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24)화 (224/246)

221화

25. 생각지도 못한

“이거 아무래도 손이 너무 많이 갈 듯하니까 사람 불러서 치우라고 하죠. 우린 들어가서 밥 먹어요.”

“사람을 불러요?”

“연락하면 바로 와요. 지난번에 문 고치려고 바로 왔잖아요.”

“…….”

다른 예시도 있을 텐데 그때 일을 직접 거론할 줄은 미처 몰랐다.

놀라 김세현을 바라보는데 그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 김세현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연락을 취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이런 걸 보고 뻔뻔하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김세현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뻔뻔할 줄은 몰랐다.

내가 잘못 생각하나 싶어 부팀장을 바라보자 그 역시 김세현의 말에 좀 놀랐는지 눈이 커져 있었다.

“…뻔뻔한 건 알고 있었지만, 예상을 웃도는군요.”

“그러게요.”

매번 볼 때마다 이렇게 놀랄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데 이윽고 핸드폰을 품으로 집어넣은 김세현이 장갑을 벗었다.

“두 사람 다 음식 들고 안으로 들어가지 그래요? 일할 사람들은 이따가 도착하면 벨 누른다니까 그때 문 열어 주면 될 거예요. 난 잠깐 연락할 곳이 있어서 통화하고 뒤따라 들어갈게요.”

얼마나 정리했다고 벌써 사람을 부르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또 한편으론 생각보다 빨리 손을 털 수 있어 만족스럽긴 했다. 언제 다 치우나 했던 막막함도 저 말로 인해 제법 가시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마냥 개운한 것만은 아니었다. 김세현에게 너무 기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덩달아 샘솟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남은 짐들을 지켜보는데 김세현이 내 등을 살짝 밀었다.

“얼른요.”

“하늘 씨, 들어갑시다. 이럴 땐 못이기는 척 맡기면 되는 겁니다.”

부팀장까지 저리 말하니 이 이상 내가 할 말이 없다. 나는 짐에서 시선을 떼곤 부팀장과 함께 음식들을 챙겨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서 먹으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음식이 많아 식탁에 다 올리기엔 공간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그릇 위에 음식을 올리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부팀장님, 여기에 음식 올릴게요.”

역시 식탁보다는 소파 테이블이 식사하기 좋을 것 같다. 바닥과 가깝기도 할뿐더러 그만큼 새 음식들을 바로바로 채우는 데 제격이었으니까. 혹여 부팀장이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면 식탁으로 옮기자는 생각에 그에게 말을 건네니 부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갤 끄덕였다.

“음식 양을 생각하면 이곳이 나을 듯하군요.”

부팀장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소파 테이블 근처로 음식들을 다 옮기자 부팀장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저는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네, 마저 준비하고 있을게요.”

바깥이야 김세현에게 맡기면 될 듯하니 그와 부팀장이 돌아올 때까지 음식 준비를 해 두면 될 듯했다. 되도록 부팀장이 오기 전까지 어느 정도 정리를 해두자 다짐하며 빠르게 음식들을 꺼내어 하나씩 소파 테이블에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처 올리지 못한 음식들도 일단 꺼내 테이블 옆 바닥에 두자 부팀장과 함께 김세현이 거실로 들어왔다.

“오, 준비 벌써 다 했어요?”

“네. 얼른 손 씻고 와요.”

“그래요.”

만족스러운 얼굴로 테이블 위를 살피던 김세현이 화장실로 향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팀장이 먹을 죽이 있는 곳을 두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앉으세요.”

“…음식을 보니 저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좀 있군요.”

그러지 않아도 음식을 꺼내는 동안 의외의 음식들이 보여 조금 놀라긴 했다. 어쩌면 김세현이 저 음식들이 당겨서 주문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단 부팀장이 먹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준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팀장을 따라 자리에 앉으며 답했다.

“그쵸? 혹시나 해서 이쪽엔 부팀장님 드실 수 있는 음식들 모아 뒀어요.”

“예, 잘 먹겠습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날 바라보던 부팀장이 앞에 놓인 나무젓가락 포장지를 뜯는다. 나 역시 내 몫과 김세현 몫의 젓가락을 꺼내어 놓는데 김세현이 곁에 와 앉았다.

“얼른 먹지?”

“하늘 씨 덕분에 오늘 저녁은 든든히 먹고 가겠군요. 잘 먹겠습니다.”

“아니에요. 같이 짐 정리하는 거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제가 더 감사드려야 하는걸요. 물론, 세현 씨도요.”

여기서 김세현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팀장의 말에 손사래 치며 김세현을 바라보자 그의 입가가 씰룩이는 게 보였다.

“형, 많이 먹고 우리 밤새 대화나 나눠요.”

“하늘 씨는 일반인이라 밤새우면 다음 날 지장이 큽니다만.”

“말이 그런 거지, 정말 밤새 수다 떨겠다는 건 아니거든?”

“…하하.”

한동안 잠잠하나 싶었는데, 다시금 티격태격하려나 보다.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만 나누기엔 테이블 위 음식들이 무척 호화스러웠다. 음식 냄새도 향기로울 지경이었고. 시각적인 자극과 더하여 후각까지 자극을 받으니 이보다 더 허기질 수가 없었다. 나는 두 사람을 중재하기 위해 서로의 앞접시 위로 음식을 놓았다.

“우리 밥부터 먹어요. 맛있는 걸 앞에 두니까 배가 고프네요.”

“그럽시다.”

“형, 이거 먹어요. 기력 보충하는 데 좋은 음식들로 주문했어요.”

최근 사무실이 워낙 바빴기에 김세현이 그걸 기억해 음식을 고른 모양이다. 따로 언급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신경을 써 주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

제법 긴 시간 멀쩡하던 심장이 다시금 뛰는 게 느껴진다. 덩달아 나를 바라보는 김세현의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오르는데, 아무래도 거리가 가까워 내 심장 소리가 그에게까지 들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답변했다.

“잘 먹을게요.”

“많이 먹어요. 그래야 내일 머리도 자르고, 영화도 보고 하죠.”

김세현이 나열한 것들을 하기 위해 굳이 식사를 배불리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렇게 챙겨 주는 게 싫진 않았다. 설렘을 계속해서 내리누르며 고갤 끄덕이자 김세현이 이것저것 음식들을 집어 내 앞접시에 놓았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간질거리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그가 주는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였다. 부팀장의 부름에 고개를 들자 그가 대뜸 질문해왔다.

“요즘은 집 주변에 이상한 게 추가로 설치된다거나 하진 않았습니까?”

“…그런 건 딱히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물건들만 한가득 왔을 뿐이고요.”

“형이 싫다는데 내가 뭔갈 더 설치했을까 봐?”

부팀장의 말에 김세현이 발끈할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게 누가 봐도 김세현이 다른 행동을 한 게 있는지 물어보는 듯한 말투였으니까. 하지만 부팀장의 질문에는 다른 뜻이 감춰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요즘 하늘 씨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진 터라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겁니다만. …혹시 찔립니까?”

“그럴 리가! 형, 진짜 더 설치하거나 한 거 없어요! 대문 안쪽으론 마당을 찍는 것만 하나 있고, 나머진 형 보이는 곳곳에 놔둔 거 알죠?”

김세현의 말마따나 그가 설치한 카메라들은 내가 보이는 곳에 위치했다. 그가 속이려면 날 속일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굳이 김세현이 날 속여 모르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네, 잘 알고 있어요.”

김세현이 설치한 카메라 덕분에 이렇게 마당에 물건도 쌓아둘 수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물건을 수령했다는 헛말이 나오지 않도록 계속해서 촬영 중이었으니까.

“되도록 물건 선에서 끝났으면 하지만, 어쩌면 앞으로는 사람들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조심하도록 해요. 아침 출근할 땐 제가 도착하고 연락할 테니 그때 나오도록 하고요.”

부팀장이 꺼낸 말에 괜스레 며칠 전 아침에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쿵쿵 뛰던 심장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뛰는 게 느껴졌지만, 그걸 티 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침묵하기로 한 만큼 확실하게 침묵하기로 작정하며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답했다.

“…그럴게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저에게 연락하십시오. 더 급한 상황이라면 썩 믿음직스럽지는 않더라도 옆자리의 김세현 씨에게 연락하도록 하고요. 다른 건 몰라도 속도만큼은 인정하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작은 일도 나한테 연락해요. 형이 치는 SOS라면 있는 힘을 짜내서라도 단번에 달려올 테니 연락만 해요.”

부팀장의 말에 이어 김세현이 달려오겠다고 한다. 이미 몇 번이고 이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다른 장소보다 집에서 이 말을 들으니 확 다가오는 기분이다.

그와 함께 조금씩 진정되는 심장 박동을 느끼는데, 그런 날 빤히 바라보던 김세현이 이내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덩달아 부팀장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시작하자 나 역시 멈췄던 젓가락을 다시 움직이며 입을 뗐다.

“명심할게요.”

음식을 먹기 전 한 번 더 다짐하며 답하자 두 사람이 날 보며 고갤 끄덕인다. 특히 부팀장이 날 바라보는 얼굴 가득 묘한 뿌듯함이 자리한 것이 아무래도 날 보며 다시 또 막냇동생을 투영한 듯싶었다.

“좋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작은 것 하나라도 꼭 말하도록 해요. 그래야 어디서 어떤 식으로 접근해 오는지 파악하고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다시 말이 나오자 꼭 말하라며 김세현이 재확인한다. 나는 앞으로는 꼭 말하자 다짐하며 고갤 끄덕였다.

0