 행님이 말씀하신 줄 알았슴다.”
“몰라, 나 이제 좀 무섭다.”
“내가 최대한 장단을 맞춰주고 싶었는데, 너네는 수준이 너무 떨어져.”
그러거나 말거나, 의재는 철제 의자에 케이블 타이로 칭칭 묶인 팔을 힘차게 위로 뻗었다. 뚜두두둑! 몇 겹이나 겹쳐 묶어둔 케이블 타이가 만세 단 한 번에 찢겨나갔다. 묶인 다리 역시 마찬가지로 힘차게 들어 끊어버렸다.
한순간에 케이블 타이 몇십 개를 잃은 납치범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의재는 철제 의자에서 일어나 젖은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리고 납치당한 후 계속 앉아 있어 친숙하기까지 한 의자를 반으로 접어든 후,
콧수염을 향해 내던졌다!
꽈아앙!
“꺼흑.”
역시 자신은 야구 선수의 꿈을 꿨어야 했다고, 차의재는 그렇게 생각했다.
피할 새도 없이 안면으로 철제 의자를 맞은 콧수염이 눈을 까뒤집고 고꾸라졌다. 벌렁대는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의재는 조금 흐트러진 젖은 머리를 한 번 더 쓸어 넘기고, 벽에 달라붙은 놈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목이 베일 듯한 예리한 살기가 납치범들을 향해 쏟아졌다. 검은 눈이 흉흉하게 번뜩였다.
“빨리 한 번에 덤벼, 씨X.”
* * *
소수 정예 길드, 파도의 전투 지원 1팀은 이름만 보면 전투팀을 지원하는 부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전투 지원 1팀은 평소에는 평범하게 길드 업무를 처리하다가, 이사영의 명령이 내려오면 그 명령을 최우선으로 수행하는, 일종의 특수팀이었다.
이 시점에서 파도 길드 전투 지원 1팀 소속 헌터는 두 명이었다.
첫 번째, 랭킹 34위, 은신과 잠입, 정보 수집 및 조작의 달인 ‘아주작은기적밍기적’ 서민기.
두 번째, 랭킹 50위, 소위 ‘문따개’라 불리는 청년, ‘낭만오프너’ 최고요.
최고요, 헌터 네임 낭만오프너. 그는 해외 출장을 떠난 서민기를 대신해 아주 중요한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었으니, 바로 해장국집 아르바이트생을 감시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이사영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최고요의 타깃인 해장국집 아르바이트생은 이사영에게 무슨 비밀 임무를 받았는지 새벽마다 인천항으로 향했다. 최고요도 덩달아 새벽잠을 포기하고 새벽마다 인천항으로 출근해야만 했다.
그리고 10,000배로 줌을 당길 수 있는 핸드폰 카메라로 아주 멀―리서 사진을 찍어 사영에게 보고했다. 서민기가 알려준 꿀팁이었다. 해장국집 아르바이트생이 감이 더럽게 좋아서 가까이 다가가면 들킨다나.
오늘도 최고요는 개미만 한 아르바이트생의 사진을 찍어 보낸 후, 무선 이어폰을 끼고 우튜브 예능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길드장님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길드장님 : 타깃 상태 확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