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3, 나비 효과
영업 시간이 지나 텅 빈 해장국집 안. 의재는 깔끔하게 닦아둔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골몰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여러 개의 답변과 댓글들이 달린 지식ON 질문과 답변 타래가 띄워져 있었다.
“좀 이름 있는 헌터에 증거가 확실하면 각관국 헌터가 바로 온다고.”
의재가 테이블 위로 풀썩 엎드렸다. 빌어먹을,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일을 과하게 열심히 해서 문제였다. 아무래도 신고하는 이상 조용히 해결하기는 글렀나. 이사영을 영업방해로 신고했다가는 각성자 관리국 국장이 직접 온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테다.
의재는 얼굴을 한껏 구긴 채 뺨을 아래로 대고선 손끝으로 화면을 밑으로 쭉 내렸다. 방금 읽은 친절한 답변 아래에 달린 실없는 소리들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뭐? 초성을 알려줘? 미안하지만 그 자식 함부로 털었다간 대한민국이 반으로 동강 날 수도 있다.
랭킹 1위란 원래 그런 자리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대해 욕하는 자와 감싸는 자 사이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의재도 과거에 질리도록 경험해봐서 잘 알았다. 아무리 이사영이 재수 없어도 저 하나 편하자고 인터넷에 화산 폭발을 일으킬 순 없는 일이었다.
마석 녹음기는 너무 비싸고, 인터뷰는 자신이 미치지 않고서야 죽어도 할 일 없었다. 스크롤을 아래로 쭉쭉 내리던 의재가 무의식적으로 테이블에 머리를 쿵 박았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테이블을 확인했으나 다행히 금이 가지는 않았다. 괜히 이마가 닿았던 곳을 손으로 벅벅 문지른 의재가 핸드폰을 엎어두며 도로 엎드렸다.
‘진퇴양난이다….’
차의재가 이리 고뇌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평온하던 해장국집 알바생 인생에 휘몰아쳐 들어온 어떤 괘씸한 놈 하나 때문이었다.
* * *
해장국집은 헌터 맛집으로 소문난 집답게 선결제를 해놓고 가는 길드가 제법 많았다. 카드 들고 다니기 귀찮다며 떼를 쓰는 헌터들이 많기도 한둘이 아니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호출이 오면 결제는커녕 숟가락도 제대로 못 내려놓고 뛰쳐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생긴 관행이었다.
의재가 처음 일을 배울 때 선결제 장부 인수인계부터 받았을 정도였으니, 뭐 선결제는 별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다짜고짜 천오백만 원 선결제를 해놓겠다고 카드를 들이대는 미친놈은 가게 개업 이래로 이사영이 처음이었다. 아니, 천오백이 뉘 집 개 이름이란 말인가?
차의재는 결국 쓸데없는 혹을 달고 온 배원우를 향해 도끼눈을 치켜뜨고서 살기를 아주 조금 날렸다.
‘이 미친 새끼 좀 말려봐.’
대충 그런 뜻을 담아서.
하지만 조금이라는 건 의재만의 생각이었던 건지 제자리에서 0.5cm쯤 뛰어오른 배원우는 시스템 업데이트가 된 인공지능처럼 예리한 눈치를 탑재하고서 이사영을 싹싹 뜯어말렸다.
“빨리 결제하고 길드 복귀하자. 너 존나 바쁘다며.”
“딱히 안 바쁜데?”
“각관국 가야 한다며. 정빈 만나기로 한 거 아니냐?”
“미루면 되지.”
이사영은 남들 같아선 평생 하고 싶지 않은 각관국과의 면담을 앞에 두고도 태연했다. 배원우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작전을 바꿔 사심을 슬쩍 담아 말했다.
“야, 천오백만 원 선결제할 돈으로 내 방어구나 바꿔줘. 송도에서 홍예성 장비 경매 열린다던데.”
“고작 천오백으로 장비를 어떻게 사? 너 거지야?”
와… 존나 재수 없어.
저 얄미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예술이었다. 의재뿐 아니라 그 자리에서 대화 내용을 들은 모든 헌터들이 똑같이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부디 이사영의 카드가 그날 밤 장렬하게 전사해버린 소중한 6,900원짜리 국자처럼 녹아버리기를…. 의재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카드를 받지 않고 버티고 있을 때였다.
배원우가 오른손을 쫙 펼치며 용맹하게 외쳤다.
“…오백!”
“응?”
“따악 오백만 긁어줘. 팀원들이랑 자주 회식하러 올게. 천오백은 너무 많다.”
“흐음.”
“천오백이면 하루 세 끼 해장국만 먹어도 333일이나 먹어야 된다고!”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그러고 있잖아. 황당하다는 듯 배원우를 바라보던 이사영이 힐끗 의재를 보았다. 의재는 눈이 마주치자 냉큼 사회생활에 찌든 알바생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빨리 긁고 꺼져. 대충 그런 뜻으로.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사영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그놈은 계산기에 카드를 폭 꽂더니, 의재와 눈을 맞춘 채 덧붙였다.
“다 먹으면 말해. 또 선결제해줄게.”
제발 좀 꺼져.
그렇게 이사영은 그날 장사를 망쳐놓은 대가라도 지불하듯, 선결제 오백만 원을 긁은 후 생각보다 쉽게 자리를 떠났다. 강렬한 만남에 비해 시시한 작별이었다. 이렇게 가놓고 밤에 몰래 찾아오는 거 아냐? 의재는 만약을 위해 쪽방에서 국자를 들고 밤새 대기했다. 그놈 머리털 하나라도 보이면 진짜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야밤에 이사영이 다시 찾아오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스응으, 는 뜨 으 뜨르 읐느.”
“미안, 뭐라고?”
“흐증극 드그 믖으스즈.”
“응, 맞아요.”
그날 이후 출석 도장이라도 찍는 것처럼 꼬박꼬박 와서 해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배원우가 이를 악물고 속삭이는 말은 무시하고, 똑같이 이를 빠드득빠드득 갈고 있는 의재의 말만 기똥차게 알아들은 이사영은 허공에서 일회용 수저 세트를 꺼냈다. 이 자식은 선결제한 금액에서 아깝게 수저값까지 뺄 순 없다며 본인이 직접 개인 수저까지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뚝배기까진 무리셨나 보지? 망할 놈. 인벤토리가 남아나나?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인벤토리가 남아나고 마침 여분의 일회용 수저도 있어서 들고 다녔다고 치자. 꼴에 해장국에 맛을 들였을 수도 있잖아.
그러나 이사영이 등장할 때마다 주변 테이블이 싹 다 동그랗게 비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쓸데없이 자아 강하고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한 그 헌터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주 착실하고 열심히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꼴이라니! 의재는 헛웃음을 지었다.
‘씨발, 이거 명백한 영업방해야.’
해장국 집의 자랑은 높은 회전율과 저렴한 가격이었건만, 이사영이 나타나기만 하면 이사영 ZONE이 생겨 아주 재난이 따로 없었다. 회전율은 고사하고 당연히 가게 매상도 뚝 떨어지고 말았다. 아직까진 헤비 해장국 마니아들 덕분에 어찌어찌 굴러가곤 있다 해도…. 이러다간 단골들마저 잃을 판이었다.
덕분에 의재는 최근 포털사이트에서 갑질 헌터니, 헌터 범죄 신고 관련법이니, 각성자 특례법이니 하는 것들을 잔뜩 찾아보고 있었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이 일을 해결하려면… 내가 다시 헌터가 되거나 돈이 있어야 한다!’
이게 무슨 급발진인가 싶지만 의재에겐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사영의 행패를 공론화하기 위해선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애매한 증언만으로는 가암히 대한민국 랭킹 1위 헌터님께 오물을 뒤집어씌운다며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사영의 만행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ON 답변자의 말처럼, 일반 녹음기로는 S급 헌터인 그를 상대로 증거 수집의 ‘ㅅ’조차 하지 못한다. S급 헌터란 녹음기와 카메라 정도는 금방 알아채 부숴버릴 수 있는 존재니까.
그렇다면 쉽게 파손되지 않는, 던전 부산물로 만든 아이템이거나 탐지가 안 되는 녹음기가 필요하다는 건데…. 사실 이런 아이템은 구하는 게 힘들기도 하거니와,
‘개비쌈.’
헌터 J였던 시절에는 딱히 실감하지 못했는데, 던전 부산물로 만드는 아이템은 더럽게 비쌌다. 소박한 해장국집 아르바이트생 차의재는 평생 돈을 모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월급으로 많이 바랄 것도 없이 가게 수익의 일부를 딱 필요한 만큼만 떼어 받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나다닐 곳도 없는데 옷 몇 벌과 운동화 한 켤레를 깨끗하게 돌려 신으면 되니까. 차의재의 인생 제2 막에 이사영이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걱정을 할 일 없었단 소리다.
…헌터 등록을 할까?
각성자 센터에 가서 능력을 측정하고 등급을 부여받기만 하면 되지만… 만약 자신이 모르는 J의 데이터가 소멸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 또 어떻게든 능력 측정까진 간다고 쳐도, 순간 힘 조절을 못한다면? 최대한 약하게 친다고 친 건데 측정기가 박살이 나면?
그 순간 조용한 삶은 요단강을 건넌다. 힘숨찐에게는 너무 과한 처사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이 각성했을 때만 해도 각관국에서 각성자 정보를 자세히 수집하기 이전이라 신분증 위조까지는 필요 없다는 점 하나였다.
“이사영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최근 의재는 왜 다른 헌터들이 이사영의 근처에 접근하기조차 싫어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해가고 있었다. 이사영은 뱀이다. 먹잇감의 주변을 배회하다 몸통을 서서히 조여오는 뱀.
그날 밤 일로 대놓고 협박할 수도 있을 거면서, 계속 가게로 찾아오며 은근히 압박하는 꼴 좀 보라지. 무슨 생각인지 이사영은 해장국집에 처음 방문한 날 이후로 의재에게 이름을 더 묻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정체를 들킨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이사영의 현재 행동은 조용한 수면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는 것과도 비슷했다. 잠잠하던 물은 손가락의 작은 동작 하나만으로도 크게 요동치는 법이다. 커다란 타격이 없다곤 해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자꾸만 떠보는 게 뭔가…
불쾌하다.
마치 영역을 침범당한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인상을 팍 찌푸린 채 허공을 응시하던 의재는 문득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인벤토리에는 빈 포션 병이 즐비했다. 모두 인천 균열에서 사용한 것들이다. 버려야 하는데 미루고 미루다 버리지 못한 것들. 그리고 균열에서 주워온 검은 장검, 바실리스크의 송곳니. 의재는 바실리스크의 송곳니를 노려보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늘어선 포션 병 사이에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엄지손가락 반만 한 크기의 황금빛 보석.
마석이었다.
과거에는 마석을 사용하거나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인벤토리나 집구석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는데, 요즘은 여기저기 마석이 많이 쓰이지 않던가? 해장국집 단골들의 말을 주워듣기로는 마석을 가공해서 만드는 장비도 꽤 있는 것 같았다.
“…하나 팔까?”
이걸 팔면 꽤 괜찮은 녹음기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재는 인벤토리에서 슬그머니 마석 하나를 꺼내 앞치마로 뽀득뽀득 닦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