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25)화 (225/246)

222화

25. 생각지도 못한

“인제 대화는 그만 나누고, 식사에 집중하죠. 설령 그쪽이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해도 도착하기 전까지 하늘 씨가 어떻게든 시간 벌 테니 걱정은 그만해도 될 겁니다.”

“당연한 거 아냐? 우리 하늘 형이 얼마나 입이 매서운데.”

“…매섭다뇨.”

다만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몇 마디 하는 것뿐이지, 매섭다고 할 순 없었다. 손사래를 쳐 봤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두 사람의 뜻이 맞았는지 내 대답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막상 저렇게 두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행동하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하다. 그 뜻이 나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이상했고. 하지만 그게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식사하고, 또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테이블 위의 음식이 동이 났다. 테이블 곁에 두었던 음식조차 완전히 사라졌단 사실에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좀 더 수다를 떨고 싶지만, 내일 출근이라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죠.”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세요.”

식사만 하고 바로 간다고 하니 이보다 서운할 수가 없다. 내가 붙잡자 부팀장이 고갤 저었다.

“집에 가서 할 일도 있고 하니 이젠 가봐야겠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자리 마련할 테니까 그땐 더 머무르다 가세요.”

다들 바쁘겠지만, 함께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뭐 있는 건 없어도 집만큼은 넓기에 팀원들 모두가 숙박해도 충분했으니까.

“좋습니다. 그땐 팀원들도 몇몇 동행하는 것으로 하죠.”

“저야 좋죠!”

팀원들이 온다면 지금보다 한층 더 왁자지껄할 거다. 모두가 우리 집에서 식사하고 또 편히 앉아서, 혹은 누워서 대화를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 기대되었다.

대답을 들은 부팀장이 고갤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김세현이 날 불렀다.

“형.”

“네, 세현 씨.”

“내가 온 것보다 팀원들이 오는 게 더 좋아요?”

“다 좋아요.”

그래, 이건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내겐 둘 다 좋은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김세현에게 내 대답은 썩 좋은 대답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못마땅함을 얼굴 가득 드러낸 김세현이 촉촉해진 눈으로 날 바라본다. 푸른 눈동자에 어린 물기가 괜히 마음을 술렁이게 했지만, 부팀장도 있는 자리에서 김세현이 더 좋다는 식의 말을 하며 구슬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난감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날 올려다보던 김세현이 슬쩍 부팀장을 보는가 싶더니 더더욱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누가 봐도 원하는 답을 어서 해 달라는 식의 시위였지만, 지금은 부팀장을 배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김세현을 못 본 체하며 부팀장을 배웅하기 위해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리 둬도 되겠습니까?”

“지금은 부팀장님이 우선이잖아요.”

“하하.”

내 대답을 들은 부팀장의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몹시도 재미있다는 듯, 또 즐거워 보이는 듯한 그를 보니 괜스레 나도 웃음이 난다. 따라 입꼬리를 올리고는 뒤따라 마당으로 나가자 부팀장이 어서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괜히 책잡히지 말고 어서 들어가 봐요. 그리고 김세현이 부른 이들이 저것들을 잘 처리하는지도 감시하도록 하고요.”

“네.”

감시하는 건 당연했다. 김세현이 그냥 알아서 하게 두라고 해도 지켜볼 생각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부팀장이 고갤 끄덕이더니 곧바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뒤따라 나가려다 대문 안에서 발걸음을 멈추고는 부팀장이 차에 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뒤, 부팀장의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다시 대문을 잘 잠그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문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문손잡이를 잡은 채 그대로 끌려들어 가다가 그대로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세현 씨?”

코를 자극하는 익숙한 향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파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는데,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아마 밖으로 나오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몸을 바로 하며 고개를 들자 김세현이 날 빤히 내려다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 타 드릴까요?”

“좋아요.”

“그럼…. 테이블부터 치우고 나서 같이 커피 마셔요.”

평소보다 날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부담스럽다. 물론, 부담스러운 가운데 사람을 떨리게 만드는 무언가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커피 이야기를 꺼냈지만, 김세현의 시선은 좀처럼 내게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시선을 피할 타이밍도 놓친 터라 이제 와 시선을 피한다면 내가 이 상황을 무척 의식하고 있단 게 티가 날 게 분명했다. 타이밍을 놓친 채 마냥 그를 바라보는데 김세현의 눈가가 곱게 휘어졌다.

“드디어 둘이 있게 되네요.”

“그, 렇죠?”

갑자기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이유가 뭘까.

이미 알고 있던 일이지만, 김세현이 말하자 이보다 더 심장이 뛸 수가 없다. 온 신경이 눈앞의 이에게 집중되는 게 느껴져 괜스레 주먹을 쥐었다 풀며 마음을 다독이는데 김세현이 그런 내 손을 포개어 잡았다.

“얼른 가서 치워요. 그리고 커피도 마시고.”

“…그래요.”

“그다음엔 씻고 이부자리 깔아서 같이 누워서 수다도 좀 떨고요.”

수다를 떠는 게 주가 되는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같이 눕는다는 말이 귀에 콕 박힌다.

이전에도 같이 이부자리를 깔아서 자 놓곤 이제 와 이렇게 의식하는 것도 우습다. 아니지, 그날을 다시 떠올리자 이리 심장이 떨리고 또 의식되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

어째서 그 상황을 깜박한 걸까. 잠을 청하려다가도 순간 떠오를 때면 이불을 차며 일어날 만큼 부끄러웠던 그날을 말이다. 잠결에 김세현의 품을 파고들어서는 숙면을 취했던 일을 떠올리자 절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최근 일이 많아 차마 이런저런 생각을 깊게 할 여유가 없었다고는 하나 김세현이 집에 와 잠을 자고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면 응당 그 일부터 떠올려야 마땅했다.

“오늘도 손만 잡고 잘게요.”

마치 내 마음속을 읽기라도 한 듯 김세현이 적절한 타이밍에 다시금 잔다는 말을 꺼낸다. 혹여 정말 내 속을 읽은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김세현은 얼굴 가득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형은 커피 타요. 나는 커피 준비되는 동안 정리할게요. 그리고, 슬슬 사람들이 올 때도 돼서 바깥도 좀 지켜보고요.”

“저도 같이 봐요.”

“좋아요. 그럼 일단 커피부터 타고 같이 보러 가요.”

부팀장이 하고 간 말도 있었고, 내 일인데 모든 걸 김세현에게 맡길 순 없었다. 김세현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곤 그와 함께 마실 커피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향했다.

“형, 나는 두 잔이요.”

“네.”

두 잔만 마신다는 걸 보면 얼른 마시고 이부자리를 깔고 눕고 싶단 말일 거다. 물론, 그사이에 씻는 시간도 있을 테지만, 눕는다는 걸 의식하니 자꾸만 모든 것이 그쪽으로 연결되었다.

“…하아.”

이미 같이 자기로 한 마당에 이제 와 말을 바꾸게 된다면 김세현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오히려 좀 더 강한 걸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김세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지난번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김세현의 품에서 눈을 뜨는 일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한 번 더 그런다면 정말 심장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세현에게 말을 하지 못할 거라면 내가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나는 잠을 자기 전 몇 번이고 거듭해 얌전히 자자 다짐하고 또 곱씹으며 몸을 진정시키도록 해야겠단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을 함과 동시에 물이 끓는 소리에 정신을 다잡곤 커피를 만들어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잘 마실게요.”

김세현 몫의 커피를 먼저 건네고, 내 몫의 커피와 함께 작은 쟁반을 테이블에 놓으며 자리에 앉자 언제나처럼 인사말을 건네온다. 나는 고갤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

“…….”

막상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집 안이 이보다 조용할 수가 없다. 괜스레 김세현이 더욱 의식되는 듯했지만, 애써 그 사실을 모르는 체하며 거리를 두는데 김세현이 자기 근처에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오늘도 자기 전에 영화도 좀 보고 할까요?”

“좋아요.”

“볼 만한 게 있으려나.”

소파에 기대어 바닥에 앉은 채 나른하게 채널을 돌리는 모습이 참 편해 보인다. 저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긴장감이 풀리는 듯해 완전히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상기해 냈다.

“참, 세현 씨. 갈아입을 옷가지 가지고 올게요.”

“지난번에 입었던 옷 있으면 그걸로 줘요.”

“다른 옷 있으니까 그걸로 드릴게요.”

지난번 옷이라면 기석이 녀석의 옷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 옷이 아니라 다른 옷을 건네줄 생각이었다. 기석이 녀석의 옷 사이즈를 놓고 대강 유추해 미리 사두었던 옷가지가 있으니 그걸 입으면 좀 더 편할 거다. 나는 곧바로 방으로 가 옷을 챙겨 나오자 김세현이 화면을 돌리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씻고 올게요.”

“…그래요.”

조금 전까지 잠자는 것을 너무 의식했나 보다. 그게 아니라면 저 씻고 오겠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이상하게 들릴 리 없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고갤 끄덕이자 날 보던 김세현이 한 번 웃더니 옷가지를 건네받고는 그대로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설마, 이번에도 얼굴에 티가 났던 걸까?

얼굴을 만져 봤지만,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순 없었다. 결국 방으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선 뒤에야 어째서 김세현이 날 보며 웃었는지 알 수 있었다.

“후우.”

언제부터 이렇게 새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 건지 모르겠다. 목덜미까지 붉어진 꼴을 보니 김세현이 어째서 웃었는지 납득이 된다. 차오른 민망함과 더불어 부끄러움까지 온몸을 채우는 느낌이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거울 앞에서 연거푸 한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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