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33)화 (233/246)

230화

25. 생각지도 못한

다음 날 아침.

습관처럼 일어나던 시간에 눈을 떴지만, 눈앞의 상황은 평소 같지 않았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걸 느꼈다.

“…….”

설마 이번에도 내가 파고든 걸까? 그게 아니라면 김세현이 잠결에 다가왔나?

누가 움직였는지 바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지금 당장 움직이는 건 곤란했다. 긴장감에 몸이 굳은 것도 굳은 거지만, 완전히 밀착된 몸과 함께 내 몸을 꽁꽁 감싼 김세현의 두 손과 두 발에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숨죽여 누워 있는데, 고른 숨을 내뱉던 그가 몸을 뒤척였다.

“으음.”

내 등을 감싸고 있던 손의 힘이 순간 약해진다. 그 틈을 타 재빨리 빠져나가려 했지만, 나보다 김세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내 허리를 붙잡은 그가 조금 전보다 더욱 강한 힘으로 날 끌어당겼다.

“…….”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가만히 있을 걸.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몸이 밀착되니 가만히 있는 것조차 좀 버거웠다. 그렇다고 놓아달라며 잠을 깨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깊은 잠에 빠진 김세현을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그의 가슴팍에 묻어 있던 얼굴을 들어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진짜 자네.”

자는 척을 하는 거라면 지금쯤 김세현의 표정이 미약하게나마 변했을 것이었다. 입매가 씰룩거린다거나 혹은 가는 눈을 뜬 채 날 본다든가 하는 거 말이다. 혹시나 해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김세현은 그저 고른 숨을 내쉴 뿐이었다.

여기서 내가 불편하다고 몸을 꼼지락거린다거나 한다면 분명 김세현은 잠에서 깰 거다. 몸이 편안해지고 싶단 마음도 컸지만, 김세현이 이렇게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걸 지켜보는 것도 나름 괜찮을 듯했다. 움직이고 싶기도 하고 또 가만히 있고 싶기도 한 마음은 김세현의 잠든 얼굴을 보며 후자 쪽으로 기울었다.

“…….”

평소에도 자주 보던 얼굴이었지만, 눈을 감은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생소한 광경이었다. 원체 잘생긴 터라 어느 곳 하나 빠지는 구석 없이 멋졌지만, 이렇게 눈을 감은 모습까지 완벽할 수 있는 것도 참 대단했다. 역시 김세현은 김세현이라는 생각과 함께 얼굴 요목조목을 뜯어볼 때였다.

미약하게 앓는 소리를 내던 그가 입맛을 다시더니 고갤 숙이며 거릴 좁혀 온다. 잠결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갑자기 다가오는 건 반칙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그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때였다. 순식간에 다가온 김세현이 내 이마에 자기 볼을 기대더니 다시금 고른 숨을 뱉기 시작했다.

“…….”

이런 자세로 잠이 들면 곤란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가만히 있는 게 힘들어 얼굴이라도 보자고 한 건데, 이젠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 거다.

더군다나 갑자기 좁혀진 거리 탓에 내 숨이 그의 목덜미 쪽에 닿을 게 뻔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숨을 몰아쉬는데, 이게 말이 쉽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버거워졌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를 밀어내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혀엉?”

그리 강한 힘으로 밀어낸 건 아니었으나 김세현의 잠을 깨우기엔 충분했던 모양이다. 잠에 흠뻑 취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그가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지금은 저 미소에 홀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한 번 더 그를 밀어냈다.

“주말인데 좀 더 자요. 아직 숍 예약시간 되려면 멀었어요.”

“읏!”

눈을 뜬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시간까지 확인한 모양이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그를 밀어내는 손에 힘을 실으며 좀 더 거리를 벌리려 했다.

“어디 가려고요.”

얼마나 어렵게 벌린 거린데, 순간 날 잡아당긴 김세현의 힘에 제자리다. 아니지, 오히려 잠을 잘 때보다 더 강하게 끌어안은 것 같다. 허리와 등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과 함께 이번엔 내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행동이 이어지니 어디서부터 재질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김세현이 원하는 대로 몸을 내어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목덜미에 닿는 머리카락과 함께 얼굴이 닿는 듯한 감촉이 이어질수록 오싹한 감각이 점차 강해진다. 나는 술렁이기 시작한 감정에 김세현을 다급히 불렀다.

“세현 씨!”

“…아직 예약한 시간 되려면 멀었잖아요.”

“그게 아니라, 허리 좀!”

사실 그가 안은 허리가 아프진 않았지만 내겐 핑곗거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다급한 내 목소리를 들은 김세현이 멈칫하더니 이내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동시에 몸을 감싸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지자 그 틈을 타 품을 빠져나와 상체를 일으켰다.

“좀 더 자요. 세게 안지 않을게요.”

“완전히 깨서 괜찮아요.”

조금 전까지 안고 있었던 건 잠결에 벌어진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고갤 젓자 김세현이 반쯤 감긴 눈살을 찌푸렸다.

“매번 형은 싫다고만 하고.”

말을 뱉은 이가 좀처럼 손을 거두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뻗은 손을 몇 차례 흔드는데, 그 행동이 마치 다시 품에 안기라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갤 저으며 부엌을 가리켰다.

“세현 씨도 왔으니 오래간만에 밥이나 할까 싶어서요. 반찬은 특별한 게 없지만, 아침 먹고 나가요.”

지금부터 밥을 안치고 간단히 먹을 음식들을 준비한다면 김세현이 완전히 잠에서 깰 때 즈음해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다.

“밥?”

밥 이야기에 김세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나 싶더니 내게 내밀었던 두 손을 거둬들인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시는데, 그 모습을 보자 괜히 웃음이 났다.

“좀 더 자고 있어요. 밥 다 차리면 다시 깨울 테니까.”

역시 김세현에겐 먹는 걸 들이미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이미 식사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 게 훤히 보이는 데도 김세현은 좀처럼 답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눈을 움직이는 이를 기다리자 한참 만에 그가 고갤 끄덕이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럼 조금만 더 잘게요. 이렇게 잠이 오는 건 오래간만이라서.”

“그래요.”

오래간만이라면 더욱더 잠을 자는 게 좋았다. 고갤 끄덕이자 끔벅이던 김세현이 다시 눈을 감는다. 잠시 뒤 다시 고른 숨을 뱉는 이를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혹여 잠에서 또 깨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부엌에 도착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제법 움직이는 소리가 컸을 텐데도 김세현은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왕 아침을 먹는 거 든든하게, 그리고 반찬을 많이 준비하고 싶지만, 있는 재료가 너무 한정적이다. 한동안 장을 보지 않아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어제 장이라도 좀 봐 둘걸 그랬나 싶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없는 식재료들을 이용해 반찬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려는데, 어깨 위로 턱 하니 무언가가 올라왔다.

“밥 다 준비 안 됐어요?”

“일어났어요?”

“맛있는 냄새가 나서 깼어요.”

깼다고는 하지만 목소리는 가라앉은 것이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아니지, 어쩌면 단잠을 잔 여파일지도 몰랐다.

“물부터 마셔요.”

“네.”

역시, 잠이 덜 깬 게 맞나 보다. 다른 때와는 달리 얌전히 내 말을 따르는 모습이 그걸 방증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준비하던 어묵볶음을 마무리하고 그릇에 덜자 김세현이 곧바로 자리에 앉는다. 그걸 보며 밥을 푸곤 그의 앞에 두었다.

“밥솥이 지을 수 있는 양만큼 했으니까 모자라면 더 먹어요.”

“좋아요.”

더 먹으란 말을 들은 김세현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와 함께 멍했던 눈빛 또한 돌아오는데, 그가 얼마나 먹는 걸 좋아하는지 알겠다. 내 몫의 밥까지 퍼서 자리로 와 앉자 김세현이 날 빤히 바라본다.

…마치 내가 먼저 먹길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얼른 먹어요.”

“그래요.”

착각이라 여겼건만,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서 먹으라며 재촉하는 이에 젓가락을 들자, 얼굴이 환해진 김세현이 그대로 식사를 시작했다.

“와, 이거 형이 방금 만든 거 맞죠?”

“네.”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 봐요!”

“하하.”

거창한 걸 준비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 민망하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준비한 거라곤 어묵볶음, 구운 햄, 계란말이 정도였으니까.

요리를 잘하는 사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저 자취생의 기본적인 반찬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극찬하는 건 김세현밖에 없을 거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자 김세현이 반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란말이 간도 딱 알맞아서 좋아요. 오늘 우리 집에 가면 이거 해 줘요.”

“좋아요.”

그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음식에 비해 계란말이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었으니까. 간도 제법 잘하는 편이었고. 자신감 넘치게 답하자 김세현이 웃으며 고갤 끄덕이더니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우고는 다시 밥을 푸러 밥솥으로 향했다.

김세현의 위장에 비해 밥그릇이 적어서일까, 정말 빠르게 그릇이 비워진 상황이다. 이대론 그가 오가는 시간이 더 많을 듯했다. 나는 곧바로 밥을 푸던 김세현에게 제안했다.

“그냥 밥통째로 꺼내서 식탁에 둘까요?”

“오, 그거 좋죠.”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반색하며 바로 밥솥의 내솥만 꺼낸다. 그에 받침을 깔자 내솥을 내려놓은 그가 만족스럽게 밥을 푸기 시작했다.

“형은 더 먹을 거예요?”

“저는 이걸로 충분해요.”

평소 아침밥을 잘 챙겨 먹지 않기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의 표정이 더욱 밝게 변하더니 이내 내솥을 자기 곁으로 옮겼다.

“그럼 이거 다 내가 먹어요?”

“그래요.”

다 먹으란 말을 들은 김세현의 얼굴이 더욱 환해진다. 가감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이보다 웃음이 날 수가 없다. 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금 식사를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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