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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13)화 (13/67)
  • 13화.

    순식간에 뻗어 나온 검은 가시가 의재를 향해 맹렬히 쏟아졌다. 자신을 덮칠 듯 달려드는 가시를 무시한 의재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남자의 목을 비틀었다.

    빠드득! 손아귀에서 목뼈가 부러지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남자의 목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였다. 흐리멍덩한 눈에 남아 있던 마지막 빛마저 사라지며 몸뚱이가 축 늘어졌다.

    “이게 끝까지 지랄이네.”

    의재는 귀찮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옷 곳곳이 찢기긴 했지만,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의재의 몸으로 집요하게 파고들려던 가시 몇 개는 바깥 방향으로 휘어있기까지 했다.

    피 묻은 손을 털고 몸을 일으킨 의재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밤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나?’

    이렇게 눈에 띄는 놈들이 대낮에 기어 다녔으면 당연히 그 존재가 알려졌을 터였다. 단골 헌터들이 또한 놈들 이야기를 안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어.’

    문득 방독면이 세우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의재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사람 팬 걸 말하지 말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 존재 자체를 알리지 말라는 입단속이었다면? 기밀 유지를 위한 정보 통제는 흔한 일이니 새삼 놀랄 것도 없었지만….

    의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 그렇다면 방독면은 왜 자신을 그냥 보내준 걸까? 굳이 입단속을 시키면서까지 살려 보낼 필요 없이 죽여버리는 게 편했을 텐데.

    그 순간 해장국집에서 작은 기척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이 조용해진 걸 눈치챈 건지, 하은이 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의재는 혹시 몰라 쓰레기로 남자의 시체를 숨겼다. 그리고 문 앞으로 달려가 손등으로 문을 두드렸다.

    “하은아. 삼촌인데 문 열어줄래?”

    일부러 유리에 가까이 얼굴을 비추고 손도 흔들어주자 작은 인기척과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하은은 책가방을 끌어안은 채 주저앉아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의재를 보고 나니 안심해서 다리 힘이 풀린 듯했다.

    의재도 몸을 낮춰 쪼그려 앉은 뒤 가만히 눈높이를 맞췄다.

    “괜찮아. 이제 이상한 사람 없어. 멀리 갔어.”

    “갔어?”

    눈물 고인 눈이 의재에게 향했다. 여전히 울음기를 달고 있는 얼굴을 본 의재가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너무 곱게 죽였나?’

    하은이 책가방을 내던지고 의재에게 손을 뻗었다. 그 작은 손 위로, 언젠가 제가 잡아주었던 붕대 감긴 손이 겹치듯 어룽거렸다.

    전신을 붕대로 칭칭 감은 채 누워서 말조차 못 하던 소년. 소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 표현은 손가락을 살짝 까딱이는 것뿐이었다. 소년이 손가락을 움직이면 의재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그 손을 꽉 잡아주곤 했다.

    ‘씨X….’

    속이 울렁거렸다. 의재는 눈을 내리깐 채 하은을 끌어안고, 왼손으로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응….”

    “이제 다 괜찮아. 무서웠지?”

    하은이 대답 대신 훌쩍거렸다. 의재는 혹시 머리에 바른 염색약이 아이의 피부 위에 닿을까, 고개만 슬쩍 뒤로 빼며 다정하게 말했다.

    “삼촌이 헌터들한테 다 일러줄게. 그럼 앞으로 이런 일 없을 거야.”

    “응….”

    한참 등을 토닥였더니 좀 진정한 듯싶었다. 하은이 코맹맹이 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빈이랑 허니비한테도 일러주라.”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애초에 그 둘은 해장국집에 온 적이 없어 이를 수도 없기는 했다. 하지만 놀란 애를 달래지는 못할망정 냉정하게 거절할 순 없었기에 의재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돌렸다.

    “일단 삼촌 염색약부터 좀 씻고 와도 될까.”

    “응…. 사실 쫌 냄새났어.”

    “염색약 냄새라고 정확히 말해주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해.”

    그제야 하은이 까르르 웃었다. 의재도 짧게 한숨을 내쉬며 쓰레기 더미에 놓인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연이어 당장 한 시간 뒤에 올 해장국집 단골들도 떠올렸다.

    일반인이 처리할 수 없는 시체. 정체를 숨겨야 하는 자신.

    ‘그럼 헌터에게 부탁해야지.’

    지금부터, 철저하게 일반인인 척 연기할 시간이었다.

    * * *

    서원 길드의 깨끗한 로비에 방독면을 쓴 시커먼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방독면이 신분증이라도 되는 듯 보안 요원들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중앙 계단 앞에 흰 가운을 입고 서 있던 남자아이가 방독면을 발견하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이사영 님.”

    사영은 무심한 눈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남우진은.”

    “수술실에 계십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아이가 오른쪽 복도로 들어가자 사영이 뒤따라 걸었다. 서원 길드의 복도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개미굴처럼 얽혀 있었다.

    한참 걷고 나서야 단색의 철문이 나타났는데, 문 위에는 붉은색 ‘수술 중’ 램프가 켜진 채였다. 아이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선생님, 이사영 님 오셨습니다.”

    기실 그곳은 수술실보다는 과학자의 연구실에 가까웠다. 벽을 빼곡하게 채운 책과 문서들, 수술 도구와 의료기기가 어지러이 놓인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수술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녹색 수술복에 흰 가운, 하나로 묶은 백발에 백안, 은테 안경까지. 온갖 색의 머리 색과 눈 색이 판치는 헌터 시대에서도 흔치 않은 외모였다. 사영이 고개를 까딱여 대충 인사했다.

    “남우진.”

    대한민국 랭킹 6위, 한국의 유일한 A급 힐러, 남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바쁘다기에 세 시간은 기다려야 할 줄 알았더니. 빨리도 왔다.”

    “잘 아네. 바쁘니까 본론만 말해.”

    “그러지.”

    수술대 앞에 선 우진이 불룩한 수술대를 덮은 흰 천을 걷어냈다. 피에 흠뻑 젖은 채 뭉개진 얼굴과, 비틀린 몸 곳곳에서 검은 가시가 솟아난 남자의 시체가 드러났다. 그들이 ‘중독자’라 부르는 존재였다. 사영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상태가 최악이군.”

    “정빈 말로는 발견했을 때부터 이 상태였다고 해. 아주 강한 힘으로 맞아서 안면이 함몰됐어.”

    “그것만으로는 안 죽을 텐데.”

    “그래. 직접적인 사인은 목 골절이야. 누군가가 목을 부러트렸지.”

    목에는 손 모양대로 시반이 올라와 있었다. 상흔을 발견한 사영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거….”

    “그래. 맨손으로 콱 잡아서, 한 번에 똑.”

    남우진은 허공에 대고 무언가를 잡아 비트는 시늉을 했다.

    약을 먹고 신체가 변이되기 시작한 놈들의 육체는 매우 튼튼하다. 웬만한 힘으로는 뼈를 부러트려 제압할 수 없을 터. 사체를 관찰하던 사영이 상체를 곧게 세웠다.

    “신고자는 누구지?”

    “양혜진. 균열관리청 소속 A급 헌터.”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사영이 손끝으로 수술대를 톡톡 치며 물었다.

    “그녀가 처리한 건가?”

    “아니. 누가 처리했는지는 몰라. 첫 발견자도 따로 있었고. 해장국집 알바생이 쓰레기를 버리다 발견했는데… 생긴 게.”

    우진이 검은 가시가 잔뜩 튀어나온 시체를 힐끗 보았다.

    “저 꼴이라. 아주 질겁을 했다나 봐.”

    “…….”

    “뭐, 일반인이 보기에는 놀랄 만도 하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벌벌 떨고만 있다가 해장국 먹으러 온 양혜진에게 신고를 부탁했다더군.”

    “…해장국?”

    “응. 맛집이라던데…. 나는 안 가봐서 자세히는 모르겠고.”

    해장국 맛집 하면 배원우가 뭐에 홀린 것처럼 꼬박꼬박 출근하는 한군데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사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수술대를 건드리던 손끝이 서서히 느려졌다.

    “발견된 장소가 정확히 어디지?”

    “그게 좀 흥미로워. 얘야.”

    “네, 선생님.”

    옆에서 대기하던 아이가 지도를 띄운 태블릿을 건넸다. 사영은 화면에 뜬 지도를 확대했다.

    “장소가 낯익지 않나? 저번에 중독자가 발견됐던 골목 근처 분리수거장이야.”

    “…….”

    “그 근방에 새로운 공급책이 생긴 건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어. 참고해.”

    우진의 말대로, 이번 발견 장소는 사영이 ‘형’을 만난 장소와 아주 가까운 골목이었다. 과연 우연일까?

    “아, 그리고 특이한 점이 또 있는데…. 이것 좀 봐봐.”

    우진은 의료용 장갑을 낀 손으로 사체 위로 흉흉하게 나와 있는 검은 가시 몇 개를 가리켰다. 몸에서 솟은 수많은 가시 중, 배와 심장에서 튀어나온 가시 여러 개는 무언가 단단한 것에 부딪힌 것처럼 휘어 있었다.

    사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뒤틀린 가시 끝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묘한 기시감이 찾아들었다.

    “이런 모양으로 휜 가시는 처음 봐서 말이야. 엄청 단단한 뭔가에 갑자기 충돌한 것 같기는 한데… 본 적 있나?”

    있다.

    ‘형’이 국자로 후려쳐서 휘었던 가시가 딱… 이렇게 생겼었지. 그날의 일을 몇 번이고 곱씹었기에 사영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굳어 있던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져도 흔적 하나 나오질 않았을 때는 약이 올라 숨넘어갈 뻔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선 찾아내는 대로 그를 족쳐버리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흔적이 나타나니 웃음부터 새어 나왔다. 우진이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아는 게 있는 눈치인데.”

    “응.”

    사영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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