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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21)화 (21/67)
  • 21화.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가게 안에 등장하자 조금이나 풀렸던 분위기가 다시 꽝꽝 얼어붙었다. 밥알을 씹던 헌터들은 그대로 저작운동을 멈췄고 사레가 들릴 뻔한 누군가는 정신력으로 그걸 참는 지경이었다.

    구부정하게 상체를 숙이며 들어오던 방독면도 상황을 파악한 듯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이 흘렀다.

    불청객 둘 중 먼저 적막을 깬 건 문에 버티고 선 쪽이었다.

    “이상하네.”

    사영이 빈정거리듯 뱉으며 홀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왔다.

    “왜 공무원이 여기에 있지?”

    정빈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저야 물론 저녁 먹으러 왔죠. 설마 이사영 님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응…. 한가해 보이네.”

    “하하, 딱히요. 이사영 님이 들쑤시지 않으셔도 대한민국 공무원은 항상 바쁩니다.”

    명백히 가시가 있는 말에도 사영은 코웃음을 치더니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사영보다 먼저 그 테이블에 앉아 해장국을 푹푹 퍼먹고 있던 헌터는 헉,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더니 테이블에 돈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듯 튀어 나갔다.

    아이고, 저 망할 자식들이 우리 손님 다 내쫓네. 한 명이 나가자 덩달아 들썩이기 시작하는 다른 헌터들의 엉덩이를 보며 의재는 아련한 얼굴을 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불청객은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뵈었으니… 이사영 님, 마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이야기할 만한 사안은 아니거든요. 슬슬 공식 연락 좀 받아주시겠어요?”

    “해장국 하나.”

    아주 완벽한 무시였다. 그러나 정빈은 굴하는 기색 없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파도 길드로 직접 찾아가도 매일 부재중이시고, 공문을 보내도 길드장은 외부 일정으로 인해 확인이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오고. 그런데 식사는 이 근방 해장국집에서 꼬박꼬박 하신다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싶어 와봤더니 진짜 오셨네요.”

    “깍두기 많이.”

    “아, 저도 해장국 하나 부탁드립니다.”

    “…….”

    볼펜을 꺼내 계산서를 작성하던 의재가 가자미눈을 뜨고 둘을 흘겨보았다. 니들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헌터 싸움에 아르바이트생 등 터지게 만들지 말고. 의재는 들고 있던 볼펜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눈앞의 갑갑한 광경에 머리가 다 아파왔다.

    주변을 스윽 둘러본 정빈은 잠깐 쉬었다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그리고 국장님께서 저번에 엎은 값은 반드시 지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내내 정빈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침묵하던 이사영이 이번에는 고개를 까딱였다.

    “아, 그리고… 잠시만요.”

    정빈이 인벤토리에서 동그란 솜 같은 것을 하나 꺼냈다. 엄지로 꾹 짓누르자 불투명한 막이 드리워져 둘의 모습을 그 너머로 감췄다. 덕분에 아까까지 침체 상태였던 공기의 흐름이 한 번에 탁 트였다. 숨죽이고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헌터들이 하나둘 탄식을 뱉었다.

    “와, 공간 분리 아이템까지 사용하네. 진짜 개중요한 얘기 하나 봐.”

    “에이, 궁금하게 여기서 끊냐.”

    “아냐, 괜히 저쪽에 휘말렸다가 진짜 X 되는 수가 있어. 빨리 먹고 그냥 나가자.”

    “둘이 여기서 한판 붙는 건 아니겠지?”

    “설마, 일반인도 있는데 그러겠어.”

    “이사영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의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아는 정빈은 이런 곳에서 깽판을 칠 인물이 아니었지만, 헌터들의 말마따나 이사영이 엮여 있는 이상 그 무엇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해장국집이 랭킹 1위와 각관국 간판 헌터의 맞짱 장소로 뉴스에 나오는 건 사양이었다.

    의재는 생각에 잠겨 볼펜을 달칵달칵 눌렀다. 공간 분리 아이템은 은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사용되는 것이긴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아이템의 등급보다 높은 급의 각성자는 그 안을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빈이 사용한 아이템은 A급쯤 될까. 장담할 순 없었으나 허름한 국밥집에서 굳이 S급짜리를 쓸 이유도 없었다. 긴가민가하던 의재가 천천히 눈꺼풀을 올려 떴을 땐, 아까 전 보았던 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빈과 이사영이 깨끗하게 보였다.

    빙고. 의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보이지 않는 척 가까운 자리에 앉아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이사영 님, 미등록자를 하나 찾고 계셨죠? 각성자 관리국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집을 정도로 아주 급하게.”

    “…….”

    “그 미등록자는 실력자로 추정되는 인물이고요. 사영 님의 공격을 막을 정도로….”

    이사영의 공격을 막은 미등록자. 의재는 주어가 누군지 전혀 나오지 않았음에도 이 대화의 주제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저 자식, 나 하나 잡겠다고 각성자 관리국 데이터베이스까지 찾아봤단 말인가? 곱게 보내준 이유가 있었구나 싶어 목덜미가 저절로 싸해졌다.

    “그분, 혹시 찾으셨습니까?”

    의재는 숨을 죽였다. 한순간 방독면 안쪽의 보랏빛 시선이 정빈의 어깨 너머 자신에게 닿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착각인가 헷갈릴 틈도 없이 짧은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

    “정말로요?”

    정빈이 방독면으로 가려진 얼굴을 탐색하듯 눈으로 훑었다. 그 태도가 고까웠는지 사영이 턱을 괴며 서늘하게 물었다.

    “캐묻기 전에 사정 설명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다짜고짜 용건만 들이대면 이쪽도 기분이 나쁜데.”

    두 사람은 한참을 대치하듯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정빈이 먼저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의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말씀드리죠.”

    사영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경청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정빈이 핸드폰을 꺼내 몇 번 손을 움직이더니 화면에 사진 하나를 띄워 사영 쪽으로 보였다.

    “얼마 전에 토마토 마켓에 A+급 마석 올라왔던 건 아시죠?”

    “그 일 모르면 헌터 접어야지.”

    헌터를 접을 정도냐. 의재는 어째 일이 꼬이다 못해 꽉 엉켜버린 것 같아 심란해졌다. 아마 자신은 생각보다 더 유명할지도 몰랐다.

    “홍예성 님이 지리산에서 문 걸어 잠그고 장비 제작 중이신 것도 아실 거고요. 뭐, 당연히 아시겠죠. 지리산에 인터넷 선 깔아주신 게 사영 님이셨다면서요.”

    “응, 그런데?”

    “홍예성 님이 마석 구해달라고 땡깡 피운 것도 아십니까?”

    “뭐, 그랬겠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이사영 님이 찾고 있는 미등록자가 그 마석의 주인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친, 귀신 같은 놈. 눈치 개빨라.

    의재는 침착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마늘을 깠다. 사영은 눈을 살짝 접으며 웃었다. 그리고 아까까지의 삐딱하던 모양새와는 달리 꽤 다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논리 비약이 심하네.”

    내용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지만. 정빈은 핸드폰을 도로 안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 급의 마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 100위 안에 드는 랭커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헌터 마켓을 이용합니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신분이 모두 보증되어 있으니 고액의 거래를 해도 안전하기 때문이죠.”

    “…….”

    “수수료와 세금이 부담스럽다면, 공무원으로서 말하긴 그렇지만 암시장에 파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반인까지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앱에 올려서 굳이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조용히 처리할 방법이 열 가지도 넘거든요.”

    이사영이 장갑 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느릿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토마토 마켓에 그 마석이 올라왔을까요. 그것도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

    “아마 판매자는 등록증이 없어서 헌터 마켓을 이용할 수가 없는 상황일 겁니다. 그러니까 토마토 마켓에 판매 글을 올렸을 거고요. 그럼 둘 중 하납니다. 일반인과 아마추어 미등록 각성자. 하지만 단순 일반인이 그런 마석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죠.”

    ‘아마추어.’ 구 랭킹 1위 J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단어였다. 의재가 마늘 까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바스락대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사영이 물었다.

    “그래서?”

    “그러면 범위는 하나로 좁아집니다. 마석의 주인은 미등록자예요.”

    “아아….”

    “현시점에 그 정도 급의 마석을 얻을 정도로 실력 좋은 미등록자는… 이사영 님이 찾고 계신 그 사람뿐이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정빈의 추리는 꽤 정확했다. 경찰대 출신인 데다 그간 헌터 세계에서 제법 구른 세월이 있어서인지 예전보다도 더 감이 좋아진 듯했다. 안 들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의재는 앞으로 행동거지를 좀 더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톡, 톡, 톡.

    여전히 검은 손가락은 테이블을 두들기고 있었다. 의재의 시선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사영의 손끝으로 향한 순간이었다. 검은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여 글자를 그려내는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눈에 박혔다.

    ?

    의재는 퍼뜩 고개를 들어 사영을 쳐다보았다. 기계적으로 마늘을 까던 손이 삐끗하며 허공에 대고 헛손질을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포커페이스 특성이 제대로 먹히고 있는 건지 생각할 틈도 없었다.

    방독면 안으로 선명히 보이는 표정.

    이사영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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