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4)화 (4/67)
  • 4화.

    1, 균열의 날

    세상이 발칵 뒤집힌 건,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천둥이 치던 11년 전의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큰 천둥소리에 깬 사람들은 하늘에 뚫린 거대한 검은 구멍을 일제히 올려다보았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이길 기다린 듯, 혹은 모두가 일어나길 기다린 듯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자 거짓말처럼 천둥이 멎었고.

    블랙홀에서 난생처음 보는 몬스터가 쏟아졌다.

    균열은 주변 모든 것을 순식간에 빨아들였고, 열려버린 던전 입구에서는 몬스터들이 개미 떼처럼 쉴 틈 없이 기어 나왔다. 갑작스럽게 삶을 침범한 그들은 건물을 무너트리고, 땅을 마구 부쉈다.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실종되고, 죽었다. 과학 문명의 산물인 인류의 무기는 몬스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사람들은 극복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앞에 절망했다. 지구가 망하더라도 핵전쟁으로 망할 줄 알았는데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몬스터 때문에 멸망할 줄이야! 갑자기 찾아온 재앙 앞에서 인류는 무력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망하란 법은 없는지, 멸망을 잠시 멈춘 존재가 나타났으니….

    바로 게임 속 상태창처럼 생긴 미지의 하얀 창, 통칭 ‘시스템’.

    시스템은 몇몇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 미지의 힘을 일깨웠다. 시스템과 접촉한 자는 새로운 힘을 각성해 몬스터와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인류 반격의 신호탄이자 삭제 1세대 각성자. 훗날 헌터라 불리는 존재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인류는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무너진 문명을 재건하며 새로운 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를 달리는 나라가 미국이었고 그다음은 놀랍게도 한국이었다. 한국은 균열의 날 당시 정부와 치안이 마비되지 않은 소수의 국가 중 하나였고, 그건 혜성처럼 나타난 S급 각성자 J 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공개된 정보는 ‘J’라는 헌터 네임과 성별뿐. 이름, 얼굴, 나이, 모든 것을 숨긴 신비주의 헌터 J는 흰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채, 2급 몬스터 사스콰치를 두 동강 내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는 이후로도 균열 및 던전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수많은 사람을 구해냈다. 그야말로 난세의 영웅, 캡틴 코리아 그 자체였다.

    「제이는 사스콰치를 찢어(물리)」

    훗날 통신망이 복구된 후, 누군가가 우튜브에 올린 한 동영상이 몇십억 단위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J는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역시 세상이 망하고 몬스터가 칼춤을 춰도 핸드폰 카메라만큼은 살아 있는, 정보 통신 강국 대한민국의 영웅다운 행보였다. 아무튼, J의 활약과 함께 세상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렵게 찾은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3년 후, 서해 해상에 5급 균열이 발생했다. 각성자 관리국에서 파견한 인원과 근방 헌터들이 진입했으나 전원 연락 두절, 균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탐욕스럽게 모든 걸 빨아들였다.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간 균열이 서해의 섬들은 물론, 인천까지 집어삼키리란 예측이 나온 상황.

    정부는 서해 균열의 위험도를 5급에서 1급으로 격상한 후, 결단을 내렸다.

    “S급 헌터 J와 A급 헌터 14명, B급 헌터 30명을 추가로 투입하여 균열의 확장을 막겠습니다.”

    파견된 헌터들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균열에 진입했다. 진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균열은 점차 확장을 멈췄고, 한 달 뒤에는 완전히 소멸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영웅들의 귀환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석 달 후, 각성자 관리국은 조사 끝에 그들이 균열과 동귀어진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전원 사망을 발표하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정부는 균열에 용감하게 뛰어든 헌터들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세웠다. J의 이름은 추모비의 맨 위에 적혔다.

    그로부터 8년.

    최초 균열의 날로부터 11년이 지난 현재, 정부 차원에서는 몬스터 사체와 던전 부산물을 대체 자원으로 쓰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길드들은 던전을 단번에 소멸시키는 것 대신 본전 뽑을 건 뽑고 나서 게이트를 닫는 쪽으로 작업 방식을 갈아타게 되었다. 운이 좋으면 가공해서 쓸 만한 부산물을 얻을 수도 있었으니까.

    5차 산업혁명 대신 찾아온 대 헌터 시대. 메타버스 물렀거라! 현시대의 중심은 다름 아닌 헌터들이었다.

    유구하게 히어로 영화 시리즈가 대흥행했던 한국이다. 그러니 CG 없이 눈앞에서 히어로처럼 싸우는, 현실 히어로나 다름없는 헌터들의 인기가 폭발하는 건 당연지사. 그들의 인기는 매일 상한가를 찍었다.

    아이돌처럼 생일 축하 전광판이 걸리는 건 물론이요, 광고계에서 쏟아지는 러브콜은 당연했고, 헌터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 많아 다 세지도 못했다. 심지어 허니비처럼 헌터와 모델, 투잡을 뛰는 헌터도 존재할 정도니 말 다 했다.

    헌터를 동경하며 각성을 꿈꾸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80% 이상이 헌터를 외치고, 던전 슬라임 ASMR 동영상이 유행하며, 한가한 헌터가 A급 장검으로 택배 언박싱 방송을 하는 시대.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었다.

    * * *

    ‘이게… 맞냐?’

    그러나 8년 전 사람이자 대 헌터 시대 적응기를 거치고 있는 차의재가 보기엔 이 모든 상황이 그냥… 다 거짓말 같았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된 책들을 노려보던 의재가 인상을 팍 썼다.

    1위, 『헌터도 헌터가 처음이라』

    2위, 『노량진 헌터 공무원 학원 스타 강사의 비법! 반년 만에 끝내는 시험!』

    3위, 『아프니까 헌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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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니까 헌터라는 건 대체 뭔 소리야, 아프면 환자지. 의재는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선 찬찬히 밑 순위로 시선을 옮겼다. 물론 그 아래 책들의 제목까지 본 그의 표정은 더욱 구겨지고 말았다. 별 쓸데없는 데에도 죄다 헌터를 붙여놓다니… 좀 꼴값인데.

    슬쩍 보고 안 본 척 시선을 돌리자, 이번엔 벽면 공익광고에 정장을 입은 채 엄지를 척 들고 있는 온화한 인상의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각성자 등록 문의는 핫라인 777, 미등록자 신고 및 각성자 범죄 신고는 555!’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시선을 떼었음에도 의재의 꾸깃꾸깃한 인상은 펴질 생각이 없었다.

    9년 전, 던전과 균열이 비교적 안정됐을 무렵 할 일 없는 각성자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늘어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각성자를 관리하는 정부 기관을 신설하겠다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한 경찰대 재학생이 S급으로 각성했다는 소식이 관계자들의 귀에 들어갔다.

    아! 이것은 필시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였다. 정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장 각성자 관리국을 신설, 막 각성한 경찰대 학생을 특채로 관리국에 밀어 넣었더랬다.

    그 사람이 바로 광고판 속 남자, S급 공무원 헌터 정빈이었다.

    차의재도 J로 활약하던 시절 정빈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그래도 안부 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이였다. 당시엔 전국에 S급 헌터가 둘밖에 없어서 나름 내적 친밀감도 있었고.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셨죠.’

    8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을 겪으신 겁니까. 의재의 눈빛에는 어느새 안타까움마저 서려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정빈은 현존하는 모든 공익광고에 얼굴을 비췄다. 의재가 생각하기엔 공무원이라 값싸게 부려먹기 편하니 관리국에서 아무 데나 내보내는 것 같았다.

    그는 엊그제 TV 광고에서는 금연을, 얼마 전 본 버스 광고에서는 333 양치질 법칙을 홍보하고 있더니 여기선 또 각성자 등록 홍보를 하고 있었다. 아마 한국에서 얼굴만큼은 가장 유명한 헌터가 아닐까.

    의재가 과거 동료의 행보에 애도를 표하고 있을 무렵, 머리를 하나로 묶은 똘망한 인상의 여자아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책가방 지퍼에 매단 별 모양 명찰이 달랑거렸다.

    박하은, 샛별초등학교 2학년 2반. 삐뚤빼뚤하지만 꾹꾹 눌러 쓴 글씨 밑엔 해장국집 전화번호와 주소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삼촌, 책 다 골랐어.”

    삼촌이라는 호칭에 의재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진짜 삼촌과 조카 관계는 아니었다. 하은은 해장국집 주인 할머니의 하나뿐인 손녀고, 의재의 가족은 균열의 날에 다 죽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하은은 의재를 삼촌이라고 불렀고, 의재도 굳이 고치지 않았다. 마치 과거 이모와 자신의 관계처럼.

    “뭐 골랐어?”

    “이거.”

    『What? 균열의 날』

    하은이 들이댄 만화책의 표지에는 귀엽게 미화된 몬스터 몇 마리와 가면을 쓴 청년이 그려져 있었다. 의재도 익히 아는 어린이 학습 만화 시리즈였다.

    세상이 망할 뻔했는데도 이 학습 만화는 여전히 나오는구나. 내심 감탄하는 의재의 눈에 문득 그림으로 그려진 청년의 얼굴이 들어왔다. 까만 머리나 흰 목도리 같은 건 차치하고서라도, 얼굴 위로 쓰고 있는 가면이 지나치게 익숙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상권 침해 아니야, 이거?’

    …그것은 차의재가 한참 J로 활약할 때 정체를 숨기기 위해 쓴 가면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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