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38)화 (238/246)

235화

25. 생각지도 못한

카페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김세현은 숍에 들어선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하긴, 미용업계에 일하는 이들인 만큼 김세현의 외모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대개 이쪽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탐미적인 성향이 강했으니까. 물론 이건 내가 생각하는 기준일 뿐, 모든 이들이 그러진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김세현의 외모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숍 대표로 보이는 이 또한 같은 생각이었던 듯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영혼을 끌어 모아 김세현의 머리를 자르는 데 집중할 린 없었으니까.

“손님, 피부가 무척 좋으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김세현과 대표를 바라보는데, 내 머리를 담당한 디자이너가 말을 걸어왔다.

어색하게 웃으며 거울 너머의 디자이너를 보자 눈이 마주친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따로 관리하고 계시나요?”

“그런 건 없어요.”

“타고나셨나 봐요. 관리를 안 하는데 이렇게 부들부들하기 힘든데.”

머리를 만지던 디자이너가 웃는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맞나 싶었지만, 커트하며 얼굴을 만진 적이 있던지라 저런 이야길 꺼낼 수도 있긴 했다. 어색하게 따라 웃자 디자이너의 입매가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건 그렇고 손님, 일부러 머리 기르셨나요?”

“일이 많아서 한동안 손질을 못 했어요.”

“그러셨군요. 머리 기른 모습도 잘 어울리지만, 좀 더 짧은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하하, 네.”

아마 저 말은 덥수룩해진 머리를 돌려 말하는 것일 터. 멋쩍은 웃음을 흘리자 디자이너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그래서 말인데요. 손님께서는 방금 선택한 머리 스타일보다는 조금 더 짧게 자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 짧다는 게 얼마나 짧아진다는 건가요?”

다른 건 몰라도 바로 티가 나는 건 확실하게 짚고 지나가야 했다. 내 질문을 받은 디자이너가 바로 답했다.

“정말 조금이에요. 한 2cm 정도 생각하고 있고요. 좀 더 짧게 자르면 숍 방문이 늦더라도 그만큼 여유가 생기는 거니까요.”

“으음…. 일단 자르기로 한 스타일로 자르고 나서 생각해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디자이너가 수긍하더니 바로 머리에 손을 댄다. 빠른 속도로 커팅을 시작한 디자이너와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난데없이 옆에서 찌를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

내 왼쪽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김세현밖에 없었다.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에서 시선을 떼고는 거울을 이용해 옆을 바라보자 역시나 김세현이 거울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불만으로 가득한 시선으로 말이다.

“…….”

갑자기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달려올 것만 같은 기세를 보며 당황하는데, 내 머리를 손질하던 디자이너가 김세현과 나 사이에 서더니 옆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보냐며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커트가 끝나면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머리를 맡기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조금 전 태블릿에서 본 머리 스타일과 비슷한 스타일의 머리가 거울에 비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아 보이는 모습에 속으로 흐뭇해하는데, 디자이너가 그런 나와 눈을 마주하며 물어 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여기서 조금 더 자르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아요.”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스타일도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이 이상 자르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래, 이젠 팀에도 사람들이 충원되었기에 여유가 생겼으니 때가 되면 다시 숍에 방문하면 될 터였다.

물론 헌터부가 바빠지는 건 던전 생성 여부에 달린 것이었지만,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휴일이 많아진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럼 바로 정리하겠습니다.”

“네.”

디자이너가 요구하는 대로 몇 번 더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어느새 조금 전보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 거울에 비춘다. 아직 머리 손질을 받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훤해 보인다는 건 그만큼 머리가 아주 길어 있었단 거겠지.

“머리는 감으시나요?”

“그러는 게 낫….”

“머리 안 감을 거니까 스타일만 손 봐.”

분명 옆 의자에서 머리 손질을 받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 다가온 건지 모르겠다. 미용 커트보를 한 채 다가와서는 내 말을 자르고 머리를 감지 않을 거라 말하는 이를 부르려는데, 순간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세…, 씨?”

머리로 깨닫기 전에 이미 튀어나온 이름이다. 그나마 황급히 뒷이름을 삼키며 그를 보자 김세현은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머리는 집에 가서 감으면 되잖아요. 잘 털기만 하면 될 거 같은데.”

김세현이 이렇게 말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어서 알았다고 답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는 이를 보다가 디자이너에게 말했다.

“머리는 감지 않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마무리 작업하겠습니다.”

김세현의 키가 워낙 커서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 가득 미소가 어려 있던 디자이너의 표정이 굳은 게 느껴졌다. 머리 세팅이 끝날 때까지 내 곁에 서 있던 김세현이 이내 끝났다며 디자이너가 인사 후 자리를 뜨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 모습 오래간만에 보는 거 같네요.”

이 모습이라고 한다면 아마 김세현과 몇 번 만나지 않았을 때를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나는 한층 짧아진 머리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머리가 빨리 길지 않아서 그렇지, 머리를 자르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라서요.”

“아까도 보기 좋았는데, 지금도 보기 좋다! 나도 얼른 마무리할게요.”

그러지 않아도 내가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김세현이 먼저 말을 했다는 사실이 이보다 반가울 수가 없다. 나는 곧바로 고갤 주억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저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요.”

“네.”

곁에서 지켜볼까 했는데, 뒤에 마련된 자리로 가 기다리라고 하니 가서 기다려야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자리로 가 김세현이 끝나길 기다릴 때였다. 난데없이 잠잠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했다.

“어?”

이 녀석이 무슨 일이지?

정말 오래간만에 온 전화다. 나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며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전화를 받자마자 본론부터 묻는 건 무슨 법이야?

핸드폰을 반입하겠다고 했던 게 언젠데, 이제 와 연락하다니. 혹시나 싶어 중간중간 기석이 녀석이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메시지도 보내 봤지만, 확인이 없었고 말이다.

내내 연락이 없던 녀석에게서 갑자기 이렇게 연락이 왔다는 건 휴가를 나왔다는 것 외엔 딱히 다른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휴가 나왔어?”

-엉. 오래간만에 나왔지.

“얼마나 있다가 들어가는데?”

-4박 5일로 나왔지. 방금 집에 도착해서 전화했어.

녀석이 휴가를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휴가라니. 아니지, 생각해보면 한두 번 더 나와야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날짜를 헤아려보는데, 기석이 녀석이 곤란한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도 출근했어? 안 했으면 나랑 놀자.

“어, 음….”

출근한 건 아니지만, 이번 주 주말은 김세현과 지내기로 약속한 상황이었다. 당황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채 말을 얼버무리는데, 녀석이 물었다.

-지금 밖이야?

“응. 나 이번 주 주말 약속 다 잡혀 있어서 좀 곤란해.”

-일요일까지?

“응.”

휴가가 얼마나 귀중한 시간인지 알고 있었지만, 역시 먼저 한 약속이 더 중요했다. 사실, 김세현과의 약속이라 끝까지 지키고 싶었지만 말이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월요일에 보자. 저녁에 집으로 가면 되지?

“좋아.”

그러지 않아도 내가 제안하려고 했다. 기석이 녀석과 월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는데, 돌연 녀석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입에 담았다.

-연하늘, 너 혹시 애인 생기거나 한 거 아니야?

“…뭐?”

-왜 그렇게 놀라? …설마, 나보다 먼저 애인 만든 건 아니겠지?

애인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자 왜 이리 심장이 요동치는 건지 모르겠다. 김세현과 내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님에도 말이다. 나는 절로 머리를 손질받고 있는 김세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

언제부터 이쪽을 보고 있던 걸까.

거울 너머로 김세현은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가를 휘는데, 왠지 모르게 김세현은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몹시 기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으음.”

저 모습을 보니 아니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다른 곳을 바라보는데, 녀석의 목소리가 커졌다.

-뭐야, 너 진짜 애인 생겼어?

“작게 좀 말해! 나 지금 밖이라고!”

이 정도 목소리라면 김세현도 듣겠다! 아니지, 어쩌면 이미 통화 내용을 듣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세현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긴장될 수가 없다. 나는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척하며 괜히 숍 내부를 한 번 훑어보곤 다시금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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