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44)화 (244/246)

241화

25. 생각지도 못한

“…그렇게 웃는 건 형이라 봐주는 거예요.”

봐준다고 말하기엔 얼굴에 만족감이 가득하다. 그냥 하는 말이라는 게 너무도 티가 나는 모습에 계속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요.”

“얼른 가요.”

혹여 내가 말을 바꾸진 않을까 걱정되었는지 곧바로 손을 잡아끈다. 그를 따라 이동하며 주변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담장의 끝에 자리한 문 앞에 당도했다.

직원의 말을 떠올리며 이 문 너머가 별채인가 넘겨짚는데, 김세현이 곧바로 나무문을 밀었다.

“여기에요.”

“여기가 별챈가요?”

“네. 여기 전체 쓰는 거니까 편하게 먹고 좀 쉬다가 가요.”

“…여길 전부 사용한다고요?”

방이라고 해서 시선에서 자유로운 곳이라고만 생각했지, 건물 하날 통째로 사용할 줄은 몰랐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상황에 멍하니 문 안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내 감탄사를 뱉었다.

“예쁘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본 건물 안 풍경도 무척 예뻤다. 중간중간 심어진 화려한 모양의 소나무, 그리고 건물마다 조금씩 다른 문양을 지닌 돌담까지.

눈호강을 제법 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미 지나친 곳관 비교조차 되지 않는 풍경이 별채에 있을 거라곤 정말 생각지 못했다. 그뿐이랴, 별채라고 치기엔 제법 큰 한옥이 마당의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별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멍하니 문 안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이번에도 김세현이 날 이끈다. 뒤따라 문 안으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윽고 별채 건물 앞에 당도했다. 놀란 마음을 감추지 않은 채 김세현을 바라보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로 신을 벗고는 날 바라보았다.

“형?”

너무 멍하니 서 있어서일까,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신을 벗는데, 김세현이 좀 전에 내가 했던 말의 답변을 뒤늦게 꺼냈다.

“여긴 나만 사용하는 공간이거든요.”

“…세현 씨만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놀라 되묻자 김세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한쪽 문을 열었다.

하긴, 김세현을 일반인의 범주에 놓는다는 것 자체부터가 잘못된 생각이긴 했다. 허탈하게 웃으며 뒤따라 안으로 들어가는데, 순간 코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가득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냄새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와.”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바로 지금 이 상황을 보고 하는 말일 게 분명했다. 나는 멍하니 방 안, 그러니까 상 위를 덮은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성인 네 사람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좌식 상 위로 빼곡하게 음식들이 들어차 있다. 아무래도 상 크기가 크기인지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는 것만 같았다.

사실 김세현이 먹는 양을 생각해보면 이 정돈 거뜬히 해치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간 먹었던 음식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정갈한, 그것도 겹치는 것 없이 상을 채운 음식들을 보니 상을 준비한 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짐작되었다.

음식을 보고 흥분해서일까, 어느새 내 손을 놓은 김세현이 한쪽에 자릴 잡는다. 그 모습에 반대편 자리로 이동하려는데, 김세현이 멈칫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

내가 앉으려던 맞은편 자리에 놓여있던 접시와 삼계탕을 굳이 자기 곁으로 옮기더니 자기 옆자리를 툭툭 두드린다. 나란히 앉는 것보단 마주 본 채 대화를 나누며 먹는 편이 더 편한 듯한데 김세현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못이기는 척 김세현의 곁으로 가 앉았다.

“형, 초밥도 초밥인데 여기 한식도 엄청나게 잘하니까 맛있게 먹어요. 아, 기왕 온 거 우리 먹을 반찬도 좀 싸 갈까요?”

“으음.”

“참고로 공짜니까 돈 걱정하진 말고요.”

“…그럼 조금만 챙겨 가요.”

공짜라 다행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챙겨 간다면 이곳이 부담스러울 거다. 김세현이 먹는 양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조금만 챙기잔 말을 들은 김세현이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갤 주억였다. 따라 끄덕이자 그가 어서 먹자며 날 바라보았다. 나는 한쪽에 비치되어 있던 물티슈로 손을 닦고는 곧바로 젓가락을 들었다.

“어때요?”

배가 고프다는 말과는 달리 내가 먼저 먹길 기다리던 김세현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는 방금 막 집어 먹은 반찬을 삼키고는 답했다.

“여기까지 온 이율 알 거 같아요.”

이미 초밥은 먹어 본 바가 있기에 맛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차린 밑반찬까지 괜찮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역시, 형이 좋아할 줄 알았어요.”

내 대답을 들은 김세현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방금 내가 먹었던 반찬을 집어 입에 넣었다.

“형, 이것도 먹어요.”

우물거리던 김세현이 곧바로 다른 반찬을 가리킨다. 곧바로 그것을 먹자 김세현이 다른 반찬도 먹어 보라며 그릇들을 내 앞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본인도 챙겨 먹으라고 했겠지만, 김세현은 내게 추천하면서도 야무지게 자기 몫의 음식을 열심히 입으로 나르는 상황이었다.

많이 허기진 만큼 날 챙기지 않고 먹어도 될 텐데.

하지만 김세현이 이렇게 챙겨주니 기분은 좋았다. 음식을 먹으며 중간 중간 김세현을 바라보는데, 돌연 그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다른 때였으면 형 보면서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요.”

아무래도 내가 너무 쳐다본 모양이다. 나는 말없이 그를 보다가 내 앞으로 몰린 반찬들을 김세현 쪽으로 옮겼다.

“든든하게 챙겨 먹어요. 저녁도 먹긴 하겠지만, 배고픈 지 좀 되었잖아요.”

“…알았어요.”

내가 챙겨 주는 반찬들을 보던 김세현이 조금 전관 다르게 몹시 수줍은 목소리로 답한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그를 보는데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보지 말고 마저 먹어요. 민망하니까.”

민망하다는 말을 뱉은 김세현이 날 바라본다. 그에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눌러 담으며 고갤 끄덕였다.

“알았어요.”

“…나 진정하려면 시간 좀 걸릴 거 같으니까 훔쳐보지 말고요.”

“그래요.”

좀 더 보고 싶은데, 훔쳐보지 말라고 한다. 사실, 훔쳐보던 게 아니라 떡하니 보고 있었기에 문제될 건 없었다. 계속 빤히 그를 바라보는데, 김세현이 헛기침을 하며 내 앞으로 다시금 반찬을 옮겼다.

“형, 밥 먹어요.”

“좀 더 보고요.”

이런 모습의 김세현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웃으며 고갤 젓자 내게 뭐라고 하려던 그가 이내 나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형이랑 여기 오니까 좋네요.”

“저도 좋아요.”

김세현이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 올 일도 없었을 거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답하자 돌연 그가 멈칫하더니 날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놀란 듯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눈동자에 다른 감정이 어른거린다. 저 시선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어젯밤 내게 입 한 번만 맞추자고 할 때의 눈빛과 비슷했으니까.

“…….”

아무래도 이 이상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또 몰랐다. 어쩌면 식사하러 온 이곳에서도 다시 입을 맞추자며 우길지 말이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음식 쪽으로 고갤 돌렸다.

“…이럴 땐 눈치만 빠르고.”

“얼른 식사해요.”

“알았어요.”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조성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김세현은 담백하게 물러나 다시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혹여 밥을 먹는 척 다가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긴장한 채 앉아 있는 것도 잠시, 꿈쩍도 하지 않는 김세현을 보며 나도 다시 식사하는 데 집중했다.

“…….”

그간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들이 있긴 했지만, 정말 이곳은 반찬까지 어느 하나 맛없는 음식이 없다.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며 식사를 하며 서서히 배가 차는 걸 느낄 때였다.

똑똑.

“도련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도련님을 찾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에 한 번 더 아침에 날 찾아왔던 그 사람이 떠올랐지만, 목소리 자체가 너무 달랐다. 상종하고 싶지도 않은 남자의 모습을 빠르게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데, 김세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들어와.”

김세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더니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들어선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복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짓는 중년을 벗어나 갓 노년에 접어든 듯한 이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가 웃는 얼굴로 원래 내가 앉으려고 했던 맞은편에 착석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자리를 잘 선정할 걸 그랬나 봅니다.”

잠시 날 보는가 싶던 이가 김세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몹시도 푸근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어째서 김세현이 이곳을 찾은 건지 알 듯했다.

“내가 챙겨 주면 되는 거라 문제 될 건 없고. 그나저나 몸 아픈 건 어때?”

“도련님이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다시 주방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나이도 있으니 너무 무리하진 말고.”

“암요. 도련님 드릴 음식만 챙길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힘들면 내 것도 다른 사람한테 맡겨.”

“그럴 순 없죠. 도련님이 복스럽게 먹는 걸 보는 게 제 낙인데,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는 걸 보면 섭섭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거 설마 다 낫지도 않았으면서 직접 만들었어?”

맞은편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김세현이 순간 멈칫하더니 되묻는다. 나도 때마침 김세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김세현을 따라 맞은편 사람을 바라보았다.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는 제가 만들었습니다. 아, 무리하진 않았으니 걱정하진 마시고요.”

오가는 대화도 그렇고, 몸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음식까지 만들어 기다리고 있었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두 사람의 사이가 돈독한 듯했다. 다시금 김세현을 슬쩍 바라보자 그의 얼굴에 즐거움이 넘쳐흐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 나도 기왕이면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보단 아저씨가 만드는 음식이 좋긴 해.”

“마음 편히 드실 수 있도록 항상 조심하고 또 경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 편히 먹을 수 있게끔 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말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조심하고 경계한다니. 저 표현은 마치 김세현이 편히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

하필 지금 또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오를 게 뭔가 싶다. 절로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유지하는데, 김세현을 보던 남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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