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46)화 (46/67)
  • 46화.

    6, 세계의 편린

    해장국집 아르바이트생이 각성했다는 사실이 해장국집 단골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퍼진 후, 단골들 사이에서 J의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마석 판매자 EZ가 이 동네 주민으로 추정된다는 사실도 잊힌 지 오래였다.

    그들의 모든 관심은 ‘알바님 각성 정말 축하합니다. 근데 해장국집 문 닫나요?’로 쏠렸다.

    모름지기 각성한 헌터는 좋은 길드에 들어가서 4대 보험 보장받고 월급 따박따박 받으며 일해야 한다. 등급이 낮아도 길드에 사무직으로 취직하는 게 일반 회사에 취직하는 것보다 좋았다.

    그게 보편적인 인식이고, 단골들도 대부분 길드에 속해 있으니 더더욱 그런 인식이 강했다. 게다가 성실한 해장국집 아르바이트생은 뭘 해도 성공할 인재니까 모든 길드에서 모셔가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길드에 들어가면… 해장국은 누가 끓여준단 말인가?

    주인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시고, 빨리 먹고 많이 먹는 헌터들의 주문을 홀로 감당하실 수 없다. 게다가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해도 지금의 알바생, 차의재처럼 훌륭하게 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어쨌든 그의 해장국에선 30년 동안 해장국만 끓인 장인의 맛이 났으니까!

    조용히 살고 싶은 차의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는 해장국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었다. 때문에 한국 헌터 사회에서 높은 자리를 하나쯤 차지한 단골들은 자기네들끼리 기적적으로 의견 합의를 해냈다.

    이름하여 해장국집 분리수거 골목 비밀 회동이었다.

    안 타는 쓰레기 앞 플라스틱 박스에 용케 걸터앉은 배원우가 프로틴 분말 스틱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아 뭐, 인재 개발 좋지. 스카우트도 좋고. 다 좋은데 상도덕 지키면서 다리 뻗읍시다, 한 팀장. 본인이 길드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데. 어? 우리가 강요한다고 마음이 바뀌겠냐고. 본 인 의 사. 그게 중요하지. 우리 해장국 길이길이 보전해야 하잖아요?”

    타는 쓰레기 앞에 선 한 팀장도 중지로 안경을 쓱 밀어 올렸다.

    “소수 정예라고 해놓고 온갖 인재들을 싹쓸이하는 파도 길드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바라던 바입니다, 배원우 부길드장. 들어가서 해장국 한 그릇 하시죠.”

    “이야, 이 양반 처음으로 마음에 드네. 가자! 소주도 두 병 시킵시다.’

    “좋죠.”

    파도의 부길드장 배원우와 HB길드의 인사팀장 한 팀장은 해장국집 근처 분리수거장에서 모종의 거래를 마치고 악수했다. 이후 차의재에게 길드 가입 권유를 하는 헌터는 사라졌다. 의재에겐 좋은 일이었다.

    대신, 비밀스러운 선물 공세가 늘었다.

    의재는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말끔하게 포장된 선물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이 치켜들었다.

    ‘특별 한정! 폐관 수련 DIY 키트’

    “이거 주방 앞에 떨어트린 분.”

    “…….”

    “곧 폐관 수련 들어가실 분 자수하세요.”

    침묵. 헌터들은 슬슬 눈을 피했다. 의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무협지도 아니고 폐관 수련은 무슨 폐관 수련. 게다가 DIY를 아무 데나 붙여대는 꼴은 균열의 날 이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의재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5분 안에 안 나오시면 그냥 버리겠습니다.”

    한 헌터가 불쑥 고개를 들고 외쳤다.

    “안 됩니다! 폼켓팅 뚫고 간신히 산 한정판인데!”

    “폐관 수련하러 가실 건가요.”

    의재가 소주 2병 한정 판매 옆에 자리잡은 새 A4 용지를 가리켰다.

    !!!해장국집 문 안 닫음!!!

    화환, 선물, 현수막 금지

    알바생에게 등급 묻기 금지

    알바생에게 길드 가입 권유 금지

    헤드 헌팅 금지

    위 사항을 한 가지라도 어길 시, 해장국집 출입 금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