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36)화 (236/246)

233화

25. 생각지도 못한

오늘 예약한 숍은 김세현의 집과 한 구역 떨어진 곳에 있었다. 더군다나 숍과 집 사이엔 번화가들이 밀집해 있어 이동 시간이 제법 걸릴 거로 예상해 일찍 나왔으나 의외로 이동 시간은 짧았다.

“주변 돌았는데도 시간이 좀 남네요.”

숍 주차장에 차를 세운 김세현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날 바라본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며 벨트를 풀었다.

“차에 좀 머무르다가 가요.”

“그래요.”

숍에 들어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오늘따라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 김세현을 보니 그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얼굴에 뭐 묻었어요?”

너무 빤히 바라봤는지 김세현이 자기 얼굴을 만지작거린다. 순간 어디서 들었던 말장난이 떠올랐지만 그 말을 입에 담을 용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얼굴에 김이 묻었다며 잘생겼다고 하는 순간 보일 김세현의 반응은 뻔했으니까.

“형?”

머뭇거리는 게 이상했는지 김세현이 의아한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봤어요.”

“난 또. 뭐 묻은 줄 알았잖아요.”

작게 한숨을 뱉은 김세현이 씩 웃자 뒤따라 웃는데, 그가 얼굴을 뚫어져라 살피며 물어보았다.

“형, 이젠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네. 드라이브하면서 진정되었어요.”

“흠.”

내 대답이 영 성에 차지 않았는지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다. 좀처럼 걱정이 가시지 않은 듯 걱정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에 한 번 더 말했다.

“진짜래도요.”

“앞으론 정말 조심히 다닐게요.”

괜찮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조심하겠다고 한다. 말을 하며 굳게 다짐하는 듯 주먹을 쥐는데,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다 났다.

“아까도 조심히 이동한 거 다 알아요.”

낙폭이 커 놀라긴 했으나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 김세현이 얼마나 조심히 이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도 내 몸은 흔들린 적 없었으니까.

“그래도 더 조심해야겠어요.”

괜찮다는 말에도 김세현의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몸을 내 쪽으로 틀어 앉은 그가 여전히 염려 섞인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나는 웃으며 정말 괜찮다고 한 번 더 전달했다.

“진짜 괜찮아요.”

“알았어요.”

알았다고 답하지만, 표정은 좀처럼 그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점차 어두워지는 김세현과 함께 차 안에 어색한 공기가 가라앉기 시작한다.

이럴 땐 분위기를 환기할 만한 게 필요한데 말이지…. 작게 한숨을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때마침 도로 건너편 건물 1층에 자리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세현 씨, 우리 카페 가서 마실 거 사 와요.”

“얼른 내가 다녀올…. 좋아요. 같이 다녀오는 걸로 해요.”

혼자 갈 것 같더니 황급히 말을 바꾼다. 이 제안이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언제 또 말을 바꿀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답 대신 곧바로 차 문을 열었다.

“형, 가요.”

방금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언제 이동한 걸까. 반쯤 열린 문을 붙잡은 김세현이 내 쪽으로 손을 내민다. 마치 에스코트를 하겠다는 제스처를 빤히 바라보자 김세현이 손을 오므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부축 안 할게요.”

내 표정이 좋지 않았던 걸까, 목소리에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손을 보느라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자 김세현이 내민 손을 거두고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형?”

마치 내가 무엇에 약한 건지 알고 있는 것만 같다. 미소 띤 얼굴도 그렇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모습도 그렇고. 저런 모습으로 내게 답을 구하는데, 그에 응하지 않을 순 없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먼저 걸음을 뗐다.

“얼른 다녀와요.”

“좋아요!”

혹여 내 마음이 바뀔까 싶었는지 김세현이 냉큼 답하며 곁에 온다. 슬쩍 옆을 보자 김세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데, 저렇게 환하게 웃으니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카페에 간 김에 그냥 거기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이렇게 눈에 띄면 분명 김세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김세현을 훔쳐보는 이들이 보였다. 다들 그의 외모에 놀라 시선을 떼지 못하는데,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김세현의 팔을 붙잡고는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형?”

“생각해보니까 누가 알아보면 큰일이잖아요.”

알아보는 것도 문제였지만, 지금은 우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떨쳐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내 속도에 맞춰 걷기 시작했다.

“하, 진짜. 여기서 바로 집으로 갈 수도 없고.”

갑자기 집엔 왜 가자는 걸까.

뭐 그래도 가자고 하는 건 아니라 다행이다. 얼른 커피를 사고 차로 돌아가자 다짐하며 막 도착한 카페 문 안으로 들어설 때였다. 돌연 김세현을 붙잡고 있던 손 위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손이 잡고 싶으면 그냥 손을 잡으면 되지, 왜 팔을 잡아요.”

“어, 음….”

…그런 생각으로 붙잡은 게 아니었는데.

아니라고 하기엔 이미 김세현은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듯했다.

“깍지까지 야무지게 꼈으니 됐죠? 하, 진짜 형은 부끄럼을 너무 많이 타서 문제예요.”

평소 기분이 업 된 김세현을 자주 봐 왔지만,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맞잡은 손에서 올라오는 간질거림을 느끼며 머뭇거리는데, 조금 전까지 날 따라오던 김세현이 먼저 발걸음을 뗐다. 어디로 가나 싶었건만, 김세현은 의외의 장소 앞에 멈춰 섰다.

“마시고 싶은 거 골라요. 형이 차려 준 아침도 먹었는데, 마실 건 내가 사야죠.”

“…좋아요.”

키오스크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걸 사용해 보고 싶은 듯했다. 아니, 그게 맞았다.

“어디 보자…. 형은 딸기 라테 같은 거 잘 마실 거 같은데. 맞아요?”

어느새 키오스크를 터치하며 음료를 고르는데,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긴, 김세현이 카페에 들를 일은 거의 없을 테니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나는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나쁘진 않죠.”

대답을 들은 김세현이 한 층 더 붕 뜬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난 뭘 좋아할 거 같아요?”

“으음….”

나는 메뉴를 뒤적이다가 음료 하나를 짚었다.

“이거요.”

“뭐, 그것도 주면 마시지만, 기왕이면 단 거 위주로 먹는 편이에요.”

“그래요?”

가리지 않고 먹는다고 해서 김세현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아메리카노를 택했건만, 더 즐겨 마시는 음료가 있었던 모양이다. 단 걸 마신다는 말을 들으니 김세현이 그간 이것저것 먹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 같은 사람은 열량을 많이 소비하거든요.”

마치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기라도 한 듯, 김세현이 바로 그 부분에 대한 답을 해준다. 나는 고갤 끄덕였다.

“하하.”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건만, 김세현이 직접 저리 말하니 괜히 웃음이 난다. 그런 날 바라보던 김세현이 씩 웃으며 키오스크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형이랑 같이 딸기라테로 골라야지.”

곧바로 주문할 것 같은 말과는 달리 다시금 날 보며 진짜 주문하냐는 듯 눈을 끔벅인다. 나는 고갤 주억였다.

“사이즈 업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요.”

“오, 좋아요.”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곧바로 메뉴를 수정하더니 결제한다. 주문을 마치곤 근처의 빈자리로 가 앉는데, 김세현이 내 바로 옆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

“…….”

그냥 옆에 앉은 거라면 이렇게까지 긴장하진 않았을 거다. 김세현이 사무실을 찾을 때면 항상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김세현이 내 손을 꼭 쥐었다가 풀며 눈매를 곱게 접는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점차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끼며 반대편 손을 말아 쥐었다.

이전에도 이렇게 손을 잡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땐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 있는 곳은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은 카페였다. 더군다나 김세현을 훔쳐보는 이들이 제법 되기에 나와 김세현이 손을 잡고 있단 걸 본 이들도 있을 터였다.

그저 손만 잡고 있는 것일 뿐인데, 왜 이리 민망하고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시선을 내리깐 채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던 중이었다. 돌연 김세현이 날 불렀다.

“하늘 형.”

“네.”

“우리 그냥 영화 보지 말고 머리 자르자마자 바로 집에 갈래요? 집에서도 이렇게 딱 붙어서 영화 볼 수 있는데.”

“…….”

“사실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최신 영화 볼 수 있잖아요. 집에서 편히 누워서 보면 영화관보다 편할 테고, 나랑 좀 더 가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어제 하지 못한 것도 할 수도 있고요.”

김세현이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맞잡고 있던 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덩달아 엄지로 손등을 느릿하게 만지는데, 그가 뭘 원하는 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김세현이 촉촉하게 젖은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

푸른 눈동자 속에 담긴 일렁이는 감정을 마주하려니 이보다 긴장될 수가 없다.

여기서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숍에도 가지 못한 채 그대로 집으로 끌려갈지도 몰랐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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