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40)화 (240/246)

237화

25. 생각지도 못한

“알았어요. 그럼 거울 보면서 털 거 털어 내요.”

“…….”

좀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줄 알았건만 김세현은 너무도 담백하게 물러섰다.

저 태도를 보니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째서 이렇게 바로 물러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모든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정말 붙어 있는지 확인을 해 봐야 할 듯했다. 나는 곧바로 차에 타 조수석의 거울로 목을 살폈다.

“정말 붙어 있죠?”

“그러네요.”

표정도 의심스러웠고, 김세현의 말투 역시 누가 봐도 더 접촉하고 싶단 뜻으로 들렸기에 마음은 머리카락이 없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막상 확인하니 머리카락은 김세현이 떼어내려 했던 곳에 정확하게 붙어 있었다.

“형 떼어주고 나도 좀 봐달라고 하려 했는데. 뭐, 어쩔 수 없죠. 나도 그냥 거울 보면서 털어야지.”

“…그래요.”

막상 내 목에 붙은 머리카락에 집착하던 이율 알게 되니 민망하다. 하지만 민망한 가운데 어째서 그런 표정과 말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 건지 한 번 물어보고 싶긴 했다. 주저하며 고갤 끄덕이다가 슬쩍 물어보려는데, 김세현은 이미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 문을 연 상황이었다.

그에 말을 건넬 타이밍을 놓친 채 빤히 그를 바라보는데, 김세현은 나처럼 거울을 내리곤 목을 털어 내기 시작했다. 순간 조용해진 차 안 분위기에 마저 목을 확인하고는 다시금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다 털었어요?”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고갤 돌리자마자 바로 눈이 마주친 김세현이 묻는다. 나는 고갤 끄덕였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요?”

어느 정도 목을 털어 낸 김세현이 웃는 얼굴로 벨트를 매려 몸을 틀 때였다. 나는 김세현의 목덜미에 붙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오자 황급히 그에게 손을 뻗었다.

“잠시만요.”

“…형?”

확실히 저 위치라면 제아무리 S급 헌터라도 해도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거다. 목 정중앙에 자리한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떼어 내는데, 순간 김세현이 목을 움츠렸다.

“윽.”

“세현 씨?”

갑자기 왜 저러지?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였다. 지금 김세현이 취하는 행동이 조금 전의 나와 같단 생각에 멈칫하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

설마, 김세현도 나와 비슷한 걸 느낀 걸까?

아닐 수도 있겠지만, 방금 전 반응은 평소 김세현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래, 마치 소름이 돋은 것처럼 보였다.

김세현이 나와 같은 걸 느꼈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심장이 뛸 수가 없다. 숨조차 죽인 채 그를 바라보는데 한참을 벨트를 매려던 채 그대로 굳어있던 김세현이 몸을 바로 해 앉았다.

“형, 벨트 매요.”

“…어.”

뚝딱거리는 목소리와 행동이 몹시도 눈에 띈다. 그간 본 적 없던 김세현의 태도에 놀라 계속 바라보자 김세현의 눈가가 축 내려갔다.

“진짜 형, 반칙인 거 알아요? 사람 등 뒤에서 갑자기 접촉하고.”

“머리카락 떼어 준 거잖아요.”

“난 사전에 예고라도 했지! 살다 살다 이렇게 놀란 건 처음이라고요!”

머리카락을 떼어 줬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놀랐을 줄은 몰랐다. 사실 놀라기만 한 건 아닌 듯했다. 목덜미를 손으로 가린 채 촉촉해진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꼭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김세현이 힐끔 날 보더니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하여간 형은 내 처음을 너무 가져가서 문제예요. 그러니까 내가 더 정신을 못 차리잖아요!”

볼멘소리를 뱉는 김세현도 김세현이지만, 유독 내 눈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빨개진 귀를 목도하자 절로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새어나왔다.

“하하.”

“진짜 뭐라고 더 하지도 못하게 매번 웃고! 사람 약점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인 거 알아요?”

“알았어요, 알았어.”

이젠 정말 확실해졌다. 김세현이 어째서 저리 툴툴거리는 것인지 말이다.

나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감정을 쏟아 내는 이를 보며 한참을 그렇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머리카락을 떼어 주며 작은 소동 아닌 소동이 있었지만, 나와 김세현은 예정했던 대로 영화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형, 얼른 가요.”

언제 부끄러워했었냐는 듯 차에서 내린 김세현이 곧바로 내 쪽으로 와서는 차 문을 대신 열어 준다. 나는 마저 벨트를 풀고는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하늘 형. 팝콘이랑 콜라도 마시는 거죠?”

“네.”

“이런 곳은 처음이라 기대되네요.”

“저도 오래간만에 오는 거라서 기대되네요.”

디도스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바깥 활동을 멈춘 탓에 이렇게 나오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영화관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조금 기대되고, 또 김세현과 함께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니 떨렸다.

“바로 표가 있어야 할 텐데.”

“영화 시작 전에 취소 표가 나오기도 하니까 시간만 맞으면 바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것도 있어요?”

“네. 운이 좋으면 가장 좋은 자리에서도 볼 수 있고요.”

영화관에 와서 끌리는 영화를 보기로 했지만, 운이 좋다면 괜찮은 자리를 얻게 될 지도 몰랐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취소 표가 가끔 나온다는 걸 상기하며 답하자, 김세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왕이면 가자마자 영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운이 나쁘다면 표가 없어 정말 돌아가야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세현이 곁에 있어서일까, 오늘만큼은 운이 몹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를 안은 채 김세현과 함께 주차장을 벗어나 예매 층에 도착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와 함께 내리는데, 순간 지나가던 이들이 김세현을 보곤 멈칫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 얼른 예매하러 가요.”

“그래요.”

이 시선들이 느껴지지 않는지 김세현은 오로지 나만 바라볼 뿐이었다. 고갤 끄덕이며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데, 김세현이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이쪽으로 모이는 시선이 많아졌다.

“…….”

이젠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고 해도 느낄 만큼 많은 시선이 쏠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세현은 처음과 같았다.

카운터로 간 김세현이 가장 빨리 시작하는 영화 중 좌석 두 개가 붙어 있는 곳이 있냐 묻는다. 그 말에 주변을 경계하다 말고 직원을 보곤 말을 잃었다.

“…….”

표가 있는지 물었건만, 직원의 시선은 그저 김세현에게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이를 기다려 보았지만 좀처럼 직원은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결국 헛기침을 하며 넋이 나간 직원을 일깨웠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가장 빨리 시작하는 영화 중 좌석 두 개가 붙어 있는 자리가 있을까요?”

김세현이 했던 말을 재차 하자 직원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좌석 상황을 살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김세현을 훔쳐보는 행동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에 점차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직원이 드디어 원하던 답을 입에 담았다.

“15분 뒤에 시작하는 영화에 자리가 있긴 한데, 앞쪽 자리네요.”

앞쪽 자리라는 게 좀 아쉽지만, 곧 시작하는 영화가 있다니 다행이다. 영화를 빨리 본다면 드라이브할 시간이 더 늘어날 터였다. 김세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곧바로 그걸 달라고 하며 날 바라본다. 나는 곧바로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전달했다.

“알겠습니다, 손님. 그럼 바로 결제 도와드릴게요.”

결제 후 바로 표와 카드를 대신 전달받은 김세현이 이번엔 날 이끌고 스낵코너로 간다. 표를 살 때와는 달리 제법 줄이 길다. 나는 김세현과 서 있다가 순간 느껴진 시선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주변을 살폈다.

“…….”

설마 했는데, 조금 전보다 이쪽으로 쏠린 시선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김세현은 이번에도 역시나 주변에서 보내오는 시선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왜 그렇게 주변을 둘러봐요? 볼거리라도 있어요?”

“사람들이 이쪽을 보는 거 같아서요.”

“좀 본다고 닳진 않…. 아니지, 형은 좀 닳겠다. 나도 아껴 보는데.”

“…그건 좀.”

혹여 김세현을 알아보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하는데, 김세현은 쉰 소리만 늘어놓는다.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이에 정색하자 김세현의 입가엔 더욱 진한 미소가 매달렸다.

“형, 나 큰 거 먹어요?”

“그래요.”

“종류별로 사야지.”

“그것도 괜찮아요.”

표정만 보면 날 놀릴 것 같았건만, 김세현은 스낵을 거론하며 이내 앞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가 꺼내는 말마다 고갤 끄덕이자 김세현이 다시금 날 보더니 이내 활짝 웃는다. 그 모습이 몹시 예뻤지만, 지금은 그걸 감상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미소를 짓는 동시에 김세현을 향한 사람들이 시선이 더욱 강렬해졌다는 게 느껴진다. 나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심을 한껏 끌어 올렸다.

“그렇게 둘러보지 않아도 뭔가 이상한 낌새 느껴지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래도요.”

내 대답을 들은 김세현이 허릴 숙이며 입가를 손으로 가린다. 뭔가 은밀하게 할 말이 있는 듯한 제스처에 고갤 옆으로 기울이며 김세현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그 김세현이 올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요.”

“아.”

“게다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알아차릴 수도 있고.”

김세현의 설명을 들으니 어째서 그가 자기 할 일만 하는지 조금은 알 듯했다.

하긴, 김세현 등급이 등급인데 그런 기척 하나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줄을 섰지만, 그도 잠시였다.

결국 다시 한번 더 주변을 둘러보자 더 많은 이들이 이쪽, 그러니까 김세현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김세현을 알아보는 듯한 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몹시도 호감 어린 시선을 그에게 보내는 이들을 보니 괜히 속이 꼬인다. 나는 조금 전보다 훨씬 경계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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