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35)화 (235/246)

232화

25. 생각지도 못한

집을 나서기 전 사 온 먹거리를 정리하고 나니 이젠 정말 집을 나설 시간이다. 나는 김세현과 함께 문단속을 확실하게 한 뒤 마지막으로 현관까지 체크를 마치고 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리 와요.”

“…꼭 이렇게 이동해야 해요?”

“머리 자르기 전에 드라이브하기로 했잖아요.”

“그야 그렇긴 하지만요.”

막상 이렇게 이동하려니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다. 두 팔을 내게 내밀며 신호를 보내는 김세현을 보며 주저하는데, 그가 성큼 다가와서는 그대로 날 들어 올렸다.

“헉!”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말도 없이 들어 올리니 입 밖으로 절로 소리가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심을 잡으려 황급히 김세현의 목을 끌어안자 머리맡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내가 형 떨어뜨릴까 봐요?”

“놀랐잖아요!”

“시간 없는데 형이 자꾸 미적대니까 그렇죠.”

그건 미적거리는 게 아니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 이런 생각을 토로하기 전에 김세현이 뒷말을 이었다.

“그럼 잡은 김에 꽉 잡아요. 마음 같아선 느긋하게 이동하고 싶지만, 일정이 있으니 빨리 이동할 테니까.”

“알았어요.”

김세현 기준으로 빠르다는 건 이전에 안겨 이동할 때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단 의미였다. 마른침을 삼킨 뒤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꽉 감싸자 김세현이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이동하는 건 두 번째라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긴장할 것이었다. 긴장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뱉자, 날 유심히 바라보던 김세현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어렸다.

“앞으로 자주 이렇게 이동하면서 적응해 둬야겠네요?”

“…네?”

적응을 논하는 이에 멍청하게 되물을 때였다. 순간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거센 바람이 내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 만큼 강한 바람에 황급히 김세현의 등 뒤로 시선을 주는데, 내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

언제 이렇게 위로 올라온 건지 모르겠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집 마당이었건만, 시야엔 익숙한 마당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집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에 당황하는데, 이번엔 정말 빠른 속도로 몸이 하강하는 게 느껴졌다. 다급히 김세현의 목을 더욱더 세게 감으며 눈을 질끈 감는데, 다시금 몸이 위로 떠오르고 있단 사실이 와닿았다.

“…….”

이렇게 자주 이동하다 보면 적응이 될 거라니. 내겐 평생 가도 익숙해지지 않을 움직임이다. 그렇게 위로, 또 아래로 몸이 이동하는 걸 느낀 지 몇 차례.

나는 드디어 기다리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형, 도착했어요.”

“하아.”

도착했단 말이 이보다 반가울 수가 없다. 순간 축 늘어지는 몸에 가만히 그에게 안겨 있는데, 김세현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을 뿐이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이동하면서 적응 좀 해야겠는데요?”

이보다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싶다. 나는 곧바로 고갤 저었다.

“…평생 적응하지 못할 거 같아요.”

“일단 해 보고 실망해요. 하다 보면 다 적응되니까.”

“하, 하….”

뭐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쉽지 않았다. 그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안겨 있자 김세현이 콧노래를 부르며 널찍한 베란다를 지나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대로 계속 안고 있어도 난 괜찮은데.”

“소파에 내려주세요.”

직접 내리고 싶었지만, 이번 이동은 내가 감당하긴 좀 무리였다. 혼자 이동했다간 분명 후들거리다가 그대로 주저앉을 게 뻔했기에 지금은 소파에 내려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혹여 싫다고 한다면 한 번 더 단호하게 말하고자 했건만, 김세현은 더 우기지 않고 날 소파에 내려놓았다. 그것도 무척 조심스럽게 말이다.

“물 가지고 올게요.”

“부탁해요.”

김세현의 말을 들으니 목이 탄다. 부탁한다고 하자 김세현이 고갤 끄덕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물끄러미 그쪽을 바라보는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사람 혼을 이렇게 쏙 빼 놓곤 저렇게 흥얼거리는 것도 참 대단하다. 아니지, 저런 모습을 보니 역시 김세현 답긴 했다.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파묻는데 김세현이 물을 가지고 왔다.

“좀 쉬었다가 움직일까요? 아니면 내가 안고 주차장까지 이동해요?”

목을 축이는데, 사레들릴 말을 한다. 나는 몇 차례 컥컥대다가 겨우 진정하곤 답했다.

“쉬었다 가요.”

“그래요. 드라이브야 영화 본 이후에 해도 되니까.”

김세현의 말마따나 드라이브할 시간은 충분했다. 오늘 머리를 자르고 또 영화까지 본다고 해도 시간은 남을 테니까. 설령 오늘 드라이브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내일 하면 될 일이었다.

“하아.”

일단 드라이브를 당장 하러 가지 않는다고 하니 절로 깊은 숨이 흘러나왔다. 축 늘어진 몸으로 소파에 기대듯 앉아 있자 김세현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형, 진짜 그렇게 놀랐어요?”

“일반인이라면 다 놀라요.”

“보면 속도감 느끼려고 놀이 기구도 타고 그러던데.”

“놀이기군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요.”

타 보긴 했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라 따로 놀이동산에 간 적은 없었다. 수학여행 말곤 어릴 때 가 본 기억밖에 없단 사실에 고갤 젓자 김세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난 형 좋아할 거 같아서 좀 과격하게 움직였는데, 그러지 말 걸 그랬나 보네요.”

여기서 괜찮다고 하면 혹여 다음에 또 이렇게 이동하게 될 시 격하게 이동할 수도 있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다음엔 되도록 얌전하게 움직이는 걸로 부탁드릴게요.”

“알았어요. 일단은 좀 쉬어요. 아니지, 좀 누워 있을래요? 눕는 편이 마음 진정시키는 데 더 도움 될 거 같은데.”

부탁한다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진심이 닿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놀랐던 마음이 한결 진정되는 것만 같다. 내 몸에 손을 대진 못하고 부산스럽게 허공을 노니는 두 손을 보며 고갤 저었다.

“그냥 이렇게 앉아 있을게요.”

“뭐 필요하거나 쉬고 싶으면 말해요. 숍에 연락해서 시간 바꿔도 되니까.”

“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세현이 시간을 바꾼다고 하니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 시간을 바꿀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김세현을 보며, 또 가만히 앉아서 쉬다 보니 어느덧 녹초가 되었던 몸에 조금씩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빨리 일어나도 괜찮아요?”

갑자기 일어나서일까, 김세현이 깜짝 놀라며 바로 곁에 와 서더니 내 허릴 붙잡는다. 단단히 몸을 지탱하는 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깐 놀라서 그랬지, 진정되니 많이 괜찮아졌어요.”

나도 이렇게까지 놀란 적은 정말 오래간만인지라 당황했을 뿐이었다. 한 번 더 괜찮다고 말했지만, 김세현의 눈에는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좀 더 쉬었다가 가요. 아직 예약 시간 남아 있으니까.”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을 보니 나보다 김세현이 더 놀란 듯했다. 걱정해주는 건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괜찮은 걸 억지로 쉬며 시간을 허비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시간이 많았다면 또 모를까, 주말은 금세 지나가버릴 게 뻔했으니까.

“그런 거라면 숍에 가는 길에 잠깐이라도 드라이브해요. 그때 쉬면 되니까요.”

조금 돌아 이동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드라이브라고 할 수 있었다.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머뭇대다가 이내 고갤 끄덕인다. 걱정 속에 피어오른 기대감을 보니 다행히도 드라이브란 소리가 그의 마음을 움직인 듯했다.

“그럼 운전할 땐 정말 안전 운전하는 걸로 할게요.”

“네. 속도만 잘 지켜 주세요.”

내가 사는 동네야 워낙 조용한 편이라 그렇다고 쳐도 김세현이 사는 구역은 무척 발전된 곳이었다. 그만큼 교통량도 상당할 테니 굳이 속도를 지키잔 말을 하지 않아도 제 속도를 내긴 힘들 터였다.

더군다나 이제 곧 점심시간이었다. 제아무리 토요일이라 할지라도 일하는 사람도 제법 될 테고, 또 놀러 나온 사람도 많을 테니 지금부터 움직이는 게 맞았다.

나는 김세현에게 어서 가자며 현관 쪽으로 이동했다. 아니, 이동하려 했다.

“어….”

그러고 보니 깜박했다. 내가 신을 신고 있었다는 걸.

당황해 멈칫하는데 김세현이 내 곁을 아무렇지도 않게 신을 신은 채 현관으로 향한다. 허리가 잡혀있는 터라 그대로 이동하는데, 깔끔한 바닥 위로 신을 신고 이동하려니 이보다 마음이 쓰일 순 없었다. 나는 보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함께 현관에 당도했다.

“신 좀 신고 있다고 해서 문제 되지 않아요, 형.”

“하하, 봤어요?”

“네. 잘 보이던데요?”

기왕이면 눈치채지 않았으면 했는데, 밀착해 이동한 지라 바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웃음기 어린 말에 민망한 뒷머리를 긁적이자 김세현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형은 최고예요. 자, 어서 가요. 오늘 할 거 많잖아요.”

김세현의 말마따나 오늘은 할 게 무척 많았다. 문고리를 잡은 김세현이 곧바로 문을 열며 날 바라본다. 나는 고갤 끄덕이며 그와 함께 김세현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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