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19)화 (19/67)

19화.

정장 차림에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핸드폰을 훑어보던 공무원 정빈은 대청마루에 다리를 꼬고 앉아 전 세계 유일한 S급 제작자가 보여주는 흙바닥 시위 쇼를 구경했다.

“나 저 마석 줘!”

“음― 홍예성 님은 아무것도 못 본 거예요.”

“아아아, 나 저거 구해달라구.”

바닥에서 사지를 버둥거리는 게 흡사 마트 장난감 코너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 어린애 같았다. 정빈이 손을 까딱이자 한옥 입구 쪽에 서 있던 각성자 관리국 직원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정빈이 조용히 속삭였다.

“장인촌이 언제부터 와이파이가 이렇게 잘 터졌지? 예성 님 이번에 입소할 때 와이파이 안 끊었어요?”

“물론 끊었습니다만… 이사영 님께서 통신선과 와이파이를 싹 연결해주신 후 그 대가로 장갑 제작을 맡기셨다고 합니다.”

“아, 그 인간 진짜 도움 안 되네. 이번 작업 끝나는 대로 여기만 다시 끊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정보는 아마 랭커 채팅으로 접하신 것 같습니다. 마석 얘기가 채널마다 돌았거든요.”

“다들 협조 좀 해달라니까. 하여튼 상도덕이 없어요.”

정빈이 혀를 차며 짧게 한숨 쉬는 찰나에도 홍예성은 고장 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 재생했다.

“나 서울 갈래. 마석 줘요.”

“나 참, 지리산에 가둬달라고 한 건 본인이면서. 선생님, 무기 다 만들기 전까지는 여기서 못 나가세요.”

하얀 옷을 입고서도 흙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이 남자. 바로 대한민국 랭킹 7위이자 유일무이한 S급 제작자 ‘기인(奇人)’ 홍예성이었다.

6년 전, 한국예대 캠퍼스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렸다. 저녁이라 캠퍼스 내 학생들이 많지는 않았으나, 문제는 졸업 작품을 준비하느라 작업실의 지박령이 되어가던 미대 4학년들이었다.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갈등했다.

졸작이냐? 목숨이냐?

대부분은 당연히 목숨을 선택했다. 이대로 죽기엔 그들은 너무 어렸고 또 억울했기 때문이다. 졸작만 하다 천국 가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게이트는 천재지변이니까 교수님도 정상참작 해주시겠지! 학생들은 망치와 톱을 들고 벌벌 떨면서 최대한 구석진 곳으로 숨었다.

그러나 단 한 명. 도예과 4학년 홍예성.

그는 게이트가 열리든 말든 그대로 작업실에 앉아 있었다. 게이트에서 기어 나온 몬스터들이 건물 외벽을 타고 기어오른 다음 창문을 깨고 작업실에 들어올 때까지도 홍예성은 그 자리에서 도자기를 빚었다.

그리고 각성한 것이다. S급 제작자로.

정부는 우선 그의 각성 에피소드를 기밀에 부쳤다. 졸작 하던 대학생이 게이트와 몬스터를 개무시하고 도자기를 빚다가 S급 제작자로 각성했다고 곧이곧대로 발표하는 순간, 게이트가 터져도 대피하지 않고 뻗댈 홍예성 꿈나무들이 늘어날 게 뻔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절대 봉인해야 할 이야기였다.

아무튼, 도예과 최대 아웃풋이자 전국의 도예과 입결을 높인 장본인인 홍예성은 균열의 날 이후 세계 최초로 등장한 S급 제작자였다. 게다가 그는 특성까지 실로 엄청난 것을 가지고 있었다.

[특성: 데드라인 피니셔(L)

마감일이 가까워질수록 작업 효율이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진다.

(스킬이 발동된 상황에서 제작을 마치면 품질 50% 추가 상승)]

정부와 각관국 관계자들은 홍예성의 각성자 데이터를 보자마자 기립박수를 쳤다. 귀하디귀한 S급 제작자신데 무려 L급 특성도 소유하고 계시다니. 그는 장차 대한민국의 헌터 경쟁력을 월등히 높일 인재였다.

그러나 홍예성의 존재와 특성이 대서특필되며 세상에 알려진 순간, 해외의 헤드헌터들이 그를 노리고서 한국에 우르르 입국했다. 그야 미스터 홍은 세계 유일의 S급 제작자인걸! 그를 원하는 국가며 단체가 많아질수록 대한민국 정부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홍예성을 어떻게든 한국에 눌러 앉히고 싶어 안달이 났다.

국민들도 온 마음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홍예성의 여권을 뺏자, 여권 찢고 출국 금지 명령 내리자 등등 인터넷에서 오가는 과격한 의견들은 특별할 것도 없었고 매스컴에서는 그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논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이었다.

헤드헌터들이 밤마다 호텔 문을 두드리는 데에 노이로제가 걸린 홍예성은 “F**k you, I’m Korean!”을 외치며 대한민국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국가의 보호와 더불어 한 가지를 더 요구했더랬다.

“제 작업 마감일이 닥쳐오면 제가 뭐라고 하든 어디 물 좋고 공기 좋고 정기 좋고 외부와는 연락 안 되는 산속에 가둬주십시오.”

바로 ‘감금’이었다.

안 그래도 홍예성이 다른 나라로 훌쩍 떠나버리면 어쩌나, 그가 출국하지 못하도록 어디 은밀한 곳에 가둬두고 싶었던 정부는 그의 요청에 좋아 죽을 뻔했다.

“예? 어휴, 너무 좋, 아니, 흠흠. 이유가 뭡니까?”

“그게요, 제가 사실 특성이 하나 더 있거든요?”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홍예성에게도 치명적인 능력 제어구가 하나 있었으니.

[특성: 굼벵이(L)

무엇이든 미루고 싶어진다. (많이.)]

시스템은 S급 제작자를 내려주는 대신 특성으로 자체 밸런스 패치를 진행했다. 미루고 미루다 마감일을 앞두고 간신히 하나를 만들어내는 특성. 뛰어난 재능을 특성으로 제어하는 미친 인간. 마감이 코앞까지 닥쳐와야 불타오르는 벼락치기의 현신.

그러나 그게 어딘가! 대한민국 정부는 게으름뱅이 귀인을 위해 전국의 정기 좋은 산 몇 곳을 지정하여 때가 되면 홍예성을 곱게 거기다 가둬주었다. 지지난번에 설악산, 지난번에 계룡산을 찍고 이번엔 지리산 장인촌 차례였다.

정빈이 턱을 괴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바닥 위에 누운 허연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저 오늘 이사영 님과의 선약도 취소하고 예성 님 잡으러 온 거예요. 아시죠?”

“저기요, 공무원 나리.”

홍예성은 대답 대신 정빈을 불렀다. 칭얼거리던 아까까지의 목소리와는 달리 조금 차분해진 투였다.

“저 마석으로 무기 만들면 최소 S+급은 뽑을 수 있어요. 사진만 봐도 감이 딱 온다니까요.”

“오?”

정빈이 조금 놀란 듯 눈썹을 까딱였다. 지금까지 홍예성이 만든 장비의 최고 등급은 S급이었다. 분명 그는 재료와 실력이 모두 갖춰져야 더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다고 했었지. 그러니 S+급 무기가 나올 수 있다는 말에 정빈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원불명의 마석 판매자에 대해서는 정빈 역시 헬리콥터를 타고 지리산으로 날아오면서 보고받았다. 정확히는 토마토 마켓에 영롱한 마석을 올린 미친놈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귀한 걸 헌터 마켓에 올리지 않았다니 어딘가 뒤가 구린 매물인 게 틀림없었지만, 탁월한 감정안의 소유자인 홍예성이 저러고 있는 걸 보면 품질도 확실할 터였다. 그리고 나온 건 사진뿐이긴 했지만 정빈의 눈에도 그 마석은 제법 좋아 보였다. 국내에서 한 번도 유통된 적 없는 종류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런 게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누군가에게서 갈취했나? 아니면 해외로부터의 밀반입? 여러 가설을 세워보던 중 정빈의 뇌리를 섬광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각성자 관리국에 쳐들어온 이사영이 각성자 데이터베이스를 뒤집어엎었던 이유. 실력 좋은 미등록자가 돌아다닌다고 했던가.

정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닥에서 갓 잡은 생선처럼 펄떡이는 홍예성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홍예성 님.”

“아아아, 마석 줘요. 마석 가져오고 얘기해.”

아까 전 살짝 또렷해졌던 눈빛은 어디 갔는지. 다시 정신 연령 5세 떼쟁이로 돌아온 홍예성을 정빈이 부드럽게 타일렀다.

“일단 들어보세요. 그 마석, 엄청 좋은 거죠?”

“그럼요. 딱 봐도 불순물이나 몬스터 기운이 섞이지도 않은 최상급이라고요. 아, 마석 줘!”

“그런 마석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겠네요. 맞죠?”

“못해도 최소 100위 안 랭커겠죠.”

“상위권 랭커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초짜처럼 흔적 다 남기면서 거래하지 않고요. 맞죠?”

“당연하죠. 암시장도 있고 헌터 마켓도 있는데 토마토 마켓에 뭐 하러 올려요. 바본가.”

퉁명스레 말한 홍예성이 재차 날뛰기 시작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어…. 난 지리산에 있어서 서울 토마토 마켓 못 본단 말이야! 악! 다음에는 북한산에 가둬줘!”

“네네, 다음 유배지는 북한산인 걸로 국장님께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정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탁탁 털었다.

“그 마석, 제가 한번 찾아보죠.”

“…진짜?”

정빈의 산뜻한 한마디에 홍예성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흰색 플리스에 덕지덕지 흙을 묻힌 채 눈에서는 맑은 광기가 흘러넘치는 모습이 꼭 산책 나간 포메라니안이 흙밭에서 드리프트를 30회 정도 한 것 같은 몰골이었다.

“네.”

정빈은 공익광고에서 익히 보여주던 신뢰도 100%짜리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음성에서는 묘한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마석 캐다가 금광을 발견할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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