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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23)화 (23/67)
  • 23화.

    “형을 원해요.”

    시선이 맞부딪히고, 의재도 일단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어색하게 웃었다.

    뭐? 알려지지 않은 사람? 아무도 그 존재를 몰라? 의재는 가면을 쓴 자신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학습 만화와 언젠가 스치듯 보았던 다큐멘터리 등을 떠올렸다. 나만큼 유명했던 사람도 없을 거다, 이 자식아….

    “실력이 좋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 아무도 모르면 더 좋고.”

    “…….”

    “조건이 까다롭죠?”

    사영은 소리 없이 걸음을 옮기며 의재의 곁을 천천히 돌았다. 수풀 속에 숨은 뱀이 기어 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적임자 찾는 건 슬슬 포기할까 했는데, 딱 형이 나타난 거예요.”

    “…….”

    “운명처럼.”

    “운명론자야?”

    “그딴 X같은 거 안 믿었었는데, 이제부터 좀 믿어볼까 싶네.”

    어느새 사영은 의재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그가 허리를 살짝 굽혔다.

    “형에 대해 좀 알아봤어요.”

    검은 손가락이 의재의 어깨를 휘감았다. 손가락의 주인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다니던 고등학교는 물론, 집 주변까지 균열에 통째로 휩쓸려서 뭘 찾을 수가 없고…. 양친은 균열의 날에 죽은 데다, 남은 친척조차 없어서 캐낼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어디서 일을 했으면 계약서가 있을 텐데 계약서도 없고, 은행 거래 기록도 없고, 핸드폰 개통도 몇 달 전이 처음이야. 그 전 기록은 찾지도 못해.”

    “…….”

    “여기 주인 할머니나 조카도 진짜 친척이 아니죠? 생판 남이잖아.”

    의재는 침묵했다. 사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더라.”

    그야 당연하다. J로 활동하는 동안, 의재는 J였지 차의재가 아니었으니까. 이사영이 찾아 헤매던 ‘차의재’의 흔적이 없을 만도 했다. 사영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원래는 어떤 조건을 부르든 다 맞춰주면서 좋게 스카우트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

    “지금 형 안중에는 이 가게밖에 없는 것 같고.”

    나긋하게 들리던 음성이 귓가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의재는 저도 모르게 잠깐 숨을 참았다.

    “형이 원하는 게 있긴 해요?”

    원하는 것?

    세상에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처절한 비명과 절규가 들린다. 살려달라며 발에 엉겨 붙는 손들과 코끝에 진동하는 피비린내는 예기치 못한 순간마다 불쑥 고개를 디민다. 살점과 뼛조각 하나라도 챙기려 허겁지겁 시체 더미를 헤집던 질퍽한 감각이 선명하다.

    차의재는 할 수만 있다면 균열에 버려지듯 남겨진 시체들을 꺼내오고 싶었다. 홀로 살아 돌아와서 도망치듯 이곳에 숨었다지만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주고 싶었다.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의무를 다하고 싶었다. 그곳은… 너무 외로우니까.

    하지만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래서 차의재는 원하는 게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없어.”

    “…그래요?”

    의재가 짧게 대답하자 사영이 느리게 눈을 깜빡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었다.

    “그럼 내가 하나 제시해볼까요.”

    그는 허공에서 태블릿을 꺼내 의재의 앞에 놓아주었다. 화면 위로 안경을 쓴, 예민해 보이는 남자의 사진이 보였다. 사영은 의재를 뒤에서 감싸듯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사진을 천천히 옆으로 넘겼다. 백발의 긴 머리를 하나로 낮게 묶은 남자는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남우진이라고 알아요? A급 힐런데.”

    이사영에 대해 찾아볼 때 본 기억이 있었다.

    ―대한민국 현 랭킹 6위, 사서(司書) 남우진. 서원 길드의 수장. 대한민국의 유일한 A급 힐러. 각성하기 전에는 대학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였기에, 각성 전 특기가 각성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대충 그런 사람이었던가.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듯해 일단 고개를 끄덕이자, 사영이 빙그레 웃었다.

    “주인 할머니 다리, 남우진한테 치료받는 게 어때요.”

    “뭐?”

    “다리가 불편하다고 들었는데.”

    제자리에서 2cm 떠오르는 능력부터 빌딩 한 채를 들어 올리는 능력까지. 균열의 날 이래로 각성자의 수만큼 다양한 능력이 나타났지만, 타인을 치료하는 스킬을 가진 각성자는 매우 드물었다. 차의재가 활동할 시기에는 미국의 B급 각성자 한 명이 전부였을 정도로.

    심지어 한국의 유일한 A급 힐러라니. 보통 사람들은 만날 수조차 없는 인간일 터. 의재는 어이가 없어서 짧게 웃었다.

    “A급 힐러가 일반인을 치료해준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서원 길드랑 저희는 협력관계라 사람 하나쯤은 치료해달라고 할 수 있어요. 각성 전에는 정형외과 전문의였던 사람이라 일반 진료도 가능하고.”

    “…….”

    “어때요?”

    끔찍하게 달콤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차의재는 달콤함에 취해 주변을 살피지 않을 만큼 어리지 않았다. 이 모든 거래와 조건은 본질이 아니라 주변부에 속하는 것일 터였다.

    “이사영.”

    “네, 형.”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

    “…….”

    의재는 고개를 돌려 사영의 보랏빛 눈을 마주했다. 그는 의재의 얼굴을 관찰하듯 빤히 보고 있었다. 의재는 시선을 피하는 것 대신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사람을 밑바닥까지 탈탈 털어서 조사하고, 좀 약한 구석을 찾아서 후려치려다가, 당근 하나 던져주면서까지 굳이 날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뭐야?”

    “…….”

    “여기서 거절하면 내가 각성자인 것도 동네방네 까발릴 것 같은데.”

    “…….”

    “너야말로 원하는 게 뭐야?” 

    “뭐….”

    사영이 웃음기 없는 서늘한 눈으로 의재의 얼굴을 훑었다. 여태까지 빙빙 돌려 구슬리던 것 치곤 꽤 빠르게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 방법도 고려하긴 했죠.”

    “…….”

    “하지만 단순히 협박하는 건 하책이고….”

    “…….”

    “그런 게 통할 사람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거든요.”

    “그나마 괜찮은 판단을 했네.”

    “칭찬 고마워요. 아무튼, 답을 해주자면.”

    짧은 침묵이 흘렀다. 사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형이 국자로 후려쳤던 놈, 기억해요?”

    당연히 기억한다. 그놈이 아니었다면 이사영과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있을 일도 없었으니까. 의재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영이 검지로 태블릿 액정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몇 년 전부터 수상한 마약 하나가 돌기 시작했어요.”

    “…….”

    “물론 일반적인 약물이나 마약은 각성자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데…. 그 마약은 이상하게도 엄청난 반응을 보였죠.”

    “예를 들면?”

    “공격성 상승, 중독. 그리고…”

    긴 손가락이 화면에 또 다른 사진을 띄웠다. 기괴하게 비틀린 몸 곳곳에 새까만 가시가 튀어나와 얼핏 보면 말라비틀어진 나무 같은… 과거에는 인간이었을 무언가였다. 의재도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신체 변이.”

    문득 처음 만난 날, 이사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안. 이 새끼는 아는 게 없네. 뇌가 약에 절었거든.’

    이사영이 패고 있던 놈은 이 마약에 중독된 각성자였나. 사진 속 존재는 그때 보았던 남자보다도 더 인간보다는 몬스터에 가까운 형태였다. 부자연스럽게 꺾인 사진 속 신체를 관찰하던 의재가 중얼거렸다.

    “약만 먹었을 뿐인데 이렇게 된다고?”

    “…그게 귀찮은 점이지.”

    대답이라도 하듯 따라 중얼거린 사영이 태블릿 화면을 껐다.

    “아무튼, 나는 이 마약을 뿌리는 놈들을 찾고 있어요. 그런데,”

    “…….”

    “나나 내 길드원들은 이미 얼굴이 너무 팔린 사람들이라… 조금만 깊게 파고들면 바로 꼬리가 끊길 거예요.”

    파도 길드는 인원이 적은 대신 소속 헌터 하나하나가 유명한 집단이었다. 소수인 만큼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띌 수밖에 없을 터였다. 추적이나 정찰의 대상이 각성자라면 치명적인 핸디캡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집어넣을 수도 없지. 그 새끼들한테 죽거나, 똑같이 약에 취해서 기어 다닐 테니까.”

    ‘실력이 좋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 아무도 모르면 더 좋고.’

    본래 꼭꼭 숨은 상대를 추적하려면 이쪽도 비슷할 정도로는 은신한 채 쫓아야 하는 법이다. 심지어 상대는 공격성이 강화된 각성자이니만큼, 각성자와 싸워 이길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나서야 한다.

    차의재가 생각해도 이사영이 요구한 조건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 조건에 딱 맞는 게 자기 자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 왜?”

    “응?”

    “너는 왜 그놈들을 찾는 건데.”

    이사영은 대체 왜 그들을 찾으려는 걸까?

    각성자들을 위해서? 아니.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그럴 리가. 일반인 보호를 위해? 설마.

    지금까지 봐온 대로라면 이사영은 대의명분 따위를 위해 그들을 쫓을 인물은 아니었다.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의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사영은 오로지 그 자신의 기준대로 움직이는 인간이다. 대한민국 1위라는 프라이드도, 책임감도, 일반인 보호를 1원칙으로 세운 각성자 특례법조차도 이사영에게 특별한 동기가 될 순 없을 것이다.

    “…….”

    침묵하던 사영이 입술 위로 검지를 세웠다.

    “이 이상은 비밀.”

    “야.”

    “형이 거래하겠다고 하면 말해줄게요.”

    “…….”

    “참, 마약 이야기는 대외비니까 비밀 지켜요. 안 그러면 정빈 또 여기 찾아온다.”

    이 자식, 비밀 알려준답시고 나한테 족쇄 채운 거 아냐? 의재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반대로 사영의 얼굴에는 미소가 완연하게 돌아왔다.

    이사영은 태블릿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아까까지 자신과 가까이 닿아 있던 의재의 어깨를 두어 번 가볍게 주물렀다. 손을 탁 쳐내는 행동에도 그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소리 내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의재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적였다.

    “빨리 가라. 마감해야 돼.”

    “네에.”

    이사영은 주섬주섬 방독면을 썼다. 어느새 다시 수상한 방독면이 된 사영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뭐야, 악수라도 하자는 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자니 검은 장갑을 낀 손끝이 까딱였다.

    “핸드폰.”

    “왜?”

    “번호 찍어주게.”

    “필요 없어.”

    “내 번호 비싸요.”

    “네 번호도 토마토 마켓에 팔아버린다.”

    “그럼 나랑 자주 보게 되는 거지, 뭘.”

    협박 아닌 협박을 하자 사영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러면서도 손을 거둘 생각은 하지 않아서 의재는 결국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설사 거래를 거절하더라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지막 보루 하나쯤은 남겨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빠르게 번호를 입력한 사영은 미련 없이 가게를 떠났다. 홀로 남은 의재는 연락처 앱을 켰다.

    그의 연락처에는 원래 단 두 개의 번호만 저장되어 있었다. 할머니와 하은이의 집 전화번호와 하은의 핸드폰 번호. 이외에 다른 번호를 저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유일했던 연락처 아래로 새로운 이름이 추가되었다.

    [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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