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45)화 (45/67)

45화.

의재는 염색약을 조심히 테이블에 옮겨 쌓은 후, 진심을 담아 고개를 꾸벅였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허니비가 염색약 포장지에 그려진 옆모습대로 포즈를 취했다. 이번에는 의재도 진심을 듬뿍 담아 박수를 쳤다. 한동안 관심을 즐기던 그녀가 아, 하고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참, 쌀 화환도 좋은 거예요. 추가금 내고 임금님 이천 쌀로 바꿨다고요. 아침에 소식 듣자마자 한 팀장님이랑…”

“ 혹시 소식을 어디서 들으신 거죠?”

의재는 그게 제일 궁금했다. 제일 먼저 화환을 보낸 허니비와 한 팀장은 어디서 소식을 들었을까? 지금 우르르 몰려와 선물 공세를 빙자한 해장국집 접지 말라는 어필을 하는 헌터들은 또 어디서 소식을 들은 거고? 눈을 동그랗게 떴던 허니비가 이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팀장님, 설명 좀.”

“네, 알겠습니다.”

한 팀장이 안경을 쓱 밀어 올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길드들은 각성 센터에 정보원 겸 스카우터를 심어둡니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인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서랄까요. 괜찮은 인재가 있으면 바로 보고가 올라오고, 영입을 위한 밑 작업을 시작하죠.”

“제가 괜찮은 인재는 아닌 것 같은데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차의재님은 각성 전에도 저희 길드에 반드시 모셔 오고 싶은 인재상이었습니다.”

한 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허니비도 옆에서 설명을 보충했다.

“원래 스카우터는 관리국 직영 센터만 보거든요? 광진구 임시 센터 같은 곳은 거의 신경 안 써요. 직영 센터 물이 훨씬 좋으니까.”

그렇겠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싶고, 높은 등급을 받고 싶은 각성자들은 직영 센터에서 철저하게 검사받을 것이다. 한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광진구 임시 센터에 균열이 터졌지요. 도심 한복판에서, 심지어 각성 센터에 예고 없이 나타난 균열이라 모든 기관의 관심이 그곳에 쏠렸습니다. 아무래도 국민의 불안감과 직결된 문제라서요.”

물론 그렇겠지. 균열관리청도 미처 예고하지 못한 돌발 균열이 발생하면 불안한 게 당연하다. 이번에는 특히 재수 없게 각성 센터에 생성되어 다들 그쪽으로 신경이 쏠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들 어떻게 된 일인지 정보를 긁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생존자 목록에서 차의재님의 이름을 발견한 거죠.”

그러니까, 균열만 아니었으면 밍기적의 계획대로 조용히 등록하고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의재는 이야기를 듣다 말고 문득 이마 위 핏줄이 불툭 튀어나오며 열이 확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 팀장의 말에 따르면 그놈의 균열 때문에 모든 게 틀어졌단 소리였다. 균열의 나비효과는 실로 대단해서 의재를 해장국집 팬 사인회에 앉혀 놓고야 말았다.

‘개 같은 균열 같으니.’

팬 사인회는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의재는 선물들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기가 다 빨린 채 저녁 장사를 준비하러 비척비척 주방으로 향했다.

게다가 저녁에는 바쁜 정빈이 직접 행차하시는 바람에 의재는 작은 기력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안녕하십니까? 각성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빈이 건넨 건 각성자 관리국 로고가 박힌 종이봉투였다. 누가 봐도 공문서가 들어있을 것 같아 감히 손대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다. 구석에 앉아 해장국을 먹던 배원우가 투덜댔다.

“뭐야, 그 소환장, 경고장, 벌금 통지서 들어있을 것처럼 생긴 봉투는.”

“하하, 설마요.”

‘받아봤나 보지.’

그의 말에선 직접 겪어 본 사람만 알만한 디테일이 묻어났다. 의재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 안에 뭘 넣은 건지 생각보다 두툼하고 묵직했다. 정빈이 온화하게 웃었다.

“한번 열어보시겠습니까? 차의재 님께 필요한 것으로만 가득 채워왔습니다.”

‘싫어.’

하지만 손은 착실하게 종이봉투를 열고 있었다. 그리고, 의재의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신규 헌터를 위한 헌터 기초 가이드』

『신규 헌터를 위한 헌터 세금 납부 가이드』

『헌터를 위한 복지정책』

『원 터치! 헌터 마켓 이용 방법』

『한눈에 알아보는 각성자 특례법』

관공서에 꽂아놓을 법한 각종 팸플릿과 두툼한 책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주변 헌터들에게서 작은 야유가 쏟아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정빈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였다.

“원래 헌터 등록을 마치면 관리국 헌터에게서 여러 가지 설명을 들어야 하는데… 차의재님은 불의의 사고로 듣지 못하셨잖아요? 그래서 꼭 알아야 하는 몇 가지 사항만 추려서 가져와 봤습니다.”

꼭 알아야 하는 게 이 정도라니. 요즘 헌터들은 알아야 할 게 정말 많았다. 의재의 얼굴이 우수에 젖었다.

‘씨X, 요즘 헌터 쉽지 않네.’

“시간 날 때 읽어보시고, 혹시 이해가 안 되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정빈이 정장 안주머니에서 빳빳한 명함을 꺼내 팸플릿 위에 놓았다.

각성자 관리국 현장 대응 1팀

팀장 정빈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