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49)화 (49/67)
  • 49화.

    7, 의외의 다정

    이야기를 마친 뒤, 가을은 내일 학교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를 정리하는 손에는 여전히 검은 기운이 요동치고 있어 의재는 응급실이라도 가는 게 어떻겠느냐 몇 번이고 권했지만, 그녀는 연신 사양하며 다시 손을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앞으로는 꼭 전해야 할 조각이 아니라면 찾아오지 않을게요. 불안하실 테니까요.”

    “그럴 것까진 없는데.”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가을이 미닫이문으로 향하자 의재는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 미리 문을 열어주었다. 살펴 가라며 배웅하려던 것도 잠시, 순간 스치는 생각에 그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네! 말씀하세요.”

    가을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관리국과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영이 쫓고 있는 놈들에 대해서도 알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의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혹시 인공적으로 각성자를 만드는 놈들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요?”

    “네? 아… 네! 알아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답변이 돌아왔다. 의재는 조금 얼빠진 얼굴로 가을을 바라보다 되물었다.

    “…알아요?”

    “네! 정빈 아저씨가 얘기하는 거 조금 들었어요. 그쪽도 종말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움직인다곤 했던 것 같은데….”

    가을이 생각만 해도 싫은 듯 슬쩍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사람들을 납치해서 실험하는 놈들이라면서요. 목적이 같다곤 하지만 최대한 안 엮이고 싶어요.”

    마약에, 납치에. 종말은 그냥 구실이지, 이건 뭐 범죄자 집단이 따로 없었다.

    “그 외에 들은 건 혹시 없어요?”

    “네? 음…. 아.”

    가을이 눈을 굴리다가 대답했다.

    “인천항 쪽에 뭐가 있다…고 했던 것 같아요. 아저씨가 통화하는 내용을 훔쳐 들은 거라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요.”

    자세히 몰라 미안하다는 말에 의재는 아니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주머니 속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가을이 종종대며 골목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는 뒤를 지켜봐주었다.

    가게에 홀로 남은 의재는 일부러 밤을 꼬박 새워 장사 준비를 하면서 의도치 않게 보게 된 편린들을 곱씹었다.

    직접 세계의 편린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리고 서해 균열과 세계의 편린 속 배경이 동일하지 않았다면 쉬이 믿지 못했을 이야기였다. 윤가을이 정신계 스킬로 자신을 홀리는 줄 알았겠지.

    ‘다른 세계라.’

    이 세계와 흡사한 다른 세계가 정말로 존재했던 걸까? J가 죽고, 정빈이 죽고, 목태오, 마태복음이 죽고, 배원우는 왼팔을 잃은 세계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건이 존재했을 터. 윤가을과 차의재가 본 것은 극히 짧고, 극히 작은 과거의 한순간이었으리라.

    종말이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지는 알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눈을 감고 무작정 앞으로 걷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각성자 관리국도 J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 거겠지.

    ‘…….’

    종말이 찾아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때도 자신은 싸울 수 있을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단골 헌터들의 선물 세례와 갑자기 다가온 종말 때문에 의재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종말의 티저 이벤트처럼 찾아온 혼란을 바쁜 일상으로 지워내던 중, 사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사영 : 해줄 일이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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