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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40)화 (40/67)

40화.

한편, 의재는 균열의 주인이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보랏빛 등나무꽃이 길게 늘어진 아치는 거대한 나무줄기와 덩굴로 조금의 틈도 없이 틀어막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의재는 나무줄기를 주먹으로 툭 쳐보았다. 안이 꽉 찬 듯 옹골찬 소리가 났다. 균열의 주인은 이 안에 있는데, 어째 입구를 뚫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신중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균열의 주인은 내부 환경과 관련 있는 형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균열은 거대한 숲이니, 주인도 식물형 몬스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불로 지지면 편할 텐데.’

하지만 의재는 비흡연자라 작은 라이터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예전에는 만약을 대비해 인벤토리에 라이터와 토치 하나쯤은 챙겨 다녔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강철 같은 것도 아니고….”

이런 경우, 대부분 해결 방법은 하나였다.

“때리다 보면 부러지겠지!”

쾅! 쾅! 쾅! 매정한 주먹이 줄기에 쇄도했다. 주먹이 닿은 줄기가 움푹 파이기 시작했다. 곧 나무 하나가 우지끈 부러졌다. 그렇게 얼마나 부러트리며 돌아다녔을까, 한 나무의 갈라진 틈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의재는 부러진 나무를 뜯어내고 그 안을 확인했다.

[주인의 보금자리, ‘생명의 정원’에 진입하였습니다.]

색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 한가운데, 거대한 사슴 한 마리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엎드려 있었다. 의재는 꽃밭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인기척을 느낀 듯 사슴이 고개를 들었다. 푸른색 눈이 의재에게 향했다. 침입자를 발견한 사슴이 거칠게 포효했다.

고오오오오….

정원 전체가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의재는 부처님 부채를 고쳐잡았다. 머리에 꽃이 달린 뿌리 모양 몬스터들이 꽃밭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수십 마리씩 기어 나와 그를 둘러쌌다. 사슴이 다시 한번 포효했다.

고오오…!

쾅! 뿌리들은 의재의 팔다리를 노리고 기어 왔다. 의재는 부채를 휘둘러 달려드는 뿌리를 빠르게 쳐냈다. 하지만 열 마리를 쳐내면 열다섯 마리가 다시 기어 나왔다. 아마 이 정원의 꽃이 전부 몬스터겠지.

의재는 숨을 훅 들이마신 뒤 부채를 땅에 꽂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콰아앙!

부채에서부터 시작된 푸른 충격파가 정원을 뒤흔들었다. 몬스터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다. 기어 나오던 뿌리들도 녹색 즙을 뱉으며 축 늘어졌다.

사슴이 분노한 듯 거대한 뿔을 흔들었다. 이제는 작은 뿌리 대신 아치문을 틀어막았던 덩굴과 굵은 나무줄기들이 땅에서 솟아났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결국 잡을 수야 있겠지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었다. 해장국집의 안위와 깔끔한 육수를 위해서라도 빠르게 끝내야 했다. 지금 자신의 목적은 빨리 가게로 돌아가는 것이지 균열을 닫는 것은 수단이었다.

의재는 너덜너덜해진 부처님 부채를 후드 앞주머니에 넣었다.

‘죄송합니다, 부처님. 어쩔 수 없어요.’

그는 항상 제 몸뚱이를 믿고 싸웠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쓰며 복잡하게 싸울 필요 없이, 튼튼하고 날렵한 몸만 있으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약화 저주에 걸린 상태다.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는?

‘…다른 방법을 써야지.’

의재는 인벤토리에서 새까만 검을 꺼냈다. 도신부터 손잡이까지, 모든 게 칠흑빛인 검은 그의 손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손에 착 감겼다.

‘몸으로 안 되면 도구를 사용한다.’

[바실리스크의 송곳니 (S)

■■■에 은거하는 장인이 바실리스크의 송곳니를 벼려 만든 검. 자격 없는 자에겐 검을 쥐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제작자: ■■■]

[적합성 심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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