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42)화 (242/246)

239화

25. 생각지도 못한

몸을 뒤로 빼며 앞을 가린 걸 보니 그건 다름 아닌 김세현의 손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뭔가 싶어 옆을 보는데, 하필 그 순간 스크린이 어두워지며 암흑으로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몇 초 뒤 영화가 시작하며 스크린에서 나오는 빛으로 상영관이 밝아진다. 그에 다시 눈앞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조금 전 내 앞을 가렸던 김세현의 손은 이미 팝콘을 집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이다.

“…….”

우연히 타이밍이 맞아 그 순간 시야를 가렸다고 하기엔 김세현의 손이 내 쪽으로 올 만한 상황은 없었던 걸로 기억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우연이 만들어 낸 상황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정말 타이밍에 맞춰서 내 시야를 가린 걸까.

애매함을 떨쳐내려면 김세현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에게 바로 물어보는 건 무리였다. 혹시나 날 보면 수신호라도 보내며 물어보려 뚫어져라 바라봤지만, 그는 여전히 스크린만 바라볼 뿐이었다.

“…….”

영화가 계속되고 있다면 몰입했다고 생각했겠으나 영화는 이제 막 시작된 상황이었다. 그뿐이랴, 그간 내 시선을 놓친 적 없던 김세현이니 만큼 지금 저 행동은 일부러 날 못 본 체하고 있단 말과도 같았다.

설마, 진짜 이유가 있어 내 앞을 가렸던 걸까?

좀처럼 날 바라보지 않는 이에 혹시나 하며 상체를 김세현 쪽으로 기울여 보았지만, 여전히 김세현은 이쪽을 보지 않았다.

“…….”

저 행동을 보니 확실하게 알겠다. 방금 전 내 시야를 가린 행동이 우연이 아니었단 걸 말이다.

도대체 화면에 뭐가 나왔기에 내 앞을 가린 걸까. 고민해 보았지만 이율 찾기란 무리였다.

나는 스크린의 빛을 빌려 계속해서 김세현의 표정을 살폈다.

김세현은 알까? 날 외면하는 바람에 방금 보았던 캠페인 영상에 관심이 생겼단 걸 말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나왔기에, 혹은 어떤 장면이기에 내 시얄 가린 걸까.

하지만 그 생각은 상영관을 가득 채운 급브레이크 소리에 더 이어지지 못했다.

김세현과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중을 기약하고 영화를 보는 편이 낫겠다. 나는 곧바로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겼다.

“…….”

초저녁의 어두움 속의 산길을 보여주던 화면이 이윽고 도로 한복판에 세워진 차 한 대를 비춘다. 점차 차와 가까워지는 움직임에 이어 이윽고 스크린 가득 차를 운전하던 배우의 얼굴이 나타났다.

운전대를 잡은 채 오묘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영화 내용에 몰입되는 것만 같다.

마른 침을 삼키며 배우를 지켜보는데, 돌연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매달렸다. 그러더니 얼굴 전체가 일그러지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투박하게 닦아내는 손, 그리고 여전히 하늘을 향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입매까지.

“…….”

이미 줄거리를 봤기에 대강의 스토리는 알고 있었지만, 잠깐의 연기를 본 것일 뿐인데 진행될 내용이 몹시 궁금해진다. 나는 조금 전 김세현의 행동을 저 멀리 날려 보내며 상영되는 영화에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상영관에 불이 들어왔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쿠키 영상까지 챙겨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간 영화관에서 보았던 영화 중 이렇게 몰입감이 넘쳤던 영화는 처음이었다.

최근 상영 중인 영화들 전부 평점이 좋던데, 다른 영화도 이 영화만큼 재미있단 말일까?

기왕 온 거 김세현에게 말해 다른 것도 보고 가자고 하고 싶을 만큼 방금 본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사건을 풀기 위해 쫓고 쫓기던 영화 내용을 곱씹으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직원들이 상영관 안으로 들어와 정리를 시작한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다잡으며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길 기다린 듯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김세현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날 바라본다. 나는 고갤 끄덕이며 답했다.

“무척요.”

오늘 본 영화는 그간 보았던 영화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내용도 그렇고 영상미도 그렇고 마음에 쏙 들었다.

“저도 제법 볼 만하더라고요.”

“그쵸?”

김세현이 저렇게 말한 걸 보면 정말 괜찮았단 뜻일 터. 반색하며 그를 보는데 그런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세현이 몹시도 반가운 말을 뱉었다.

“오늘 집에 가면 이 감독 영화 찾아서 볼래요?”

상황을 보며 다른 영화를 보고 가자고 하려 했는데, 김세현의 제안은 단번에 사람 마음을 바꾸기 충분했다. 나는 바로 오케이 했다.

“저야 좋죠.”

감독이 같다고 해서 오늘 본 영화와 다른 작품이 비슷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영화를 보니 다른 영화까지 궁금해진 상태였다.

“형, 덕분에 잘 먹었어요.”

함께 상영관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쓰레기통에 가지고 나온 걸 버린 김세현이 품에서 카드를 꺼내어 건넨다. 나는 그것을 다시 지갑에 넣었다.

“뭘요. 저야말로 그간 도움받은 거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 좋았는걸요?”

“그걸 왜 갚아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매번 받기만 하면 그렇잖아요. 사실 받은 만큼 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긴 해요.”

지난번에도 김세현에게 말했던 것 같다. 너무 받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물론 그런 마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김세현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제게 그런 말을 하는 건 하늘 형밖에 없는 거 알죠?”

“하하, 네.”

이전에 들었던 터라 잘 알고 있었다. 웃으며 고갤 끄덕이자 김세현도 피식 웃는다. 쓰레기를 버린 뒤 함께 주차장으로 이동하니 우리가 차를 세울 때보다 훨씬 많은 차들이 주차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역시 주말이라 생각하며 차에 올라 벨트를 매곤 자세를 바로 하는데 시야에 시계가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새 점심을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세현 씨, 많이 배고프죠?”

“무척요.”

“으음….”

평소 무척이란 표현을 하지 않는 만큼 엄청 배가 고프단 말일 터였다. 기석이 녀석이었다면 영화관 근처의 음식점으로 이동해 배를 채웠겠지만, 김세현의 통은 일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함께 가서 먹을 곳이 있나 고민하는데 그가 제법 괜찮은 제안을 해 왔다.

“형, 이전에 먹었던 초밥 먹으러 갈래요?”

“저야 좋지만, 세현 씬 괜찮아요?”

“형도 알잖아요. 나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거.”

아무래도 내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었나 보다. 뜻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는 김세현을 보다가 고갤 끄덕였다.

“…그야 그렇지만요.”

지난번에 먹었던 초밥이라 함은 고급스러운 포장이 되어 있던 예의 그 초밥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나야 적당히 먹어도 되었지만, 김세현의 배를 채우려면 그 초밥집의 생선을 다 잡고도 부족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걱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김세현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럼 바로 연락할 테니까 거기로 가요. 룸도 따로 있어서 편하게 식사할 수 있으니 양껏 한번 먹어 보자고요. 아, 물론 저녁 먹을 배는 남겨 두고요.”

“하하. 그래요, 그럼.”

저녁 먹을 배라고 하니 걱정이 한결 가신다. 초밥집에서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 저녁을 먹으면 될 테니까. 비록 그 초밥집의 생선들은 다 잡히겠지만.

아니지, 생각해 보면 초밥집에 생선이 얼마나 많을지 아직 알지도 못하는데 너무 앞서서 걱정한 게 아닐까 싶어진다. 뭐가 되었건 간에 해결책이 나왔다는 건 몹시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머릿속 한편에 자리한 걱정은 가시지 않았지만 말이다.

주문하는 김세현을 조용히 지켜보는데 이내 메시지를 보낸 김세현이 핸드폰을 다시 품에 담으며 말을 걸어왔다.

“내 지갑이 얇아질까 봐 걱정이에요?”

“…네.”

입 밖으로 걱정을 꺼내지도 않았건만, 어떻게 바로 알아차렸는지 모르겠다. 얼굴에 티가 난 걸까 싶어 볼을 만지작거리자 김세현이 이번엔 소리 내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형이랑 이렇게 평생 놀고먹어도 남을 만큼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뭣하면 계좌라도 보여 줘요?”

“아뇨,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라던 김세현이 핸드폰을 다시 꺼낸다. 얼핏 보이는 화면에 익숙한 은행이 떠 있는 걸 봐서는 아무래도 정말 계좌를 내게 보여 주려고 하는 모양이다.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자, 김세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날 바라보았다.

“진짜라니까요?”

“세현 씨가 말하는데, 당연히 믿죠. 그러니까 굳이 보여 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 거였어요?”

금방이라도 화면을 내 쪽으로 틀 것처럼 굴던 김세현이 내 말을 듣더니 얼굴이 환해진다.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에 조금 전 말하다 만 초밥집을 거론했다.

“네, 그러니까 얼른 출발해요. 많이 배고프다면서요.”

“좋아요.”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빠르게 벨트를 착용하더니 바로 시동을 건다. 차가 건물을 빠져나온 것을 확인하곤 정면을 바라보았다.

“…….”

지난번에 먹은 초밥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만큼 맛이 좋았다. 특히 밥 위에 올라간 생선들의 신선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김세현의 허기가 어서 가셨으면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지금은 괜히 배가 허한 느낌이다. 나는 김세현이 볼까 벨트를 만지는 척 배를 한 번 만지고는 곧 도착할 가게를 상상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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