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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10)화 (10/67)
  • 10화.

    헌터 강국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길드를 꼽으라면 누구든 이견 없이 세 개의 길드를 꼽을 것이다.

    첫 번째, 파도.

    두 번째, 삼라,

    세 번째, 서원.

    가장 먼저 삼라 길드는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첫 번째 길드였다. 직접 A급에서 S급이 되어 각성자의 후천적인 등급 상승이 가능함을 밝힌 송조헌이 길드장으로 있으며, 긴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건실한 토대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헌터계의 묵직한 한 축을 이뤘다.

    서원 길드는 조금 다른 이유로 유명했다. 서원 길드 본 건물에는 다른 공간과 이어진, 거대한 도서관이 존재했다. 균열의 날 이후의 지식을 모아둔 방주 같은 곳이었다. 그들은 돈이나 명예 대신 지식을 추구하는 집단이었고, 실제 전투보다는 연구 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파도. 파도 길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딱 두 가지면 요약하기에 충분했다.

    소수 정예, 그리고 이사영.

    * * *

    널찍한 파도 길드의 회의실의 한 면은 통창이라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태블릿을 들고 그 앞을 가로지르며 회의실에 들어온 파도 길드의 부길드장, 배원우가 문을 노크하듯 두들겨 주의를 집중시켰다.

    “자자, 슬슬 인원 체크하겠습, …왜 네 명이나 비는지 아는 사람?”

    참여 인원수에 딱 맞게 의자를 놓았는데 네 자리나 비었다. 불참한다는 연락도 받은 바가 없는데 이상하다. 어디에 긴급 균열이라도 터졌던가? 배원우가 머리를 벅벅 긁고만 있자, 새빨갛게 염색한 머리를 반묶음으로 묶은 여자가 손을 들며 말했다.

    “부길짱~ 걔네들 치료실에 누워 있어요. 하루 됐을걸요.”

    “엥? 왜? 던전 공략도 안 들어간 놈들이.”

    의아한 물음에 빨간 머리 여자, 강지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몰라요. 어디서 처맞고 왔더라고요.”

    “뭐? 어떤 새끼가 우리 애들을 쥐어팼어? 그걸 가만 놔둬?”

    “에이, 당연히 우리도 같이 패줄라 그랬죠. 근데 길드장님이 가만 놔두랬어요.”

    배원우의 시선이 휙, 하고 가장 상석에 앉은 이사영에게 향했다. 앞선 대화에도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만지작대던 이사영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왜.”

    “아니…. 넌 애들이 웬 놈한테 두들겨 맞고 왔는데 그냥 놔두라고 해? 이건 우리 파도의 의리가 아니지.”

    “냅둬. 길드장 명령이야.”

    이사영이 여전히 시큰둥한 목소리로 느릿느릿 대꾸했다. 배원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영이 지금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는지 자세히 보려 노력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건… 웬 구겨진 명함 같았다.

    “너 손에 든 건 뭐냐?”

    “편지.”

    “편지? 누가 준 건데?”

    “궁금한 게 많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사영이 길드원들이 앉아 있는 방향으로 턱짓했다.

    “회의나 시작해.”

    “에이… 쯧, 지수야! 드러누운 놈들한테는 네가 회의 내용 전달 좀 해줘라.”

    “아이씨, 맨날 나만 시켜.”

    강지수가 투덜댔으나 배원우는 더 말을 얹지 않고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큼큼 목을 가다듬은 그가 시작을 알렸다.

    “그럼 이번 분기 던전 입찰 회의 진행하겠습니다. 다들 태블릿 켜서 지원실에서 보낸 파일 열어보세요.”

    던전 몇 개와 관련한 자료와 함께 시작된 회의는 예상보다 금방 끝났다. 모두의 의견이 하나의 던전에 쏠렸기 떄문이다. 단상에 선 배원우가 마이크를 고쳐 잡고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어…. 더 의견 없으면 4분기 던전 입찰은 종로3가 지하 던전에 참여하기로, 예, 결정하겠습니다. 다들 이의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좋아요~ 종로3가면 교통도 편하고, 안에서 나오는 재료들도 괜찮죠.”

    “거기서 생명력 회복 포션 재료 나오던가? 정부가 웬일로 그 알짜배기 입찰을 풀었대?”

    “돈이 궁한가 보죠, 뭐. 아마 입찰가 어어어엄청 비쌀 거예요.”

    던전과 몬스터의 부산물이 돈이 된다는 게 알려진 후, 취할 것은 취하고 던전의 문을 닫았던 헌터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쓸모 있는 던전은 남겨두게 되었다.

    몬스터들을 거의 소탕한 던전 내부를 주기적으로 탐사하고 부산물을 채집해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정부와 각성자 관리국은 주인 없는 던전들의 연구를 진행하고, 쓸모 있는 던전을 골라 경매에 부쳤다.

    평소 같았으면 길드장과 부길드장 선에서 의논하여 경매에 참여했겠지만, 이번 분기 경매에는 유독 알짜배기 던전들이 많아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의 의견을 듣고자 배원우가 오늘의 회의를 소집하게 된 것이다. 그런 것치곤 싱겁게 끝났지만.

    “그럼 이걸로 회의를 끝…”

    “잠깐.”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이사영이 손을 들었다. 곧 회의가 끝날 거라 예상하고 자리를 정리하던 길드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만 회의를 마무리 지으려던 배원우도 눈꺼풀을 껌뻑였다.

    “왜 그러냐, 사영아?”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무슨 일입니까?”

    호기심 어린 눈들이 일제히 이사영을 바라보았다. 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나? 아니면 던전 추가 입찰? 다른 길드의 입찰권을 뺏어 오려는 걸까?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의 예상을 깬 뜻밖의 내용이었다.

    “소주 브랜드 앞치마 입은 남자 본 적 있어? 이 근방에서.”

    “소주 브랜드 앞치마? 갑자기요?”

    “응. 검은색. 이만한 국자도 들고 다니고.”

    “국자?”

    “곱상하게 생겼고…. 머리는 검은색… 아니, 회색이었던가.”

    “얼굴이 곱상해? 머리가 까만데 회색이야?”

    이사영이 두 손으로 동그란 원을 만들었다. 파도 길드의 든든한 방패이자 부길드장, 배원우가 뜬금없이 이게 뭔 개소리냐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로 배원우를 보고 있을 뿐, 별 소득은 없었다.

    ‘야, 너네 아무도 몰라?’

    ‘부길드장님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그런 마음의 소리가 허공에서 오가는 듯했다.

    아니! 이사영이 별 이유 없이, 회의 끝나기 직전에 이런 말을 꺼내진 않았을 터인데. 최대한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배원우는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어디서… 소주 판촉 행사하는 거 봤냐?”

    배원우는 성실하고 듬직한 탱커였으나 기민한 지능만은 가지지 못했다. 그의 추론은 완전히 헛다리였지만, 다른 길드원들도 딱히 예상가는 바가 없었기에 배원우의 의견에 일단 맞장구를 쳤다.

    “아~ 길드장님, 어디 마트 다녀오셨구나?”

    “아니, 쟤가 마트 갔으면 진작 홍보팀에서 연락 왔겠지.”

    “그건 또 그래요.”

    “애초에 앞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부터가 좀 이상한 사람 아닙니까?”

    “왜요, 식당에서 일하면 그럴 수도 있죠.”

    “길드장님이 식당 직원을 왜 찾죠?”

    “나야 모르지. 아니면 밥을 맛있게 먹었다가 깜빡하고 앞치마를 입은 채로 밖에 나온 거야.”

    “보통 계산할 때 사장님들이 앞치마 벗어놓고 가라고 하지 않아요?”

    “도움이 하나도 안 되네.”

    길드원들이 하나둘 내는 의견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사영은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아니, 입찰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앞치마 입은 남자 얘기한 게 누군데?”

    배원우가 단상을 퍽, 내리치며 억울함을 표시했다. 나무로 만든 단상이 그의 주먹 모양대로 움푹 파였다. 총무팀 팀장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안경을 고쳐 쓰자 렌즈에 삥― 하고 빛이 번뜩였다.

    “부길드장님, 단상 교체 비용 청구서 올려보내겠습니다.”

    “아, 젠장.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순식간에 장내가 어수선해진 틈을 타 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를 두어 번 돌린 그가 구겨진 명함을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사영은 총무팀장에게 싹싹 빌고 있는 배원우를 보고도 손을 휘휘 내저으며 해산을 알렸다.

    “됐어. 회의 끝. 식사하러들 가세요.”

    “야 사영아! 너 또 밥 거르지 마라!”

    뒤통수에 애정 어린 잔소리가 따라붙었지만 이사영은 대답 없이 가장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원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지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길짱이 밥 거르는 게 하루 이틀이에요? 그냥 밥이나 먹죠.”

    “에휴…. 그래, 해장국 먹으러 가자.”

    “아! 해장국 작작 좀 먹어요. 오늘도 그거 먹을 거면 부길짱이랑 밥 안 먹음.”

    “같이 갈래? 내가 사준다.”

    “아아, 안 들린다. 전 구내식당에서 먹겠습니다. 혼자 가세요.”

    강지수가 붙잡을 틈도 없이 재빠르게 회의실에서 도망쳐버리자, 배원우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남은 인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같이 갈 사람 없냐?”

    그 말을 꺼낸 순간, 헌터들은 민첩하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2급 몬스터에게서 도망칠 때도 저렇게 빠르진 않았는데!

    “길드장이라는 놈부터 하나같이 파도의 의리를 너무 가볍게 보는 거 아니냐!”

    결국 배원우는 혼자서 털레털레 해장국집으로 향해야 했다. 그가 매일같이 드나드는 노포 해장국집은 소문난 맛집이기도 했지만, 사실 배원우가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째, 자고로 사람이 모이는 곳에 소문이 가장 빨리 도는 법! 나는 거기 있는 헌터들과 대화하면서 정보도 수집하고! 친분도 좀 쌓고! 하려고 가는 거라고! 파도의 부길드장은 표면적으로 이러한 깊은 뜻을 내세우며 점심시간마다 꼬박꼬박 가게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해장국집의 낡은 벽지에 제 사인이 붙은 걸 볼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은 덤이었다.

    둘째, 해장국집은 물가가 미쳐 돌아갈 때도 최대한 예전의 가격을 고수했고, 맛도 좋은 데다 양까지 푸짐한 곳이었다. 이렇게 팔고 나면 뭐 남는 게 있나 싶을 정도였다. 방문할 때마다 주인 할머니가 퉁명스레 맞아주는 것도 정다웠다. 해장국집은 바뀐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균열의 날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물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낯선 청년이 갑자기 가게에 등장한 것은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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