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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7)화 (7/67)
  • 7화.

    “저 진짜로 가야 돼요. 초등학생이 이 시간까지 밖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 밤에 혼자 거리를 배회할 어린이가 걱정되지 않으세요?”

    공익광고 내레이션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심금을 울리는 멘트였다.

    통해라. 도통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까만 방독면을 보며 의재는 속으로 기도했다.

    “맞다, 그랬지.”

    그러나 의재의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도, 방독면의 음성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딴 작전은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던 방독면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입력한 후, 보란 듯이 핸드폰을 흔들었다.

    “미아는 우리 애들이 찾아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그러나 차의재도 이번만큼은 민첩하게 다음 스텝을 밟았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아뇨, 거절하겠습니다. 경찰 부를 거예요. 민중의 지팡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응…. 그럼 난 각성자 관리국 부를게.”

    “관리국을 왜 부르죠?”

    “헌터들이 능력 써서 찾는 게 경찰보다 빠르니까. 정빈 좋아해? 내가 부르면 바로 와. 불러줄까?”

    별걸 다 묻는다는 듯 곧바로 받아치는 방독면에 의재는 잠시 할 말을 잃고서 그를 대놓고 꼬나보았다.

    진심이냐.

    응, 진심인데?

    빠르게 서로의 눈빛을 읽고 나자 힘이 쭉 빠져 더는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의재는 우선 알겠다는 듯 양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추적에 특화된 헌터가 있다면 방독면의 말마따나 경찰보다 미아 찾기가 수월할 터였다. 하지만 의재가 일 보 후퇴한 이유는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놈이 정빈을 불러주겠다는 소리가 도저히 빈말처럼 들리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한두 번 패본 솜씨가 아닌 걸 보면, 방독면은 분명히 각성자 관리국 데이터베이스에 요주의 인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정빈은 그의 연락을 받자마자 냉큼 이곳으로 달려오겠지. 그럼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게 안 봐도 우튜브였다.

    좋아, 잠깐 나눠본 대화만으로도 눈앞의 이 새끼는 엮이면 안 되는 놈이라는 판단이 섰다.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쉰 의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이렇게 말꼬리만 잡다간 대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존댓말을 내던지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방독면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방독면이 낮게 속삭였다.

    “질문 두 개만 할게.”

    “…….”

    의재는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일단 첫 번째 질문. 골라봐.”

    방독면이 크고 곧은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보였다. 달빛 덕분인지 어둠 속에서도 그의 손이 선명하게 보였다. 들이민 손가락 끝은 전부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침묵을 길게 끌 생각은 없었는지, 방독면은 의재가 고르지 않았는데도 먼저 입을 열었다.

    “하나, 그 국자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S급 무기다. 맞아?”

    6,900원짜리 국자의 신분 상승, 미쳤다….

    저 가시 좀 쳐냈다고 국자를 이렇게까지 올려 쳐주다니. 방독면은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는 걸까, 아니면 바보인 걸까. 의재는 부러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며 뒷짐을 진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돌아오는 답이 없자 방독면이 한숨을 폭 내쉬더니 천천히 검지를 접고, 손등이 보이도록 손목을 반 바퀴 돌렸다. 그는 아까 전 브이를 했을 때만큼이나 태연자약한 얼굴로 중지에 바짝 힘을 주며 물었다.

    “둘, 네가 미등록 각성자다. 이건?”

    “싸가지….”

    요즘 헌터들은 다 이렇게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나? 의재는 얄미울 정도로 길게 뻗은 중지를 보며 기가 찬다는 얼굴을 했다.

    8년 전, 차의재가 현역으로 뛸 때는 이런 식의 하극상이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놈이 언제 각성했든 간에 자신보다 선배일 리는 없었다. 당연하지, 내가 대한민국 최초의 S급 각성자니까!

    대 헌터 시대가 됐다고 몇백 년간 이어져 온 유교 사상을 갖다 버리진 않았을 텐데. 의재가 까마득한 후배가 건방을 떠는 것에 대한 분을 삭이는 가운데, 방독면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뭐…. 그게 S급 무기 같지는 않으니까 미등록자가 맞겠지?”

    “나 미등록자 아닌데.”

    어쨌든 각성자 등록 자체는 되어있을 테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은 미등록자가 아니었다. …실종 혹은 사망 처리되어 기록이 말소됐을 수도 있지만, 8년 전에는 등록이 되어 있었으니 양심에 찔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방독면은 별 헛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구라를 칠 거면 좀 성의 있게 쳐야지….”

    “진짜라니까.”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독면이 시야에서 휙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카앙―!!

    의재는 뒤에서 예고 없이 날아온 일격을 국자로 막아냈다. 방독면 렌즈 너머, 보랏빛 눈이 시퍼렇게 번뜩였다. 방독면은 공격이 막혔음에도 손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국자를 꽉 움켜쥐었다. 꽈드득, 안 그래도 움푹 찌그러져 있던 국자가 힘을 준 모양대로 구겨졌다.

    치이익―

    잠시 후, 방독면의 손안에서 우그러들던 국자가 시커멓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금속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식이나 부패 쪽 능력인가?’

    뚝, 뚝, 시커먼 액체가 바닥에 떨어지고, 바닥에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가 무섭게 닿는 곳마다 시커먼 색으로 변했다. 의재는 최근에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서해 균열의 주인, 바실리스크의 송곳니가 닿은 곳이 전부 저렇게 녹았다.

    ‘독이구나.’

    심지어 바실리스크의 독에 견줄만한 맹독이다. 방독면은 그냥 콘셉트인 줄 알았더니….

    의재가 눈살을 찌푸리자 방독면 너머의 얼굴이 히죽 웃는 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답을 얻어낸 건지 더 달려들지는 않고 손을 털며 한 발짝 물러섰다.

    “평범한 국자네.”

    “…….”

    “그리고 넌, 내 공격을 막는 미등록 각성자고….”

    “미등록자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야.”

    방독면의 동그란 렌즈 너머에서 보랏빛 안광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이 정도인 놈을 모를 리가 없잖아.”

    칭찬으로 듣자면 들을 수도 있는 말인데 왜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 의재는 끈질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면서 그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곧이어 그는 어렵지 않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새끼, 아까부터 말이 짧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기본적으로 극 존댓말만 들으며 곱게 헌터 생활을 했던 구 J, 현 차의재의 귀에 이러한 행태는 심히 거슬리셨다. 자고로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거늘. 의재가 삐딱하게 자세를 틀며 눈을 치켜떴다.

    “야,”

    “응?”

    “너 몇 살이야.”

    생뚱맞은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린 방독면은 곧 아까까지의 기세를 죽이고 천진하게 대답했다.

    “스물넷.”

    스물넷? 스물네엣? 차의재는 몸의 중심을 더욱더 한쪽에 실으며 짝다리를 짚었다.

    “이게, 어린놈이 초면에 반말이나 하고.”

    “그쪽도 내 또래로 보이는데.”

    “야, 내가 너보다 밥을 오천 그릇은 더 먹었어,”

    물론 차의재는 여전히 자신이 스무 살이 아닌 스물여덟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실제로 오천 그릇을 더 먹지도 않았지만! 어차피 먹은 나이라면 보다 효과적으로 써먹어야 했다. 지금 그가 방독면을 이겨 먹을 수 있는 건 꽁으로 얻은 8년의 세월뿐이었다.

    갑작스러운 꼰대 발언에 방독면이 다시 고개를 갸웃댔다. 흉흉한 방독면을 써놓고 하는 짓은 안 어울리게 앙증맞아서 그런지 순 애 같았다.

    “아하… 그래서?”

    “말이 너무 짧다고, 너.”

    “그렇구나….”

    방독면이 짧게 웃더니 의재를 향해 슬쩍 고개를 숙였다. 렌즈 너머에 있는 눈이 휘어지며 그가 속삭였다.

    “존댓말 해드려요?”

    방금까지 사람을 패던 놈이라 그런지 방독면에게는 기묘하게 풍기는 아우라가 있었다. 의재가 헌터로 일하면서 몬스터와 맞서 싸우던 경험이 없었다면 조금 위축됐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차의재는 구르고 구르다 못해 닳아서 소멸하기 직전의 베테랑 헌터였다. 부드러운 말투 속에 미묘하게 날을 세우는 방독면을 보고 피곤하단 생각부터 했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저보다 네 살이나 아래인 놈에게 반말을 듣는 상황을 의연하게 넘기는 쪽으론 성장하지 못했지만.

    몸은 스무 살 그대로였지만 마음만은 스물여덟을 넘어서 280살이 된 의재였다. 어쩌면 꼰대 같은 그의 성질머리엔 280살이라는 나이가 더 잘 어울릴 수도 있었다.

    의재의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독면이 까만 표면 위를 손끝으로 만지작대며 덧붙였다.

    “별론가? 죄송해요. 존댓말 같은 거 해본 지가 좀 오래돼서.”

    엎드려 절받기가 이런 걸까? 원하던 존댓말을 들었는데도 의재는 오히려 기분이 아니꼬웠다. 절하라고 했더니 냅다 두 번 절하는, 말 안 듣는 손자를 앞에 둔 할아버지라도 된 기분이었다.

    차의재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되새겼다.

    지금의 난 일반인이다. 일반인. 헌터 J가 아니라. 저쪽은 귀하디귀한 헌터님이시고, 난 일반인이다. 하은이를 빨리 찾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반인. 오늘 바깥으로 나온 목적을 떠올리니 조금씩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도 같았다.

    ―하은이가 어데 가뿌고 없다, 우야노. 내 쥐도 새도 모르게 언제 나갔는지 모르겠다. 요새 세상이 을매나 무서븐데 아 혼자 나간 기고….

    근데, 이놈이랑 입씨름할 시간에 하은이를 이미 찾았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의재의 자기 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속에서부터 무언가 욱하고 올라올 것만 같았다.

    지금의 나는 J가 아니라, 선량하고 평범한 일…

    “일 분 차이 나는 쌍둥이도 형 동생을 구분하는데!”

    결국, 의재의 꼰대력이 폭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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