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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16)화 (16/67)
  • 16화.

    “얼굴 뚫리겠네.”

    이사영이 느긋하게 말하며 턱을 괴었다. 방독면 안에서 들려오던 음성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검은색 머리칼과 차분한 느낌의 보라색 눈이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는 인상이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빼곡하고 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유연하게 뻗은 콧대와 도톰한 입술 왼쪽 아래에 있는 작은 점까지. 전체적으로 붓으로 그린 듯 선이 얇은 미형의 외모였다.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이었으나 어딘가 나른함이 묻어났다.

    우습게도 의재는 왜 사영이 방독면을 쓰는지 이해했다. 제 생각에도 저 얼굴을 동네방네 드러내고 다니면 여러모로 골치 아플 일이 많아 보였다.

    이사영이 여러모로 탐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놈의 얼굴이 그러했다. 저 방독면과는 다른 의미로 시선을 집중시킨다고 해야 할까. 방독면을 쓰고 있을 때는 단순히 상종하지 말아야 할 또라이였다면, 벗고 나니 얼굴값 하는 또라이가 됐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아직 남아 있던 몇몇 헌터들이 사영을 힐끔거렸지만, 그는 딱히 불편한 기색은 아니었다. 남들의 주목을 받는 건 익숙하다는 태도였다. 오히려 사영의 시선을 따라 헌터들이 뭐에 데기라도 한 듯 후다닥 눈을 피했다.

    말 한마디 없이 주변을 정리한 이사영은 숟가락을 들었다. 동시에 의재도 볼일이 끝났으니 발걸음을 옮겼다. 과연 해장국을 먹고 뭐라고 할 것인가. 아닌 척 걷는 속도를 늦추며 귀를 기울일 때였다. 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는지 배원우가 물었다.

    “어때. 맛있어?”

    “국물이 뜨겁네.”

    “방금 끓였으니까 당연히 뜨겁겠지, 미친놈아. 맛 말이야, 맛.”

    “고기는 부드럽고.”

    “그치? 여기 고기는 뼈랑 살이 엄청 부드럽게 분리된다니까.”

    “응, 뭐. 괜찮네.”

    이사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싱거운 반응이지만 맛없다는 소리를 안 들은 게 어디인가. 의재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의재는 주방에서 밀린 설거지를 해치우면서 힐끗힐끗 홀을 보았다. 사영은 주문 전에 시비를 걸던 모습과는 달리 큰 말썽 없이 조용히 밥만 먹고 있었다. 폭풍의 눈에 앉은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동안 해장국집 안에는 짧은 평화가 찾아왔다.

    설거지를 거의 다 끝냈을 때쯤, 사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원우 또한 카운터 앞에 서서 의재를 불렀다.

    “알바님, 결제 좀 해주세요!”

    “네, 잠시만요―”

    의재는 고무장갑을 벗은 뒤 손에 남은 습기를 대충 바지 위로 두어 번 문질러 닦아냈다. 카운터로 향하는 길에 본 테이블 위에는 바닥까지 비운 뚝배기와 국물이 조금 남은 뚝배기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추가로 주문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배원우가 한 그릇만 먹었다는 사실에 의재는 내심 놀랐다.

    “삼만 원입니다.”

    사영이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넸다. 돈 자랑인가. 의재는 별 희한한 새끼 다 있구나 생각하며 지폐 한 장만 쏙 뽑아갔다. 거스름돈으로 이만 원을 꺼내자, 사영은 오히려 이쪽이 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식기값까지 낸 건데.”

    “…왜?”

    “내가 이름 알려주지 않았어요?”

    “알려줬는데, 뭐.”

    “검색 안 해봤나….”

    가볍게 눈을 깜빡인 사영이 감탄하는 투로 말했다.

    “형 진짜 나 모르는구나.”

    그리고 입을 약간 더 벌려 혀를 슬쩍 보였다. 평범한 선홍빛이 아닌, 뿌리 끝까지 시커먼 혀가 나타났다. 의재의 눈이 향하는 곳을 확인한 사영이 앞니로 혀끝을 살짝 깨물었다.

    “내가 입에도 독이 있어서,”

    ‘잠깐만, 씨X.’

    “밖에서 식사를 잘 안 하거든요.”

    어쩐지 이 자식 주변이 동그랗게 비어 있더라니! 의재는 저도 모르게 이사영과 배원우가 식사한 테이블을 돌아보았다. 장갑을 끼고 있길래 안전할 줄 알았더니, 입에도 독이 있는 뱀 새끼일 줄이야. 이래서 기사 헤드 라인만 읽지 말고 내용까지 읽어야 한다.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다 있었다.

    사영이 방긋 미소 지었다.

    “응…. 우리 서로에 대해 좀 알아갈 필요가 있겠네.”

    ‘싫어, 미친놈아.’

    “다음에 또 올게요.”

    의재의 다음 말은 입 밖으로 나왔다.

    “오지 마.”

    “그땐 이름 알려줘요.”

    “오지 말라고.”

    의재는 대놓고 배원우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썩 너네 길드장 데리고 꺼지라는 의미였다. 그 뜻을 찰떡같이 캐치한 원우가 이사영의 등을 슬슬 손바닥으로 밀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랭킹 1위는 만만하지 않았다. 밀리는 둥 마는 둥 하던 이사영이 문득 말했다.

    “머리.”

    “응?”

    “검은색이네? 염색했어요?”

    미친,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다행히 포커페이스 특성은 여전히 켜진 채였다. 의재가 뻔뻔하게 답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그때는 회색이 좀 비쳤던 것 같아서.”

    ‘방독면 뒤집어쓴 놈이 눈은 왜 이렇게 좋아?’

    때마침 하은이 염색할 시기가 됐다고 알려줘서 다행이었다. 하은이가 갖고 싶어 한 슬라임 장난감이라도 하나 사줘야겠다 생각하며 의재가 대답했다.

    “잘못 본 거겠지. 멀쩡한 사람 머리 색깔이 왜 회색이야.”

    이사영은 의재의 반론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제 할 말만 이었다.

    “눈도.”

    “…뭐?”

    “검은색이네요.”

    “한국인 눈이 검은색이지, 그럼.”

    “이상하다.”

    주섬주섬 다시 방독면을 쓴 이사영이 렌즈 너머로 차의재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때 봤을 때는 파란색이었는데.”

    의재의 등골이 순간 서늘해졌다. 추적자의 눈을 끄기 전, 그 찰나의 순간에 본 걸까?

    ‘아, 이 새끼 진짜 까다롭네.’

    의재의 입매가 점점 굳어가던 순간, 보라색 눈이 가늘게 접히며 사영이 몸을 뒤로 물렸다.

    “뭐… 오늘은 여기까지. 갈게요, 형.”

    “안녕히 가세요, 손님.”

    “사영이라고 안 불러줘요?”

    “가라, 좀.”

    사영이 작은 웃음소리를 남기곤 사라졌다. 배원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다 꾸벅 인사를 하고 해장국집을 떠났다. 폭풍이 쓸고 지나간 해장국집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의재는 카운터에 놓인 오만 원권 두 장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또라이 새끼가….”

    《파도 길드 블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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