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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27)화 (227/246)

224화

25. 생각지도 못한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리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함께 조바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느새 푸른 눈동자 가득 내 모습으로 들어찬 것까지 보일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김세현이 나를 보듯 나 역시 그를 응시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 분위기가 낯설다. 공기까지 멈춘 듯한 느낌에 당황하는데, 김세현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다가올 뿐이다. 어느 새 서로의 숨까지 얼굴에 닿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 선택은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살짝 벌어진 김세현의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오자 목이 탔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때,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드르륵-

“아.”

정신이 번쩍 든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시선을 들자 반쯤 풀려 있던 김세현의 눈이 삽시간에 커지는 게 보였다. 나는 황급히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어떤 놈이 또 전화질이야!”

젖은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린 김세현이 잔뜩 성을 내며 품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방금 전 분위기를 깨뜨린 핸드폰을 손에 쥔 이가 전화를 받기 전 날 바라보았다.

“형.”

“네, 세현 씨.”

“너무 멀리 가지 말아요.”

거세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보려 거리를 두려고 했건만, 그걸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민망함에 반 걸음가량 뒤로 물러섰던 발을 바로하자 삐죽삐죽하던 김세현의 얼굴이 한결 풀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누가 전화질이야.”

내게 말을 건넬 땐 몹시도 다정한 말투였건만, 통화할 때의 목소리는 다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스웠지만, 어쩐지 김세현에게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느낌이다.

아니지, 다시 생각해 보면 난 김세현에게 특별한 사람은 맞았다. 그가 자기 입으로 직접 나만 따른다고 했던 것만 봐도 그랬다.

“메시지로 보낸 것처럼 깔끔하게 처리해. 처분하는 영상까지 찍어서 전송하고. 물건 빼돌리는 수작 부리다가 걸리면 내가 지구 끝까지 쫓아갈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전할 말만 전달한 김세현이 바로 전화를 끊는다. 그러더니 날을 세운 적 없다는 듯 순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날 바라본다. 태세전환이 너무 빨라 조금 놀랐지만, 저 모습을 보니 더 확실해졌다. 김세현이 날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단 걸 말이다. 이미 생각하고 있었건만, 제대로 확인하니 괜히 민망했다. 날 보며 웃기 바쁜 김세현과 시선을 교환하다가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현관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밖에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잘 이야기해 뒀으니까 알아서 치워 갈 거예요.”

“그래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김세현이 부른 사람이기에 믿을 수 있었지만, 혹시 또 몰랐다. 게다가 아까 김세현도 나가서 봐야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이 나가봐야겠다고 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터였다. 곧바로 움직이는데, 오히려 김세현은 요지부동이었다.

“나가서 볼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카메라 설치되어 있잖아요. 그걸로 확인하면 돼요.”

“나가 보려고 옷도 갈아입었는데….”

“형도 봤다시피 제대로 닦지도 않았는데, 이대로 나갔다간 감기 걸리면 어떡해요.”

“감, 기요?”

내가 알기론 헌터는 감기도 걸리지 않을뿐더러 웬만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 그를 보자 김세현이 눈가를 축 늘어뜨렸다.

“네, 감기요. 설마 헌터가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생각한바 그대로를 입에 담는다. 마치 세상에 알려진 말들이 거짓이라는 듯한 말투에 고갤 주억였다.

“당연히 그런 줄 알았어요.”

“헌터도 사람이잖아요. 감기도 걸리고, 몸도 아프고 그래요.”

몸도 아프다고 말하며 미간을 구기는데, 그 모습이 평소완 좀 다르게 느껴졌다. 넘겨짚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아무래도 직접 경험한 바를 내게 알려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망설이다가 물어보았다.

“세현 씨도 그랬어요?”

“당연하죠. 몇 번 앓아 본 적은 없지만 아플 땐 아파요.”

“…그렇구나.”

김세현의 말을 들으니 내가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고갤 끄덕이자 김세현의 눈매가 더더욱 아래로 향한다. 그와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이 솟구쳤다. 나는 이어진 김세현의 말에 바로 동의했다.

“그러니까 아직 몸도 제대로 닦지 못했는데 이대로 나가는 건 안 하려고요. 다시 옷 갈아입고 머리 말려서 누워야겠다.”

“네, 그러세요.”

“혹여 밖에서 문제 생기면 내가 나가보면 되니까 형은 얼른 가서 씻어요.”

“그래요.”

그러고 보니 정작 내가 아직 씻질 않았구나.

뒤늦게 깨닫곤 고갤 끄덕이니 김세현이 웃으며 소파로 향한다. 다시 환복하는 김세현을 못 본 척하며 방으로 가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겼다.

바로 욕실로 가면 되는데,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잠시 방에서 대기하다가 조심스럽게 밖을 확인하니 다행히 김세현은 옷을 다 갈아입은 상황이었다. 속으로 안도하며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쏴아아-

“…후우.”

따뜻한 물줄기 아래에 서 있자니 이보다 더 몸이 나른해질 수가 없다. 한숨을 토해내며 씻는데, 자연스럽게 내일부터 휴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푹 쉬어야지.”

그래, 휴일이고 하니 푹 쉬고 다음 주부터 다시 열심히 작업해야겠다. 김세현과 약속이 있긴 해도 쉴 수 있을 때마다 푹 쉰다면 다음 번 쉬는 날까진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을 듯했다.

내일 일을 다시금 상상하다 보니 어느새 샤워가 끝난 상황이다. 빠르게 옷을 입고는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며 거실로 나왔다.

“세현 씨?”

“어, 형.”

당연히 이부자리에 누워 있다거나 소파에 앉아 있을 줄 알았다. 욕실 앞에, 그것도 문과 근접한 곳에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게 말이죠….”

“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 뜸을 들이는 걸까.

당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긴장하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이 낯선데 묘하게 익숙하다. 말을 할 듯하면서도 하지 않는 이에 곧바로 현관 쪽을 가리켰다.

“그래도 좀 걱정된 거죠?”

그래, 이게 아니라면 김세현이 욕실 앞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잠시 모든 행동을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맞아요! 사실, 형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긴 했는데 내 집도 아니고 형 집에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는 게 마음에 걸려서요. 잠깐 보고 올까 해서 가던 길이었어요. 밖만 신경 쓰느라 형이 갑자기 나와서 놀라기도 했고, 내가 뱉은 말이 있는데 이제 와 확인하러 간다는 게 걸리기도 해서요.”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했는지에 관한 설명이 길다. 굳이 저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마치 그게 나를 이해시키려고 어떻게든 말을 이어 붙이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그걸 입에 담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 지난 번 일도 있는데 김세현이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하진 않았을 테니까. 나는 머리를 감싼 수건을 목에 걸치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서 봐요.”

“형 머리 아직 젖어 있잖아요. 막 샤워하고 나왔는데 찬 바람 쐬면 감기 걸려요.”

“잠깐 보고 오는 건데요, 뭐.”

오늘은 날이 그렇게 춥지 않았던 터라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처럼 잠깐 보고 들어온다면 감기에 걸린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더군다나 난 감기랑은 제법 거리가 먼 편이었다.

“그래도 안 돼요. 정 보고 싶으면 형 머리 다 말리고 나서 잠깐 보던가요.”

내가 괜찮다는데 김세현은 안 된다는 말만 할 뿐이다. 거실 쪽으로 등을 떠미는 이에 버텨보려 했지만, 내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결국 드라이기 앞까지 오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손에 쥐었다.

“머리 다 말리면 가서 볼게요.”

“좋아요. 난 바로 나가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머리 다 마르면 그때 와요.”

원하는 답을 들었기 때문일까, 얼굴 가득 미소를 띤 김세현이 바로 현관 쪽으로 이동한다.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가려면 머리부터 말려야겠단 생각에 바로 드라이기를 작동시켰다.

김세현이 보러 갔기에 굳이 내가 가서 확인하지 않아도 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집인데 김세현에게 전부 맡긴다는 것도 좀 그랬다. 빠르게, 하지만 꼼꼼하게 머리를 말리곤 현관을 나서니 때마침 마지막 정리를 마치고 사람들이 집을 나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린 잘 말렸어요?”

“벌써 정리 끝난 거예요?”

샤워하고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마당이 휑하다. 놀란 눈으로 정리된 마당 구석을 바라보는데 김세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쯤이야 바로 정리 끝나죠. 형한테도 말했잖아요. 정리 바로 끝날 거라고.”

“아….”

정리한다고 해서 당연히 우리가 열심히 정리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김세현은 사람을 데리는 걸 염두에 둔 채 말했던 모양이었다.

“사람 데리는 건 데리는 거고. 형이랑 같이 분리수거도 해 보고 꽤 재미있었어요.”

분리수거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왔다더니 나랑 정리하는 걸 해보고 싶었던 듯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김세현이 이런 정리를 할 이유가 있었나 싶다. 김세현이 어째서 분리수거 방법을 습득하고 왔는지 떠올리며 간질거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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