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30)화 (230/246)

227화

25. 생각지도 못한

“진짜 딱 한 번만요.”

김세현이라면 한 번이 두 번이 될 것이고, 또 여러 번이 될 게 분명했다. 생각해 보면 김세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아니지, 따지자면 김세현도 김세현이었지만 나도 문제였다.

괜히 못 이기는 척 응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허락할까. 혹시 몰랐다. 입을 맞추다가 내 마음이 드러나 문제가 생길지도. 나는 완강하게 거부를 표했다.

도리도리.

“지금 안 하면 나중에 기회 봐서 나 혼자 해요?”

내가 응하지 않자 이번에는 채찍을 휘둘러 보려는 듯 김세현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위협하는 듯한 말을 던진다. 물론, 그것 또한 안 될 말이었다. 뭐든 할 때면 허락받기로 했으니까. 게다가 지금 김세현이 하자고 하는 건 쉬운 마음으로, 장난으로 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되지 않았다.

도리도리.

계속되는 거절 때문일까, 일렁이던 김세현의 눈동자가 조금씩 촉촉하게 젖어 드는 게 보였다. 보고 싶지 않았으나 이 거리에서, 그리고 환해진 TV 덕분에 김세현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는 너무도 잘 보였다.

덩달아 날 내려다보는 김세현의 목울대 또한 연신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간절하게 입을 맞추고 싶어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입을 맞추는 게 뭐라고 저런 눈빛을 보내는 걸까.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보이는 시선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말이다.

한참을 애절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김세현을 계속해서 모른 체하자 이내 그가 작게 한숨을 뱉으며 내 어깨에 턱을 괴었다. 그러더니 칭얼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을 뱉었다.

“나는 형이랑만 입 맞추고 싶은데.”

“…….”

“형은 아니에요?”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걸까?

폭탄과도 같은 말을 꺼내면서도 불만 어린 얼굴을 한 모습을 보니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질 지경이다.

나, 랑만? 아니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간 볼 수 없었던 김세현의 표정과 말투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너무 의외인 게 많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놀라 김세현을 바라보는데 내 손을 불만 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그가 돌연 말을 뱉으며 거릴 좁혀 왔다.

“말 나온 김에 그냥 한 번 해봐요!”

금방이라도 내 손을 떼어 내서는 입을 맞출 것만 같은 기세다. 놀란 마음에 손에 힘을 더 실으며 고개를 젓자, 김세현이 바로 코앞에서 멈춰서더니 이내 풀이 죽은 얼굴로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형은 본인이 철벽인 거 알아요? 이럴 땐 은근슬쩍 못 이기는 척 응해 주기도 해야죠. 그래야 나도 기운도 얻고, 형이 내 거라고 확실하게 침도 발라 두지.”

“…….”

입을 맞추는 게 어째서 기운이 난다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 행동을 한다고 해서 침을 발라 둔다는 표현을 하는 건 좀 오버였다. 입을 맞춘다고 외부에 티가 날 리 없었으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표식이라던가 뭔가가 있었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기라도 했겠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그런 건 없었다.

애타는 김세현의 눈을 봐서일까, 그의 말마따나 못 이기는 척 응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역시 분위기가 문제였다. 나는 잠시 들리지 않던 영화 속 소리에 흐트러졌던 마음을 애써 부여잡았다.

도대체 저 영화는 액션 영화면서 이렇게 긴 시간을 그렇고 그런 장면에 투자한 건지 모르겠다. 혼자 속으로 불만을 토해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작사에서 내 마음을 알아줄 리는 만무했다.

“혀엉.”

이런 이상야릇한 분위기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위험천만했다. 나는 김세현을 보다가 결국 몸을 틀어 TV로 시선을 주었다.

“그냥, 영화나 봐요.”

여기서 허락했다간 거기서 멈출 수 있을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 김세현이 멈춘다고 해도 내가 멈추지 못할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나랑만 입 맞추고 싶다고 했으니 아마 나보단 김세현이 집요해질 확률이 좀 더 있을 듯했다. 이렇게 따져봤자 사실은 전자도 문제였고, 후자도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영화를 보자고 말하자 김세현이 몇 번 더 칭얼거리다 말고 내 어깨에 얼굴을 올린 채 조용해졌다. 그에 안도하며 입을 가린 손을 떼어 내고는 의식하지 않는 척하며 영화를 보는데, 돌연 어깨에서 김세현의 무게가 사라졌다.

“…….”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갑자기 있던 게 없어지니 관심이 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김세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슬쩍 몸을 틀어 김세현이 영화를 보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려 할 때였다. 마치 내가 관심을 주길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순간 거리를 좁혀 오는 김세현의 얼굴에 놀라 황급히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

“…….”

손가락 끝에 닿은 김세현의 입술 감촉이 느껴진다. 더하여 얼굴 곳곳에 뿌려지는 뜨거운 숨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크게 와 닿은 건 역시 입술 쪽이었다.

닿, 았나?

아니다. 닿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닿은 것 같기도 했다.

“…….”

입을 틀어막으려던 손이 겨우 김세현과 내 얼굴 사이에 끼어들긴 했지만 손가락 끝이 겨우 막은 터라 정말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진 모르겠다. 그래, 그 상황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은 김세현의 입술이 닿지 않아 다행이었다.

안도하며 그를 밀어내는데, 좀처럼 김세현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세를 바꾸더니 내 위로 그가 올라탔다. 한 번 더 밀어봤지만, 김세현은 꿋꿋하게 그 자셀 유지하며 날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 눈을 보고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지만 지금 김세현의 눈빛은 몹시 반질거렸다. 마치 포식자가 먹이를 앞에 둔 듯한 기세 또한 사람을 긴장시키는 데 한몫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손가락을 집어삼키곤 내 얼굴도 잡아먹을 것만 같다. 자꾸만 입술 쪽으로 쏠리는 감각을 다른 곳으로 흘려보려 노력해 보았지만, 바로 코앞에 김세현이 있는 터라 볼 수 있는 거라곤 그의 얼굴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싶어 이리저리 눈을 움직이는데, 순간 손가락 끝에서 김세현의 입술이 오물거리는 게 느껴졌다. 마치 내 손가락을 집어삼킬 듯한 움직임에 좀 더 강한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혀엉.”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김세현은 순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애타는 듯한 시선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안 돼요.”

김세현의 표정을 보니 지금은 정말 응해선 안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세현의 얼굴엔 웃음기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웃음기라곤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뿐이랴, 애가 타는 듯 연신 입술을 혀로 적시며 위험한 눈을 한 채 날 내려다보는 상황이었다.

“하늘 형.”

“정말 안 돼요. 자꾸 그러면 주말 약속 다 취소할 거예요.”

주말 약속을 다 취소한다면 김세현에만 여파가 있는 게 아니라 내게도 있겠지만, 그래도 확실한 뜻을 전달해야만 했다. 순간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으나 내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은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주말 약속을 거론하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자 김세현의 얼굴 가득 좌절감으로 들어찼다. 그뿐이랴, 잔뜩 풀이 죽은 채 내 위에서 내려와서는 다시금 옆자리에 눕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가 죽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너무 강하게 말했나 하는 생각을 할 때였다. 나는 미약하지만 김세현에게 들던 미안함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럼 이렇게 누워서 영화 계속 보는 건 괜찮죠?”

은근슬쩍 다시 내 허리를 감싸 안은 김세현이 잔뜩 시무룩해진 얼굴로 내게 묻는다. 하지만 허락을 구하는 말과는 달리 손은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날 붙잡고 있었다. 마치 이것만은 빼앗길 수 없다는 듯한 모양새에 잇새 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픽하는 소리가 새어나가자 속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이 차오른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한 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

“왜 웃어요! 난 진짜 서러운데.”

“서러울 정도예요?”

“당연하죠! 내가 얼마나 조금 전 순간만을 고대해 왔는데요!”

고대까지 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김세현의 볼멘소리가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듣기 좋았다. 김세현이 얼마나 날 배려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와 같은 마음으로 김세현이 날 생각하고 있는지 그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형, 진짜 딱 한 번만….”

김세현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날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내 쪽에서 먼저 입을 맞추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그래,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이 이상 접촉을 한다는 건 정말 위험했다. 어쩌면 주말에 머리를 자르러도 가지 못할 수도 있단 생각을 하며 한 번 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요.”

“…….”

내 대답을 들은 김세현이 다시 시무룩해지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TV를 보기 시작했다. 더는 조르지 않지만, 표정만큼은 심통이 가득한 것이 내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듯했다.

이런 모습까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나도 정말 제대로 된 콩깍지가 씐 듯하다. 나는 김세현이 날 안은 자세 그대로 다시금 영화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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