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20)화 (20/67)

20화.

‘왜 이렇게 귀가 가렵냐.’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해장국을 끓이던 의재는 찜찜한 기분에 귀를 벅벅 문질렀다.

오늘 점심에는 웬일인지 배원우와 이사영을 필두로 한 파도 길드원들이 오지 않았기에 해장국집은 이전처럼 북적였다. 헌터들의 얼굴 위에도 간만에 밝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의재도또한 토마토 마켓의 뼈아픈 실패는 잊고 비교적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 헌터넷에 올라온 글 봄?”

어떤 젊은 헌터가 작게 속삭이는 것을 시작으로 가게 안이 웅성거렸다.

“응, 토마토 마켓에 A+급 마석 팔천에 올린 미친놈 있었다며? 길드 난리 났잖아.”

미친놈이라는 단어가 의재의 귀를 거세게 때렸다.

‘미친놈이라니.’

의재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사실을 알 턱 없는 다른 헌터가 능숙하게 뼈에서 고기를 분리하며 대꾸했다.

“낚시글 아냐?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올렸을 수도 있지.”

“야, 홍예성이 그 마석 찾아오는 사람한테 무기 무료로 만들어준다고 현상금도 걸었어.”

“진짜?”

“응. 홍예성 인하트 봐봐.”

“어머, 씨X. 진짜네. 야, 무조건 찾아.”

뚝배기 위치를 살짝 옮기기 위해 집게를 들던 손이 멈칫했다. 최근 헌터 세계에 관심을 끄고 살던 그도 홍예성의 이름 세 글자와 그가 S급 제작자라는 사실은 주워들어 알고 있었다. 해장국집에 오는 헌터들 대부분이 홍예성의 장비를 사고 싶어 했으니까.

그런데 그 홍예성이 현상금을 걸었다고? …왜요?

의재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헌터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에이씨, 그걸 내가 샀어야 했는데. 팔천에 사서 되팔기만 해도 몇십억 이득이야, 대체?”

“나 그 글 보자마자 토마토 마켓 깔았음.”

“나도.”

“EZ 씨가 제발 글 하나만 더 올려줬으면 좋겠다.”

“근데 그 사람 글 삭제하고 탈퇴한 것 같대.”

“사람 놀려? 줬다가 뺏네, 막. 당장 다시 가입하라고 해.”

“나 오늘 노량진 수산 시장 가서 고등어한테 의뢰하려고.”

“고등어가 찾을 수 있으려나?”

“못 찾으면 대한민국 최고 정보상 자리 내놔야지, 뭐.”

[특성 포커페이스(B)가 활성화됩니다.]

이젠 과부하가 걸린 머리를 대신해 특성이 알아서 활성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재는 침착한 얼굴로 팔팔 끓는 뚝배기에 파 한 움큼을 뿌렸다. 그러나 머릿속은 여전히 어질어질했다. 그 마석이… 몇십억짜리라고?

‘옛날에는 마석으로 공기놀이를 했어, 별 쓸모가 없어서!’

물론 그건 J만 할 수 있을 행동이었으나 차의재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근데 그거 올린 사람 진짜 누굴까?”

“그 가격에 올린 거 보면 그냥 길 가다가 마석 주운 일반인 아냐?”

“씨발, 길 가다 A+급 마석 주울 수 있으면 나 헌터 때려치우고 하루에 10만 보씩 걷는다.”

“인정.”

내 마석이… 생각보다 급이 높았구나? 헌터들의 대화를 엿듣던 의재는 그동안 자신이 간과했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J의 소유물은 보통의 헌터가 구경도 못해봤을 귀한 것들이라는 걸.

8년. 강산이 완전히 변하기까지 고작 2년 모자란 그 시간 동안 세상은 균열의 날과는 또 다르게 격변했다.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석의 가치였는데, 거의 쓰레기가 황금으로 바뀐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 시절 마석의 용도는 딱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부자들의 수집품.

두 번째, 헌터들의 전리품.

과거의 마석은 정말로 사는 사람들만 사는 물건이었지만, 이제 좋은 마석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석탄, 석유 등의 기존 에너지원과는 달리 마석은 환경 파괴 없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뽑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게이트 안쪽에 휙 버리고 나왔을 F급 마석이 현재는 개당 최소 십만 원은 했다.

사실 의재는 J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직접 던전 부산품을 거래한 적이 없었다.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의 거래는 모두 이모가 도맡아주었고, 헌터 마켓이나 장인도 따로 없던 시절이라 돈으로 장비를 구매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연이니 당연히 마석 시세를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정부에서는 헌터들이 균열과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금전적인 보수를 지급했지만, J는 받은 돈으로 별다른 거래도 하지 않았다. 가끔가다 포션 정도는 구매하긴 했지만, 본인이 쓸 용도라기보단 균열 안에서 응급처치가 필요한 생존자에게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이러한 족적은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의재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고 있었다.

‘물건 하나 잘못 올렸다고 이렇게까지 소문이 퍼져?’

의재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제 그만 자신의 조용한 삶을 위해 다들 멈춰주었으면 싶었으나 헌터 커뮤니티는 그의 생각보다 끈끈했고, 소식이 매우 빨랐으며, 아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해장국집은 정보를 수집하고 퍼트리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기도 했다.

“토마토 마켓….”

“얼마….”

“마석….”

“해장국 존맛….”

“이 근방에….”

“대체 어떤 미친놈….”

“힘숨헌이….”

“해장국집을 미슐랭으로….”

정체불명 마석에 대한 소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중간중간 아닌 것도 섞여 있기는 했지만.

* * *

“삼촌, 얼굴이 이상해.”

“내 얼굴? 왜?”

“좀… 이렇게.”

하은이 양손으로 제 턱을 쭉 밀어 올렸다. 턱이 좀 날카로워졌다는 이야기인가? 의재는 괜히 턱뼈를 문지르다 웃었다.

“요즘 잠을 좀 못 자서 그래. 괜찮아.”

“삼촌은 맨날 안 자잖아.”

“그러니까 평소랑 똑같다는 거지. 그냥 조금 피곤한 거야. 하은이 내일 준비물 뭐 뭐 있어?”

“내일 준비물… 마분지랑 지점토.”

“미술 수업 있나 보네.”

“응, 나도 지점토로 도자기 만들 거야. 홍예성처럼.”

씨X. 갑자기 나온 이름 석 자에 의재는 순간적으로 혀를 깨물 뻔했다.

홍예성이 마석에 현상금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의재는 처음으로 인하트그램을 깔아 홍예성의 계정을 팔로우했다. 이 미친놈―이사영과는 또 다른 미친 새끼님이셨다―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그나마 대처가 편할 듯했다.

홍예성은 평소 자주 글을 올리는 편은 아니었으나 마석 사태 이후로 하루에 하나씩은 꼬박꼬박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닭장 속 둥지에 덩그러니 놓인 달걀 하나를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써놨다.

xxYeahsungH 황금빛 동그란 마석…… #일상 #소통 #달걀 #마석 #보고싶다 #그리워요 #기다려요

좋아요 532k

Honeybeezx 이 새끼 상담 보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신오염 뭐 이런 정신계 스킬에 당한 거 같은데 @jungVin80 @SEOWON_GUILD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