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43)화 (243/246)

240화

25. 생각지도 못한

“아직 멀었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미리 연락해 뒀기에 좀 늦는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영화관으로 갈 때완 달리 도로에 차가 꽉 차 있어 늦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가지를 벗어나 서울 외곽까지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 이동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어 몇 번이고 잘 가고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김세현은 그저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세현이 한 말이기에 그냥 믿으면 되었다. 하지만 같은 대답이 거듭되니 그를 향한 믿음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김세현을 빤히 바라보자 앞만 보던 이가 슬쩍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진짜예요.”

이번엔 진짜라….

이 말도 좀처럼 믿을 수 없긴 했지만, 계속 의심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시선을 거두며 답했다.

“…믿어 볼게요.”

“도착하면 바로 들어가서 먹을 수 있으니까 잔뜩 먹어요.”

“네.”

영화관에서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먹은 게 있어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워낙 이동 거리가 길어서인지 제법 배가 고팠다. 이번에도 속인 거라면 화를 낼 수도 있을 듯했다. 나는 제법 예민해진 스스로를 인지하며 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길에 잠시 요기할 거라도 사서 먹을 걸 그랬나 보네요.”

“아니에요.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요, 뭘.”

김세현의 말을 들으니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젠 가는 길에 편의점이 보여도 그곳에 들리긴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이제 곧 도착한다고 했으니 가서 열심히 허기를 채우면 될 일이었으니까.

“풍경 괜찮죠?”

그저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밖을 보고 있는데, 김세현이 말을 건다. 나는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곧 음식점에 도착한다는 생각에 건물만 집중적으로 살핀 상황이었다. 뒤늦게 눈에 들어온 풍경에 나는 아쉬움이 차올랐다.

“…그러게요. 돌아가는 길에 열심히 봐야겠어요.”

평소 집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건물 뷰가 아닌, 길 양쪽으로 자리한 자연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왼쪽으론 호수가, 오른쪽과 앞으로 산이 자리한 풍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참 멋졌다.

그저 바라보는 것일 뿐인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민해졌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힐링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순간 뇌릴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근데 초밥집이 이렇게 산골짜기에 있을 이유가 있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워지는데, 이전에 그가 초밥을 들고 왔던 게 생각났다.

설마, 초밥을 사러 이렇게 먼 곳까지 왔다간 걸까.

“…….”

나와 함께 먹기 위해 이렇게 먼 곳까지 왔었다고 생각하니 계속해서 깎여나가던 신뢰가 다시금 차오른다.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 다시금 김세현을 바라보자 그가 슬쩍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가는 곳 괜찮으면 앞으로도 종종 와요. 매일 회사랑 집만 오가면 바깥바람 쐬지도 못할 텐데.”

“저야 좋지만, 세현 씨한테 너무 부담될까 걱정돼요.”

나도 염치라는 게 있었다.

이미 김세현이 나랑 평생 먹고 놀아도 될 만한 부를 축적했다고는 하나 그건 내 것이 아니라 온전히 김세현의 것이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헌터 생활을 하며 목숨을 걸고 번 돈인데, 내가 좋다고 해서 허투루 쓰게 하는 건 좀 아니었다.

“아까 말했잖아요. 나 돈밖에 없다고. 형은 그냥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하하.”

마치 내 속내를 읽은 것처럼 바로 돈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말보단 뒤에 이어진 말이 더 내 마음에 와닿았다. 김세현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데, 한 번 더 날 바라본 김세현이 은근한 미소를 흘렸다.

“신경쓰이면 앞으로 자주 나랑 밥 먹어요. 반찬도 많이 만들어 주면 더 좋고. 난 형이 만들어주는 거라면 다 좋으니까 부담 갖지는 말고요.”

“한 번 노력해 볼게요.”

오늘 아침에 먹은 반찬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앞으론 다른 반찬을 만드는 연습도 좀 해야 할 듯했다. 기왕이면 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으로 말이다.

이런저런 반찬거리들을 생각하며 계속해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계속 도로를 따라 이동할 것만 같던 차가 우측의 골목길로 방향을 튼다.

“…….”

사실 김세현이 다 왔다고 말하긴 했지만, 반쯤은 더 이동해야 도착할 거라고 여겼다. 영화관을 빠져나온 뒤 도로만 달렸던 차가 샛길로 빠진 상황이 몹시도 반갑다. 이제 곧 배를 채울 수 있단 생각에 자세를 바로 고치는데, 김세현이 날 툭툭 치며 앞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형.”

저기라는 말에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자 길 옆의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기와 담장이 보였다. 그것도 제법 긴 담장이 말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음식점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규모가 큰 줄은 몰랐다. 이윽고 샛길을 벗어난 차가 담벼락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 한층 느려진 차 속도에 침을 삼키는 것도 잠시였다. 이윽고 입구로 추정되는 문 바로 앞에 도착한 김세현이 차를 세웠다.

“이제 가서 밥만 먹으면 되겠네요.”

“네.”

아직 시동을 끄지 않은 김세현이 안전벨트를 푼다. 덩달아 풀며 밖을 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사람 몇몇이 차로 와서는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고급 음식점도 처음이었지만, 직원이 에스코트하는 걸 받는 것도 처음이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자 조수석 문을 열어 준 사람이 웃으며 고갤 숙인다. 덩달아 인사를 건네는데 김세현이 곁으로 와 섰다.

“아저씨는?”

“오고 계십니다.”

“그래?”

“우선 별채로 안내하겠습니다.”

“형, 가요.”

가게 사람과 짤막한 대화를 나눈 김세현이 웃는 얼굴로 말한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김세현이 발걸음을 떼자 나를 보던 시선은 곧바로 흩어졌다.

“형, 많이 배고프죠?”

“많이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고프긴 해요.”

“그럼 얼른 이동해야겠다. 다들 그만 따라오고 가서 볼일 봐. 아저씨는 방으로 오라고 하고.”

“예, 도련님.”

도, 련님?

김세현을 도련님이라 부르는 소리에 순간 그 사람이 떠올랐다. 날 어르신에게 데리고 가겠다던 그 남자 말이다. 걷다 말고 그대로 멈춰 서자, 덩달아 걸음을 멈춘 김세현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형, 왜요?”

“그게…. 도련님이라고 부르길래요.”

“난 또. 도련님이 뭐라…. 혹시 통화할 때 들었던 건방진 놈이 생각난 거예요?”

오늘따라 왜 이리 내가 생각하는 걸 바로 캐치해 내는 건지 모르겠다. 놀라 그를 바라보자 김세현은 의외로 무덤덤하게 날 지켜보고 있었다.

“네.”

저렇게 바라보는데,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내가 고갤 끄덕이자 김세현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요. 여긴 거기랑 툭하면 트러블이 생기는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니까.”

그쪽과 트러블이 생긴다는 말은 즉, 김세현과 가까운 사이란 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형, 나 진짜 배고픈데.”

“어서 이동해요.”

나도 허기지긴 했지만, 김세현은 이미 영화관에서부터 배가 고프다고 한 상황이었다. 어서 가자며 다시 걷기 시작하자 김세현이 함께 이동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여기서는 좀.”

“보는 사람도 없는데요?”

“그래도요.”

김세현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있는 곳이라고는 하나 여기서 일하는 모두가 우호적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었다. 난색을 보이자 김세현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날 보더니 갑자기 내 허리를 붙잡으며 품으로 끌어당겼다.

“읏!”

생각지도 못한 김세현의 돌발 행동 탓에 그대로 끌려가 품에 안기게 된 형국이다.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밀어내 보았지만, 김세현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날 안은 듯한 자세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손을 안 잡으면 이렇게라도 이동하는 수밖에요.”

“…뭐든 내 허락받겠다면서요!”

그래, 다른 것도 아니고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왜 이렇게 멋대로 구는 건지 모르겠다. 김세현을 밀어내 보기도 했지만, 그는 그저 앞만 바라보며 걸음을 옮길 뿐이다. 어쩔 수 없이 김세현을 따라 걸음을 이동하는데, 몇 걸음 내딛다가 순간 멈춰선 이에 그대로 발을 멈췄다.

이번엔 그냥 지나가면 안 되겠다. 한 마디 하려고 김세현을 올려다는데, 그가 먼저 선수를 쳤다.

“사람들이 안 보면 손잡고 다니자고 했잖아요!”

“…그건.”

그 이야길 꺼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주저하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본 김세현의 얼굴에 서운함이 감돌았다.

“약속해놓곤 벌써 잊었어요?”

“그게….”

“아, 몰라요. 손 안 잡을 거면 종일 이렇게 다니죠!”

으르렁거리는 기세가 사뭇 날 잡아먹을 것만 같다. 하지만 김세현은 거친 숨을 뱉으면서도 바로 출발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원하는 건 따로 있는 듯 말이다. 사실 너무 넘겨짚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어진 김세현의 행동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게 맞는 듯하다.

곧바로 이동할 듯싶었던 김세현은 좀처럼 걸음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뿐이랴, 마치 내게 신호를 주는 것처럼 슬쩍슬쩍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화를 낼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바를 얻고자 일부러 과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는 모습이 좀 귀엽게 보이는 듯도 했다. 나는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요. 손잡고 가요.”

“좋아요.”

마치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김세현이 냉큼 손을 풀더니 내 손을 붙잡는다. 그러더니 웃는데, 저 모습을 보니 더는 참기 힘들었다.

“하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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