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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는 조용히 살고 싶다 (3)화 (3/67)
  • 3화

    “저,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오야, 갖다 쓰라.”

    “감사합니다.”

    의재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게 안 카운터로 향했다. 그러곤 낡은 수화기를 붙잡고 그만이 알고 있는 각성자 관리국 국장 직통 연결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를 누르는 손이 끊임없이 떨려왔다. 그러나,

    ―지금 입력하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며 삐 소리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결과는 같았다. 의재는 들고 있던 수화기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얼음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더니 그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진짜로 8년 뒤 미래로 내가 뚝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아니, 그것보다도 나… 진짜 죽었나?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국장이 번호를 바꿨을 수도 있지 않나. 의재는 애써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황급히 가게에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린 찰나, 의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균열 진입 전, 포션 같은 소모품만 가득 챙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포션마저도 전부 써버려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빈털터리. 밥값을 낼 돈조차 없다….

    의재는 슬쩍 할머니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할머니.”

    “와.”

    “제가… 그.”

    애꿎은 옷소매만 문지르며 말을 잇지 못하자 할머니는 의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느릿느릿 그에게 걸어왔다. 쪼글쪼글 주름진 손이 채 상처가 낫지 않은 손을 붙잡았다.

    “됐다, 마.”

    “네?”

    “난주 또 밥이나 무러 오니라.”

    의재의 손에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얹혀 있었다. 한참 입만 뻐끔거리던 의재는 차마 말문을 열지 못한 채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주방 옆의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곧 낡은 군청색 재킷과 검은 모자를 들고 나왔다.

    “입고 가라.”

    “아뇨, 괜찮아요. 저 진짜 괜찮아요.”

    “날 밝고 그딴 꼬라지로 싸돌아댕기다가 잡히간다. 입어라.”

    할머니의 말씀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의재는 너덜너덜하게 찢긴 재킷을 벗다가 문득 제 왼 손목에 찬 은색 시계를 발견했다. 의재가 각성한 순간부터 갖고 있던 물건이었다. 이거다! 의재는 다급히 시계를 풀어 노인에게 내밀었다.

    “할머니, 이거요.”

    “뭐꼬?”

    “시계예요. 지금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요.”

    “만다꼬, 필요 없다.”

    “아니에요, 받아주세요. 아니면 제가 맡겨놓은 걸로 해요. 나중에 찾으러 올게요.”

    할머니 손에 시계를 억지로 쥐여준 의재는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고개를 연신 꾸벅이며 가게를 나섰다. 급하게 따라 나온 할머니가 그를 불렀지만 애써 무시하고 도망치듯 뛰었다.

    한참 달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길게 늘어선 줄과 도로를 가득 채운 차, 피곤한 얼굴로 젖은 보도블록 위를 걷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의재에게는 낯설 뿐이었다. 8년 후라고 추정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자신의 기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의재는 어딘가 텅 비어버린 눈으로 평온한 일상의 순간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삐이이― 주변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다들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남자 둘이 쫑알댔다.

    “아씨, 30분 뒤에 게이트 열린대.”

    “헌터들 볼 수 있으려나? 랭커 오면 동영상 찍어서 우튜브에 올리자.”

    “그래. 아 씨, 이럴 줄 알았음 드론 챙겨 오는 건데.”

    …게이트가 열린다고? 의재는 얼떨떨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게이트가 열린다는 알림에도 사람들은 평온해 보였다. 마치 게이트 알림이 일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놀라는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황한 의재는 제 옆을 지나가는 여성을 붙잡아 말을 걸었다.

    “저기, 죄송합니다. 혹시 곧 게이트가 열리나요?”

    “네? 네. 방금 재난 문자 왔는데 못 보셨어요?”

    “아… 네. 핸드폰을 놓고 나와서요.”

    “아, 그러셨구나. 여기 보시면….”

    여성이 핸드폰을 내밀어 문자를 보여주었다.


    [ 균열관리청 ]

    11월 14일 오전 7시 42분 서울 송파구 위례동 동쪽 방면 게이트 등장 예정. 주민들은 지정 대피소로 대피, 사전 대피가 불가능할 경우 각성자 관리국 연락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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